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지방 농부들에게서 꾼 것을 내일 갚을 수 있게 미케아에게 돈을 넉넉히 주어라.”하고 보통 공동체의 돈을… 관리하는 가리옷의 유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안드레아와 요한을 부르셔서 제즈라엘에서 오는 한 갈래 또는 두 갈래 길이 보이는 두 지점으로 보내신다. 그런 다음 베드로와 시몬을 부르셔서 도라의 농부들을 맞이하러 가라고 보내시며, 두 소유지의 경계에서 그들을 멎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끝으로 야고보와 유다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오너라.” 하시고 말씀하신다.
죠가나의 농부들은 남자, 여자, 어린이가 모두 그들을 따라가는데, 남자들은 작은 항아리 둘을 가지고 간다. 작은 항아리는 말이 그렇지, 포도주가 가득 차 있을 것이 틀림없다. 항아리라기보다는 차라리 각기 10리터씩은(내가 말하는 용량을 항상 신앙 교리로는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들어갈 만한 동이 같은 것이다. 그들은 새 잎이 뒤덮인 포도그루들이 빽빽히 들어선 포도밭이 죠가나의 소유지의 끝을 가리키는 곳으로 간다. 그 너머로는 물이 가득 찬 넓은 도랑이 있는데, 그것은 고생을 많이 해서 만든 것이다.
“아시겠습니까? 죠가나는 이 도랑 때문에 도라와 다투었습니다. 죠가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결단난 것은 자네 아버지 탓이야. 그 사람에게 경배하기가 싫으면 적어도 무서워는 해서 도전은 하지 말아야 했어.’ 그랬더니 도라는 마귀처럼 부르짖었습니다. ‘당신의 땅을 구해 준 것은 이 도랑 덕택입니다. 벌레들이 이 도랑을 건너가지 못한 겁니다 ….’ 그러니까 죠가나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전에는 자네네 밭이 에스드렐론에서 제일 좋았는데 왜 그렇게 결단났나? 그건 하느님의 벌이야. 틀림없네. 자네네는 도를 지나쳤어. 이 물? … 이 물은 언제나 있었던 거야. 이 물이 나를 구해준 게 아니야.’ 그러니까 도라가 외쳤습니다. ‘이건 예수가 마귀라는 증거입니다.’ ‘그 사람은 의인이야.’ 하고 죠가나가 외쳤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숨이 다할 때까지 싸웠습니다. 그 뒤로 죠가나는 비용을 많이 들여서 도랑에 개울물을 끌어오게 하고 샘을 발견하려고 땅을 파게 했습니다. 그는 그와 그의 친척 사이에 여러 개의 도랑을 깊이 파게 하고, 저희들에게 어제 말씀드린 말을 했습니다. … 결국 그는 이번에 일어난 일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도라를 몹시 질투했거든요. … 이제는 그가 모든 것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라가 결국은 모든 것을 터무니없는 헐값으로 팔고 말 것이니까요.”
예수께서는 도라의 불쌍한 농부들을 기다리시면서 이 모든 비밀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으신다. 도라의 농부들은 지체하지 않고 와서, 어떤 나무 그늘에 계신 예수를 보자마자 땅에 엎드린다.
“친구들, 당신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리 오시오. 오늘이 여기가 회당이고, 나는 회당장이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당신들의 가장 노릇을 하고 싶습니다. 음식을 여러분에게 주게 빙 둘러 앉으시오. 오늘 여러분은 신랑과 같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혼인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구니 하나의 덮개를 벗기시고 도라의 농부들의 놀라는 눈 앞에 빵들을 꺼내시고, 또 다른 바구니에서는 구하실 수 있었던 음식물들을 꺼내시는데, 치즈가 있고, 익힌 야채와 통째로 익힌 작은 새끼 염소인지 어린 양인지 한 마리가 있다. 예수께서는 불쌍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 다음, 포도주를 따라서 투박한 잔을 돌려 모두 마시게 하신다.
“아니 왜? 아니 왜? 그런데 저 사람들은요?” 하고 도라의 농부들이 죠가나의 농부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 사람들은 벌써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비용이 무척 들었겠는데! 어떻게 하실 수 있었습니까?”
“이스라엘에는 아주 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고 예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오늘은 안식일인데요.”
“이 사람에게 감사하시오.” 하고 예수께서는 엔도르의 사람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신다. “이 사람이 어린 양을 장만했습니다. 나머지는 얻기가 쉬웠지요.”
그 불쌍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알지 못하게 되었을 음식을 – 문자 그대로 – 아귀아귀 집어삼킨다. 그 중에 꽤 나이많은 한 남자가 열 살쯤 된 어린 아이를 곁에 꼭 붙여 앉게 하고 먹으면서 운다.
