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니아에서는 에크론으로 갑니까?” 사도들은 매우 기름진 들판을 지나가면서 묻는다. 들판에서는 낟알들이 햇볕을 받으며 마지막 잠을 자고 있다. 베어져 단으로 묶이어 밭에 누워서 그것들을 여물게 한 뜨거운 햇볕에서 마지막 잠을 자고 있다. 또 이제는 이삭의 장식이 없어지고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를 기다리는 짚만이 남아 마치 어마어마하게 큰 음산한 침대와 같이 음산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밭들은 헐벗었지만 과수원들은 서둘러 익어가는 과일들, 새파랗고 신 과일에서 거의 익어가는 과일의 빛나는 연초록과 노랑과 분홍빛으로 옮아가는 과일들로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무화과나무들은 탄력 있는 껍질을 터뜨려서 그 열매들의 보석상자를, 달콤한 과일 – 꽃의 보석상자를 연다. 그러면 초록빛과 흰빛이 섞였거나 흰빛과 자주빛이 섞인 틈 아래로는 과육(果肉)보다 더 짙은 빛깔의 작은 씨가 오수수 박힌 투명한 젤라틴이 나타난다. 올리브나무들의 은록색 잎들 가운데에서 비취색 올리브들이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든든하게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당당한 호두나무들은 보드라운 털이 깔린 껍데기 속에서 부풀어오르고 있는 과일들을 내보이고, 편도들은 주름이 잡히고 빛깔이 변하는 벨벳 같은 껍데기 속에서 마저 익어가고 있다. 포도나무들은 그 포도알을 부풀리고, 햇볕을 잘 받는 몇몇 송이는 투명한 황옥 빛깔과 장차 포도알이 익었을 때의 루비 빛깔을 띠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평야나 낮은 언덕에 있는 선인장들은 손같이 생긴 많은 주걱 모양 꼭대기에 명랑한 실내장식가가 이상하게 갖다 놓은 것 같은 산호빛 배주(胚珠)에 날이 갈수록 더 명랑한 빛깔을 띠게 한다. 그 손 같은 것들이 오므리면서 찌르는 상자 같은 것을 만들고, 이것들은 그것들이 자라게 하고 익게 하는 열매들을 하늘로 내밀고 있다.
따로따로 서 있는 종려나무들과 무더기로 자라는 캐롭나무들(지중해 연안산 콩과(科)의 상록수)은 벌써 아주 가까운 아프리카를 연상케 한다. 종려나무들은 부채처럼 생긴 그 단단한 잎으로 캐스터네츠 같은 소리를 울려퍼지게 하고, 진한 초록색의 캐롭나무들은 그 화려한 껍질을 아주 자랑스럽게 내밀고 있다. 구부러진 긴 뿔이 달리고 눈이 유순하면서도 예민한 크고 날쌘 흰 염소들과 검은 염소들이 선인장들을 뜯어먹고 벌어진 아티초크 같은 단단하고 두꺼운 잎으로 된 엄청나게 큰 붓대인 살찐 용설란들을 습격한다. 용설란들 한가운데에는 일곱 개의 가지가 달린 대성당의 촛대 같은 줄기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위에는 – 기분좋은 향기를 풍기는 노랗고 빨간 꽃이 타오르는 듯이 피어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이 손을 잡고 땅을 찬란한 식물로 덮어 놓았다. 사도의 무리는 이제 평야를 버리고 야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을 들어선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야산의 이쪽 비탈은 문자 그대로 포도밭으로 덮여 있다. 이쪽 비탈은 돌이 많고 석회질이기 때문에 포도가 그 진을 참다운 시럽으로 만들어서 무엇인가 귀중한 물건으로 변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사도들은 바다, 바다, 요한의 바다, 하느님의 바다를 발견한다. 그 바다는 엄청나게 큰 주름진 파란 비단 휘장을 친 모습을 드러내고, 먼 곳과 무한함과 능력에 대하여 말하고, 창조의 영광을 하늘과 해와 더불어 삼중창으로 노래한다. 그리고 평야는 겨우 몇 미터 높이밖에 안 되는 언덕 같은 것들로 아름다운 기복을 이루며 전개되는데, 이 기복들은 평평한 지대와 금빛 나는 모래언덕과 파란 바탕에 흰 빛깔을 바닷가에 세워놓는 도시들과 마을들로 이어진다.
