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성전을 향하여 가신다. 제자들이 떼를 지어 앞서 가고, 여자 제자들이 떼를 지어 따라온다. 예수의 어머니, 클레오파의 마리아, 마리아살로메, 수산나, 쿠자의 요안나, 벳수르의 엘리사, 예루살렘의 안나리아, 마르타와 마르첼라가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여기 없다. 예수 둘레에는 열두 사도와 마륵지암이 있다.
예루살렘은 그 성대한 명절을 맞이하여 호화롭다. 길이란 길에는 모든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 찬송가와 연설과 작은 소리로 하는 기도소리와 나귀를 모는 사람들의 저주소리가 들려오고, 아기들의 우는 소리도 간간히 들려온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집들과 해 사이에 나타나는 맑은 하늘이 있다. 해는 명랑하게 내려와서 옷빛깔을 선명하게 하고. 정원에 둘러친 담과 옥상 너머로 여기저기 보이는 정자처럼 올린 덩굴들과 나무들의 죽어가는 잎들에 뜨겁게 내리쬔다.
때로는 예수께서 아시는 사람들과 마주치시는데, 인사는 마주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더 공손하기도 하고 덜 공손하기도 하다. 가령 가믈리엘의 인사는 정중하지만 거만하다. 그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그에게 미소를 보내는 스테파노를 뚫어지게 바라다본다. 그리고 예수 앞에 몸을 굽혀 인사한 다음 그를 따로 불러 몇 마디 말을 한다. 그런 다음 스테파노는 그가 있던 집단으로 돌아온다. 동향인들과 함께 성전을 향하여 가던 엠마오의 늙은 회당장 클레오파의 인사는 대단히 공손하다. 예수의 인사에 대한 가파르나움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인사는 마치 저주와도 같이 딱딱하다. 관리인에게 인도되어 오는 죠가나의 농부들은 예수의 발에 입맞춤하는 동안 길의 먼지 속에 엎드린다. 군중은 네거리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도 아니고 유명한 율법학자도 아니며, 태수(太守)도 아니고 세력있는 궁인도 아닌 젊은 사람의 발 앞에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드는 한 떼의 사람을 놀라 살펴보느라고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다. “나자렛의 선생님인데, 사람들이 메시아라고 말하는 분이오”하고 어떤 사람이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그러자 개종자들과 이방인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그 집단을 벽으로 밀어붙여 작은 광장 전체를 혼잡하게 만든다. 마침내 한 떼의 나귀몰이들이 길을 막는다고 악담을 하면서 그들을 흩뜨린다. 그러나 군중은 이내 다시 모여서 여자들을 남자들에게서 갈라놓고 귀찮고 난폭하게 그들의 의사를 나타내는데, 거기에는 역시 믿음이 들어 있다. 모든 사람이 예수의 옷을 만지고 싶어 한다. 예수께 말을 한마디 하고 질문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노력이다. 서로 밀치면서 맨 앞줄로 나가려고 서두르고 안달을 하고 소란을 피우는 바로 그것으로 인하여 아무도 앞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고, 질문과 대답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에 섞여버리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떨어져 나온 오직 한사람은 마륵지암의 할아버지이다. 그는 손자의 외침에 외침으로 대답하고, 예수께 경의를 표한 다음 즉시 손자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발꿈치에 의지하고 무릎을 꿇고는 손자를 가슴에 대고 앉히고 감탄하며 들여다보고, 기쁜 눈물을 흘리고 입맞춤을 하면서 쓰다듬는다. 노인은 어떻게나 행복한지 벌써 천국에 가 있는 것과 같다. 로마 군사들이 무슨 싸움이 벌어진 줄 알고 달려와서 군중을 헤치며 온다. 그러나 예수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물러가며,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네거리의 통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하기만 한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즉시 복종하셔서, 마치 로마인들이 당신께 길을 터드리기 위한 것처럼 몇 걸음 앞서 가는 로마인들이 만든 자유로운 공간을 이용하신다. 사실은 로마 군사들이 그들의 감시초소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빌라도가 군중 사이에 불만이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리고 예루살렘에 사방에서 온 히브리인들이 가득 차 있는 요사이 무슨 봉기라도 일어날까 봐 염려하는 것처럼 로마군 수비대를 대단히 보강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마치 어떤 왕이 그의 소유지로 가는데 길을 터드리는 것 모양으로 왕처럼 로마군 분견대를 앞세우고 가시는 것을 보니 그것은 아름다운 광경이다. 예수께서는 움직이시면서 아이와 노인에에 “그대로 함께 있으면서 나를 따라오시오” 하고 말씀하시고, 관리인에게는 “당신 사람들을 내게 남겨주길 바라오. 그들은 저녁 때까지 내 손님이 될 거요”하고 말씀하신다.