“할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선생님이 너무 친절하셔서요 ….”
엔도르의 사람이 목구멍에서 울려나온 목소리로 말한다. “맞습니다. … 그 때문에 울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슬픔의 눈물은 아닙니다 ….”
“슬픔이 없는 눈물이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또 … 제가 바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눈물은 하나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 무엇이 소원입니까?”
“이 아이요, 보시지요? 제 손잡니다. 지난 겨울 땅이 무너져내릴 때부터 저와 같이 있습니다. 도라는 얘가 저한테 와 있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저는 얘를 들짐승처럼 숲 속에서 살게 하고 안식일에만 얘를 보니까요. 도라에게 들키면 내쫓든지 일을 시키든지 할 것입니다. … 그러면 이 어린 아이가 마소보다도 더 못한 대우를 받을 것입니다. … 과월절에는 얘를 미케아와 같이 예루살렘에 보내서 율법의 아들이 되게 하겠습니다. … 그리고는? … 제 외손자입니다 ….”
“그러지 말고 이 아이를 내게 주시겠습니까? 울지 마세요. 나는 정직하고 거룩한데 아이가 없는 친구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 아이를 내 길에 따라 거룩하게 기를 것입니다 ….”
“아이고! 주님! 주님께 대한 말을 들은 때부터 이것이 제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인에게 속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거룩한 요나에게 제 손자를 이 죽음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
“얘야, 날 따라오겠니?”
“예, 주님. 그리고 걱정을 끼치지 않겠습니다.”
“그럼 약속이다.”
“그렇지만 … 이 아이를 누구에게 주려고 하십니까?” 베드로가 예수의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말한다. “이 아이도 라자로에게요?”
“아니다, 시몬아, 아이를 못 가진 사람이 대단히 많다 ….”
“저도 있습니다 ….” 베드로의 얼굴이 욕망으로 핼쓱해지는 것 같다.
“시몬아 네게 이 말을 했다. 너는 내가 남겨줄 모든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네게 딸린 아들의 속박에 얽메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선생에게 너무도 필요하기 때문에 선생이 어떤 애정으로 인해서 너를 자기에게서 떼어놓을 수가 없다. 시몬아, 나는 까다롭다. 나는 가장 질투심이 많은 신랑보다도 더 까다롭다. 나는 너를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너를 전적으로 나를 위해서 내 것으로 가지기를 원한다.”
“좋습니다, 주님 … 좋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기 바랍니다.” 가엾은 베드로는 이렇게 예수의 뜻에 동의하는 것이 영웅적이다.
“이 아이는 태어나는 내 교회의 어린 아이가 될 것이다. 동감이냐? 이 아이는 모든 사람의 것이기도 하고 누구의 것도 아니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어린 아이일 것이다. 행정(行程)이 허락할 때에는 우리와 같이 다닐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로 나중에 올 것이다. 이 아이의 보호자는 목자들일 것이다. 모든 어린 아이들을 ‘그들의’ 아기 예수로 보고 사랑하는 목자들이. 꼬마야, 이리 오너라. 이름이 뭐냐?”
“요한의 야베입니다. 그리고 유다 사람입니다.” 하고 소년은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유다 사람입니다.” 하고 노인이 확인한다. “저는 유다에 있는 도라의 소유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 딸이 이 지방 사람에게 시집왔습니다. 저는 아리마태아 근처의 수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지난 겨울 …”
“저는 큰 불행을 보았습니다 ….”
“얘는 그날 밤 멀리 있는 친척 집에 있었기 때문에 무사했습니다. … 정말이지 제 이름값을 했습니다. 주님! 저는 딸에게 이내 그 말을 했습니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니? 너는 옛날 성경도 기억 못하니?’ 하고요. 그러나 사위는 얘에게 이 이름을 붙여 주기를 원했고, 그래서 야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주께 간청하면 주께서 그에게 강복하실 것이고, 그의 경계를 넓혀 주실 것이고, 주의 손이 그의 손에 있어 다시는 불행에 짓눌리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죽은 이들의 영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리고 고아의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 주께서 이 아이에게 그런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어린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여러분이 육체의 필요를 영혼의 필요에서 분리한 지금,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생각한 비유를 들으시오.