“참 아름답다! 참 아름다워!” 하고 요한이 흥분해서 속삭인다.
“아니, 주님, 이 총각은 파란빛을 먹고 삽니다. 이것이 그의 운명인 모양입니다. 이 사람은 바다를 볼 때는 꼭 아내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는 바닷물과 호숫물이 그리 다른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사람좋은 웃음을 웃는다.
“그렇다, 시몬아, 요한은 그의 운명을 가졌다. 너희 모두가 너희 운명을 가지고 있다.”
“오! 그럼! 저는 어디로 보내실 겁니까?”
“오! 너는! …”
“말씀해 주십시오. 친절을 베풀어 주세요!”
“네 도시와 내 도시보다 더 크고, 막달라와 티베리아를 합친 것보다도 더 큰 곳에 보내겠다.”
“그러면 제가 거기서 길을 잃을 것입니다.”
“겁내지 말아라. 너는 커다란 해골 위에 있는 개미 같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지칠 줄 모르고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해골을 되살릴 것이다.”
“저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 더 분명하게 말씀해 주세요.”
“알아듣게 될 거다. 알아듣게 될 거야! …”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신다.
“그럼 저는요?” “그럼 저는요?” 모두가 알기를 원한다.
“나는 이렇게 하겠다.” 예수께서는 몸을 숙이시고 – 일행은 가운데에는 아직 물이 많이 흐르고 있는 개울의 자갈이 많은 기슭을 따라 가고 있다. – 매우 작은 자갈 한 줌을 집으신다. 그것을 공중으로 던지시니 사방으로 흩어진다. “자 보아라. 내 머리카락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 자갈 하나밖에 없다. 저희들도 이와 같이 흩어질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팔레스티나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심각하게 말한다.
“그렇다.”
“저는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을 사람이 누군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야고보가 또 묻는다.
“이 자갈을 기념으로 받아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 당신 머리카락에 걸려 있는 사촌 야고보에게 주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저를 팔레스티나에 남겨두실 수 없겠습니까?”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제가 요령이 제일 없지만 그래도 제 집에서는 임기응변의 요령이 있으니까 제가 제일 적합합니다. 그러나 밖에 나가면! …”
“반대로 여기 남아 있기에 네가 제일 덜 적합하다. 너희들은 나머지 세상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우상숭배자들과 이방인들의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신자들의 나라에서 전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인데 말이다.
만일 너희들인 진짜 팔레스티나의 높은 계급의 사람들과, 또 비록 이들보다 못한 정도이기는 하지만 일반 서민이 너희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하고, 또 팔레스티나를 미워하고 참다운 의미로서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 우리가 유다에서와 갈릴래아와 데카폴리스에서보다 확실히 더 나쁜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희들은 선입관이 없어질 것이고, 하느님의 백성들보다는 참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믿게 하기가 더 쉽다고 말한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들이야말로 교묘한 우상숭배자들이고, 교만하게 자기들이 완전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죄있는 사람들이며, 또 그대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땅과 바다밖에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내 눈은 얼마나 많은 보석과 진주를 보는지 모른다! 펠레스티나가 아닌 많은 무리가 사는 땅이고, 팔레스티나가 아닌 인류의 바다 그것들은 바다로서는 찾는 사람들을 맞아 들여서 그들에게 그 진주들을 주기만을 바라고, 땅으로서는 사람들이 파기만 하면 보석들을 내주려고 하고 있다. 보물이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찾아야 한다. 어떤 흙덩어리에도 보물이 들어 있을 수 있고 씨에 영양을 줄 수 있으며, 깊은 바다 어디에나 진주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아니 뭐라고? 너희들은 혹 바다의 깊은 물이 무서운 폭풍우에 뒤집혀서 진주조개를 그 암석층에서 떼어내고 파도의 충격으로 그것들을 벌어지게 해서 노력하기를 원치 않는 게으름쟁이들과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지 않는 겁많은 사람들에게 주리라고 주장하겠느냐? 땅이 모래알을 나무로 변하게 해서 씨를 심지 않았는데 과일들을 너희에게 줄 것이라고 우기겠느냐? 