관리인은 공손하게 대답한다. “모든 일을 선생님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몸을 많이 굽혀 인사를 드리고 간다.
예수께서 이제는 성전 가까이에 계신다. 그리고 정말 개미집 근처에서 개미들이 우글거리는 것처럼 군중이 한층 더 북적거린다. 그때 죠가나의 농부 한 사람이 “주인님이 오셨다!” 하고 외치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외치는데 그는 주인에게 인사를 하려고 무릎을 꿇는다. 예수께서는 농부들이 당신을 빽빽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농부 집단 가운데서 계시며 지시된 지점으로 눈길을 돌리신다. 예수의 시선은 호화로운 옷을 입은 바리사이파 사람의 시선과 마주친다. 그 사람은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은 아닌데, 어디서 보았는지 알지 못하겠다. 바리사이파 사람 죠가나는 그들 일당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다. 값진 옷감과 술과 고리쇠와 허리띠와 성서의 글귀를 쓴 양피지(羊皮紙)가 한 무더기인데, 이 모든 것이 여느 때보다 너무 넓다. 죠가나는 예수를 주의 깊게 바라다본다. 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시선이지만 불손한 시선은 아니다. 그는 어지간히 뻣뻣한 인사까지 한다. 그저 고개를 까딱할 뿐이다. 그러나 인사는 역시 인사라, 예수께서는 공손히 답례를 하신다. 그리고 다른 바리사이파 사람 두세 사람도 인사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경멸의 눈으로 바라다보거나 다른 데를 보는 체하고, 한 사람만이 욕설을 내뱉는다.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펄쩍 뛰고, 죠가나까지도 갑자기 뒤돌아서서 욕한 사람을 노려보는 것이 보이니까 이것은 확실한 일이다. 그 사람은 죠가나보다 더 젊고 얼굴모습이 뚜렷하고 딱딱한 사람이다. 그들을 지나쳐서 농부들이 감히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중 한 사람이 말한다. “선생님께 악담을 한 사람은 도라입니다.”
“맘대로 하게 내버려두시오. 내게는 내게 축복을 하는 당신들이 있소” 하고 예수께서 침착하게 말씀하신다.
마나엔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떤 장식 홍예창틀에 기대어 서 있다가 예수를 보았기 때문에 두 팔을 들며 기쁨의 환호를 올린다. “선생님을 만났으니, 오늘은 기분 좋은 날입니다.” 그러면서 같이 있던 사람들의 앞장을 서서 예수께로 와서, 그늘진 장식 홍예창틀 밑에서 예수께 경배한다. 거기서는 목소리들이 둥근 천장 아래서처럼 울린다.
그가 경배를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사도들의 무리 아주 가까이 예수의 사촌 시몬과 요셉이 다른 나자렛 사람들과 같이 지나가는데…그들은 인사를 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서글프게 바라다보신다. 그러나 아무 말도하지 않으신다. 유다와 야고보가 흥분하여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유다가 분노로.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동생이 붙잡을 수 있기 전에 뛰어서 간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도 거역 못할 만큼 “유다야, 이리 오너라!” 하고 불러들이시는 바람에 알패오의 흥분한 아들이 뒤로 돌아온다….
“형들이 하는대로 내버려두어라. 저들은 아직 봄을 느끼지 못한 씨앗들이다. 고집센 흙덩어리의 캄캄한 속에 그 씨앗들을 내버려두어라. 흙덩어리가 씨앗을 둘러싼 벽옥(碧玉)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거기까지 뚫고 들어갈 것이다. 나는 때가 오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유다의 대답소리보다 비탄에 잠긴 알패오의 마리아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창피를 당한 사람의 긴 비명이다….
