일행이 다시 길을 떠날 때에도 그들은 아직 열한 명이다. 두 자매와 작별인사를 하신 예수의 괴로워하는 얼굴 둘레에서 생각에 잠기고 혐오감을 일으킨 열한 얼굴이다. 예수께서는 잠깐 생각하시더니, 격자문을 넘으시기 전에 열성당원 시몬과 바르톨로메오에게 명령하신다. “너희들은 여기 남아 있어라. 그리고 데쿠아의 시몬의 집이나 베타바라로 나를 찾아오너라, 그가 오거든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사랑에 봉사하여라. 내 말 알아들었느냐?”
“안심하고 가십시오, 선생님. 저희들은 조금도 이웃에 대한 사랑을 어기지 않겠습니다”하고 바르톨로메오가 약속한다.
“그가 어떤 시간에 너희를 찾아오든지 즉시 떠나라.”
“즉시 떠나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저희를 믿어 주시니 고맙습니다”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그들은 서로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하인이 대문을 닫고 예수께서 떠나 가시는 동안, 남아 있는 두 사람은 두 자매와 같이 집으로 돌아간다.
예수께서 혼자 앞서 가시고, 뒤에는 베드로가 마태와와 알패오의 야고보 사이에서 가고, 그 다음에는 필립보가 안드레아와 제베대오의 야고보와 요한과 같이 간다. 맨 끝에는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말없는 토마와 유다 타대오가 간다. 그러나 나는 표현을 잘못했다. 말이 없는 것은 베드로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두 동행은 말을 몇 마디 주고받는다. 그러나 둘 사이에 있는 그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걸어가며, 그가 밟고 지나가는 돌과 풀과 말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다.
맨 뒤에 가는 두 사람도 거의 같은 태도를 취한다. 토마는 그가 잎을 하나씩 따는 작은 버들가지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는 뜯어낸 잎 하나하나를 마치 한쪽은 연푸른색이고 한쪽은 은빛인 그 빛깔과 망상조직의 맥들을 연구하려는 듯이 들여다본다. 유다 타대오는 똑바로 앞을 바라본다. 어떤 야산 마루터기를 넘은 다음에 새벽의 들판의 어렴풋한 빛 속에 나타나는 지평선을 바라보는지, 또는 머리 위에 12월의 따뜻한 햇볕을 즐기시려는 듯이 겉을 뒤로 젖히신 예수의 금발 머리만을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토마의 일과 유다 타대오 쪽에서 지평선 또는 선생님을 살펴보는 일이 동시에 끝난다. 유다 타대오가 눈을 내리뜨고 동행을 보려고 머리를 돌리는데, 작은 가지를 채찍처럼 만들고 나서 토마도 타대오를 보려고 눈을 든다. 날카로우면서도 동시에 착하고 침울한 눈길이 그와 같은 눈길을 만난다.
“여보게, 이렇게 됐네! 정말 이렇게 됐어!” 하고 토마가 어떤 회화를 끝내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 이렇게 됐어. 그리고 내 고통은 매우 크네…. 나로서는 게다가 친척으로서의 사랑이 있네….”
“이해하네. 그러나… 자네는 마음에 애정의 고통이 있지만, 나는 어떤가? 나는 나를 괴롭히는 가책이 있는데, 이건 훨씬 더 고통스러운 거야.”
“가책이라니, 자네가? 자네에게는 가책의 원인이 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네. 자넨 착하고 충실하네. 예수님은 자네를 만족하게 생각하시고, 우리도 자네에 대해서 아무런 분개의 이유가 없네. 그런데 그 가책의 느낌이 어떻게 오는 건가?”
“한 가지 추억에서… 성전에 나타나신 새 라삐를 따르기로 내가 결정한 날의 추억이네…. 유다와 나는 나란히 있었는데, 우리는 선생님의 태도와 말씀에 감탄했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을 찾기로 결정했네…. 내가 유다보다 훨씬 더 결단력이 있었고, 말하자면 내가 그를 끌었어. 그 사람은 이와 반대되는 말을 하지만 사실은 이런 거야. 이게 내 가책의 원인이야. 그에게 오라고 간청한 것 말이야…. 나는 예수님께 끊임없는 고통을 갖다 드렸어. 그렇지만 나는 유다가 많은 사람의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었네. 그래서 유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네. 나는 다윗과 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 어떻든 왕… 선생님은 당신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왕밖에 생각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처럼 어리석었네. 그래서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그가 제자들 가운데 있기를 열렬히 바랐었네!… 나는 그렇게 바랐었어.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깨닫네. 그를 즉시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당신을 찾는 것을 그에게 금하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올바름을 이제야 비로소 점점 깨닫는단 말이야…. 가책이라니까! 가책! 저 사람은 좋지 않아.”