이 사람들아,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피로와 일과 과감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입관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너희들이 펠리시데 사람들의 지방에 온 이 여행을 더하고 덜한 차이는 있어도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 땅들이 상기시키는 영광들까지도, 이스라엘을 큰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흘린 히브리인들의 피로 기름지게 된 이 밭들에 대해서, 그리고 유다를 영광스럽게 하여 강력한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그것들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하나씩 하나씩 빼앗은 이 도시들에 대해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영광도, 이 모든 것의 아무것도 너희로 하여금 이 순례를 사랑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생각과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바람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겠다. 이것도 너희를 설득하지 못할 것이니까. 이 여행의 타당성을 생각해 보라고 너희 정신에 제시하는 이유들 가운데 이런 것들은 넣지 않겠다. 이 생각은 아직 너희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너희가 그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때에는 너희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대단히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 길고 고생스러운 길을 그렇게 멀리까지 가게 하신 것은 변덕이라고 생각했었고, 거드름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선생님의 사랑이 없는 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반대로 그것은 사랑이었고, 미래에 대한 배려였고, 선생님을 모시고 있지 못해서 길을 더 잃은 것같이 느껴지는 지금 우리의 길을 닦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에는 우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면서도 포도나무가 우리에게 영양분을 준다는 것을 알고, 또 포도덩굴 곁에는 언제나 그것들을 버티어 주는 든든한 지주(支柱)가 있다는 것을 아는 포도덩굴 같았는데, 지금은 우리가 포도나무 그루에서 영양분을 취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기댈 지주가 없이 스스로 정자를 만들어야 하는 취목(取木)한 가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고, 그때에는 내게 감사할 것이다.
또 그리고! … 어둠에 둘러싸인 땅과 말이 없는 마음들과 사막과 같이 메마른 정신에 하느님을 섬김과 그분의 찬미를 위하여 그리고 거짓말의 악취를 이기기 위하여 반짝이는 불똥과 천상 합창의 음 몇 개와 하늘에서 오는 꽃부리들을 이렇게 떨어뜨리고 가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 아니냐? 그것도 선생과 사도인 나와 너희들, 너희들과 내가 모두 오직 한 마음, 한 욕망, 한 뜻이 되어 함께 하는 것 말이다. 하느님께서 알려지시고 사랑을 받으시도록, 하느님께서 모든 나라를 당신 깃발 아래 모으시도록, 하느님이 계신 곳에 모두가 그분과 함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바람이고 욕망이고 갈망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의 바람이고 욕망이고 갈망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종족이 아니고 다만 하나뿐인 종족, 즉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종에 속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의 자녀들인 만큼 하늘과 진리와 실제적인 사랑에 대한 같은 욕망과 같은 바람과 같은 갈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여러 세기에 걸친 오류가 정신의 본능을 바꾸어 놓은 것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류는 영혼을 둘러싸고 있다. 그것은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여 있어서 사탄이 동물적인 사람에게 접종한 독의 결과를 겪기 때문이다. 또 이와 같이 오류가 마음을 둘러쌀 수도 있다. 그것은 마음도 육체와 결합하여 있어서 육체의 독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세 가지 사욕(邪慾)이 관능과 감정과 생각을 괴롭힌다. 그러나 영은 육체와 결합하여 있지 않다. 영은 사탄과 사욕이 그에게 가하는 타격으로 인하여 멍해질 것이다. 육체가 그의 앞에 세워놓는 벽과 그가 퍼져 있는 동물적인 사람의 끓는 피가 튀어서 묻는 것으로 인하여 거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하느님을 향한 그의 갈망을 바꾸지는 않았다. 영은 변할 수가 없다. 이 개울의 맑은 물을 보아라. 이 물을 하늘에서 내려왔고, 바람과 해의 영향으로 물이 증발하여 하늘로 돌아갈 것이다. 물은 내려오고 또 다시 올라간다. 원소는 파괴되지 않고 그 기원으로 돌아간다.
