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어느 날 아침나절에, 예수께서 유다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오! 정말 유다 전체가 예수의 발 앞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보통은 둥그스름한 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목자들까지도 여기저기, 군중 뒤에 양들을 데리고 와 있다. 보통은 밭이나 수풀이나 장따위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들까지도 여기와 있다. 몹시 늙은 노인들도 와 있고, 예수 주위에는 빙 둘러 웃기 잘하는 어린이들과 소녀들과 새색시들과 만삭이 된 여자들과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도 있다. 유다 전체가 와 있다.
남쪽으로 쑥 내민 산의 돌출부는 이 조용한 모임을 받아들이는 계단강당이다. 둘레로는 널은 지평선이 있고, 위에는 가없는 하늘이 있으며, 곡 아래에는 즐거운 듯이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급류가 있는 숲이 우거지고 풀이 무성한 산속에서, 유다의 주민들은 혹은 풀 위에 앉고 혹은 마른 돌로 쌓은 낮은 담에 걸터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우중충한 줄기를 배경으로 눈에 잘 띄는 흰 아마포 옷을 입으신 예수께서는 미소 짓는 얼굴과 사랑을 받으시는 기쁨으로 빛나는 눈으로, 동쪽에서 오는 햇살이 어루만지는 머리카락이 빛나는 가운데, 매우 높은 호두나무에 기대서서 말씀하신다. 새들의 노래와 저 아래서 흘러내리는 급류의 노래만이 깨뜨리는, 공손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고요 속에서 예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천천히 내려가고, 예수의 완전한 목소리는 그 조화로 공기를 가득 채운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예수께서는 “율법에 충실하게 산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 안에서 살게 될 날까지 주님이 사실 거처를 사람들의 영 안에 세우기 위하여,” 그 적용이 당신의 가르침으로 완성된 율법에 순종해야 하는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해서 말씀하시는 중이다. 따옴표 안에 있는 것이 예수의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계속하신다. “사실이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 안에 사시는 것과 사람들이 하느님 안에서 사는 것은 율법에 순종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율법은 사랑의 계명으로 시작되고, 십계명의 첫째 계명에서 마지막 계명에 이르기까지 전체가 사랑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하느님께서 사시는 집이고,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차지하는 하늘의 상급은 여러분이 영원히 하느님을 모시고 살 진짜 집입니다.
왜냐하면 -이 점에 대해서는 이사야의 66장을 기억하시오.-하느님께서는 발판에 지나지 않는 땅, 오직 무량(無量)하시니 당신의 발판에 지나지 않는 땅 위에 거처를 가지지 않으시고, 무한을 담기에는 역시 작고 아무 것도 아닌 하늘을 옥좌로 가지고 계시지만 그 옥좌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버지의 지극히 완전한 사랑만이 당신 자식들에게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하실 수 있는데, 하나이시요 세 위이신 하느님, 지극히 순수하신 삼위로 되신 영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실 수 있다는 것은, 점점 더 완성되는 하나의 무한한 신비입니다. 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지고 우리의 성령을 위한 성전을 만들 뿐아니라,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용서의 덕택으로 장막을 만들어, 모든 믿는 마음을 가지고 모든 여인들 중에서 복되신 여인의 태중에 들어 있었던 것과 같이 참된 하늘의 빵이 들어 있는 계약의 궤가 되게 하도록 언제나, 언제나 제게 허락하시겠습니까?
