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문으로 해서 시내에 들어오신 예수께서는 티로페온산과 오펠 변두리로 가시기 위하여 시내를 건너지르시는 중이다.
“우리는 성전으로 갑니까?” 하고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그렇다.”
“무엇을 하시는지 주의해서 하십시오!” 여러 사람이 예수께 경고를 하려고 말한다.
“기도하는 시간밖에는 머무르지 않겠다.”
“그들이 선생님을 붙들 것입니다.”
“아니다. 우리는 북쪽 문으로 해서 들어갔다가 남쪽 문으로 해서나올 터이니까 그들이 내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조직화될 시간이 없을 것이다. 내 뒤에 나를 감시하고 밀고하는 사람이 항상 있으면 몰라도.”
아무로 대꾸하는 사람이 없고 예수께서는 성전을 향하여 나아가신다. 성전은 어두운 겨울 아침의 누르스름한 초록색 빛 속에 일종의 유령처럼 그 언덕 위에 나타나는데, 이런 날 아침에는 떠오르는 해가 남아 있으려고 고집을 부리면서 겹겹이 쌓인 구름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고 애를 쓰는 추억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쓸데없는 노력이다! 새벽의 즐거운 광채는 퍼지지는 않고, 고작 초록색 줄이 있는 남빛깔의 반점이 있는 환상적인 노랑의 창백한 반사광이 될 뿐이다. 그리고 이런 빛을 받는 성전의 대리석과 황금들은 창백하고 음산하게 나타나며, 죽음의 지역에 솟아나는 폐허와 같이 음울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전 성곽을 향하여 올라가시며 성전을 자세히 바라보시고 이른 시간에 길을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신다. 대부분은 야채장수, 도살장으로 가는 짐승들을 데리고 가는 목자들, 장보러 가는 하인들이나 주부 같은 비천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모두 겉옷을 입고 아침의 매운바람을 막으려고 몸을 좀 구부리고 말없이 걸어간다. 얼굴들까지도 이 종족의 사람들의 얼굴들이 보통 그런 것보다 더 창백한 것 같다. 이상한 빛이 여러 가지 빛깔인 그들의 겉옷에 둘러싸인 그 얼굴들을 이렇게 푸름스름하거나 거의 진주빛깔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겉옷의 초록색이나 선명한 자주빛 진한 노랑 따위가 얼굴에 볼그레한 반사광을 거의 보낼 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께 인사한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은 유리한 시간이 아닌 것이다. 네거리나 줄곧 거리를 덮고 있는 차양 아래에서 애처로운 소리를 지르는 거지들은 아직 없다. 시간과 계절은 예수께서 장애없이 자유롭게 가시는데 이바지한다.
일행은 성벽에 이르러서 안으로 들어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마당으로 간다. 그들이 기도하는 동안, 그 음색으로 보아 은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되는 나팔 소리가 언덕들 위로 퍼지면서 틀림없이 어떤 중요할 일을 알리고, 향냄새가 퍼지면서 모리아산 꼭대기에서 맡을 수 있는 덜 기분좋은 다른 냄새들을 맡지 못하게 한다. 그 냄새들이란 목을 따서 불에 태우는 살 냄새, 밀가루 타는 냄새, 기름 태우는 냄새 따위의 줄곧 있는 냄새, 말하자면 자연적인 냄새로, 더 강하고 덜 강한 차이는 있어도 줄곧 드리는 번제물 때문에 항상 저 위에 감돌고 있는 냄새들이다.
일행은 다른 방향으로 가는데, 성전으로 달려오는 첫번째 사람들과 성전에 속한 사람들, 계산대를 차리거나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환전상들과 장사꾼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가 별로 많지 않고, 또 너무 놀라서 반응을 보일 줄을 모른다. 그들은 서로 놀람을 나타내는 말을 주고받는다.
“저 사람 또 왔구먼!”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갈릴래아로 가지 않았군 그래.”
“그렇지만 어디 숨어 있었기에 아무 데서도 찾아내지 못했을까?”
