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죠가나의 농부들과 이사악과 많은 제자들과 여자들 앞에서 말씀하신다. 여자들 가운데에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과 마르타와 베다니아의 많은 사람들도 있다. 사도들도 모두 있다. 아이는 예수 앞에 앉아서 한 마디도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직도 오는 것을 보면 말씀을 시작하신 지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 … 그리고 너희 중의 여러 사람에게 이런 두려움이 있는 것을 보기 때문에 오늘은 기분좋은 비유를 말하고자 한다.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분좋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신랄한 비유일 것이다. 그러나 착한 뜻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그 신랄함을 없애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들도 착한 뜻을 가진 사람이 되면, 비유가 그들의 양심에 생겨나게 하는 비난이 없어질 것이다.
하늘 나라는 하느님과 영혼들 사이에 혼례가 행해지는 집이다. 거기에 들어가는 날은 혼례가 행해지는 날이다.
잘 들어라. 우리 고장에서는 처녀들이 집으로 오는 신랑을 호위해서 불을 밝히고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다정스러운 신부와 더불어 신랑집으로 데리고 가는 풍습이 있다. 행렬이 신부의 집을 떠나고, 신부는 베일을 쓰고 흥분한 마음으로 자기가 여왕노릇을 할 곳을 향하여, 즉 그의 집은 아니지만 신랑과 결합하는 순간부터 그의 집이 되는 집을 향하여 간다. 그러면 대부분 신부의 친구들인 처녀들이 행렬을 지어 행복한 신랑 신부의 마중을 나와서 등불로 그들을 빙 둘러싼다.
그런데 어느 마을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신랑 신부가 신부의 집에서 부모, 친척, 친지들과 더불어 마음껏 즐기고 있는 동안 열 처녀는 신랑의 집 현관에 있는 그들의 자리로 가서, 멀리서 들려오는 심벌즈와 노래 소리가 신랑 신부가 신부의 집을 떠나 신랑 집으로 온다는 것을 알릴 때 마중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혼인하는 집에서 잔치가 오래 끌어 밤이 되었다. 처녀들은 너희들이 알다시피 최후 순간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그들의 등불을 항상 켜 둔다. 그런데 불을 켜서 잘 밝히는 등불을 가진 그 열 처녀 중에 슬기로운 처녀 다섯 명과 어리석은 처녀 다섯 명이 있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용의주도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지면 등잔에 기름을 넣을 수 있게 기름을 가득 채운 채 작은 그릇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들의 작은 등잔에만 기름을 가득 채우는 데 그쳤었다.
시간은 한 시간 두 시간 자꾸 흘러갔다. 즐거운 회화, 재미있는 이야기, 농담들로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심심하거나 또는 그저 피곤하기만 해서 처녀들은 불을 켠 등불을 아주 가까이에 놓아둔 채 더 편하게 앉았고 천천히 잠이 들었다. 자정이 되어서 ‘신랑이 온다, 마중 나가라!’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열 처녀는 명령을 듣고 소스라쳐 놀라 깨서 베일과 꽃줄을 들고, 머리를 손질하고 등불들이 놓여 있는 탁자로 달려갔다. 등불 중의 다섯은 힘이 없어져 가고 있었다. … 기름이 떨어진 심지는 다 타서 점점 더 약한 빛을 내며 연기를 뿜고 있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꺼질 참이었다. 이와 반대로 다른 등불 다섯은 용의주도한 처녀들이 잠들기 전에 기름을 더 넣었기 때문에 아직 선명한 불꽃을 가지고 있었고, 등잔에 기름을 더 넣자 불꽃이 더 성해졌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애원하며 말했다.