오! 의인이 나를 위해 준비한 유다의 지극히 사랑하는 제자들, 여러분은 이 예언자를 생각하고 정의도 사랑도 없는 팅 빈 돌로 된 전당을 세우고, 주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자기 자신들 안에 그들의 주님의 욕과를 세올 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 그의 말을 기억하시오. 그런데 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내게 무슨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말이냐? 내가 머물러 쉴 곳을 어디에다 마련하겠다는 말이냐?’ 그런데 그것은 이런 뜻입니다. ‘너희들은 보잘것없는 벽들을 내게 쌓아올린다고 나를 차지한다고 생각하느냐? 거룩한 생활이 따르지 않는 너희들의 거짓 행동으로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영혼의 생명이 없는 속이 빈 진흙으로 만든 조상이나 문등병자에 입힌 금으로 된 겉옷 같이 헌데와 빈 것을 감추는 겉으로 드러나는 물건으로 하느님을 차지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주재자이신 주님께서 신민을 별로 가지지 못하는 왕으로서의 당신의 가난과 그의 집에서 도망쳐 나간 아들을 너무나 많이 가진 아버지로서의 당신의 가난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로, 내 말에 몸을 떠는 뉘우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로 내 눈길을 돌리지 않고 누구에게로 돌리겠느냐?’ 그 사람은 왜 몸을 떱니까? 하느님이 두려워서만 그럽니까? 아닙니다. 깊은 존경으로, 참다운 사랑으로 그럽니다. 주님이 전부 아시고,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그렇게 인정하며, 자기가 전부이신 분께 사랑을 받고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느끼며 감격으로 몸을 떠는 신민의 겸손으로, 아들의 겸손으로 그러는 것입니다.
오? 교만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찾지 마시오, 하느님께서는 거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냉혹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을 찾지 마시오. 하느님께서는 거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남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을 찾지 마시오. 하느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소박한 사람들, 깨끗한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저주를 하지 않으면서 우는 사람들, 정의를 찾는 사람들, 박해를 받는 사람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뉘우치고 용서를 바라며 속죄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받기 위해서나 벌에 대한 미신적인 공포나 완전한 사람으로 보이려는 교만으로 소나 양의 제물을 바치거나 이러저러한 제물을 바치지는 않습니다. 그러지 않고, 만일 그들이 죄인이면 뉘우치는 겸손한 마음의 제물을 드리고, 의인이면 영웅적인 행위에 이르기까지 순종하는 마음의 제물을 드립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물에 대해서는 사랑과 초자연적인 더없는 즐거움의 말할 수 없는 당신 보물과 더불어 당신을 주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주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가증스러운 일에서 이미 그들의 보잘것없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벌써 그들의 길을 골라잡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들을 당신 길로 부르시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주님께 응답하지 않고, 주님께 순종하지 않았으며, 업신여기는 마음과 그들이 택한 타락으로 하느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버림받음과 심한 공포와 벌만을 보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사랑하는 유다의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을 앎으로 사랑으로 몸을 떨고, 나 때문에 권력자들에게서 어리석은 사람으로 업신여김을 받고, 업신여김을 받으면서도 나를 계속 사랑하고, 내 이름과 나 때문에 냉대를 받고. 점점 더 냉대를 받을 것이며, 이스라엘의 사생아들처럼, 하느님의 사생아들처럼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 즉 아버지 안에 뿌리를 박고 있는 분의 접지(接枝)가 접붙여졌고. 그래서 하느님의 일부분이 되고, 하느님께 달려 있으며, 하느님의 수액(樹液)으로 삽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순박하지만 은총으로 비추어 지는 눈을 가진 여러분을 오류에 빠져있다고 설득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독성자(瀆聖者)와 악당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여러분의 눈앞에서 자기들이 죄가 없다고 중명하려고 합니다. ‘주님이 당신 영광을 드러내시면, 우리는 너희들의 기쁨 그것으로 주님을 알아보겠다’고 하는 말을 듣는 여러분에게 말입니다. 여러분은 기쁨을 누릴 것이고, 그들은 창피를 당할 것입니다.
오! 그들을 괴롭히기는 하지만 더 착하게 하지는 못하는 창피를 당해도, 그들의 저주스러운 대가리를 으깨놓기 전에는 계속 해를 미치는 독사들, 몸이 둘로 잘려도 물고 죽이고, 하느님의 압도적인 나타냄에서 대가리만 내밀어도 물고 죽이는 독사와 같은 자들이 벌써 이렇게 외치는 것이 들립니다. ‘주님의 태중에 그렇게 오래 전부터 들어 있으면서도 아직 빛에 태어나지 못했는데, 어떻게 주님이 대번’ 에 당신의 새 백성을 낳으실 수 있었단 말인가? 어떤 여자가 그의 고통의 부르짖음으로 집안을 가득 채우지 않고 아기를 낳을 수 있는가? 주님이 때가 되기 전에 아기를 낳으실 수 있었단 말인가? 땅이 단 하루에 아기를 낳을 수 있고, 한 국민 전체가 동시에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하고 그들이 외치는 소리가 벌써 들립니다.
