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임시(市)는 온통 명절 분위기이다. 예수께서 젊은 다니엘의 부활 후 처음으로 그곳에 들르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앞서 가고 뒤따르고 하는 가운데 예수께서 강복을 주시며 시내를 지나가신다. 나임 사람들에게 다른 여러 곳에서 온 다른 사람들도 합류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찾아 가파르나움으로 갔다가, 거기 사람들이 가나로 보내서 그리로 갔다가 거기서 나임으로 온 것이었다. 나는 예수께서 이제는 많은 제자를 가지고 계시고, 일종의 연락망을 조직하셔서 끊임없이 옮겨 다니시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을 찾는 여행자들이 찾아낼 수 있게 하셨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계절과 짧은 해가 허락하는데 따라 하루에 몇 마일씩밖에 다니지 못하시지만. 그리고 다른 곳에서 예수를 찾아 온 사람들 중에는 겉으로는 매우 공손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없지 않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난 젊은이의 집에 맞아들여 지셨다. 거기에는 이 도시의 유력자들도 모여 있다. 다니엘의 어머니는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 7죄종(罪宗)같이 일곱 명이다 -보고 그들에게 더 어엿한 집을 드리지 못하늘 것에 대하며 변명하며 겸손하게 초대한다. “여보시오, 선생님께서 계시오. 선생님께서 계셔요. 오두막집이라도 이것으로 인해 가치가 있게 될 것인데, 당신의 집은 오두막집보다는 훨씬 낫소. 그래서 우리는 ‘당신과 당신 집에 평화가 있기를’ 하고 말하면서 들어가오.” 과연 그 여인은 분명히 부자는 아니면서도 예수를 공경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였다. 틀림없이 나임의 모든 재물이 모여서 집과 식탁을 꾸미는 일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물건을 빌려준 여주인들도 각각, 할 수 있는 모든 지점에서, 이 집 여주인이 식탁들을 차려놓은 두 방으로 가는 입구의 복도로 지나가는 일행을 살펴본다. 어쩌면 그 여자들은 식기와 식탁보와 의자들을 빌려주고 화덕에서 일을 하는 대가로 이것만을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즉 선생님을 가까이서 보고 그분이 호흡하는 공기를 호흡하는 것 말미다. 그래서 이제는 그들이 어떤 요리 만드는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얼굴이 벌개졌거나 밀가루가 묻었거나 재투성이가 되었거나 또 손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여기저기에 나타난다. 그 여자들은 쳐다보고, 하느님의 눈길의 작은 몫을, 하느님의 목소리의 작은 몫을 얻고, 눈과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기분좋은 강복과 온화한 얼굴을 마시다시피 한다. 그리고는 얼굴이 더 벌개져서 기쁘게 화덕과 빵 반죽통과 개수대로 일을 하러 돌아간다.
여주인과 함께 귀빈들에게 손 씻는 물 대야를 가져다주는 여자도 매우 행복하다. 머리와 눈이 까맣고 살갗이 장미빛깔인 처녀이다. 그리고 집주인 여자가 예수께 그 처녀가 아들의 약혼녀이고, 곧 결혼식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드리자 그 처녀는 얼굴이 더 빨개진다. “집 전체가 선생님에 의해서 거룩하게 되게 하려고 선생님이 오시는 것을 기다려서 혼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애가 이 집의 착한 아내가 되게 이애에게 강복을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처녀를 들여다보신다. 그리고 처녀가 머리를 숙이자 두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사라와 레벡카와 라헬의 덕행이 네게서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영광과 이 집의 기쁨을 위하여 네게서 참된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기를 바란다.”
이제는 예수와 귀빈들이 정결의식을 끝내고 젊은 집주인과 같이 연회실로 들어가고, 사도들과 영향력이 덜한 나임의 다른 사람들은 맞은편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식사가 시작된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까 이 환시가 시작되기 전에 예수께서 나임에서 설교를 하시고 병을 고치셨다는 것을 알겠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하여는 주의하지 않고, 반대로, 다니엘이 무슨 병으로 죽었었는지, 죽음과 부활사이에 몇 시간이나 흘렀었는지, 다니엘의 시체에 완전히 방부처리를 하였었는지 등등에 대한 상세한 사정을 알기 위하여 나임 사람들에게 질문을 퍼부어 괴롭힌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탐색에서는 초연하시어 부활한 사람과 말씀하신다. 이 사람은 아주 건강하고 굉장한 식욕으로 식사한다.
그러나 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예수를 불러 다니엘의 병에 대한 것을 알고 계셨느냐고 묻는다.
“나는 제베대오의 요한에 대해서 한 것처럼 가리옷의 유다를 기쁘게 하려고 엔도르에 갔다가 아주 우연히 오는 길이었습니다. 나는 과월절 순례를 위해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나임으로 지나게 되리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아! 선생님께서는 엔도르에 일부러 가신 것이 아니 로군요?”하고 어떤 율법교사가 놀라서 묻는다.