“그 사람은 좋지 않네. 그러나 가책을 스스로 만들어 가지지 말게. 자네가 한 것이 악의로 한 것은 아닐세. 따라서 잘못은 없네. 내가 장담하네.”
“거기 대해 아주 자신이 있는 건가? 그렇지 않으면 나를 위로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건가?”
“그것이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걸세. 토마, 이제 과거는 생각하지 말게. 그건 과거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지 않네….”
“자네는 말을 잘 하네! 그렇지만 곰곰 생각해 보게! 만일 나 때문에 선생님이 불행을 당하시면… 내 마음에는 불안과 의심이 가득 차있네. 나는 동료를 판단하고 또 내 판단이 무자비하기 때문에 나는 죄인일세. 그리고 나는 죄인인 것이 선생님의 말씀을 믿어야 할 데니까 그렇단 말일세… 선생님은 유다를 용서하시거든… 자네는… 자네 사촌의 말을 믿나?”
“이것만은 빼놓고 다 믿네. 그러나 괴로워하지 말게.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네. 혹시 속이 타고, 저 사람에 대해서 가지가지 좋은 일을 생각하려고 애쓰는 베드로까지도, 어린 새끼양보다도 더 온유한 안드레아까지도, 우리 중에서 어떤 죄인이나 죄녀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가지지 않는 유일한 사람인 마태오까지도. 또 너무도 사랑과 순결이 가득 차 있어서 다른 것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기 때문에 악과 악습을 두려워하지 않는 훌륭한 운명을 타고난 몹시 다정스럽고 몹시 깨끗한 요한도 말이야. 또 내 사촌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 나는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걸세. 그리고 예수님은 분명히 이것과 함께 다른 생각들, 그 때문에 유다를 데리고 있어야 할 필요성을 보시는 생각들을 가지고 계실 거야… 그를 착하게 만들려고 하는 시도를 남김없이 하실 때까지 말일세.”
“맞아. 그렇지만… 이게 어떻게 끝날 건가?… 그 사람은 너무나 많은… 그 사람은… 요컨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자넨 알아듣지. 그사람은 마침내 어떻게 될 건가?”
“모르겠어… 어쩌면 우리와 헤어질지도 모르고… 어쩌면 남아 있으면서 예수와 히브리인 세계와의 싸움에서 누가 더 강한지 보기를 기다릴지도 모르지….”
“또 다른 것은? 자네는 그가 지금부터 벌써 두 주인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건 확실해.”
“그리고 자넨 그가 다수를 섬겨서 전적으로 선생님을 해칠 수 있을지 염려하지는 않나?”
“아니야.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네. 그렇지만 그가… 그러리라고는 생각 못하겠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렇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어느날 군중의 호의가 선생님을 버리는 일이 있으면, 분명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네. 반대로 민중이 환호하면서 선생님을 우리의 왕으로 우리의 지도자로 인정하면, 유다가 선생님을 위해서 모든 사람을 버릴 것이라고 확신하네. 그 사람은 무엇이나 이용하러드는 사람이야….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제지해서 예수와 우리 모두를 보호하시기를 바라네!….”
두 사람은 걸음을 매우 느리게 걸어서 동행들과 거리가 많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제는 말을 하지 않고, 그들을 따라 가려고 빨리 걷기 시작한다.
“아니 그런데 자네들 뭘 했나?” 하고 마태오가 묻는다. “선생님이 자네들을 찾으시던데….”