그러나 그 비명이 장식 홍예창틀 아래 뚜렷하게 울려 많은 메아리를 일으키는데도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위로하려고 뒤돌아보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저와 같이 있는 사람들은 요한의 제자들입니다. 이들도 저와 같이 선생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하고 말하는 마나엔과 계속말씀을 하신다.
“좋은 제자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저 앞에는 영원히 나와 같이 있을 마리아와 요한과 시메온이 있소. 나는 저들을 받아들인 것과 같이 당신들도 받아들이오. 거룩한 예고자에게서 내게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성전 구내에 도착하신 다음에 예수께서는 관계에 따른 물건을 사서 관례에 따른 봉헌을 하라고 가리옷 사람과 열성당원 시몬에게 명령하신다. 그리고 사제 요한을 불러 말씀하신다. “이곳에 속해 있는 당신은 지리를 알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아는 어떤 레위파 제관을 청하는 일을 맡아 하시오. 올해에는 내가 참으로 기쁜 명절을 지낼 수 있기 때문이오. 오늘 만큼 즐거운 날이 다시는 절대로 없을 거요….”
“주님 왜요?”하고 율법학자 요한이 묻는다.
“모두가 보이게 또 정신적으로 내 둘레에 있기 때문이오.”
“그러나 저희들은 항상 선생님과 같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와 함께 다른 많은 사람두요” 하고 사도 요한이 격렬하게 단언하고, 모두가 일제히 그 말을 되풀이 한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고 말씀을 안하신다. 그동안 사제 요한은 스테파노와 함께 명령을 이행하려고 성전 안으로 나아간다. 예수께서는 그의 뒤에 대고 “우리는 이교도의 회당에 가 있을 터이니 그리 오시오”하고 외치신다.
그들은 들어간다. 그리고 거의 즉시 니고데모를 만난다. 니고데모는 몸을 깊이 숙여 인사한다. 그러나 예수께로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예수와 서로 통하는 조용한 미소를 주고받는다.
여자들이 그들에게 허락된 곳에서 걸음을 멈추는 동안, 예수께서는 남자들과 같이 히브리인들만이 갈 수 있는 곳으로 기도를 하러 가신다. 그리고 모든 의식을 다 행하신 다음 이교도들의 회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시려고 돌아오신다.
매우 넓고 높은 회랑 뜰에는 교사들의 가르침을 듣는 군중이 꽉 차 있다. 예수께서는 앞으로 보내신 두 사도와 두 제자가 멈추어 있는 것을 보시는 곳을 향하여 가신다. 즉시 그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대리석 마당 여기저기에 있던 다른 많은 사람도 사도들과 제자들과 합친다. 호기심이 대단해서 유다교 교사들의 어떤 제자들도 예수 주위를 빽빽이 둘러싼 군중에게 가까이 온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오는지 교사들이 보내서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예수께서 느닷없이 물으신다. “왜 내 주위로 몰려오는지 말해 보시오. 여러분은 잘 알려지고 지혜롭고 호평을 받는 교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알려지지도 않았고, 호평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내게로 옵니까?”
“우리는 선생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말씀을 하시니까요” 하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만이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계시고, 또 말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끝으로 “우리는 선생님의 제자들과 합쳐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가장 깊숙히 감추어진 반응을 읽기 위하여 시선으로 그들을 꿰뚫으시려는 듯이 그들이 말하는데 따라서 바라다보신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가거나, 기둥이나 그들보다 더 큰 사람들의 뒤에 가서 숨는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따라온다는 것이 무슨뜻인지, 무엇을 명하는지 아십니까? 호기심은 대답을 들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또 내 말을 갈망하는 사람은 자연 그의 사랑을 내게 주고 또 나와 결합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말에 대해서만 대답을 하겠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말을 한 사람들 중에는 두 가지 집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인데, 나는 이 사람들에게 이 부름의 엄격함을 거짓없이 가르치겠습니다.