나는 대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업신여기면서 박해할 사람들에게 주기 위하여 이 대답을 기억하시오. 발육하는 태아 같지 않고 태안에 숨어 있는 병처럼, 모태에서 떨어져 나가 생기가 없는 채로 있었기 때문에 말라버린 열매와 같이, 하느님의 태 안에서 죽은 열매인 그들은 절대로 빛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 태 안에서 죽은 씨를 내던지고, 이 세상에서 당신 이름이 죽지 않도록 아들들을 가지시기 위하여 당신의 T자 표가 새겨진 새 아들들을 가지셨고, 사탄과 루치펠을 섬기는 작은 사탄들이 해치지 못하게 당신 사랑의 열정으로 때를 앞당기셔서 비밀히, 조용히 당신 아들을 낳으셨고, 동시에 당신의 새 백성을 낳으십니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고. 오! 주님은 예언자 이사야의 입을 빌어 이 말씀을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낳게 하는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겠느냐? 다른 사람들은 수태하게 하는 내가 수태를 하지 못하겠느냐?’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 하늘의 예루살렘과 더불어 기뻐하고 그와 더불어 기뻐 날뛰시오! 기다리는 여러분, 바라는 여러분, 고통받는 여러분, 참된 기쁨으로 하늘의 예루살렘과 더불어 즐기시오. 오! 말들아 돌아오너라. 내게로 돌아오너라! 하느님의 말씀에서 온 말들아. 하느님의 대변자, 하느님의 예언자인 이사야가 한 말들아. 오영원한 말들아, 하느님의 이 화단에, 이 양떼 위에, 이 겨레 위에 퍼지기 위하여 오너라. 근원으로 돌아오너라!
오! 오너라! 예언자의 말들아, 사랑의 반향아, 진리의 목소리야. 지금은 너희가 이 때문에 너희가 주어진 시간들 중의 하나이고, 이것은 그 때문에 너희가 주어진 모임들 중의 하나이다! 그 말들이 여기 옵니다!
그 말들이 그것들을 생각나게 한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내가 아버지와 나 자신과 성령의 이름으로 이 말들을 하느님의 양떼 가운데에서 뽑힌, 하느님께 사랑받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원래 하느님의 양떼에는 어린 양들만 있게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수양들과 훨씬 더 부정한 짐승들과 더불어 타락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위로라는 젖을 배불리 먹고, 하느님의 여러 모양의 영광에서 풍부한 즐거움을 얻어낼 것입니다.
보시오! 주님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들 위에 강물과 같은 평화를, 넘쳐흐르는 개울 같은 것을 부어 주리니, 너희들 위에는 많은 나라들의 영광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을 것이다. 하늘의 영광이 여러분 위에 넘쳐흐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의 품에 안겨 그 영광을 빨아먹을 것이고, 그 무릎에 앉아서 그의 애무를 받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쓰다듬어 주듯이, 내 이름을 붙여 준 이 어린 아이를 내가 쓰다듬어 주듯이(그러면서 예수께서는 그의 세 자녀와 같이 거의 예수의 발 앞에 있는 어머니의 팔에서 어린 예사이를 받아 안으신다), 나를 사랑하고 또 계속 사랑할 여러분을 위로하겠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러분은 내 나라에서 영원히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주님이 당신 사랑과 정의의 불속으로 데려가고, 어린 양을 늑대, 즉 자기들을 거룩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는 줄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로 우상숭배자가 된 자들에게서 갈라놓으면서 벌하거나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회오리바람과 같은 쌍두마차를 타고 불속으로 해서 오실 때, 여러분은주님을 볼 것이고, 여러분의 마음은 기뻐할 것이고, 여러분의 충실함 때문에 모든 공포에서 풀려난 여러분의 뼈는 풀처럼 다시 기운을 얻을 것입니다.