토마와 타대오는 서둘러 예수를 찾아 간다.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하고 예수께서 그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시며 물으신다.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본다. 말을 할까? 하지 말까? 그러나 솔직성이 이긴다. “유다에 대해서요”하고 함께 말한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희 솔직성을 시험하고자 했다. 만일 너희가 거짓말을 했더라면 나는 슬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이제 그만두어라. 특히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매우, 너무 속된 것을 주시하느라고 항상 비천하게 되느냐? 이사야는 ‘정신이 콧구멍에 있는 사람은 내버려 두어라’하고 말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그 사람을 분석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의 영을 걱정해라 하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짐승, 그의 괴물이 너희 눈길이나 판단을 끌어서는 안 된다. 그러지 말고, 그의 영에 대해서 사랑을, 고통스럽고 활동적인 사랑을 가져라. 그 사람을 붙잡고 있는 괴물에게서 그를 구해내라. 너희들은 알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다른 일곱 사도를 부르신다. “모두 이리 오너라. 너희는 모두가 마음속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해서 그런다…. 너희들은 다른 어떤 사람을 통해서보다도 가리옷의 유다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너희들은 사도로서 성직을 행하는 중에 많은 유다를 만날 것이고 예수는 별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예수들은 착하고, 온유하고, 깨끗하고, 충실하고, 순종하고, 조심성 있고, 탐욕이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길에서 너희와 너희를 따를 사람들과 너희 후계자들이 얼마나 얼마나 많은 가리옷의 유다를 만날 것이냐! 그런데 선생이 되고 알기 위해서는 이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그 사람은 그의 결점들과 더불어,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너희에게 보여준다. 나는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너희에게 보여준다. 똑같이 필요한 두 가지 본보기이다. 너희들은 두 가지를 다 잘 알아서 둘째 것을 통해서 첫째 것을 바꾸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내 참을성이 너희 준칙이 되어야 한다.”
“주님, 저는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분명히 큰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죄인이었던 만큼은 죄인이 아닌 유다가 제가 회개한 것처럼 회개했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교만입니까?”
“아니다. 마태오야, 그것은 교만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너는 두 가지 진리를 명예롭게 한다. 첫째는 ‘사람의 착한 뜻은 하느님다운 기적을 행한다’는 격언이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네가 그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던 때부터 하느님께서 너를 무한히 사랑하셨는데,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네가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너는 두 가지 힘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즉 네 뜻과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리고 네 뜻이 없었으면 하느님의 사랑도 쓸데없는 것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네 뜻을 첫자리에 놓겠다. 네 뜻이 없었더라면 하느님의 사랑이 헛것이고 꼼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희들의 뜻이 없이도 저희들을 회개시키실 수 없을까요?”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물론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다음에는 기적적으로 얻은 회개를 꾸준히 지키기 위해서 사람의 의지가 항상 요구될 것이다.”
“그러면 유다에게는 그 의지가 선생님을 알기 전에도 있지 않았고, 지금도 있지 않군요….”하고 필립보가 격렬하게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웃고 어떤 사람들은 한숨을 쉰다.
예수 혼자만이 그 자리에 없는 사도를 변호하신다. “그렇게들 말하지 말아라! 그런 의지를 그가 가졌었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육체의 나쁜 권력이 때때로 그 뜻을 억제한다. 그 사람은 병자이다…. 병든 가엾은 형제이다. 어떤 가정에나 약한 사람, 병든 사람, 집안의 고통거리, 걱정거리, 짐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약한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지 않느냐? 불행한 어린 동생이 형들에게 가장 귀여움을 받지 않느냐? 아버지가 기쁨을 주기 위해서, 그 아이가 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병약이 짐스러운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큰 접시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주는 것은 이런 아이가 아니냐?”
“사실입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제 쌍동이 누이동생이 어렸을때 약했습니다. 힘이란 힘은 제가 전부 가겼었습니다. 그렇지만 온 집안 식구가 그 애를 어떻게나 떠받쳐 주었던지 지금은 기운찬 아내요 어머니입니다”하고 토마가 말한다.
“자 봐라. 너희들도 영적으로 허약한 형제에 대해서, 건강이 허약한 형제에 대해서 할 것처럼 하여라. 나는 꾸짖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 너희들이 나보다 더 낫지는 않다. 너희들의 참을성있는 사랑이 가장 강한 질책이구 대항할 수 없는 비난이다. 데쿠아에서는 마태오와 필립보를 남겨 놓아서 유다를 기다리게 하겠다…. 마태오는 그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필립보는 아버지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예, 기억하겠습니다. 선생님!”