영은 그의 근원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돌들 틈에 있는 저 물이 너희들에게 말을 할 수 있으면 바람이 창공의 아름다운 밭들 사이로 몰고 다니게 다시 올라가기를 갈망한다고 말할 것이다. 새벽에는 시원하고 희게 또는 분홍색으로, 해가 질 무렵에는 구리빛으로 혹은 또 별이 총총한 황혼에는 꽃과 같이 보라빛으로, 저 물은 대기 속에서 홀로 누리는 자유를 사랑하는데, 이 급류의 두 기슭 사이에 갇혀서 흙탕물로 변할 위협을 받으면서 뱀들이 두꺼비를 결함이나 보면서 여기 있는 대신에, 사람들에게 하늘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권운(卷雲)이 조금 벌어진 틈으로 내려다보는 별들에게 체 노릇을 하거나, 달이 밤의 추악한 것들을 보지 못하게 달에게 베일 노릇을 했으면 좋겠다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영들도 만일 감히 말할 수가 있으면 모두가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주시오!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오!’ 하고. 그러나 영들은 그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무서운 갈망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하느님을 찾는 ‘숭고한 거지들’인 영들의 애원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조롱한다는 것을 영들이 알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영들의 갈망을 우리가 길에서 만나고, 또 너희들이 항상 만나게 될 저 우상숭배자들, 저 로마인들, 저 무신론자들, 저 불행한 사람들, 하느님에 대한 욕구를 가진 것으로 인해서 정치적으로나 가정의 이기주의로나 또는 타락한 마음에서 생겨나 여러 나라에서 발전한 이단으로 인하여 업신여김을 받는 저 사람들이 갈망하고 있다. 그들은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긴다. 존재하는 분인 나인데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과 참새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에게 양식을 마련해 주는데, 그들이 참 하느님께 속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 앞에 사람들이 장애물을 세워놓은 영들을, ‘우리는 배가 고픕니다.!’ 하고 말하면서 팔을 내미는 영들을 어찌하여 내가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저들이 나쁘고 야만이고 하느님의 종교와 하느님 자신을 사랑하게 될 능력이 없다고 믿느냐? 너희들의 생각은 틀렸다. 저들은 사랑과 빛을 기다리는 영들이다.
오늘 아침 우리는 내 냄새를 맡으려고 온 그 덩치 큰 개를 쫓으려는 염소의 위협적인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그리고 너희들은 우리가 그 밑에서 잠을 잔 나무에 그놈을 붙잡아맸던 밧줄을 홱 잡아뺀 다음 어떻게 그 위협적인 뿔을 내밀고 있는지를 보고 웃었다. 염소는 편이 기우는 싸움에서 큰 몰로스개의 공격을 받아 목이 물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단숨에 나와 개 사이에 뛰어들었다. 너희 눈에는 야생의 염소와 같이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는 사랑이라는 것과 그리스도가 자기를 따르라고 그들에게 권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용맹히 몸을 일으킬 줄을 알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권유한다. 그렇다. 그리고 너희들은 그들이 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아라.
어떤 사람이 결혼해서 아내에게서 여러 자식을 얻었다. 그러나 그중 한 아들은 기형의 육체를 타고 나서 하등 종족에 속한 것 같았다. 그 사람은 그 아들을 자기의 수치로 생각하고, 비록 자식은 죄가 없었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이는 가장 신분이 낮은 하인들 가운데에서 업신여김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생각으로도 형들보다 못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를 낳으면서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정을 완화할 수도 없었고, 형들이 업신여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그 아이의 야성적인 생각에서 나온 그릇된 관념들을 고쳐 줄 수도 없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이들의 집 가까이에 억지로 용납하는 야수와 같은 아이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 그의 지각은 늦게 발달하였다. 그러나 결국 성숙하기는 하였다. 외양간에서 살면서 빵 덩어리와 누더기 옷이나 받고, 한 번도 입맞춤을 받지 못하고, 말 한 마디 듣지 못하며, 아버지의 집에 들어오라는 초청을 한 번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들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의 굴 속에서 ‘아버지! 아버지!’ 하고 탄식하면서 괴로워하고 또 괴로워하였다. 그는 그가 받는 빵을 먹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옷을 입고 있었으나 그의 마음에는 큰 추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짐승들과 그를 동정하는 그 고장 사람 몇몇을 친구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고독이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 이 부르짖음은 하인들과 형들과 동향인들도 들었다. 마치 그가 이성을 잃은 것과 같이 끊임없이 신음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마침내 그가 야수처럼 되었는데도 하인 한 사람이 감히 그를 보러 가서 ‘왜 아버지의 발 앞에 가서 엎드리지를 않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감히 그렇게 할 수가 없어 …’ ‘왜 집에 오지 않으세요?’ ‘무서워’ ‘그렇지만 오고 싶긴 하세요?’ ‘가고 싶고말고! 그렇게 하고 싶어 죽겠어. 이 때문에 내 몸이 어는 것 같이 느껴지고, 사막에 있는 것처럼 외로움을 느껴.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 어떻게들 사는지 몰라.’