제자로서 내게 온다는 것은 오직 하나의 사랑을 위해서, 즉 내 사랑을 위해서 모든 사랑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기주의적인 사랑, 재물이나 관능성이나 권력에 대한 사악한 사랑, 아내에 대한 올바른 사랑,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거룩한 사랑, 자식들과 형제들의 다정한 사랑, 또는 자식들과 형제들에 대한 다정한 사랑, 이 모든 것이, 누가 내 사람이 되고자 하면 내게 대한 사랑에 양보해야 합니다. 정말 잘 들어 두시오. 내 제자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보다 자유로워야 하고, 아무에게도 아무것에도 제지당하지 않고 공간을 돌아다니는 바람보다도 더 자유로워야 합니다. 무거운 물질적인 사랑의 사슬도 없고, 끈도 없고, 가장 보잘 것 없는 방벽의 가는 거미줄까지도 없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정신은 육체라는 무거운 고치 속에 갇혀 있는 약한 나방과 같은 것이어서, 무지개 빛깔로 아롱지고 만져서 느껴지지 않는 거미줄의 작용으로 그 나방이 나는 것이 둔해질 수 있거나 또는 완전히 정지될 수도 있습니다. 거미란 관능성이나 희생에 있어서의 너그러움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하나 남김없이 원합니다. 정신이 영혼들의 도둑인 사탄이라는 그 흉악한 거미가 친 줄과 같은 애정과 풍습과 잔소리와 공포라는 거미줄에 확실히 붙잡혀 있지 않기 위하여는 주는 이 자유, 주는 이 너그러움이 필요합니다.
누가 만일 내게로 오고자 하면서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식들, 형제자매, 그리고 자기의 목숨까지도 거룩하게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거룩하게 미워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미움은 절대로 거룩하지 않다고 가르치시는데, 스스로 모순된 말을 하신다’ 하고.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스스로 모순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식들, 형제자매, 그리고 목숨에 대해서도 둔한 사랑, 육체적인 사랑의 격정을 미워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영들에 특유한 경쾌한 자유로 부모형제와 목숨을 사랑하라고 명합니다. 부모형제와 목숨을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사랑하서, 절대로 하느님을 그들 뒤로 가시게 하지 말고, 그들을 돌보고, 그들을 제자가 이른 곳, 즉 진리이신 하느님께로 인도하도록 마음을 쓰시오. 이렇게 하면, 여러분은 부모와 하느님을 거룩하게 사랑해서 두 가지 사랑을 일치시키고, 핏줄의 관계를 가지고 무거운 짐을 만들지 않고 날개를 만들 것이고 잘못을 만들지 않고 올바름을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숨가지도 나를 따르기 위하여는 미워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목숨을 잃거나 인간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나를 섬기는 데 바치는 사람은 목숨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인 미움에 지나지 않습니다. 별로 높이 올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짐승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순전히 현세전인 사람의 생각으로 부정확하게 ‘미움’이라고 부르는 감정입니다. 정신에 점점 더 큰 생명을 주기 위하여 그들의 생활에 관능적인 만족을 거절하는 것인 이 표면상의 미움은 실제로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고상하고 가장 축복받은 사랑입니다.
천한 만족에 대한 이 거부, 애정의 관능성에 대한 이 금지, 부당한 비난과 악의 있는 언급, 벌, 소박, 저주, 또 어쩌면 박해를 당할지도 모르는 이 위험이 모두가 고통의 계속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받아들여서 십자가처럼 짊어져야 하며, 의인이 되어 하느님께로 가기 위하여 지난날의 모든 죄를 그위에서 보속하고, 그것으로써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참되고 힘있고 거룩한 모든 은총을 하느님에게서 얻는 교수대 모양으로 짊어져야 합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할 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생님의 제자들과 합쳐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왔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많이, 많이 생각하시오. 자기 자신을 자세히 검토하고 판단하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제자가 될 소질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지혜입니다. 아니, 도대체, 이교도들도 그들의 교훈들 중의 하나의 바탕에 ‘자기 자신을 알’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인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를 못하겠습니까? 내게로 오는 사람들은 매우 행복하리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오. 그러니 나와 나를 보내신 분을 배반하려고 오는 것보다는 전혀 오지 않고, 여러분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율법의 아들로 남아 있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갑니다’ 하고 말하고 나서 그리스도의 사상을 배반하고, 어린이들과 성실한 사람들의 빈축을 사면서 그리스도를 해치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그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또 언제까지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탑을 쌓고자 하는 사람을 본받으시오. 그 사람은 우선 필요한 경비를 주의 깊게 계산하고, 기초공사를 한 다음에 돈이 떨어져서 일을 중단해야하게 되지 않기 위해 가진 돈을 계산합니다. 만일 일을 중단하게 되면 가진 것까지도 잃어서 탑도 없고 돈도 없을 것이고, 그 대신 사람들의 조소만 사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시작은 하고도 끝마칠 수가 없구먼. 이제는 끝내지 못한 건축의 무너진 것을 먹고 살 수 있겠구먼’ 하고.
