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진실성이 없는 것이었다. 비난이 거짓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자는 실제로 죄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수없이 많이 저질렀는데도 순전히 더 꾀가 많고 더 운이 좋아서 감추어진 채로 있을 수 있는 일에 대해 분노함으로써 진실성을 가지지 못했었다. 여자는 처음 죄를 지으면서 덜 교활했고, 운이 덜 따랐었다. 그러나 그 여자를 비난하는 남자와 여자들 중에 -여자들도 목소리는 높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여자를 비난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도 죄가 없지 않았다.
실제로 행위를 하는 사람과 행위를 하기를 갈망하는 사람과 행위를 온 힘을 다해 원하는 사람 모두가 간통자이다. 음란은 죄를 짓는 사람에게도 죄짓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도 있다. 악은 행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행하기를 원치도 말아야 한다.

마리아야, 네가 낭떠러지 가장자리에 있는데 네 선생이 불렀을 때 네 선생이 한 처음 말을 기억해라. ‘악은 행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행하기를 원치도 말아야 한다.’

육감적인 생각을 품고, 일부러 추구한 독서와 구경거리와 불건전한 습관으로 육감적인 느낌을 유발하는 사람은 물질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부정(不淨)하다. 나는 감히 말한다. 그는 죄가 더 있다고 그는 생각으로, 윤리만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도 거스르기 때문이다. 나는 또 참으로 반자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다. 유일한 변명은 체질적이거나 정신적인 병뿐이다. 이 핑계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장 불쾌한 짐승보다도 열 곱절이나 더 못하다. 공평하게 관철하기 위하여 죄가 없어야 할 것이다.
심판자가 되는데 절대로 필요한 조건들에 대해서 말하느라고 전에 불러준 것을 참조하여라.
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마음과 율법학자들의 마음과 또 그들과 한패가 돼서 죄지은 여자에 대해서 감정을 폭발시킨 사람들의 마음을 환히 알고 있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 죄를 짓는 그들에게는 종교에 대한 죄, 부모에 대한 죄, 이웃에 대한 죄, 특히 그들의 아내에 대한 수많은 죄가 있었다. 만일 내가 기적으로 그들의 피에 그들의 이마에 그들이 지은 죄를 쓰라고 명했더라면, 수많은 비난 가운데 사실 또는 욕망으로서의 ‘간통’이라는 비난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내 마음을 빼놓고는, 심판자들 중에 흠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진실성도 없고 사랑도 없었다. 육감적인 욕망의 갈망으로 그 여자가 자신들과 비슷하다는 사실까지도 그들을 사랑으로 이끌어가지 못하였다. 타락한 여자에 대해서 사랑을 가진 것은 나였다. 그 여자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졌어야 할 오직 한 사람뿐인 내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을 잘들 기억하여라. ‘사람이 더 착하면 더 착할수록 죄지은 사람들에 대하여 더 동정한다.’ 죄 자체에 대하여 관용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니다. 그러나 죄에 저항할 줄을 모른 약한 사람들에 대하여 동정하는 것이다.
사람! 오! 연약한 갈대보다도 허약한 메싹보다도 사람은 유혹으로 더 쉽게 구부러지고, 위안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곳에 더 달라붙는 경향이 있다.
죄가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이 위안추구 때문에 오는 일이 매우 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분명히 말하지만, 자기 아내와 자기 자신의 딸에 대해서도 애정이 없는 사람은 열의 아홉은 그의 아내와 딸의 잘못에 대해서 책임이 있고, 그들에 대해서 책임을 질것이다. 아내에 대한 남편, 또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어리석은 예속에 지나지 않은 바보스런 애정과 마찬가지로 애정이 없는 것이나 또는 남편을 다른 사장들로 끌어가고, 부모들의 자식들과는 관계가 없는 걱정으로 끌어가는 자기 자신의 격정의 잘못도 간통과 매음의 원인이고, 그러한 것으로 내게서 단죄를 받는다. 그러므로 미개인이나 짐승과 같은 생활로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은 너희들의 큰 자존심을 놀라 소스라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유익하기까지 할 자존심을 너희들은 아주 다른 일에 대해서 가진다.
나는 베드로와 요한을 다른 모양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베드로, 즉 어른에게는 ‘베드로야, 너도 사랑과 진실성이 없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하고 말하고자 하였고, 또 미래의 내 대사제로서의 그에게 장차 이 시간을 기억하고, 네 선생같이 심판하여라’하고 말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요한, 즉 아직 어린 아이와 같은 영혼을 가진 젊은이에게는 ‘심판할 수 있는데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판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요한아, 네가 너무나 내 사람이 되어 제2의 나 자신이 될 정도가 되었으니 고맙다’하고 말하고자 하였다. 내가 여자를 부르기 전에 그들을 떠나가게 한 것은 두 증인이 있으므로 인해서 그 여자의 창피를 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동정심이 없는 사람들아, 배워라. 어떤 사람이 아무리 죄가 많다하더라도, 그를 항상 존경과 사랑을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 그의 어리둥절함을 보고 좋아해도 안 되고, 호기심 있는 눈길만으로 라도 그를 악착같이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동정, 넘어지는 사람에 대하여는 동정을 가져라!
죄지은 여자에게 나는 그의 죄를 갚기 위하여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준다. 집으로 돌아가서 겸손하게 용서를 청하고, 올바른 생활로 용서를 얻도록 하라는 것이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하느님의 인자와 사람의 친절을 남용해서 2중 또 3중의 죄를 첫 번보다도 더 심하게 갚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신다. 그리고 인자이시기 때문에 용서하신다. 그러나 사람은, 비록 내가 ‘네 형제에게 일곱번씩 일흔번을 용서하라’고 말했지마는, 두 번도 용서할 줄을 모른다.
나는 그 여자에게 평화와 강복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그 여자는 용서를 받기 위하여 요구되는 죄에서의 완전한 해탈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의 육체에, 그리고 불행히도 그의 마음속에 죄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막달라의 마리아는 내 말씀의 맛을 보고 나서 죄에 대한 혐오감을 가졌었고, 딴 사람이 되겠다는 전적인 의지를 가지고 내게로 왔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아직도 육체의 목소리와 정신의 목소리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장의 혼란 속에서 그 여자는 아직 그의 탐욕의 무거운 짐을 잘라내고, 그에게 파멸이 되는 것을 잘라내고, 그러나 구원이 되는 것은 지니고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가기 위하여, 육체의 그루터기에 도끼를 대고 그것을 쓰러뜨리지를 못했었다.
그 여자가 그 후 구원을 받았는지 알고 싶으냐? 나는 모든 사람에게 구세주가 되지 못했다. 모든 사람에게 구세주가 되기를 원했으나,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의지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이 게쎄마니아 동산에서 겪은 내 임종의 고통의 가장 깊이 파고드는 화살들 중의 하나였다.