“아닙니다. 그때에는 그곳에 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가셨습니까?”
“그 말을 했지요. 시몬의 유다가 거길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변덕을 왜 부렸습니까?”
“여자마술사의 동굴을 보기 위해서였지요.”
“아마 선생님께서 거기 대한 말씀을 하셨던 모양이지요….”
“절대로! 나는 그럴 이유가 없었습니다.”
“제 말씀은…어쩌면 선생님께서…입문(入門)지도를 하시려고 그 삽화(揷話)를 가지고 다른 요술을 설명하셨는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입문지도요? 성덕에 입문지도를 하는 데에는 순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를 위하여는 작은방이나 광야, 산꼭대기나 외따로 떨어진 집으로 충분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엄격과 성덕이 있고. 그의 말을 듣는 사람에는 자기를 거룩하게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됩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이것이지 다른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행하는 기적들은 놀라운 일이 아니고 무었입니까? 그리그 …”
“그리고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거룩하게 되면 기적을 더 많이 행할 것입니다. 기도와 희생과 하느님께 대한 순종으로. 다르게는 안 됩니다.”
“그렇게 확신하십니까?”하고 한 율법교사가 턱을 손으로 괴고 밑에서 예수를 쳐다보며 묻는다. 그런데 그의 말투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게 비꼬는 투이고 동정하는 투이기까지 하다.
“나는 그들에게 이 무기와 이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제자가 대단히 자거든요 -교만이나 다른 일로 인하여 파렴치한 행동을 하도록 천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조언을 준 것은 내가 아닐 것입니다. 나는 그 죄있는 사람을 구속하기 위하여 기도할 수 있고, 하느님께서 그 사람이 그의 오류를 보도록 당신 지혜의 빛으로 특별히 도와주시 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속죄하는 힘드는 고행을 자청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발 앞에 엎드려서 잘못을 고치라고 형제와 스승과 친구로서의 내 모든 사랑을 기울여 그에게 간청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 나를 스스로 비천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영혼의 값은 그 영혼을 얻기 위하여 어떤 모욕이라도 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것이니까요.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의 것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데도 불구하고 잘못이 계속되면 배반을 당하고 이해를 받지 못한 선생과 친구로서의 내 눈과 마음에서는 피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예수의 목소리와 모습에는 얼마나 친절하고 서글픈 기분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서로 쳐다본다. 눈길이 의미심장하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하여 다른 말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젊은 다니엘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기억하는지, 다시 살아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묻는다. “제가 아는 것은 죽도록 병이 중했다는 것과 임종의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정말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그 생각은 하게 하지 마십시오.…그렇지만 언젠가 다시 그 고통을 겪어야 할 날이 올 것입니다! 오! 선생님!…” 그러면서 다시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얼굴이 창백해지고 공포에 질려서 예수를 쳐다본다.
예수께서는 그의 용기를 복돋아 주시려고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죽음은 그 자체로 속죄가 되는 것이다. 너는 두번 죽음으로 흠이 완전히 깨끗하게 없어질 것이고, 즉시 하늘을 즐길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으로 네가 거룩하게 살게 되어서 네 안에는 본의 아닌 가벼운 죄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공격을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너는 다시 살아나면서 무엇을 느꼈느냐?”
“아무것두요, 저는 길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제가 살아 있고 건강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네가 죽었었다는 것은 기억했겠지?”
“저는 임종의 고통을 당하기까지 병이 대단히 중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리고 저 세상에 대해서는 무엇을 기억하느냐?”
“아무것두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생활에는 꺼먼 구멍, 빈 공간이 하나 있었습니다.…그리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네 생각에는 고성소(古聖所-림보=Limbo) 도 없고,연옥도 없고, 지옥도 없단 말이냐?”
“누가 그런 것들이 없다고 합니까? 그것들은 물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들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네가 죽었었다는 것이 확실하냐?”
나임의 모든 사람이 펄쩍 뛴다.” 이 사람이 죽었었느냐구요? 그래 선생들은 무엇을 더 원하십니까? 우리가 이 사람을 들것에 놓을 때에는 벌써 역한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모든 방향성 수지(樹脂)와 그 모든 붕대로 거인이라도 죽을 겁니다.”
“하지만 너는 죽었었다는 것을 기억하느냐?”