또 세상의 왕들을 본받아서, 세상의 시시한 사건을 초성적인 교훈에 쓰이게 하시오. 왕들이 다른 왕과 전쟁을 하고자 할 때에는 모든 것을 즉 유리한점과 불리한 점을 침착하고 면밀하게 검토하고, 정복에서 오는 이익이 국민의 생명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곰곰히 생각하며, 그곳을 정복할 수 있겠는지,적국 왕의 군대의 수보다 반밖에 안 되는 그들의 군대가 비록 더 공격적이라 하더라도 승리를 거둘 수 있는지를 검토합니다. 그리고 일만 명이 이만 명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올바르게 생각하고는 교전이 있기 전에 많은 선물을 가진 사절단을 적국 왕에게 보내서, 상대방의 군대의 움직임 때문에 벌써 불안해진 적국 왕을 진정시키고, 우정의 증거로 화를 풀게 하고, 그의 의심을 사라지게 하며, 그와 더불어 평화조약을 맺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나 영신적으로나 전쟁보다는 이것이 항상 더 유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새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행동해서 세상과 대항해야합니다. 내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속과 육신과 사탄의 유혹의 소용돌이와 맹렬함에 대항한다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내게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포기할 용기를 느끼지 못하면, 내게로 오지 마시오. 그런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말씀은 옳습니다” 하고 군중에 섞였던 율법교사가 인정한다.”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면, 그 다음에는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선생님께 봉사합니까? 율법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돈과 같은 계명들을 가지고 있어 사람이 그것을 써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 어머니, 재물, 명예 따위를 지적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이것들을 주시면서 모세의 입을 통하여, 하느님의 눈에 의인으로 보이기 위하여 그것들을 거룩하게 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시면 선생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십니까?”
“선생, 참다운 사랑을 준다고 내가 말했지요. 나는 여러분에게 내 가르침을 줍니다. 그런데 내 가르침은 옛날 율법에서 점 하나도 없애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율법을 완성합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모든 같은 제자들이로군요.”
“우리는 모두가 그것들을 모세의 율법대로는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사랑에 따라서 내가 완성한 율법대로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게 딸린 제자들까지도 똑같은 총량(總量)의 공로를 가지게 되지는 못할 것이고,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그 총량을 가지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유일한 화폐인 영혼도 잃을 것입니다.”
“뭐라구요?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제자들, 그보다도 선생님의 사도들은 선생님이 전도하시는데 따라 다녀서 선생님의 행동 방식을 알고 있고,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사실상의 제자들도 많이 받았고, 이름으로만 제자인 사람들은 덜 받았고, 저같이 우연히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하늘에서 굉장히 많이 받을 것이고, 사실상의 제자들은 많이 받을 것이고 이름으로만 제자인 사람들은 덜 받을 것이고, 저 같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는 나쁜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모두가 그들이 받은 재산을 이익이 나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를 들으시오. 그리고 여기서 내 가르침을 너무 부연하더라도 용서하시오. 그러나 나는 지나가는 제비와 같아서 아버지의 집에 조금밖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온 세상을 위해서 왔는데, 예루살렘의 성전의 이 작은 세상은 내가 나는 것을 중단하고, 하느님의 영광이 나를 부르는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것이 사실이니까요.”
율법교사는 주위를 둘러보고 고개를 숙인다. 그는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집단을 점점 더 크게 만든 최고회의 의원들과 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너무나 많은 얼굴에 그것이 사실이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본다. 격노하여 파랗게 되었거나 성이 나서 시뻘개진 얼굴들, 저주의 말과 독을 품은 침이나 다를 바 없는 눈길들, 사방에서 술렁이고 있는 원한, 그리스도를 학대하고자하는 욕망 따위를 본다. 이 욕망은 선생님을 둘러싸고 있는 충성스런 군중, 선생님을 보호하기 위하여는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는 군중이 무섭고, 또 아마 온유한 갈릴래아 선생에 대하여 호의를 가진 로마에게서 벌을 받을까 봐 두렵기도 하여 욕망으로만 남아 있다.