“저 사람은 정말 그들과 맞서려고 하는 거로구먼.”
“참 바보야!”
“정말 거룩하신 분이야!” 등등 ,각자의 정신상태에 따라서 말한다.
예수께서는 벌써 성전 밖으로 나오셔서 오펠 쪽으로 가는 길을 향하여 내려오신다. 그러다가 시온으로 가는 길과 엇갈리는 곳에서 뜻밖에 눈을 뜬 지 얼마 안 되는 배냇소경을 만나신다. 그 사람은 향기로운 사과가 가득 찬 바구니들을 들고 역시 사과 바구니들을 들고 예수께서 가시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다른 젊은이들과 농담을 하며 즐겁게 오는 중이었다.
젊은이는 예수의 얼굴과 사도들의 얼굴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로서는 어쩌면 이 만남이 주목되지 않은 채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기적을 받은 사람의 얼굴을 잘 아신다. 그래서 그를 부르신다. 바르톨마이라고도 하는 사도니아는 돌아서며 어떤 골목길로 향하여 가면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키가 크고 소박한 옷을 입었는데도 위엄이 있는 그 사람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리 오시오”하고 예수께서 명령하신다.
젊은이는 짐을 내려놓지 않은 채 가까이 오며, 예수를 곁눈질로 쳐다보고,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말한다. “제 주인이 이 사과들은 팔았습니다. 그렇지만 사과를 사고 싶으시면 아직 있습니다. 어제 사론의 과수원에서 온 것들인데, 아름답고 맛이 좋습니다. 또 많이 사시면 값을 아주 싸게 해 드릴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빙그레 웃으면서 손을 들어 젊은이의 수다를 막으시고 말씀하신다. “나는 사과를 사려고 당신을 부른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기뻐하며 당신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신 지극히 높으신 분을 당신과 함께 찬미하려고 불렀소”
“오! 그렇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그렇게 합니다. 제가 보는 빛 때문에도 그러고 아버지 어머니를 도와 드리기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것 때문에도 그럽니다. 저는 마침내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히브리인은 아니지만 착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제가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걸 그들이 알기 때문입니다” 하고 청년은 바구니들을 땅에 내려놓으면서 말한다.
“그들이 당신을 내쫓았소? 왜? 당신이 무슨 일을 했기에?”
“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주님은 사람들이 메시아라고 하는 그분을 만나게 해주셨는데, 그분이 보시다시피 저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문에 그들이 저를 내쫓았습니다.”
“그러면 당신을 고쳐 준 사람은 조금도 당신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로구려”하고 예수께서 그를 시험하시려고 말씀하신다.
“여보세요, 그런 말씀 마세요! 그것은 선생님 편에서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분은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고, 그 다음에는 내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보셨으니 까 ‘눈이 보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시지요. 그렇지만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오!… 그것은… 눈이 보임과 동시에 모든 것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저기 실로암 근처에서 눈이 보이게 되었을 때 정말이지 웃고 울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뻐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예! 저는 제가 불행한 동안에도 그렇게 운 일이 없을 정도로 울었습니다. 그 때에 저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착하신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생활비를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적당한 일로요 또 그리고… -이건 무엇보다도 바라는 것이고, 제가 받은 기적이 제게 주는 생각입니다만- 그리고 자기가 메시아라고 말하는 그분과 그분의 제자를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소?”
“저는 그분과 그분의 제자를 찬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느님에게서 오신 것이 틀림없는 선생님께 저를 하인으로 써 주십사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뭐라구요? 그 사람 때문에 당신이 저주를 받았고, 일거리를 얻기가 힘들었고, 벌을 더 받을 수도 있을 터인데, 그 사람에게 봉사하겠다는 거요? 당신을 고쳐 준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박해를 당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오?”