“기억 못한다니까요.” 젊은이가 짜증을 내며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은 이 긴 이야기로 뭘 증명하려고 하십니가? 제 어머니와 죽을 것 같은 슬픔을 안고 침대 머리에 있었던 제 약혼녀와 붕대로 결박이 되고 방향성 수지가 발라졌던 저까지 포함해서 한 도시 사람 전체가 제가 죽었던 체 했던 것을 증명하시려는 겁니까? 죽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나임 사람들은 모두가 농담을 하기를 원하는 어린 아이들이나 바보였단 말씀입니까? 제 어머니는 몇 시간 동안에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제 약혼녀는 슬픔과 기쁨으로 거의 미치다시피 되었기 때문에 치료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의심을 하십니까? 대관절 저희가 왜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왜? 사실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했겠어?” 하고 나임 사람들이 말한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마치 방심하신 양 식탁보를 만지작거리신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그러나 회화와 토론이 끝난 것 같을 때에 뜻밖에 입을 여신다. “그 이유는 이렇다. 저분들은(그러시면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을 가리키신다) 네 부활이 군중들 사이에 내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꾸며낸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과 이웃을 속이기 위하여 꾸며내는 사람이고, 너희들은 공범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는 속임수는 비열한 자들에게 남겨둔다. 나는 지금 있는 대로의 나이기 위해서는 요술도 계략도 필요 없고, 연기(演技)나 공범도 필요 없다. 선생들은 왜 하느님께 육체에 영혼을 돌려주시는 능력을 거부하려고 하십니까? 하느님께서 육체가 형성 될 때에 , 그리고 영혼들을 창조하실 때에 매번 영혼을 주시는데, 그분의 메시아의 기도를 들으셔서 그 영혼을 돌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육체에 돌아옴으로 많은 군중을 진리에 오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그 영혼을 말입니다. 선생들은 하느님께 기적의 능력을 거부하려고 하십니까!”
“선생님이 하느님이십니까?”
“나는 있는 자입니다. 내 기적들과 내 가르침이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불러낸 영들은 내세가 어떤지를 말할 줄 아는데, 이 사람은 기억을 못합니까?”
“그것은 이 영혼은 첫번째 죽음의 보속으로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미 성화되어서 진실을 말하지마는 강신술(降神術)을 하는 사람들의 입술에서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러나 사무엘은 율법을 배반하는 자에게 그분의 계명을 조롱해서는 안되는 주님의 판결을 가져다주려고 하느님의 명령으로 온 것이었지, 여자마술사의 명령으로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그런 일을 합니까?” 아픈 데를 찔린 바리사이파 사람 하나의 목소리가 토론의 음조를 높이는 바람에 격리시키는 문이나 두꺼운 휘장도 없이 너비 1미터 되는 복도로만 갈라져 있는 맞은편 방에 있는 사도들의 주의가 끌렸다. 자기들을 문제 삼는 것을 듣고, 사도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복도로 와서 귀를 기울인다.
“그들이 무슨 일에 율법을 어깁니까? 설명을 해주십시오. 그래서 만일 선생의 비난이 사실이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을 다시는 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주의를 주겠습니다.”
“무슨 일에 그렇게 하는지를 나는 압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다른 사람도 많이 압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시고 자신을 예언자보다 더 한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직접 그것을 알아내십시오.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히 선생님께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선생님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거나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다른 많은 일들을 보기 위한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그중의 어떤 것을 하나 내게 말해 주시겠습니까?”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선인(先人)들의 가르침을 어깁니까? 오늘 우리는 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오늘, 바로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아까! 그들은 식사를 하려고 그들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전에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런데 그들이 주민들을 죽였습니다” 하고 말한다 해도 그만큼 심한 혐오를 나타내는 말투로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들은 그들을 살펴보셨군요. 예. 보아야 할 것, 그리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볼 가능성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 때문에, 그리고 주님이 그것들을 만드시거나 허락하셨기 때문에 주님을 찬미하게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들은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들과 더불어 다른 많은 사람도 보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고 선생들은 좋지 않은 것을 뒤 쫓느라고 당신들의 시간과 평화를 잃습니다.