옛날에 대단히 부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주홍빛 옷과 올이 가는 아마포 옷을 입고 광장과 집에서 으스대며 걸어 다녔습니다. 동향인들은 그를 그 지방의 가장 권세 있는 사람으로 존경했고, 친구들은 이득을 얻으려고 그의 교만을 부추겼습니다. 그의 집 방들은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하느라고 열려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모두가 부자인, 따라서 옹색하지 않은 많은 손님이 밀려들어 못된 부자에게 아부했습니다. 그의 잔치는 음식이 푸짐한 것과 포도주가 맛있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내에 거지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대단한 거지였습니다. 부자가 재산이 대단한 것만큼이나 이 거지의 비참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거지 라자로의 인간적인 비참의 껍질 밑에는 라자로의 비참보다도 나쁜 부자의 재산보다도 훨씬 더 큰 보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라자로의 참된 거룩함이었습니다. 라자로는 필요 때문에도 율법을 어긴 일이 절대로 없었고, 특히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켰습니다. 라자로는 거지들이 항상 그러는 것처럼 동냥을 청해서 굶어 죽지 않으려고 부잣집 문전에 자리잡곤 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화려한 방에 차려놓은 호화로운 잔칫상의 찌꺼기라고 좀 얻을 희망을 가지고 매일 저녁 악한 부자의 집 문 앞에 갔습니다.
그는 문 근처 길에 누워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라자로가 와 있는 것이 부자의 눈에 띄면, 헌 데 투성이에 영양실조에 걸리고 누더기를 걸친 그 육체가 그의 손님들에게 너무도 마음 아픈 광경이기 때문에 그를 쫓아버리게 했습니다. 그 광경이 가슴 아프다고 한 것은 부자의 말이었고, 사실은 라자로의 비참과 착함을 보는 것이 그에게 끊임없는 비난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값진 목걸이를 하고 영양이 좋은 부자의 개들이 부자보다 더 동정을 했습니다. 개들은 불쌍한 라자로에게 가까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아 주고, 그가 쓰다듬어 주기 때문에 좋아서 짖으며, 호화로운 식탁에서 남은 음식들을 그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 짐승들 덕택으로 라자로는 음식을 주지 않는 데도 살아 남았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식사가 끝난 다음에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우려고 방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자로가 죽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라자로가 죽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도무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날과 그 후 부자는 그가 ‘치욕’이라고 부르던 그 비참한 꼴을 그의 문지방에서 보지 않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그 죽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라자로가 숨을 거둘 때 차고 아무것도 없는 그의 굴에는 하늘의 군대가 와서 눈부신 빛 속에서 그의 영혼을 거두어 가지고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습니다.
얼마 지나서 부자도 죽었습니다. 오! 얼마나 호사스러운 장례식이었는지요! 그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벌써 듣고, 호기심으로 또는 유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 사람의 친구로 점찍히기 위해 그의 저택이 우뚝 솟아 있는 광장에 몰려들었던 온 시내 사람이 슬픔을 같이 해서 울음소리가 하늘까지 올라갔고, 슬픔의 울음소리와 함께 죽은 ‘위인’, ‘은인’, ‘의인’에 대한 거짓 찬사들도 올라갔습니다.
사람의 말이 하느님의 심판을 바꿀 수 있습니까? 인간의 변호가 생명의 책에 기록된 것을 바꿀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판결된 것은 판결된 것이고, 씌어진 것은 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호화로운 장례식에도 불구하고 나쁜 부자의 영은 지옥에 묻혔습니다.
그러자 그 소름끼치는 감옥 속에서 불과 어두움을 먹고 마시며, 사방에서 또 그 영원의 순간마다 미움과 고통을 보면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번개치는 것 같은 빛 속에서 지극히 짧은 순간 동안 보았던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그의 머리 속에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는 하늘의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혹독한 고통 중에서도 혹독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위에 아브라함이 보였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빛나고 지극히 행복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 그리고 그의 품에는 역시 빛나고 지극히 행복한 라자로가 있었습니다. 전에는 업신여김 받고 혐오감을 일으키고 초라하던 거지 라자로가, 그런데 지금은? … 그런데 지금은 하느님의 빛과 그의 거룩함의 빛으로 아름답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부유하고,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천사들에게서 찬미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나쁜 부자는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직접 그렇게 하시기를 바랄 수는 없으니까 라자로를 보내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셔서 손가락 끝을 물에 적셔서 제 혀에 얹어 시원하게 해주십시오. 저는 끊임없이 제 속으로 파고 들어와 저를 태우는 그 불꽃 속에서 무섭게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까요!’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살아 있는 동안 모든 복을 누렸었고, 라자로는 모든 불행을 겪었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라자로는 그의 불행을 가지고 선을 할 줄 알았는데, 너는 네 재산을 가지고 악밖에 할 줄을 몰랐다. 그러므로 라자로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그렇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세상에는 성인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어 사람들이 거기에서 이익을 얻게 하였다. 그러나 이웃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네 경우에는 마귀로 – 나중에는 성인들의 도움을 청해도 소용없다. 이제는 우리들이 갈라져 있다. 밭에서는 풀들이 섞여 있다. 그러나 풀을 벤 다음에는 좋은 풀과 나쁜 풀을 갈라놓는다. 너희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서는 우리가 같이 있었는데, 너희들은 우리를 쫓아내고 수백 수천 가지 모양으로 우리를 괴롭혔고, 너희는 사랑의 법을 지키지 않고 우리를 잊었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 갈라져 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하도 깊은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들에게로 건너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고, 거기 있는 너희들도 그 무서운 심연을 건너 우리에게로 올 수가 없다.’