“이거 보세요! 저도 그건 압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우리들끼리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저기(그러면서 성전을 가리킨다)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말하는 것을 원치 않지만요. 그리고 그분을 섬기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을 믿고 그분이 팔레스터나에 계시다는 것을 믿소?”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을 지능으로뿐 아니라, 제 몸 전체로 알고 싶습니다. 만일 그분이 누구이신지, 어디 계신지 아시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래서 그분께 가서 그분을 보고, 그분을 완전히 믿고 그분께 봉사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벌써 그분을 보았소. 그러니까 그분께 갈 필요가 없소 당신이 지금 보고, 당신에게 말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오.”
나는 확신을 가지고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매우 아름다워지시고 찬란해지신 것 같아서 말하자면 아주 짧은 현성용(顯聖容)을 하시는 것같이 보였다. 당신을 믿는 소박한 사람에게 상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고 그의 믿음을 굳게 하시기 위하여 ,눈 한번 깜짝 할 동안만큼 당신의 미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신 것 같다. 미래의 아름다움이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가지시고 하늘에서 계속 가지고 계실 그 아름다움, 영광스럽게 된 인간으로서의 그분의 아름다움, 영광스럽게 되어 원래 당신의 것인 완전의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속에 섞여 들어간 육체로서의 그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한 순간, 번개가 번쩍 하는 사이였다. 두사람이 말을 하기 위하여 물러갔던 약간 어두운 길모퉁이, 장식창틀 밑이 예수에게서 발산하는 빛으로 이상하게 빛난다. 되풀이 말하지만 그 때 예수께서는 매우 아름다워지신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전과 같이 되는데, 다만 젊은이는 이제는 땅바닥에 엎드려서 얼굴을 먼지에 파묻고 경배를 하며 말한다. “주 하느님, 저는 믿습니다!”
“일어나시오. 나는 빛과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가져다주고, 사람들을 시험하고 심판하려고 세상에 왔소. 내 때인 이때는 선택과 간선과 선별의 때요. 내가 온 것은 마음과 의향이 깨끗한 사람들과 겸손한 사람들과 은유한 사람들, 그리고 정의와 자비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과 여러 가지 부(富)에 그 실제적인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아서 물질적인 재산보다 정신적인 재산을 낫게 여기는 사람들이 그들의 정신이 갈망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고, 사람들이 빛, 즉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막기 위하여 두꺼운 벽을 쌓아 올렸기 때문에 소경으로 있었던 사람들이 밝히 볼 수 있게 하고, 자기들을 천리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경이 되게 하기 위해서요….”
“그러면 선생은 대부분의 사람을 미워하고, 선생이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착하지 않습니다. 만일 착하면, 모든 사람이 밝히 보기를 보도록 힘쓰고, 이미 눈이 보이는 사람은 소경이 되지 않게 되도록 힘쓸 데니까 말입니다”하고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말을 가로막는다. 그들은 큰 거리에서 와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도들의 무리 뒤에 조심스럽게 다가 왔었다.
예수께서는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신다. 이제는 물론 기분좋은 아름다움의 변모를 하고 계시지 않다. 당신의 파란 눈으로 당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시는 그분은 매우 엄하신 예수이시고, 예수의 목소리의 음색은 그 기쁨을 나타내는 금과 같은 음색이 아니고, 청동의 음색이며, 대답을 하실 때의 그 음색은 그 청동의 음색과 같이 날카롭고 엄하다.
“지금 진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기를 원하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바로 그 사람들 자신이 보지 않으려고 그들의 눈동자 앞에 판자를 들어 올려서 그들의 자유의지로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갈라놓으라고, 그래서 빛의 아들들과 어두움의 아들들,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소경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정말로 알도록 하라고 나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도 아마 그 소경들 축에 드는 모양이지요?”
“만일 당신들이 소경이어서 눈이 보이게 되려고 애를 쓰면, 당신들은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우리는 눈이 잘 보인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는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죄가 남아 있는 것은 당신들이 소경이면서 눈을 뜨려고 애를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길과 진리와 생명을 보아야 합니다. 전에 이 사람이 그렇던 것과 같이 배냇소경은 그의 집을 알기 때문에 언제든지 지팡이를 가지고 자기 집의 문을 찾아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면, 새 집의 문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로 해서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고, 벽에 부딪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율법의 시대가 왔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새로운 세계, 새로운 국민, 새로운 나라가 일어납니다. 지금 지난 시절의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를 압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왕궁이 있는 새로운 나라, 그러나 그 왕궁이 있는 자리를 알지 못하는 새로운 나라에 데려다 놓은 소경들과 같습니다.