당신들은 재칼과 같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향기가 가득 차 있는 동산에서 바랄에 불려 오는 향기로운 파동은 소홀히 하고 악취의 흔적을 따라다니는 하이에나와 같습니다. 하이에나는 백합과 장미, 쟈스민과 장뇌, 계피와 카네이션은 좋아하지 않고, 협곡 안쪽에나 수레바퀴 자국에서 썩고 있거나 살인자 파묻은 가시덤불 속에 파묻혀 있거나 폭풍우에 밀려 인적이 없는 해변에 표류해서 부풀어 오르고,자주빛이 되고, 터지고, 소름끼치는 썩어 가는 시체의 악취를 좋아합니다. 오! 그런 것들은 하이에나에게 얼마나 기분 좋은 향기입니까! 그래서 하이에나들은 그놈들을 유인하는 그 막연한 냄새를 막기 위하여, 태양이 가열한 다음 발산시키는 모든 냄새들을 응축시키고 운반하는 저녁바람을 맡으며, 그 냄새들을 알아내고 그 방향을 찾아낸 다음에는 주둥이를 쳐들고, 히스테릭한 웃음과도 같은 턱뼈를 떨면서 벌써 이빨을 내놓고 부패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그리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사람이나 네 발 달린 짐승의 시체이거나, 농부에게 맞아 죽은 뱀의 시체이거나, 주부에게 맞아 죽은 담비의 시체이거나, 다만 쥐 한 마리의 시체만이라도, 오! 그놈들의 마음에 들고 또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한 악취 속에 그놈들의 이빨을 박고, 맛있게 먹고, 입술을 할습니다.…사람들이 날로 거룩해집니까? 이것은 관심 밖의 일입니다! 그러나 다만 한 사람이라도 악을 행하거나 또는 하느님의 계명이 아니고 인간적인 관습인 -그것을 관습이라고 하거나 규범이 라고 하거나 좋을 대로 부르시오. 그래도 역시 인간적인 관습입니다-어떤 것을 소홀히 하는 여러 사람이 있으면, 그때에는 움직이고 관심을 보입니다. 의심을 따르기까지 합니다.…의심도 하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다만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사랑이나 믿음이나 예절로 오지 않고, 고약한 의향을 가지고 온 당신들은 대답해 보시오. 당신들은 그래도 관습이 계명보다 더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악담을 하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반대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제게서 받으셔야 할 것은 재물로 바칠 것입니다)하고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하여 쓸 의무가 없어진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당신들의 관습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폐기했습니다 위선자들! 이사야가 예언하면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적인 교리와 계명을 가르침으로 나를 헛되이 공경하기 때문이다’ 하고 말한 것은 바로 당신들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당신들은 하느님의 계명은 어기면서 항아리와 잔과 접시와 손을 씻는 것이나 그와 비슷한 다른 일들과 같은 사람들의 관습을 중시합니다. 자기를 낳아 주었고, 도움이 필요한 분, 그리고 아버지이기 때문에 공경할 의무가 있는 분에게 빵을 주지 않도록 아들에게 재물로 바칠 것이라는 핑계를 제공함으로써 그의 배은망덕과 인색을 정당화하면서, 당신들은 손을 씻지 않는 어떤 사람 때문에 분개합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만들어서 규범의 지위에 올려놓은 말들에 복종하기 위하여 하느님보다 더 옳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홀로 당신 백성의 입법자이신데, 당신들은 입법자의 권리를 가로챕니다. 당신들은…“ 예수께서는 계속 말씀셨을 것이다. 그러나 적의 집단은 빗발치는 비난을 받으면서 나간다. 사도들과 집안에 있는 사람들, 즉 손님이거나 주인여자를 도와주는 사람들로 예수의 쩡쩡 울리는 목소리에 끌려 복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떼밀면서
일어나셨던 예수께서는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계신 곳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시면서 앉으셔서 말씀하신다. “모두 내 말을 듣고 이 진리를 이해하시오. 사람 밖에 있는 것으로 사람 안에 들어와서 그를 오염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은 들으시오, 그리고 이해할 줄 아는 그의 지능과 행동할 줄 아는 그의 의지를 실천에 옮기시오. 그럼 이제는 가자. 나임의 여러분은 선행에 꾸준하시오. 그리고 내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집주인 남자와 여자 주인에게 개별적으로 인사하시고 복도에서 물러가신다. 그러나 한구석에 모여서 대단히 만족하여 당신을 쳐다보는 집주인의 여자친구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직접 가시며 말씀하신다. “아주머니들에게도 평화. 여러분이 사랑으로 나를 맞아 주어서 내가 어머니의 식탁을 그리워하지 않게 하신데 대해서 하늘이 여러분에게 갚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모든 빵조각에서, 모든 소스와 구운 고기에서, 단 꿀맛에서, 시원하고 향기 나는 포도주에서 여러분의 어머니다운 사랑을 맛보았습니다. 나임의 착한 부인들, 나를 항상 이렇게 사랑하시오. 그리고 다음번에는 나를 위해 그렇게 고생하지 마시오. 나는 빵 한 덩어리와 여러분의 어머니다운 미소와 여러분의 성실하고 착한 눈길로 양념을 한 올리브 한 줌이면 충분합니다. 박해를 받는 사람의 감사가 여러분 위에 있고, 그 사람은 여러분의 사랑으로 위로를 받고 떠나니까 여러분은 집안에서 행복하시오.”
행복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여인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지나가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강복을 주시는 것처럼 희거나 검은 그들의 머리를 살짝 스치신다. 그리고 나오셔서 다시 길을 가기 시작하신다. 저녁의 처음 어두움이 내려 덮이며 너무 많은 일로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창백함을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