‘아이고! 너희들 기름을 좀 다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등불은 들기만 해도 꺼지겠으니 말이다. 너희 등불은 벌써 아름답게 타고 있구나! …’ 하고. 그러나 신중한 처녀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밖에는 밤바람이 불고 이슬도 굵게 내리고 있다. 바람과 습기에 견딜 수 있을 든든한 불꽃을 만들려면 기름이 넉넉하다는 법이 없다. 만일 너희에게 기름을 주면 우리 불꽃도 가물거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꿈틀거리는 작은 불꽃이 없는 처녀들의 행렬은 정말 음산할 거다! 그러니까 제일 가까운 가게에 뛰어가서 주인에게 청하고, 문을 두드리고 일어나서 기름을 달라고 해라.’ 그래서 어리석은 처녀들은 숨을 헐떡이고, 베일을 구기고, 옷을 더럽히고, 꽃줄을 잃어버리고, 서로 부딪고 하면서 뛰어가서 동료들이 충고하는 대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길 안쪽에서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나타났다. 불이 켜진 등불을 가지고 있던 처녀들은 그들을 맞이하러 갔고, 그들에게 둘러싸여 신랑 신부는 의식을 마저 끝내려 집으로 들어왔고, 처녀들은 맨 마지막에 신부를 신방에까지 호위해갔다. 신랑 신부가 들어온 다음에는 문이 닫혔고, 밖에 있는 것은 그대로 밖에 남아 있었다. 어리석은 처녀들의 운명이 이러하였다. 그들이 기름을 사 가지고 오니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쓸 데 없이 손에 상처를 입혀 가며 문을 두드리고 애처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서방님, 서방님! 문을 열어 주셔요! 저희들도 혼인행렬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저희들은 서방님의 혼인에 영광과 행운을 갖다 주려고 뽑힌 하느님의 자비를 빌기로 된 처녀들입니다.’ 하고. 그러나 집 윗층에서 신부가 신방으로 들어가는 동안 작별 인사를 하던 가장 친한 친구들을 잠깐 떠나고 나서 그 처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너희들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너희들의 얼굴은 내 사랑하는 신부를 둘러싸고 환영하는 데에 없었다. 너희들은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혼인집 밖에 그대로 있어라.’ 그래서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이제는 쓸 데 없게 된 그들의 등불을 들고 옷은 구겨지고, 베일은 벗겨지고, 꽃줄은 흐트러지거나 잃어버린 채 울면서 캄캄한 거리를 지나서 갔다 ….
그러니 이제 너희는 비유에 들어 있는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에 하늘 나라는 하느님과 영혼 사이에 혼례가 행해지는 집이라고 말했다. 하늘의 혼례식에는 모든 신자가 초대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자녀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자녀들은 더 일찍, 어떤 자녀들은 더 늦게 혼례식을 하는 시간에 와 있게 되는데, 거기에 이른다는 것은 행복한 운명이다.
그러나 더 들어보아라. 너희들은 처녀들이 신부 주위에서 시중을 드는 하녀로 불린 것을 영광과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 경우에 인물들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생각해 보자. 그러면 너희들이 더 잘 알아들을 것이다. 신랑은 하느님이시다. 신부는 약혼 시절을 아버지의 집에서 지낸 다음, 즉 하느님의 가르침의 보호를 받으며 이 가르침에 순종하면서 정의에 따라 살고 나서 혼례를 위하여 신랑의 집으로 인도되어 온 의인의 영혼이다. 하녀노릇을 하는 처녀들은 신부가 남긴 본보기의 덕택으로 자기들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같은 영광에 이르려고 애쓰는 영혼들이다. 신부로 말하면 그의 덕행 때문에 신랑에게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그가 성덕의 산 본보기였다는 표가 된다. 처녀들은 희고 깨끗하고 산뜻한 옷을 입고, 흰 베일을 쓰고, 화관을 썼다. 처녀들은 불을 켠 등불을 들고 있다. 등은 매우 깨끗하고, 심지에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도록 가장 순수한 기름이 보급된다.
흰 옷을 입고. 꿋꿋하게 실천한 의덕은 흰 옷을 준다. 그리고 멀지 않아 얼룩이 있었다는 아주 오랜 기억조차도 없이 초자연적인 흰 빛, 천사적 흰 빛으로 완전히 희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깨끗한 옷을 입고. 옷은 겸손으로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마음의 깨끗함을 흐리게 하기는 대단히 쉬운데,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하느님을 뵐 수가 없다. 겸손은 더러운 것을 씻는 물과 같다. 겸손한 사람은 그의 눈이 교만의 옷을 퇴색하게 했다는 것을 이내 알아차린다. 그래서 주님께로 달려가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마음의 깨끗함을 잃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웁니다. 주님의 발 아래에서 웁니다. 그러니 나의 태양이신 주님은 당신의 관대한 용서와 온정이 넘치는 사랑으로 제 옷을 희게 해주십시오!’ 하고.
