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은 여전히 산 속에 있다. 깎아지른 산 속에 있는 어떤 작은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길에는 물론 마차는 다니지 못하고, 걸어 다니는 여행자나 산골의 힘센 나귀를 탄 사람들만이 다닌다. 이 나귀들은 기복이 덜 심한 지방에서 늘 만나게 되는 나귀들보다 더 크고 더 튼튼하다. 여러 사람에게는 쓸데없는 것같이 보일 관측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관측을 한다. 사마리아에는 옷과 다른 많은 것에 관하여 다른 지방들의 풍습과 다른 풍습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가지는 다른 곳에서는 예사롭지 않을 만큼 개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데카폴리스에 돼지가 있는 것으로 인하여 놀란 것과 같이 이것으로 인하여 놀랐다.
개가 많은 것은 아마 사마리아에 목자가 많기 때문일 것이고, 몹시 황량한 이 산 중에는 늑대가 많을 것이 틀림없다. 개가 많은 것은 사마리아에서는 목자들이 흔히는 혼자서, 기껏해야 아이를 하나 데리고 그들 자신의 양떼를 치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여럿이 어떤 부자의 수많은 양떼들을 지키고 있다. 사실은 이곳에서는 목자가 각기 자기 양떼의 양의 수효에 따라서 개를 한 마리 또는 여러 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특색은 바로 저 나귀들 인데, 거의 말만큼이나 크고 튼튼해서 길마에 무거운 짐을 싣고, 굵은 장작을 싣고도 이 산들을 올라갈 수가있고, 또 힘이 세어서 수백 년 된 수풀이 뒤덮인 이 현란한 산에서 굵은 장작을 지고 내려온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특색은 주민들의 거리낌 없는 태도이다. 그들은 유다인과 갈릴래아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처럼 “죄인”이 아니면서 개방적이고 솔직하며, 다른 사람들과 같은 편협한 믿음과 저 모든 시시한 것들이 없고, 인심이 좋다는 것이다. 이 확인으로 인하여,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모든 장소와 모든 종족에 다 있고, 이단자들 가운데에도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려는 의향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습관에 대한 실제적인 묘사도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세의 5경에서 멎었다. -나는 그들이 이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밖에 듣지 못하였다. – 그러나 적어도 이웃에 대하여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613조목이나 되는 계명 따위를 가지고 하는 것보다 더 올바르게 그것을 실천한다.
사도들은 선생님과 말을 한다. 그리고 비록 교정할 수 없을 만큼 이스라엘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세겜의 주민들에게서 발견한 정신을 인정하고 칭찬해야 한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 것이지만, 세겜의 주민들은 자기들 가운데에 머무르시라고 예수를 청하였었다.
“선생님 들으셨지요, 예?”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 사람들은 유다인들의 증오를 안다는 것을 얼마나 분명히 말했습니까? 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선생님 위에는 현재의 우리사마리아 사람 전부와 과거의 사마리아 사람 모두에 대한 증오보다도 더 많은 증오가 있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그들의 증오는 한이 없습니다’하고.”
“또 그 노인은요? 그분이 얼마나 말을 잘 했습니까!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선생님은 사람이 아니시고, 그리스도요 세상의 구세주이시고, 그러니까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이 타락한 세상을 구하실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선생님은 하느님처럼 한이 없으시고, 선생님의 능력과 거룩함과 사랑이 한이 없고, 악에 대한 선생님의 승리가 한이 없을 것과 같이, 악과 또 악과 더불어 오직 하나인 증오가 선생님께 대해서 한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고. 그 노인 정말 잘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논거는 매우 많은 것을 설명합니다!”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자네 생각으로는 그 논거가 뭘 설명하는 건가? 나는… 그저 그들이 어리석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말하겠네” 하고 무엇이든지 재빨리 해치우는 토마가 말한다.
“아니야 어리석음은 하나의 변명이 될 걸세.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지는 않네.”