“예리고에서는, 그가 아직 우리와 합류하지 않았으면, 안드레아와 요한을 남겨 놓겠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을 같은 정도로 받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길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저 늙은 거지에게 가 보아라. 도시가 보이니, 돈을 좀 가지면 탕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진 채 갔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리고 자매들도 저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시몬아, 네 말이 옳다. 자매들이 고통으로 인해서 얼이 빠진 것 같고, 우리도 그들과 같이 어리둥절한 것 같다. 상관없다. 우리에게 빵이 좀 있는데, 우리는 젊고 튼튼하니, 빵을 노인에게 주어서 길에서 쓰러지지 않게 하자.”
그들은 배낭을 뒤져 빵조각들을 모아서 작은 노인에게 준다. 노인은 놀라서 그들을 쳐다본다.
“드십시오, 드세요!” 하고 예수께서 노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말씀하시고 당신 수통의 물을 마시게 하시면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신다.
“데쿠아에요. 내일은 큰 장날이지요. 그러나 나는 어제부터 먹질 못했어요.”
“혼자십니까?”
“혼자인 것보다도 더하지요… 내 아들이 나를 내쫓았답니다….” 노인의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찢어진다.
“할아버지께서 하느님의 자비를 믿을 줄 아시면, 하느님께서 당신 나라의 문을 할아버지께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메시아의 자비두요. 그러나 내 아들은 메시아를 모시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메시아를 사랑한다고 해서 아비를 미워할 정도로 메시아를 미워하는 그 애는 메시아를 모실 수가 없거든요.”
“아드님이 그 때문에 할아버지를 내쫓았습니까?”
“그 때문이지요. 그리고 메시아를 박해하는 어떤 사람들의 우정을 잃지 않으려고 그런 거지요. 그 애는 혈육의 목소리까지도 억제할 정도로 그의 증오가 그들의 증오를 능가한다는 것을 보이려고 한 겁니다.”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로군요”하고 모든 사도가 말한다.
“만일 내가 내 아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더 소름끼치는 일일 겁니다”하고 작은 노인이 격렬하게 말한다.
“그렇지만, 아들이 누굽니까?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권력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 같은데요…” 하고 토마가 말한다.
“여보시오. 아비가 죄지은 아들의 이름을 말해서 아들이 업신여김을 받게는 하지 않소. 나는 내 아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일을 많이 해서 집안의 안락을 더해준 내가 배가 고프고 춥다는 말을 해야 하겠어요.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겠어요. 내가 유다 사람이고 아들도 유다 사람이니까 우린 같은 겨레요. 그러나 같은 것을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시오. 그 나머지는 무익한 겁니다.”
“그런데 의인이신 할아버지는 하느님께 아무 것도 청하지 않으십니까?” 하고 예수께서 조용히 물으신다.
“제 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제가 믿는 것을 믿도록 이끌어 주심사고 청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위해서, 할아버지만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청하지 않으십니까?”
“제 생각에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분을 공경하고 나서 죽게 그분을 만나게 해 주십사고 청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그분을 보지 못하시게 될 텐데요. 할아버지는 임보에 계실 테니까….”
“잠깐 동안일 겁니다. 선생님은 라삐이시지요. 나는 눈이 아주 잘 안 보입니다…. 나이도 그렇고… 눈물을 많이 흘리고 굶주려서도 그렇고… 그러나 선생님의 허리띠의 매듭들이 보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내가 생각하듯이 훌륭한 라삐이시면, 선생님도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으실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그 때 말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우리의 모든 불행과 모든 고통을 짊어질 시간이 곧 오리라는 것을 이 때문에 우리의 병이 고쳐지고 영원하신 분과 화해하도록 어린 양이 꿰뚫리고 제헌될 시간이 곧 올 것입니다. 그 때에는 영들을 위해서도 평화가 올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탁 믿으면서 그것을 바랍니다.”
“할아버지는 그를 한번도 보지 못하셨습니까?”
“예, 명절때 성전에서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작은데다가 늙어서 더 작아졌고, 아까 말한 대로 눈이 잘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중 가운데에 가면 내 앞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보지 못하고, 멀리 있으면 거리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오! 나는 선생님을 보고 싶습니다. 다만 한번만이라도!”
“할아버지께서는 보시게 될 겁니다. 하느님께서 할아버지를 만족시켜 주실 겁니다. 그런데 데쿠아에는 어디 가실 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회랑 밑이나 문어귀에 있겠습니다. 이젠 이 일에 익숙해 졌습니다.”