마리아의 마리아야, 너는 평안히 있거라. 그리고 하찮은 일에도 죄지을 마음을 가지진 말아라. 내 어머니 마리아의 망또 밑에는 깨끗한 것밖에 없다. 그것을 기억하여라.
어느날 내 어머니 마리아는 네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울면서 너희들을 내 예수에게 청한다.’ 또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 예수에게 내가 사랑받게 하는 소임을 맡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가 오고, 내가 오는 것은 기쁨과 구원이다.’
내 어머니는 너를 원하셨고, 나는 너를 어머니께 드렸다. 아니 오히려 내가 너를 안아다 드렸다. 내가 권위로 복종시킬 수 있는 곳에 어머니께서는 너희들을 사랑으로 애무로 안아다 주시는데, 나보다도 훨씬 더 잘 안아다 주신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께서 만지시는 것은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데, 그 앞에서는 사탄이 도망친다. 이제는 네가 내 어머니의 옷을 입고 있는데, 만일 네가 두 수도회(마리아 발또르따는 수도자가 아니므로, 여기서는 어떤 수도회의 제3회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됨.)의 기도에 충실하면, 우리 어머니의 일생, 즉 어머니의 기쁨과 고통, 즉 내 기쁨과 내 고통을 날마다 묵상하게 된다. 그것은 내가 말씀에서 예수가 된 때부터 나는 어머니와 함께, 또 같은 동기로 몹시 기뻐하거나 울거나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마리아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를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를 더 쉽게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네게 십자가를 지게 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데, 어머니는 반대로 너를 안고 가시거나 십자가 아래 남아계시면서 오직 사랑할 줄만 아는 당신 가슴에 너를 받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죽을 때에도 마리아의 품은 요람보다도 더 아늑하다. 마리아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는 사람은 마리아 주위를 맴돌고 있는 천사들의 무리의 목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그는 어두움을 보지 않고, 샛별의 기분 좋은 빛남을 본다. 울음소리를 듣지 않고 샛별의 미소 소리를 듣는다. 그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마리아를 사랑하는 우리 중에서 누가 그분의 팔에서 그분의 사람들 중의 하나를 감히 빼앗겠느냐?
내게 ‘고맙습니다’하고 말하지 말고, 마리아에게 그렇게 말씀드려라. 어머니는 네가 행한 얼마 안 되는 선행과 네가 내게 대해 가진 사랑을 빼놓고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고자 하셨다. 또 그 때문에 네 착한 뜻이 제압하게 되지 못하던 것을 당신 발로 굴복시키기 위하여 너를 원하셨다. ‘마리아 만세!’하고 외쳐라. 그리고 십자가 아래서 어머니의 발 앞에 머물러 있어라. 너는 내 피의 루비와 마리아의 눈물의 진주로 네 옷을 꾸밀 것이다. 너는 내 나라에 들어오기 위하여 여왕의 옷을 입을 것이다. 평안히 있거라. 나는 네게 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