“그럼 취했구먼. 증오에 취했단 말이야”하고 토마가 대꾸한다.
“그것도 아니야. 취기는 폭발한 다음에는 수그러지네. 그런데 그 원한은 수그러지지 않네.”
“그리고 취기보다도 더 흥분해 있어! 그것도 하도 오래 전부터 그래서… 이제는 수그러져야 할 텐데 말이야.”
“벗들아, 그 원한이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하고 예수께서는 마치 그들의 증오의 목표가 당신의 형벌이 아닌 것처럼 침착하게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다구요?! 그러나 그들이 우리를 영영 가만 놔두지 않으면요?!”
“선생님, 이 사람들은 아직 제가 사실을 말했다 걸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오! 사실을 말했구 말구요! 그리고 자네들 나름대로 되었더라면, 자네들은 모두 세례자가 계략에 걸려든 것처럼 계략에 걸려들었을 거라고 나는 장담하네. 그렇지만 내가 지키고 있으니까 그들은 성공하지 못할 걸세…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그를 바라보신다. 나도 가리옷 사람의 행동이선행의 길과 선생님에 대한 사랑의 길에 착하게 실제로 돌아온데 기인한 것인지, 그리고 그를 지배하고 있던 인간적인 힘과 인간 외적인 힘에서의 해방인지 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준비하는 더 교묘한 솜씨이고, 그리스도의 적들과 사탄에 대한 더 큰 종속인지 의아해하면서 그를 바라본다. 나는 며칠 전부터 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다는 하도 특별한 인간이어서 그를 꿰뚫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느님만이 그를 이해하실 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 즉 예수께서는 당신 사도의 모든 행동과 인격 위에 자비와 신중의 베일을 드리우신다…. 하늘의 책이 펴질 때에는 이 베일이 찢어지면서, 지금은 수수께끼 같은 수많은 이유가 완전히 밝혀질 것이다.
사도들은 원수들의 증오가 아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에 너무도 몰두해서 한동안 말들을 못한다. 그러다가 토마가 또 다시 열성당원을 향하여 말한다.
“그러면 저들이 취하지도 않았고 어리석지도 않으면, 그들의 증오가 많은 것을 설명하면서 이 이유는 설명하지 못하면 그 증오는 그럼 뭘 설명한단 말인가? 그들은 뭔가? 자네가 그 말을 안 했네….”
“뭣들이냐구? 마귀들린 자들이지. 그들은 선생님더러 그렇다고 말하는 그것들이네. 쉴 줄을 모르고, 선생의 능력이 나타나는데 따라서 점점 더 커지는 그들의 악착스러움이 이것으로 설명되네. 그 사마리아 사람이 제대로 말했네. 아버지와 마리아의 아들이시고, 사람이시고 하느님이신 선생님께는 하느님의 무한이 있고, 오직 하느님만이 당신 행동에 있어서 완전하시기 때문에, 증오는 한이 없으면서도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이 완전한 무한에 대립되는 증오도 무한하네. 그러나 만일 증오가 완전의 심연에 도달할 수가 있으면, 그 심연에 도달하려고 내려가고, 그 심연에 도달하기 위해서 곤두박질까지 해서, 지옥의 심연에 맹렬히 떨어진 것으로 인해서 이내 다시 그리스도를 향해 튀어 올라서 지옥의 심연에서 빼앗아 가지고 온 모든 무기로 그리스도께 상처를 입히려고 할 걸세.
하느님에 의해서 조절되는 하늘에는 해가 하나밖에 없네. 해는 떠서 빛나다가 사라지면서 달이라는 더 작은 해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번에는 달이 빛난 다음에 져서 태양에게 자리를 내주네. 천체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네. 그것들은 조물주의 뜻에 복종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지 않네. 그리고 선생님께 대항하고자 하는 것이 그 한 가지 예일세. 만일 어느날 새벽에 달이 ‘나는 사라지기 싫다. 그래서 내가 온 길로 돌아간다’고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나? 틀림없이 해에 가서 부딪혀서 온 우주가 소름이 끼치고 손해를 볼 테지. 그들이 해를 부술 수 있다고 믿고서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거야….”