예수께서는 다시 침착하게 비유로 당신 생각을 설명하기 시작하신다. “긴 여행을 떠나서 오랫동안 집을 비우게 된 어떤 사람이 모든 하인을 불러 그들에게 자기의 모든 재산을 맡겼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은화 5달란트를 주고, 한 사람에게는 은화 2 달란트, 또 한 사람에게는 금화 1달란트만을 주었습니다. 각자에게 그의 지위와 능력에 따라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은화 5달란트를 받았던 하인은 그의 돈을 가지고 가서 능란하게 이용했고, 얼마 후에는 그 5달란트가 5달란트를 더 벌어 왔습니다. 2달란트를 받은 하인도 마찬가지로 해서 그가 받은 돈을 배로 늘렸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더 많이 주었던 하인, 즉 순금 1달란트(Talent(달란트)는 고대 그리이스의 무게의 단위로 20내지 27kg의 무게였다고 함, 한편 화폐 단위로는 금이나 은으로 무게 1달란트에 해당하는 값어치였다고 함)를 주인에게서 받았던 하인은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겁이 나고, 도둑도 무섭고, 여러 가지 공상적인 일로 겁이 나고, 특히 게으르기 때문에, 땅에 큰 구덩이를 파고, 주인의 돈을 거기에 감추었습니다.
여러 달이 지나서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주인은 즉시 하인들을 불러 그가 맡긴 돈을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은전 5달란트를 받았던 하인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나으리께서 제게 은화 5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나으리께서 주신 돈을 이익을 내게 하지 않으면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에 요령있게 처리해서 5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 이상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좋다, 착하고 충실한 하인아, 썩 잘 했다. 너는 얼마 안되는 일에 충실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했으니, 많은 일에 대해서 네게 권위를 주겠다. 네 주인의 기쁨을 같이해라.’
그 다음 2달란트를 받았던 하인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저는 나으리의 이익을 위해서 감히 나으리의 재산을 썼습니다. 제가 나으리의 돈을 어떻게 썼는지를 보여 주는 회계는 이렇습니다. 아시겠지요? 전에는 은화 2달란트가 있었는데, 지금은 4달란트가 있습니다. 나으리 만족하십니까?’ 그러자 주인은 첫번 하인에 게와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끝으로, 주인의 가장 큰 신임을 얻어서 금화 1달란트를 받았던 하인이 나왔습니다. 그는 그 금화를 감추어 두었던 곳에서 꺼내 가지고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으리께서는 제가 신중하고 충실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제게 가장 큰 값어치를 맡기셨습니다. 제가 신중하고 충실한 것은 나으리께서 융통성이 없고 까다로우시며, 나으리의 돈이 축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손해가 나는 경우에는 나으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비난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으리께서는 씨뿌리지 않은 곳에서 추수하시고, 아무것도 베풀지 않은 곳에서 거두어 들이시며, 나으리의 은행가나 관리인에게 동전 한푼도 선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나으리께는 청구하시는 만큼 돈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재산을 축낼까 봐 무서워서 가지고가서 감추었습니다. 저는 아무도 믿지 않았고, 저 자신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파내서 나으리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오 옳지 못하고 게으른 하인아! 정말이지, 너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돈을 자고 있게 내버려두어서 내 만족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너는 내가 네게 대해서 가졌던 평가를 저버렸고,너 스스로 모되는 말을 하고, 너 자신을 비난하고 단죄한다. 너는 내가 씨뿌리지 않은 곳에서 추수하고, 베풀지 않은 곳에서 거두어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왜 내가 추수를 하고 거두어들일 수 있게 하지 않았느냐? 내 신임에 이렇게 보답하느냐? 네가 나를 이렇게 아느냐? 왜 내 돈을 은행에 갖다 맡겨서 내가 돌아와서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아오게 하지 않았느냐? 나는 이런 목적으로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가르쳤었는데, 게으르고 어리석은 너는 그것을 참작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네 달란트와 일체의 다른 재산을 빼앗아 10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게 하겠다.’