“저와 같이 가십시다. 저는 착한 이스라엘 사람을 한 사람 압니다. 그 사람이 할아버지를 갈릴래아의 선생 예수의 이름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도 갈릴래아 사람이시지요, 선생님의 억양으로 그걸 알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피곤하십니까? 그러나 벌써 첫째 집들 있는 곳에 왔습니다. 곧 쉬시게 되고 식사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몸을 굽혀 베드로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는 자리를 떠서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해 준다. 나는 그 말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걸음을 빨리 걸어서 시내로 들어간다. 예수께서는 다른 사도들과 같이 그를 따라 가시는데, 작은 노인의 걸음에 맞추어서 걸으신다. 노인은 이제는 말을 하지 않는데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마침내 뒤로 처져서 안드레아와 마태오와 같이 가게 된다.
시내는 텅 빈 것 같다. 오정이라,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하느라고 집안에 있다. 몇 미터쯤 가니까 베드로가 온다.
“주님 됐습니다. 선생님이 노인을 데려 오시니까 시몬이 받아들이겠다고 하면서, 자기를 생각하신 것을 고맙게 여긴다고 합니다”하고 말한다.
“주님을 찬미하자! 이스라엘에 아직 의인들이 있구나. 이 노인이 그중 한 분이고, 시몬이 또 한 사람이고. 그렇다, 착하고 자비롭고 주님께 충실한 사람들이 아직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 많은 고통을 완화하고, 그 의인들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가 가라앉기를 바라게 한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어떤 유력한 바리사이파 사람의 우정을 잃지 않으려고 아버지를 내쫓는 아들은!”
“선생님에 대한 증오는 이 정도에까지 이를 수가 있군요! 저는 그로 인해 분개합니다!”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오! 너희들은 그런 것보다 훨씬 더한 것을 볼 것이다!”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더한 것을요? 선생님을 미워해서 내쫓는 아버지보다 더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 사람의 죄는 엄청나게 큽니다!….”
“그의 하느님에 대한 한 민족의 죄는 더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노인을 기다리자.”
“아들이 대관절 누굴까?”
“바리사이파 사람일 테지!”
“최고회의 위원일 테지!”
“라삐일 거야.” 의견이 가지가지이다.
“불행한 사람이다. 알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가 오늘은 자기 아버지를 치지만, 내일은 나를 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랑아처럼 이렇게 떠나간 유다의 죄는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저 배은망덕 하는 아들은, 하느님께 죄를 짓는 저 히브리인을 위해서 그가 뉘우치도록 기도하겠다.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 할아버지, 오십시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엘리-안나입니다. 나는 행복했던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내가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나를 기르신 외할머니가 아버지의 이름과 어머니의 이름, 이렇게 두 이름을 합해서 내게 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정말 엘리십니다. 아들은 핀네스와 비슷하구요” 하고 이러한 죄를 감수할 수 없는 필립보가 말한다.
“여보시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핀네스는 죄인으로 죽었고, 그것도 결약의 궤가 탈취되었을 때 죽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영혼에도 불행이고, 온 이스라엘에도 불행일 거요” 하고 작은 노인이 말한다.
“이거 보세요. 이 집이 저와 친한 집인데, 제가 청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이 집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의인인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의 집입니다. 그 사람은 만일 할아버지께서 좋다고 하시면 제게 대한 사랑으로 받아드림니다”하고 예수께서 문을 두드리기 전에 말씀하신다.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습니까? 나는 내게 빵과 사랑의 피신처를 주는 사람 위에 하늘의 축복을 빌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인노룻 하는 것은 수치가 아닙니다. 죄를 짓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우리가 그 말을 시몬에게 하지요”하고 예수께서 궁핍과 정신적 고통으로 인하여 형편없이 된 노인을 바라보시면서 동정의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문이 열린다.
“선생님, 들어오십시오. 선생님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 선생님이 데려오시는 형제가 어디 있습니까? 그에게 평화와 환영의 입맞춤을 하게요” 하고 50세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말한다.
“여기 계시오. 그리고 주님이 당신께 상을 주시기를.”