착한 하인은 그래서 그를 가르치기 시작하고, 그를 보기 흉하게 만들고 그에게서 그가 아버지에게 가증스런 존재라는 공포를 없애려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당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버지를 사랑하는지 알지 못하십니다. 당신은 항상 아버지를 피하니까요. … 당신 아버지에게서 너무 엄하게 굴었다는 가책과 당신이 혼자서 헤매는 것을 보는 고통을 없애세요. 당신의 형들까지도 내가 당신의 마음 고통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제는 당신을 업신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가엾은 아들은 어느 날 저녁 그 친절한 하인에게 인도되어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외쳤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저를 들어가게 해주세요! …’
늙고 침울하게 되어 그의 과거와 영원한 미래를 생각하고 있던 아버지는 그 목소리를 듣고 펄쩍 뛰며 말했다. ‘내 고통이 마침내 가라앉는구나. 흉하게 생긴 아들의 목소리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고, 그의 피가 내 피이고 그의 살이 내 살이라는 것을 그의 사랑이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애는 와서 제 형들 가운데 자리잡게 하고, 내쫓겼던 아들을 아버지의 모든 아들들 가운데 다시 데려다 주어서 내 가족을 완전하게 만든 친절한 하인은 축복을 받아라.’
이것은 비유이다. 그러나 이 비유를 적용함에 있어서 너희들은 영적 기형을 가지게 된 사람들, 즉 이교인(離敎人)들과 이단자들과 갈라진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은 그들의 아버지이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원해서 얻은 고의의 기형 때문에 그들을 엄하게 다루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기다리신다. 그들을 하느님께로 데려오너라. 이것이 너희 의무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우리의 양식을 주십시오.’ 하고. 그러나 ‘우리의’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너희 열두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너희를 말하는 것이다. 이 청을 너희들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후에 살 사람들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과 그분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지 않거나 잘못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쳐 준 기도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것이 너희 임무이다. 하느님과 그분의 그리스도를 아는 너희들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나는 내 기도가 보편적인 것이고 세상이 계속되는 만큼 계속될 것이라고 너희들에게 말했다.그러나 너희들은 예수의 교회의 사도와 제자로서의 너희 목소리와 마음을 다른 교회들에 속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마음과 합치면서 보편적인 정신으로 기도해야 한다. 비록 그 사람들이 사도들에게서 내려간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너희들은 아버지의 집안에 있고, 그들은 굶주리고 향수에 젖으면서 한 아버지의 집 밖에 있지만 모두가 형제들인 만큼 주의 그리스도인 참된 ‘빵’부정탄 음식들과 섞이는 다른 식탁에 차려지지 않고 사도들의 식탁에 차려져서 너희들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로 주어질 때까지 꾸준히 계속하여라. 아버지께서 저 ‘보기 흉한’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는 동안은 꾸준히 계속하여라. ‘너희들에게서, 너희들의 목소리에서 내 외아들이요 맏아들인 사람의 목소리와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내 고통이 가라앉는다. 너희들을 너희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와서 내 가족이 전부 모이게 한 이 하인들이 축복받아라.’ 하고. 무한하신 하느님의 종들인 너희들은 너희 의향에 무한을 넣어야 한다.
알아들었느냐? 얌니아에 다 왔다. 한 번은 계약의 궤가 이리로 지나서 에크론으로 갔는데, 에크론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벳세메로 보냈다. 궤는 에크론으로 돌아왔다. 요한아, 나와 같이 가자. 너희들은 얌니아에 남아 있어라. 그리고 생각을 깊이 하고 말할 줄을 알아라.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그리고 예수께서는 요한과 염소를 데리고 가신다. 염소는 매애매애 울면서 개처럼 그들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