“이것은 빛에 대한 어두움의 싸움이야. 우리는 이 싸움을 날마다 새벽과 저녁에 보네. 서로 싸우고 번갈아 가며 땅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두개의 힘을 말이야. 그러나 어두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지네. 별이 하나도 없는 밤에도 약간의 빛이 발산되네. 공기가 제 힘으로 천공의 무한한 공간에 그 빛을 만들어내고, 비록 매우 한정된 것이기는 해도 그것을 퍼뜨려서, 천체들이 꺼지지 않았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 같네. 그래서 나는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라는 빛에 대항하는 악의 저 독특한 어두움 속에서도, 어두움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빛이 있어서 그 빛을 믿는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라고 단언하네” 하고 요한이 완전히 정신집중이 되어 자기 생각에 미소를 보내며 혼잣말을 하듯이 말한다.
그의 생각은 알패오의 야고보의 찬성을 받는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는 ‘샛별’이라고 불리네. 그러니까 그리스도도 밤을 겪을 것이고, 또 -이 생각을 하면 소름끼치지만- 우리도 밤을 겪을 걸세. 빛이 힘을 잃은 것 같고 어두움이 승리를 거둔 것 같은 밤을, 한 순간을 말이야. 그러나 그리스도는 시간에 있어서 일체의 한계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샛별’이라고 불리었으니까, 그리스도는 첫번날 혼돈에 뒤이어 온 빛과 같이 세상을 새롭게 할 순수하고 신선하고 순결한 아침빛일 걸세. 오! 그렇구 말구, 세상은 그리스도의 빛에 의해서 다시 만들어질 거야. “
“그리고 루치펠에서부터 거룩한 백성을 모독하는 자들에게 이르기까지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되풀이 하면서 빛을 치려고 손을 들고자한 자들 위에는 저주가 내릴 걸세. 야훼께서는 사람에게 행동의 자유를 남겨 주시지만, 사람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지옥이 지배하도록 허락하지는 않으실 거야.”
“오! 그렇게도 오랫동안 정신이 반수면(半睡眠)상태에 있어서 마치 조로(早老)의 결과로 그런 것처럼 막히고 마비된 것 같았었는데, 다행히도 우리 입술 위에 지혜가 다시 꽃피는구먼!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같지 않았거든! 그런데 이제는 열성당원과 요한, 이전의 두 형제를 다시 찾아내게 됐네!”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만족해하며 말한다.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 같지 않게 될 정도로 변한 것 같지는 않는데”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우리가 변했구 말구! 모두, 자네를 위시해서, 그리고 시몬과 다른 사람들, 나까지 포함해서. 거의 언제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요한이야.”
“흠! 난 정말 모르겠는데 뭣이….”
“무엇이 달라졌느냐구? 우리는 말이 적어졌고, 지치고, 무관심하고, 생각에 잠긴 것 같아…. 전에 하던 것과 같은 회화, 지금 한 것과 같은 대단히 유익한 회화는 도무지 듣지 못하게 됐었단 말이야….”
“싸우기 위해서”하고 타대오가 과연 자주 그런 것과 같이 이야기가 말다툼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말한다.
“아니야. 우리가 교양을 쌓기 위해서야. 우리는 모두가 출신이나 지혜로 나타나엘이나 시몬이나 알패오네 자네들 같진 못하거든. 그래서 덜 지혜로운 사람이 항상 더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배우는 거야”하고 가리옷 사람이 대꾸한다.
“정말이야…. 난 뭣보다도 의덕으로 성숙해져야 할 것 같네. 그리고 이 점에서는 시몬이 우리에게 훌륭한 교훈을 주었네” 하고 토마가 말한다.