나는 그들을 인도하여 그리로 들어가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보게 하려고 왔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아버지의 집, 하느님의 나라, 빛, 길, 진리, 생명에 이르는 문입니다. 또 나는 인도자가 없는 채로 있었던 양몌를 모아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양의 우리, 즉 아버지의 양의우리로 인도하기 위해서 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는 문임과 동시에 목자이기 때문에 양의 우리의 문을 압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대로 원하는 때에 양의 우리를 드나듭니다. 또 양의 우리에 마음대로, 그것도 문을 통해서 들어갑니다. 그것은 내가 참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하느님의 양들에게 다른 지시를 주고, 다른 우리와 다른 길로 데리고 가서 빗나가게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착한 목자가 아니라 거짓 목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울타리 위로 뛰어서 다른 곳으로 해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목자가 아니고 도둑과 암살자입니다. 그런 자는 훔칠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는데, 그가 훔치려고 하는 어린 양들이 목소리를 내서 소리를 질러 지키는 사랑들과 목자의 주의를 끌지 못하게 하려고 어린 양들을 죽일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의 양떼의 양들 가운데에서는 거짓 목자들이 슬그머니 끼어들어 양들을 목장에서 나오게 해서 참 목자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거짓 목자들은 양들을 폭력으로 양몌에서 떼어낼 마음을 가지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양들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죽이고 쳐서, 양들로 하여금 목자에게 거짓 목자들의 계략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적수들과 목자의 적수들에게서 자기들을 보호해 주십사고 하느님께 호소하지 못하게 할 마음을 가지고 양의 우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착한 목자입니다. 그래서 내 양들은 나를 알고, 영원히 참 양의 우리의 문지기들인 사람들도 나를 압니다. 그들은 나와 내 이름을 알았고, 이스라엘에 그 이름이 알려지라고 그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묘사하고 내 길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내 목소리가 들리게 되었을 때, 그들 중의 맨 마지막 사람이 내게 문을 열어 주면서 참 목자를 기다리던 양떼에게, 그의 지팡이 둘레에 모였던 양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아라! 저 분이 내가 내 뒤에 오시는 분이라고 말한 그분이시다.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에 내 앞장을 서 가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을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위하여, 너희들이 그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게 하려고, 그분이 이스라엘에 나타나시도록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러 왔다’하고 그리고 착한 양들은 내 목소리를 들었고, 내가 양들의 이름을 불렀을때 달려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양들이 목소리를 듣고 알아보고 어디로 가든지 데려가는 착한 목자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데리고 왔습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모두 나오게 한 다음에는 양들의 앞장을 서서 걸어가고, 또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양들이 외부 사람은 알지 못하고 무서워하기 때문에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서 멀리 도망칩니다. 나도 양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내가 제일 먼저 위험을 무릅써서 ,내 나라 안의 완전한곳으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양떼에게 그 위험을 알려주기 위하여 내양들의 앞장을 서서 걸어갑니다.”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닐 것이란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참 예루살렘과 하느님의 나라로 올라가야 하는 출발점 입니다.”
“그러면 약속된 메시아는요? 선생 자신이라고 단언하는 그 메시아는 그럼 이스라엘을 승리하고 영광스럽고 세상의 지배자가 되도록 하기로 되어 있지 않단 말입니까? 모든 민족을 그의 왕권에 복종시키고, 이스라엘이 한 민족이 된 뒤로 그를 굴복시켰던 자들 모두에게 복수를, 오! 사납게 복수를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들 중에서 아무 것도 사실이 아닙니까? 선생은 예언자들을 부인합니까? 우리 라삐들을 바보로 취급합니까? 선생은….”