부자는 더 크게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의 집에만이라도 보내 주십시오. 저는 형제가 다섯이 있습니다. 저는 친척들 사이에서까지도 사랑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이곳은 미움뿐이기 때문에 제 영혼이 눈 깜박할 사이에 하느님을 본 그 동안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형제들이 저와 같은 벌을 받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이 저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들 때문에 몹시 겁이 납니다. 아이고! 라자로를 보내셔서 네가 어디에 와 있는지, 무슨 이유로 여기에 와 있는지 알려 주고, 지옥이 있고, 지옥은 소름끼치는 곳이며,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지옥이 온다고 말하게 해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 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이 늦지 않게 대비해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이 곳에 끌려오게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형제들은 모세와 예언자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말을 들을 것이다.’
그러니까 고통을 당하는 영혼으로 신음하면서 나쁜 부자는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아브라함 아버지, 죽은 사람이 가면 그들에게 더 깊은 감명을 줄 것입니다. … 제 청을 들어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진리의 말을 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다시 살아날 사람의 말은 더구나 믿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극히 행복한 사람이 내 품을 떠나서 원수의 아들들의 모욕을 받으러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에게는 이제 모욕의 때가 지나갔다. 지금은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도 믿지않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 사람들을 회개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 쓸 데 없는 일임을 아시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평화 속에 머물러 있다.’
이 비유는 아주 분명한 뜻을 가지고 있어서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는 새로운 라자로인 내 요나가 성덕을 닦으면서 정말로 살았습니다. 요나가 하느님 곁에서 영광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그에게 바라는 사람에게 주는 보호로 명백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로 요나는 보호자와 친구로 올 수 있고, 또 여러분이 언제나 착하게 살면 실제로 올 것입니다. 지난 봄에 요나에게 한 말을 여러분에게도 합니다만, 여러분 모두를 물질적으로도 도우러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하늘을 가리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미래의 나라를 약속하면서 체념이라는 큰 지혜를 가르치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미워하지 마시오. 미움이 이 세상에서는 강력합니다. 그러나 미움은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사랑의 능력은 이 세상에서도 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해서 사랑이 이 세상에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여러분의 용기를 돋워 주게 하고 하늘에서는 여러분에게 상을 주게 하시오. 나쁜 부자가 되는 것보다는 라자로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이것을 믿으시오. 이것을 믿게 되면 여러분은 지극히 행복할 것입니다.
이 밭들이 받은 벌에서 미움의 말을 보지 마시오. 비록 사실들이 이 미움을 정당화할 수는 있어도 말입니다. 기적을 잘못 해석하지 마시오. 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벌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잔인한 부자를 복종시킬 수가 없었으므로 그를 정의에 맡겼습니다. 그래서 정의가 도라와 그의 형제들에 대한 박해에 보복을 행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기적에서 교훈을 얻으시오. 정의는 없는 것 같이 보일 때에도 항상 깨어 있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주재자이시기 때문에 정의를 행사하기 위하여 애벌레와 개미같이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을 써서 잔인하고 탐욕스러웠던 자의 심장을 물게 하시고 그의 목을 조르는 독을 토하면서 죽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에게 강복합니다. 그러나 새벽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게 맡기는 어린 양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내가 이따금씩 이 아이를 할아버지한테 데려와서 이 아이가 하느님의 길에서 지혜와 착함이자라는 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이 어린 아이가 이번 과월절의 할아버지의 어린 양이 될 터인데, 야훼의 제단에 바친 어린 양 중에서 가장 하느님의 뜻에 맞는 어린 양일 것입니다. 야베야,할아버지께 인사드려라. 그리고 네 구세주, 네 착한 목자에게로 오너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고! 선생님! 착하신 선생님! 선생님을 떠나다니! …”
“그렇습니다. 이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기 있는 것을 감시인이 보면 좋지않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벌을 피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이 곳에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충고를 하는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 순종하시오.”
불쌍한 사람들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일어나 그들의 고난을 향하여 간다. 예수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강복하신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한편에는 엔도르의 사람이 걷는 가운데 이미 가셨던 길로 해서 미케아의 집으로 돌아오신다. 그 동안 망보는 일을 마치고 형제들에게 돌아오는 안드레아와 요한이 예수와 합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