“저는 상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제 손님이신데, 선생님을 모시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이 오실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원하는 대로 경의를 표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며칠 후에 다시 이리로 지나가실 생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에는 예의바르게 맞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일행이 이제는 몸을 씻기 위한 김나는 대야들이 준비되어 있는 방에 들어가 있다. 노인은 겁을 먹고 문에 기대있다. 그러나 집주인이 손을 잡아 의자로 데리고 가서, 자기 손으로 그의 신발을 벗기고 왕에게처럼 봉사하고 새 샌들을 신기려고 한다. 그러니까 노인은 말한다. “왜요? 아니 왜요? 내가 봉사를 하려고 왔는데, 당신이 내게 봉사하다니오! 이건 옳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이건 옳은 일입니다. 저는 집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라 다닐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선생님의 꼴찌 제자로서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도록 마련합니다.”
“당신은 선생님을 잘 아시는군요, 당신은 착하니까 선생님을 정말 아시는군요. 이스라엘에는 선생님을 아는 사람이 많아요. 그렇지만 어떻게 압니까? 그들의 눈과 증오로 알지요. 그러니까 알지 못하는 겁니다. 어떤 여자를 아는 것은 그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고. 그 여자를 차지할 때입니다. 나자렛의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을 나는 본 일은 없지만, 많은 사람보다 더 잘 압니다. 나는 그분에게 지혜가 있다고 믿으니까요 그러나 당신은 그분을 정말 알고 그분과 그분의 가르침을 아는군요.”
그 사람은 예수를 쳐다본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노인이 말을 잇는다. “나는 이 라삐에게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예, 할아버지를 위해 일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우선은 식탁으로 오십시오. 선생님, 제자들이 곧 올 겁니다. 그래도 식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을 기다리는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나는 기다리고 싶소. 그러나 당신이 할 일이 있으면….”
“아이고! 선생님. 선생님은 선생님의 아주 작은 소원에도 순종하는 것이 제게는 기쁨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작은 노인은 이 때에 비로소 길에서 자기를 구원하여 준 사람의 신분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하고, 그를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그리고 동행들을 바라보고… 유심히 살펴보고… 그들 주위를 빙빙돈다…. 알패오의 아들들이 요한과 같이 들어온다. 예수께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신다.
“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아니 그럼… 선생님이시로군요!” 하고 노인이 외치며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방바닥에 엎드린다.
그의 놀람은 다른 사람들의 놀람보다 덜하지 않다. 그가 선생님을 알아보는 방식이 아주 이상하다! 그래서 베드로가 노인에게 묻는다. “이스라엘에 그렇게도 흔한 이 이름들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기에 할아버지께서 메시아 앞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내가 유다를 알기 때문이지요. 그 사람이 늘 내 아들에게 옵니다. 그리고….” 노인은 아들의 이름을 말한 것이 거북하여 말을 중단한다
“그렇지만 저는 할아버지를 본 일이 없는데요” 하고 타대오가 노인 바로 앞에 가 서며, 아주 마주 보기 위하여 몸을 숙이면서 말한다.
“나도 당신을 알지 못해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인 유다 한 사람이 내 아들에게 자주 옵니다.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 또 베다니아의 라자로의 친구 시몬,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어요…. 선생님의 가장 친근한 제자들의 이름으로 알려진 이름 중에서 셋을 들었으니! 그리고 선생님은 그렇게도 친절하시니!…. 나는 알아차렸습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렇지만 다른 유다는 어디 있습니까?”
“여기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나입니다. 할아버지, 주님은인자하십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기를 바라셨는데, 이제 보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합시다…. 비키지 마세요. 엘리-안나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 보시기에는 길손이고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내 곁에 계셨는데, 내가 목적이라는 것을 아신 지금은 왜 물러서려고 하십니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나를 얼마나 위로했는지 모르십니다. 가장 많은 것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나입니다…. 이스라엘의 4분의 3이, 그 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될 정도로 나를 미워할 때에, 약한 사람들이 내 길에서 멀어질 때에, 배은망덕과 원한과 중상의 고난이 사방에서 내게 상처를 입힐 때 ,내 희생이 이스라엘에 구원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얻을 수가 없을 때, 할아버지 같은 분을 만나는 것은 내 고통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모르십니다…. 사람의 아들의 점점 더 심해 가는 슬픔을 아는 사람은-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사랑에 목마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마음이 물이 마른 샘들이라, 가까이 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십시다….”
그러면서 노인을 당신 곁에 두시고 벌써 식탁들이 차려져 있는 방으로 들어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