“메사아의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 위에 세워진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외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메시아는 민족들과 군대들의 왕이 아니라 정신의 왕입니다. 메시아는 선택된 민족에서, 왕족의 가문에서 올 것이고 특히 그를 낳으시고 보내신 하느님에게서 올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서 하느님의 나라 건설이 시작되었고 사랑의 율법의 공포와 예언자가 말하는 기쁜 소식의 전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세상의 왕, 왕중 왕일 것이고 그의 나라에는 시간에 있어서나 공간에 있어서나 한계가 없고 국경이 없을 것입니다. 눈을 뜨고 진리를 받아들이시오.”
“선생의 횡설수설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선생은 의미가 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쓰지 말고 말하고 대답하시오 선생은 메시아입니까, 아닙니까?”
“그래 당신들은 아직 알아듣지 못했다구요? 그래서 나는 문이요 목자라고 당신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담을 둘러치고 출입문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내가 와서 들어가는 문이 만들어졌습니다.”
“오! 자기들이 메시아라고 말한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중에 그들이 도둑이고 반역자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재판이 그들의 반란을 벌했습니다. 선생이 그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누가 보증합니까? 우리는 자기들이 왕이라고 말하며 백성들을 반란을 일으키도록 부추기는 거짓말쟁이들의 덕택으로 로마의 준엄함을 우리도 당하고 백성들에게도 당하게 하는데 지쳤습니다!”
“아닙니다. 당신들의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고통을 당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것은 당신들이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말할 수 없이 사실인 것이, 우리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준엄함에다 당신들은 과도한 십일조와 그 밖에 많은 것으로 서민을 압제해서 당신들의 준엄함을 보탭니다. 내가 부랑배가 아니라는 것을 누가 보증하느냐고요? 내 행동입니다. 로마의 손길을 무겁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권고하고 지배받는 사람들에게는 참을성을 권하는 일이 있으니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적어도 이것은 있습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의견이다. 과연 지금은 청중이 많이 불었고, 끊임없이 불어나서 큰 길의 통행이 방해를 받게 될 지경이고, 사람들이 모두 골목길로, 목소리가 반향하는 차양 아래로 물러갈 지경이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에 찬성하며 말한다. “십일조에 대해서는 잘 말했습니다. 그건 사실이오! 그리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복종을 권하시고, 로마인들에게는 연민을 권하십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것과 같이 군중의 찬성 때문에 화가 나서 그리스도께 말하는 그들의 말투가 훨씬 더 신랄해진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선생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시오”
“나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하지마는, 내가 메시아입니다. 나만이 하늘의 양의 우리의 문입니다. 나를 통해서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다른 거짓 메시아들이 있었고. 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참된 메시아는 나입니다. 메시아가 아니고 다만 도둑과 산적이면서 자기들이 메시아라고 말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있었습니까? 또 그들과 같은 정신상태를 가진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에 의해 메시아라고 불리던 사람들만이 아니고, 자기들이 메시아라고 하지는 않으면서도, 참다운 메시아에게조차도 드리지 않는 경배를 요구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은 들으시오.
그러나 이 점에 유의하시오. 양들은 거짓 메시아들과 거짓 목자와 거짓 선생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정신은 부드럽게 들리게 하려고 하지만 잔인한 거짓 목자들의 목소리가 거짓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염소 수컷들만이 그들을 따라 가서, 그들의 악랄함의 동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양의 우리에, 진짜 왕과 목자의 왕홀(王笏) 아래로 들어오기를 원치 않는 야성적이고 길들지 않은 염소들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참 임금과 목자의 왕홀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중의 왕인 사람이 양떼의 목자가 되는데, 옛날에는 양떼의 목동이던 사람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속과 예언서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두 사람 다 오직 한 가문에서, 즉 이새의 가문에서 나왔습니다. 거짓 목자들은 솔직하게 말하지도 않고 위로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양떼를 흩어버리고 괴롭히거나 늑대들에게 내맡기거나, 또는 팔아서 이익을 남겨 생활비를 확보하려고 죽이거나, 양들에게서 목장을 빼앗아 창가(娼家)를 만들고 우상들을 위한 작은 숲을 만들었습니다.