‘그러나 그 사람은 벌써 10달란트나 있는데, 이 사람은 아무것도 없이 있게 되는데요…’ 하고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맞았다. 많이 가지고, 또 가진 것을 이익이 나게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주어서 넘쳐흐를 만큼 많게 할 것이다. 그러나 가질 마음이 없어서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그가 받은 것까지도 빼앗을 것이다. 내 신임을 저버리고, 내가 주었던 선물을 비생산적인 채로 내버려둔 무익한 하인은 내 땅에서 내쫓아서 울고 괴로워하며 떠나가게 하여라.’
이것이 비유입니다. 선생이 보시다시피 제일 많이 받았던 사람에게 제일 적게 남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하느님의 선물을 보존할 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저 이름으로만 제자이고 따라서 이용할 만한 것을 별로 가지지 못한 사람 중의 하나라고 선생이 말한 그 사람이나, 또 선생이 말하다시피 내 말을 우연히 듣고 자본이라고는 그들의 영혼밖에 없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더 많이 받았던 사람에게서 빼앗은 금화 1달란트와 그 금화가 이익을 가져온 것이 있으면 그것까지 가지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의 반응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주님이 보이시는 뜻밖의 일도 무한히 많습니다. 여러분은 이교도들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것을 볼 것이고, 나를 따르는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을 볼 것입니다.”
예수께서 입을 다무시고, 마치 일체의 토론에 종지부를 찍으시려는 듯이 성전 구내 쪽으로 몸을 돌리신다. 그러나 진지하게 들으려고 회랑 아래 앉아있던 율법박사한 사람이 일어나 앞으로 나아오면서 묻는다. “선생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생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답하셨으니, 제게도 대답해 주십시오.”
“왜 나를 시험하고자 하십니까? 왜 거짓말을 하려고 하십니까? 내가 더 명쾌하고 더 완전한 사상들을 율법에 덧붙이기 때문에 율법을 왜곡하는 말들을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율법에 무엇이라고 씌어 있습니까? 대답해보시오! 율법의 주된 계명은 무엇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자, 잘 대답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제 이웃입니까? 세상에는 선인과 악인,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이스라엘의 친구와 원수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제 이웃입니까?”
“어떤 사람이 산골짜기 길로 해서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고 있었는데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 사람에게 심한 상처를 입힌 다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옷까지 벗겨서, 반쯤 죽은 그를 길가에 버려두고 갔습니다.
같은 길로 성전에서 그의 직책을 마친 사제 한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오 그 사제의 몸에는 지성소의 항내가 아직 배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느님의 집에서 말하자면 지극히 높으신 분과 접촉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친절과 사랑의 향기를 뿌린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제는 그의 집에 돌아가는 일이 바빴습니다. 그래서 상처입은 사람을 바라다보기는 했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고, 불행한 사람을 길가에 내버려둔 채 빨리 지나가 버렸습니다.
레위파 사람 하나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해야 하는 그 시람이 부정을 타야 했습니까? 천만에 ! 그는 피로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 옷을 치켜 올렸습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흘깃 바라다보고는 예루살렘 쪽으로 성전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세 번째로 사마리아에서 냇물의 걸어서 건너가는 곳을 향해서 오던 사미리아 사람이 그곳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람은 피를 보고 걸음을 멈추고, 짙어 가는 황혼 빛에 상처 입은 사람을 발견하고는 말에서 내려 상처 입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질이 좋은 포도주를 한 모금 먹여 기운을 차리게 했습니다. 그는 자기 겉옷을 찢어 붕대를 만들고 나서 그 사람의 상처를 초로 씻고 기름을 바른 다음 다정스럽게 처매 주었습니다. 그리고 상처 입은 그 사람을 자기 말에 얹고, 말을 조심해서 몰고 동시에 부상자를 받쳐 주면서, 피곤한 것은 걱정하지 않고 또 부상자가 유다 사람인데도 무시하지 않고, 좋은 말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시내에 들어가서 그는 상처 입은 사람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밤새껏 보살펴 주고, 새벽에 그 사람의 상태가 좀 나은 것을 보고 여관 주인에게 맡기고 그의 여관비로 돈을 미리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나 자신인 것처럼 보살펴 주시오. 내가 돌아올 때에 당신이 가외 비용을 들인 것이 있으면 내가 갚아 주겠소. 그리고 당신이 일을 제대로 잘 했으면 후하게 갚아 주겠소!’ 그리고는 떠나갔습니다.