지금 떠나는 주님은 올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꾸준한 것을 주님이 만나게 될 사람들은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 이것이 내 작별 인사입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내 강복입니다. 내 강복으로 여러분을 강하게 할 터이니 무릎을 꿇으시오. 주님이 여러분께 강복하시고, 여러분을 지켜 주시기를. 주님이 당신 얼굴을 여러분에게 보여 주시구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주님이 여러분에게 당신 평화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시오! 내가 유다의 착한 사람들 중에서 착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게 해 주시오.”
사람들은 마지못해 떠나간다. 그러나 한 어린이가 예수께 말한다. “주님, 주님의 손에 입맞춤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예수께서 동의하시니 모두가 하느님의 어린 양의 거룩한 살에 입맞춤하기를 원한다. 마을 쪽으로 떠나갔던 사람들까지도 돌아오고, 입맞춤이 비 오듯 쏟아진다. 어린이들은 얼굴에, 노인들은 손에 여자들은 풀을 밟고 있는 맨발에 입맞춤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작별과 축복의 말을 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참을성 있게 받아들이시어,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인사하신다.
마침내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셨다. 남은 것은 예수를 유숙시킨 집 가족들뿐이라. 그들은 예수께로 바싹 다가온다. 그리고 사라가 말한다. “선생님은 정말 다시 안 오십니까?”
“다시는 오지 않소. 그러나 우리는 떨어져 있지 않을 거요. 내 사랑은 당신과 당신 가족들과 같이 있을 것이고, 당신들의 사랑은 나와 같이 있을 거요. 당신들이 나를 잊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아오. 그러나 잘 들으시오. 이제 다가올 가장 무서운 시간에도 거짓말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지나가는 나그네나 뜻하지 않은 침입자로도… 사라, 어린 아이를 내게 주시오.”
여인이 예사이를 드리니, 예수께서는 예사이를 안고 풀에 앉으셔서 아기의 머리카락 위로 몸을 숙이시고 말씀하신다. “나는 당신들이 알기 전부터 이사악이 사랑하게 한 어린 양이고, 어린 양은 사람들이 그를 악당으로 통하게 하려고 늑대의 가죽을 씌워도 언제나 이 어린아이처럼 죄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나는 이 아주 어린 아기보다도 더 죄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이 아기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의 무죄함과 어린 나이로 인해서 그의 주님에 대한 사람들의 중상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고, 그로 인해서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을 것이며… 지금과 같이… 이렇게 나를 계속 사랑할 거요…. 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시고, 당신들을 사랑하고 당신들에게 아주 특별히 강복하는 어린 양, 친구, 죄없는 사람, 구세주에 대해서 그런 마음을 가지시오. 마리아야, 잘 있어라! 이리 와서 내게 입맞춤해라…. 잘 있어라, 템마누엘! 너도 이리 오너라…. 어린 양의 어린양인 예사이, 잘 있어라….착하게 살아라….나를 사랑해라….”
계집아이가 예사이의 머리카락에 눈물 한 방울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주님, 우셔요?” 하고 묻는다.
“선생님이 우시냐?”하고 사라의 남편이 묻는다.
“선생님, 우시는군요! 왜 우셔요?”하고 여인이 묻는다.
“내 눈물을 보고 슬퍼하지 마시오. 이 눈물은 사랑과 축복이오…. 사라, 잘 있어요. 아기 아빠, 안녕히. 다른 사람들처럼 와서 떠나가는 친구에게 입맞춤 하시오….” 그리고 두 부부의 입맞춤을 손에 받으신 다음 아기를 엄마에게 도로 안겨 주신다. 예수께서는 다시 강복하시고, 올라오셨던 오솔길로 해서 빨리 내려가기 시작하신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작별 인사하는 목소리가 예수를 따라온다. 남자의 굵은 목소리, 여자의 감격한 목소리, 어린이들의 날카로운 목소리들이 언덕 아래까지 들려온다. 그리고는 그들이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급류만이 유다의 땅을 영원히 떠나시는 선생께 아직도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