산뜻한 옷을 입고. 오! 마음의 산뜻함! 어린 아이들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이것을 가지고 있다. 의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과 그들 자신의 의지로 이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더기가 되고, 타고, 중독이 되고, 더럽혀진 영혼을 가진 죄인들은 그러면 다시는 산뜻한 옷을 절대로 가지지 못하게 되겠느냐? 오! 그렇지 않다! 그들도 산뜻한 옷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이 자신들을 멸시하며 돌아보는 순간부터 산뜻함을 가지기 시작하고, 생활을 바꾸기로 결정할 때에 산뜻함을 더하고, 속죄로 자신들을 씻고, 해독하고, 그들의 불쌍한 영혼을 재건할 때에 깨끗함을 완전하게 한다. 당신의 거룩한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는 구조를 거절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도움과 영웅적 정신을 능가하는 정도에까지 이른 그들 자신의 의지로, 그리고 끝으로 죄인이었던 에 대한 꾸준하고 가차없는 속죄로 그들은 자기들의 영혼을 어린 아이 것과 같은 새로운 산뜻함으로 도로 데려가는데, 이 산뜻함은 그들이 쌓은 경험으로 인하여 전에 그들과 같은 사람이었던, 즉 죄인이었던 사람들에게 선생 노릇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귀중하게 된다. 영웅적 정신을 능가하는 의지라고 말한 것은 그들에게는 가진 것을 보호할 필요가 없고, 그들이 쓰러뜨렸던 것을 다시 일으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즉 두 곱절, 세 곱절, 일곱 곱절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흰 베일을 쓰고. 겸손! ‘너희가 기도를 하거나 속죄를 할 때에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여라.’ 하고 내가 말한 적이 있다. 지혜서에 ‘왕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씌어 있다. 겸손은 우리가 행하는 선행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위에 씌워놓는 흰 보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특전을 받은 사랑을 자랑하지 말 것이고, 어리석은 인간적 영광을 찾지 말 것이다. 그러면 이 선물을 이내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러지 말고 마음 속으로 하느님께 이렇게 노래부를 것이다. ‘제 영혼이 주님을 찬미합니다. … 주님께서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기 때문입니다.’ 하고.”
예수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어머니께로 눈길을 보내신다. 성모님은 베일 속의 얼굴을 붉히시고, 당신 발치에 앉아 있는 어린 아이의 머리카락을 다시 잘 정리해 주시려는 것처럼 얼굴을 깊이 숙이신다. 그러나 사실은 당신 추억의 감격을 감추기 위하여 그러시는 것이다 ….
화관을 쓰고, 영혼은 날마다 덕행의 꽃장식을 짜야 한다.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는 흠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어서는 안되고, 허술한 모습을 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날마다 꽃줄을 짜야 한다고 말한 것은 신랑이신 하느님께서 언제 그에게 나타나셔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실지 영혼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관을 새롭게 하는 데 싫증을 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꽃은 신선함을 잃지만, 덕행의 화관의 꽃은 신선함을 잃지 않는다. 각 사람의 곁에 있는 하느님의 천사는 날마다 짜는 그 꽃장식들을 거두어 하늘로 가져 간다. 그래서 새로 지극한 행복을 누릴 사람이 신부처럼 혼배를 치르는 집에 들어올 때에 그에게 그 꽃장식들로 옥좌를 만들어 줄 것이다.