“내가? 자네 잘못 봤네. 나는 모두들 중에서 제일 바볼세”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아니야. 자네가 제일 많이 변한 사람이야. 이 점에 대해서는 가리옷의 유다의 말이 옳아. 내가 자네들하고 같이 왔을 때가 내가 알았던 시몬이 이제는 자네에게 많이 남아 있지 않네. 이렇게 말하는 건 미안하지만, 얼마 동안은 그대로 있었는데 말이야. 등불 명절을 위해서 헤어졌다가 자네를 다시 만난 뒤로 자넨 그저 변하기만 했네. 지금은 자네가… 그래 내가 단언하지만, 더 온정이 넘치고, 동시에 더 엄하네. 자네는 모든 불쌍한 형제들을 동정하네. 전에는… 그리고 그것이 자네에게 괴로운 일이지만 자네가 자제한다는 걸 알 수 있네. 적어도 나는 아네. 그리고 자네가 말을 적게 하고 우리를 별로 비난하지 않는 지금만큼 자네가 우리에게 존경심을 일으킨 적은 없었네….”
“아니, 이 사람아! 자네가 나를 그렇게 보는 건 자네가 착해서 그런 걸세…. 나는 선생님에 대해서 점점 더 커지는 사랑을 가지는 것 외에는 정말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네.”
“아니야. 토마의 말이 옳아. 자네는 많이 변했어” 하고 여러 사람이 확인한다.
“그렇지만 그건 자네들 말이야…” 하고 베드로가 어깨를 들썩 하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확실한 것은 선생님의 판단뿐일 거야. 그렇지만 선생님의 판단을 청하지 않도록 조심하네. 선생님은 내 무능을 아시고, 나쁜 칭찬이 내 정신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네. 그래서 선생님은 나를 칭찬하지 않으실 건데, 잘 하시는 일일 거야. 나는 선생님의 마음과 방법을 점점 더 잘 이해하고, 그것이 모두 옳다는 것을 알아.”
“그것은 네가 마음이 곧고 점점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너로 하여금 보고 이해하게 하는 것은 내게 대한 네 사랑이다. 너로 하여금 참다운, 그리고 가장 위대한 선생인 네 선생을 이해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하고 그 때까지 말씀을 하지 않고 들으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제 생각에는… 거기에는 고통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고통이? 왜?” 하고 여럿이 묻는다.
“오! 아주 많은 것이 있네. 그런데 그것들은 따지고 보면 오직 한가지 것에 지나지 않네. 선생님을 괴롭히는 모든 것… 그리고 선생님이 고통을 당하시리라는 생각이야.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를 알게 된 지금은, 우리가 처음처럼,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처럼 정신이 멍할 수가 없네. 오! 처음에는 우리가 모든 것이 쉬운 줄로 생각했었지! 우리가 나타나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의견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었네! 우리는 이스라엘과 세상을 쟁취하는 것이 고기가 많은 호수바닥에 그물을 던지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네! 나는 선생님이 고기를 많이 잡으시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네. 그러나 이것이 아직 아무것도 아닐세! 나는 저들이 악의를 가지고 있어서 선생님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이것이 일반적으로 우리 변화의 동기라고 생각하네….”
“사실이야. 내 경우에는 사실이야”하고 열성당원이 확인한다.
“내 경우도 그래. 내 경우도 그래”하고 다른 사람들도 말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때문에 불안했고, 그래서 가치가 있는 보조자들을 얻으려고… 힘썼네. 그렇지만 그들은 나를 실망시켰네…. 그리고 자네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네…. 그리고 나도 자네들을 이해하지 못했네. 나는 자네들이 그런 것이 정신의 무기력과 낙담과 실망 때문일 줄로 생각했었네….”