늑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거짓 목자들 자신이 제일 먼저 행하면서 양떼에게 가르쳐준 나쁜 정열과 악습입니다. 그 우상들의 작은 숲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 앞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는 자기 자신들의 이기주의입니다. 다른 두 가지는 그말의 뜻이 너무나 명백하므로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목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양들을 훔치고 죽이고 몰살하려고 오거나, 양의 우리 밖으로 거짓 목장으로 데려가거나, 사실은 도살장에 지나지 않는 거짓 양의 우리로 데려가려고 오는 도둑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내게로 오는 양들은 안전합니다. 그 양들은 나와서 내 목장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고, 돌아와 내 휴식처로 와서 거룩함과 건강의 즙으로 튼튼하게 되고 살이 찔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왔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까지 야위고 병을 앓던 내 백성, 내 양들이 생명을 얻도록, 그것도 풍부한 생명, 평화와 기쁨의 생명을 얻게 하려고 온 것입니다. 이렇게 원하는 내 의지가 너무 절실해서, 내 양들이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충만하고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내 목숨을 바치려고 왔을 정도입니다.
나는 착한 목자입니다. 목자가 착하면, 늑대와 도둑들에게서 양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다. 그런데 양들은 사랑하지 않고, 목장으로 양들을 데리고 가는 것으로 버는 돈을 사랑하는 고용인은 얼마 안 되는 돈을 품에 넣고 자기 목숨을 구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늑대나 도둑이 오는 것을 보면 달아납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늑대에게 반쯤 죽은 채 남겨진 양이나 도둑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내서 첫째 양은 잡아서 먹고, 둘째 양은 자기 양인 것처럼 팔아서 자기의 돈을 불리고, 그리고 나서는 주인에게 가서 거짓 눈물을 흘리면서 양이 한 마리도 살아남지 않았다고 말할 각오를 하고 말입니다. 늑대가 양들을 잡아가고 흩어놓건, 도둑이 약탈을 해서 양들을 도살업자에게 끌고 가건, 돈만 바라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혹 양들이 크는 동안에 양들을 돌보고, 양들을 튼튼하게 하려고 고생을 했습니까? 그러나 주인인 사람, 양 한 마리가 얼마만 한 값어치가 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의 피로와 얼마나 많은 밤샘과 얼마나 많은 희생이 드는지를 아는 사람은 양들을 사랑하고, 자기의 재산인 그 양들을 보살핍니다.
그러나 나는 양들의 주인보다 더 합니다. 나는 내 양떼의 구세주이며, 다만 한 영혼의 구원도 내게 얼마나 값있는 것인지를 압니다. 그래서 나는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영혼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셨습니다. 모든 영혼이 엄청나게 많은 영혼을 구원하라는 명령과 더불어 내게 맡겨졌습니다. 내가 영혼들을 영의 죽음에서 많이 빼앗아내면 그럴수록 내 아버지께는 더 많은 영광이 돌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때문에 나는 영혼들을 그들의 원수들, 즉 그들의 자아, 세속, 육신, 마귀, 그리고 나를 괴롭히기 위하여 영혼들을 빼앗아가려고 다투는 내 반대자들에게서 구해내기 위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생각을 내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은 아버지와 영혼들에 대한 내 사랑을 아버지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또 내 양떼의 양들도 나와 내 사랑을 알고,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내가 목숨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다른 양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들은 이 양의 우리의 양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 정체를 알지 못하고, 또 많은 양은 내가 있다는 것과 내가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여러분 중의 많은 사람에게는 야생 염소보다도 못한 것같이 보이고, 그래서 여러분은 진리를 알고 생명과 나라를 얻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양들입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양들도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양들에게 가까이 가서 나를 알리고,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 내 목장으로 데려오고, 모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양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고 끝내는 내 목소리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한 목자 밑에 오직 한 양의 우리가 있을 것이고, 하느님의 나라가 땅 위에 형성되어, 내 왕권과 내 표와 내 참 이름 아래 하늘로 옮겨져서 받아들여질 준비가 될 것입니다.