처녀들은 불을 켠 등을 가지고 있다. 신랑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들의 길을 밝히기 위해서도 그렇게 한다. 믿음은 얼마나 빛나는 것이며, 얼마나 다정한 친구이냐! 믿음은 별처럼 빛나는 불꽃을 주고, 그의 확신으로 안심하고 있기 때문에 웃는 불꽃을 주며, 그것을 담고 있는 기구까지도 빛나게 만드는 불꽃을 준다. 믿음이 양분을 주면 사람의 육체도 벌써 이 세상에서부터 더 빛나게 되고 더 신령하게 되고 일찍 늙는 것을 면하는 것 같다. 믿는 사람은 그의 목적이신 하느님을 차지하게 되도록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고, 따라서 일체의 타락을 피하고, 불안이나 공포나 가책이 없고, 그의 거짓말을 기억하거나 자기의 나쁜 행동을 숨기려고 애쓸 필요가 없으며, 그래서 성인들의 아름다운 청렴으로 자기 자신을 아름답고 젊게 보존하는 것이다. 믿음의 기름을 보존하고 연기나지 않는 빛을 주기 위하여는 일체 음란이 없는 살과 피와 정신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빛을 항상 유지하려는 꾸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실망과 확인과 접촉과 유혹과 마찰이 가득 찬 매일매일의 생활은 믿음을 작게 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사랑스러운 기름, 지혜의 기름, 하느님의 기름의 샘을 날마다 찾아가라.
기름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 등불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꺼질 수 있고, 짙은 밤이슬로도 꺼질 수 있다. 밤 … 어두움과 죄와 유혹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 온다. 이것은 영혼의 밤이다. 그러나 영혼이 자신을 믿음으로 가득 채우면, 그의 불꽃은 세상의 바람으로도 육욕의 안개로도 꺼질 수 없다.
결론으로 말해서 깨어 있고, 깨어 있고, 또 깨어 있어야 한다. ‘오! 하느님께서는 내가 아직 내 안에 빛을 가지고 있을 때에 오실 것이다.’ 하고 감히 말하면서 깨어 있지 않고 갑자기 시작하는 사람, 첫번 부를 때 재빨리 일어나는 데 필요한 것을 갖추지 못한 채 잠자기 시작하는 사람, 최후 순간에야 믿음의 기름이나 잘 견디어내는 착한 뜻의 심지를 마련하려고 허둥대는 무모한 사람은 신랑이 올 때에 밖에 남아 있을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항상 준비가 되어 있도록 조심성 있고 꾸준하고 깨끗하게, 그리고 신뢰를 가지고 깨어 있어라. 너희들은 하느님께서 언제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내 제자들아, 나는 너희들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 남아 있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이나 모두, 만일 너희가 슬기로운 처녀들이 한 것과 같이 하면 신랑을 호위하도록 불리기만 할 뿐 아니라, 바스티 대신 아내가 된 젊은 에스텔과 같이 신부로 뽑히고 간택되리라고 생각하여라. 그것은 신랑이 ‘너희에게서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뛰어나는 모든 우아함과 모든 호의의 표시를 발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떠나는 너희들에게 강복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이 말을 너희 안에 간직하고 동료들에게 갖다주어라. 주님의 평화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기를.”
예수께서는 농부들에게 또 인사를 하시려고 그들에게 가까이 가신다. 그러나 엔도르의 요한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선생님, 지금 유다가 저기 와 있습니다 ….”
“상관없다. 농부들을 마차에까지 따라 가서 내가 말한 대로 하여라.”
모였던 사람들이 천천히 흩어진다. 여러 사람이 라자로에게 말한다. … 그러니까 라자로는 농부들을 떠나 이쪽으로 돌아오시는 예수께로 몸을 돌리고 말한다. “선생님, 저희를 떠나시기 전에 또 말씀을 해주십시오. … 베다니아 사람들이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밤이 되가오., 그러나 고요하고 맑은 밤이오. 당신들이 베어낸 건초 위에 모이겠다면, 정다운 이 고장을 떠나기 전에 또 말하겠소. 그렇지 않으면, 헤어질 시간이 되었으니 내일 새벽에 말하겠소.”
“이따가! 오늘 밤에요!” 하고 모두가 외친다.
“그럽시다. 이제는 가시오. 초경(初更) 중간쯤에 말하겠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