“나는 결코 인간적인 기쁨을 바라지 않았네. 따라서 실망하지 않았네”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내 형과 나는 선생님이 승리자가 되기를 원했네. 그렇지만 선생님의 기쁨을 위해 그렇게 되기를 원했지. 우리는 제자로서 그렇게 하기 전에 항상 친척의 사랑으로 선생님을 따랐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항상 선생님을 따랐네. 우리 형제들 중에서 제일 나이 어리지만, 언제나 우리보다 아주 더 위대하신 선생님을…” 하고 야고보가 그의 예수에 대한 한없는 감탄을 가지고 말한다.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선생님의 친척인 우리 모두가 선생님을 정신으로 사랑하지 않고, 우리의 정신으로만 사랑한다는 거야. 그러나 선생님을 잘못 사랑하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우리뿐이 아닐세” 하고 타대오가 말한다.
가리옷의 유다가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마 말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서려고 길을 찾으면서 옆으로 끼고 지나가고 있는 중인 마을을 내려다보는 작은 산에서 들려오는 외침으로 방해를 받는다.
“예수님! 예수 선생님! 다윗의 후손이며 우리들의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문둥병자들입니다! 선생님, 가십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서 그들 집에 우리를 붙들어 놓을 것입니다” 하고 사도들이 말한다.
그러나 문중병자들은 일행에 비하여 길에 올라가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적어도 50미터는 떨어져 있다. 그들은 다리를 절고 내려온다. 그리고 그들의 고함을 되풀이하면서 예수를 향하여 뛰어 온다.
“선생님, 마을로 들어가십시다. 저 사람들은 마을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고 어떤 사도들이 말한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은 “벌써 여자들이 보러 옵니다. 만일 마을에 들여가면 문둥병자들은 피하겠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붙드는 것을 피하지는 못할 거야” 하고 대꾸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서리고 있는 동안에 문둥병자들은 점점 더 예수께로 가까이 온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그러나, 만일 하고 소리를 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으시고 계속 길을 가신다. 사도들이 할 수 없이 예수를 따라가는데, 여자들이 치마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보러 오고, 마을에 남아 있던 노인들도 보러 와서 문둥병자들과는 조심스런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문둥병자들은 예수에게서 몇 미터 되는 곳에서 멈추어 서서 또 애원한다. “예수님,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예수께서는 잡시 그들을 바라보시고 나서 그 고통스러운 집단에 가까이 가지는 않으신 채 물으신다. “당신들은 이 마을 사람들이요?”
“아닙니다, 선생님. 여러 곳에서 왔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있는 이 산 저쪽은 예리고로 가는 길에 면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에게는 좋은 곳입니다….”
“그러면 당신들이 있는 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가서, 당신들을 사제들에게 보이시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다시 걷기 시작하시는데, 문둥병자들을 스치지 않으시려고 길가로 해서 움직이신다. 문둥병자들은 예수께서 앞으로 나아가시는 것을 바라보는데, 그들의 불쌍한 병든 눈에는 희망의 눈길 외의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의 위치에 이르러서는 손을 들어 그들에게 강복하신다.
마을 사람들은 기대가 어긋나서 집으로 돌아간다…. 문둥병자들은 그들의 동굴 또는 예리고로 가는 길을 향하여 가려고 산으로 다시기어 올라간다.
“그들을 고쳐주지 않으시기를 잘하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가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기 전애 에프라임에 도착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잠자코 걸어가신다. 이제는 길이 구부러진 것으로 인하여 마을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길은 여러 가지로 변하는 산 밑에나 있어서 산의 굴곡을 따라 가기 때문에 매우 구불구불하다. 그러나 한 목소리가 그들을 쫓아온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과 그분의 참 메시아에게 찬미. 메시아께 모든 능력과 지혜와 연민이 있습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찬미. 유다와 사마리아와 갈릴래아와 요르단강 너머의 사람 여러분 모두 하느님을 찬미하시오. 그리고 매우 높은 헬몬산의 눈에 이르기까지, 이두메아의 뜨거운 돌에 이르기까지. 큰 바다의 물에 잠긴 모래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높으신 분과 그분의 그리스도께 대한 찬미가 울려 퍼지기 바랍니다.