내 참 이름! 그 이름은 나 혼자만이 압니다! 그러나 뽑힌 사람들의 수가 차구 환희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들이 신랑과 신부의 큰 혼인 잔치상에 앉게 되면, 그 때에는 내 이름으로 표가 되고, 그 이름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상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 그 범위와 그 깊이를 완전히 알지 못하면서도, 그 이름에 충실함으로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한 내 뽑힌 사람들에게 내 이름이 알려질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내 양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내 기쁨입니다….”
예수께서는 눈물이 반짝이는 황홀한 눈을 당신 쪽으로 향한 얼굴들을 향하여 돌리시는데, 입술에서는 미소가 떨고 있다. 영화(靈化)된 얼굴에 나타나는 하도 영화된 미소여서, 지복직관(至福直觀)으로 그리스도께서 황홀하게 되고 그 지복직관이 이루어지기를 사랑으로 바라신다는 것을 깨닫는 군중도 몸서리를 칠 지경이다. 예수께서는 다시 침착해지신다. 당신의 영이 보는 것으로 눈이 너무나 나타낼지도 모르는 신비를 숨기기 위하여 잠간 눈을 감으신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신다.
“오 내 백성, 오 내 양떼여!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나는 목숨을 다시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나는 여러분이 생명을 얻도록, 여러분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여러분의 구세주를 가지도록 그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그리고 내 목숨을 내놓아서 여러분이 그것을 실컷 먹게 하고, 나를 목자에서 목장과 샘으로 바꾸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목장과 샘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줄 것이지만, 광야에 있던 히브리인들에게처럼 40년 동안이 아니라, 이 땅의 황야를 지나가는 귀양살이의 기간동안 줄곧 줄 것입니다. 실제에 있어서 아무도 내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지는 못합니다. 나를 전심으로 사랑함으로써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나 자신을 희생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못할 것이고 한없는 증오와 어리석은 두려움에 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사람도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만일 아버지와 내가 죄지은 인류에 대한 사랑의 열광에 붙잡혀, 나 스스로 목숨을 내놓기로 동의하지 않고 또 아버지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내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내 목숨을 내놓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때에 다시 그것을 가질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이 생명보다 우세하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아버지께서 내게 그 능력을 주셨고,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라고 내게 명령까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쳐져서 없어진 내 목숨으로 인하여 민족들이 오직 하나의 민족, 즉 내 백성, 하느님의 아들들의 천상의 백성이 되어, 민족들 가운데에서 양과 염소를 갈라놓아 양들은 그들의 목자를 따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 때까지 큰 소리로 말씀하신 예수께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사과 바구니를 예수의 발 앞에 내려놓고 여전히 예수 앞에 서 있는 바르톨마이라고 불리는 사도니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당신은 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잊어버렸구려. 이제 당신은 틀림없이 벌을 받고 일자리를 잃게 되었소. 알겠소? 나는 당신에게 항상 고통을 갖다 주오. 나 때문에 회당을 잃었고 이제는 나 때문에 당신 주인을 잃게 되었소….”
“그런데 제가 선생님을 차지하면,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게는 선생님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허락하신다면,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다만 이 과일들을 산사람에 가져다주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선생님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같이 갑시다. 그리고 당신 아버지께 갑시다. 당신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니 아버지께 축복을 청함으로 공경을 드려야 하오,”
“예, 주님. 하라시는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니까, 소경이었기 때문에 읽고 쓰는 것도 알지 못하니까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은 걱정 마시오, 당신의 착한 뜻이 당신에게 학교 노릇을 할거요”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곳을 떠나 큰 길로 돌아오시는데, 군중은 이러쿵 저러쿵 평을 하면서 토론을 하고 다투기까지 하며, 늘 똑같은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의견 사이에서 망서린다. 즉 나자렛의 예수는 마귀들린 사람인가, 그렇지 않으면 성인인가?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토론을 하는데, 그동안 예수께서는 멀어져 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