여기에 발라암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참 목자에 의해 모인 조국의 회복된 하늘에 야곱의 별이 빛납니다. 여기에 성조(聖祖)들에게 주신 약속들도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 우리를 사랑한 엘리야의 말이 여기에 있습니다. 팔레스티나의 백성들이여, 그 말을 듣고 이해하시오. 이제는 이쪽저쪽으로 절름거리지 말고 영의 빛을 골라 잡아야합니다. 그리고 정신이 올바르면 선택을 잘 할 것입니다. 이분은 주님이십니다. 이분을 따르시오! 아! 이제까지도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이렇게 예언하면서 거짓 제단을 저주했습니다. ‘보라 다윗 가문에서 요시아라 불리는 아들이 나리니, 그는 제단 위에 아담의 뼈를 제물로 바치고 태워버릴 것이다. 그 때에 제단이 땅 속까지 갈라지고, 제물의 재가 북쪽과 남쪽, 동쪽과 해지는 곳으로 퍼질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이스라엘에 계신데 아카론의 신에게 문의하려고 사람을 보낸 어리석은 오코시아 같이 하지 마시오. 발라암의 암나귀보다 못한 사람이 되지 마시오. 그 나귀는 빛의 영에 대한 공경으로 생명을 받을 만 했을 것이고, 보지 못하던 예언자는 벌을 받아 쓰러졌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시는 빛이 여기 계십니다. 정신의 눈이 먼 여러분, 눈을 뜨고 보시오.”
그러면서 문둥병자들 중의 한 사람이 이제는 큰 길에 들어선 데까지 일행을 점점 더 가까이 따라 오면서 행인들에게 예수를 가리킨다. 사도들은 화가 나서 두세번 뒤돌아보며 완전히 병이 나은 문둥병자에게 입을 다물라고 명한다. 그리고 마지막번에는 그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기 위하여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던 것은 그만두고 대답한다. “그럼, 어떡하란 말입니까? 하느님께서 제게 해 주신 큰일을 찬미하지 말란 말입니까? 저더러 하느님을 찬미하지 말란 말입니까?”
“마음속으로 찬미하고 잠자코 있으시오”하고 사도들이 화를 내며 대답한다.
“안 됩니다. 저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입술에 말을 놓아 주십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다시 말한다. “국경의 양쪽에 있는 여러분, 우연히 지나가는 여러분, 발을 멈추고, 주님의 이름으로 군림하실 분께 경배하시오. 나는 그 많은 말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들이 실현된 것을 보기 때문에 그 말들을 되풀이 합니다. 보시오. 모든 민족이 움직이며 바다와 사막을 통하여, 언덕과 산을 넘어 주님께로 기쁘게 옵니다. 그리고 어두움 속을 걸어온 백성인 우리도 죽음의 지역에서 나와 나타나신 큰 빛을 향하여, 생명을 향하여 걸어갈 것입니다.
늑대와 표범과 사자이던 우리가 주님의 성령 안에 다시 태어나 ,서양 삼송(杉松)이 된 이새의 새싹의 그늘에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할 것입니다. 이 서양 삼송(杉松) 아래에는 주님에 의해서 땅의 네 방향에서 모여 온 만민이 야영을 할 것입니다. 이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없고, 다만 한 나라, 즉 주님의 그리스도의 나라만이 있을 것이니까 에프라임의 시기가 끝날 날이 옵니다. 보시오. 나는 나를 구해 주시고 위로하신 주님의 찬미를 노래합니다. 보시오. 나는 말합니다. 주님을 찬미하고 구세주의 샘에 와서 구원의 물을 마시시오. 호산나! 주님께서 하신 위대한 일에 호산나! 구세주가 되시라고 육체를 취하게 하시어 당신의 영을 사람들 가운데 가져다 놓으신 지극히 높으신 분께 호산나!”
그 사람은 끝이 없이 말한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와서 길을 막는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오고, 앞서 가던 사람들은 가던 길을 다시 온다. 일행이 지금 그 곁에 있는 작은 마을의 주민들도 행인들과 합류한다.
“아니, 주님, 저 사람이 입을 다물게 하십시오. 이 사람은 사마리아인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먼저 가면서 선생님을 전하는 것을 선생님이 허락지 않으시니, 이 사람이 선생님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됩니다”하고 사도들이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말한다.
“벗들아, 나도 엘다드와 마다드가 야영지에서 예언을 하는 것을 한탄하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한 말을 다시 해야겠다. ‘너는 내 대신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오! 온 백성이 그렇게 예언을 하고, 주님깨서 모두에게 당신의 영을 주실 수 있었으면!’ 그러나 너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고 저 사람을 돌려보내겠다.”
그리고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니 병이 나은 문둥병자를 당신께로 부르시니, 그는 달려 와서 예수 앞에 엎드리어 먼지에 입맞춤을 한다.
“일어나시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소? 당신들은 열 명이 아니었소? 다른 아홉 명은 주님께 감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군요. 아니, 그래? 열 명 중에 사마리아 사람이 한 명뿐이었는데, 자기 자신의 생활과 가정으로 돌아가기 전에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돌아올 필요를 느낀 것은 이 외국인밖에 없었단 말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람을 ‘사마리마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들이 착각을 일으키지 않고 보고, 비틀거리지 않고 구원의 길로 달려오고 있으니, 이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취해 있지 않단 말입니까? 외국 사람들은 이 말을 알아듣는 데 그의 백성들은 알아듣지 못하니, 대관절 말씀이 외국말을 한단 말입니까?”
예수께서는 그 찬란한 눈을 들어 팔레스티나의 곳곳에서 거기 와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신다. 그런데 빛을 발하는 그 눈은 견딜 수가 없다…. 여러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말이나 나귀를 재촉하거나 그곳을 떠난다….
예수께서는 당신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에게로 눈을 내리뜨시는데, 그 눈길은 매우 부드러워진다. 예수께서 옆구리로 내려져 있던 손을 들어 강복하는 손짓을 하시며 말씀하신다. “일어나서 가시오. 당신의 믿음은 당신 안에서 당신의 육체보다 더한 것을 구원했소. 하느님의 빛 안에서 전진하시오. 가시오.”
그 사람은 다시 먼지에 입맞춤을 하고 일어나기 전에 청한다. “주님, 이름 하나를 주십시오. 제 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졌고, 영원히 새로워졌으니, 새 이름을 하나 주십시오.”
“우리가 지금 어떤 지방에 있소?”
“에프라임 지방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이 당신에게 생명을 두번 주셨으니까. 이제부터는 당신 이름이 에프렘이오. 가시오.”
그 사람은 일어나서 간다.
그곳 사람들과 몇몇 순례자들이 예수를 붙들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눈길로 그들을 굴복시키신다. 그들을 바라보실 때 그분의 눈길이 엄하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지만, 아무도 예수를 붙들려고 몸짓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어떤 힘을 발산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작은 마을에 들어가시지 않고 길을 떠나 밭을 건너지르신 다음 작은 개울과 오솔길을 지나, 수풀이 우거진 동쪽 비탈을 올라가셔서 제자들과 함께 수풀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시며 말씀하신다. “길을 일지 않게 길을 따라 가자. 그러나 수풀을 떠나지는 말자. 저 구부러진 곳을 지나면, 길이 산을 따라 간다. 우리는 거기서 어떤 동굴을 만나 자고 에프라임은 새벽에 지나가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