율법박사님, 대답하시오. 이 세 사람 중에서 도둑을 맞은 사람으로 볼 때에 누가 ‘이웃’이었습니까? 혹 사제였습니까? 혹 레위파 사람이었습니까? 혹은 오히려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그 사마리아 사람은 상처 입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왜 상처를 입었는지, 시간과 돈을 잃고,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비난을 받을 위험이 있는데도 그를 돕는 것이 잘못하는 일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율법박사는 대답하였다. “이웃은 이 마지막 사람입니다. 그가 자비를 베풀었으니까요.”
“선생도 그렇게 하시오. 그러면 선생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웃을 통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격을 가질 것입니다.”
아무도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용하셔서 구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들 있는 데로 다시 가셔서, 여자들과 같이 다시 시내로 들어가신다. 이제는 제자들에게 사제 두 사람이, 아니 그보다도 사제한 사람과 레위파 사람한 명이 합류하였다. 레위파 사람은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고, 사제는 나이가 매우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제는 어머니와 말씀하신다. 예수와 어머니 사이에는 마륵지암이 있다. 예수께서 어머니께 물으신다. “어머니, 제 말을 들으셨습니까?”
“아들아, 들었다. 그리고 클레오파의 마리아의 슬픔에 내 슬픔도 보태졌다. 마리아는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좀 울었다….”
“어머니, 저도 압니다. 그리고 이 동기도 압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울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기도만 해야 합니다.”
“오! 마리아는 기도를 아주 많이 한다. 요 며칠 밤 동안, 그의 초막에서 잠든 아들들 사이에서 기도하며 울었단다. 나는 잎으로 된 이웃의 얇은 벽을 통해서 마리아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요셉과 시몬이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렇게 갈라져 있는 것을 보고 말이다! …그런데 우는 것은 마리아만이 아니다. 네게는 그렇게도 침착해 보이는 요안나도 나와 함께 울었다….”
“어머니, 왜요?”
“쿠자의 … 행동이…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쿠자는 무슨 일에나 요안나에게 도움을 좀 주고, 무슨 일에나 요안나를 좀 물리친다. 단둘이 있어서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여전히 모범적인 남편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다른 사람들이, 물론 궁중 사람들 말이지,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그때에는 다정스러운 아내에 대해서 독선적이고 경멸적인 사람이 된단다. 요안나는 웬지 이해를 못한다….”
“제가 말씀드리지요. 쿠자는 헤로데의 하인입니다. 제 말씀을 이해하세요, 어머니, ‘하인이요.’ 저는 요안나에게는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습니다. 쿠자가 왕의 비난과 조소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에는 착한 쿠자입니다. 그런 것들을 염려할 수 있을 때에는 이미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헤로데가 마나엔 때문에 몹시 성이 나 있기 때문이고, 또…”
“또 헤로데가 헤로디아에게 굴종한데 대한 뒤늦은 가책으로 인해 제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안나는 그의 생활에 이미 대단히 많은 행복을 가지고 있으니, 왕관을 쓴 밑에 말총으로 만든 내의를 입어야 합니다.”
“안나리아도 운다….”
“왜요?”
“그의 약혼자가 너를 적대하기 때문이다.”
“안나리아는 울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세요. 그것은 하나의 용단이고, 하느님의 인자(仁慈)입니다. 안나리아의 희생으로 사무엘이 다시 선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사무엘이 안나리아에게 결혼에 대한 압력을 당하지 않게 내버려 둘 것입니다. 저는 안나리아를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안나리아가 저보다 먼저 죽을 것입니다….”
“아들아!…” 성모님은 예수의 손을 꼭 쥐신다. 성모님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가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이것은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어머니도 아시지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의 쓴 잔을 기꺼이 마십시다. 그러시지요?”
성모님은 눈물을 삼키시며 대답하신다. “그러자.” 몹시 고민하고 애절한 “그러자”라는 대답이다.
마륵지암이 고개를 들고 예수께 말한다. “왜 어머님을 슬프게 하는 그렇게도 무정한 말씀을 하세요. 나는 선생님이 돌아가시게 내버려두진 않겠어요. 나는 어린 양들을 보호한 것처럼 선생님도 보호하겠어요.” 예수께서는 그를 쓰다듬어 주시고, 슬퍼하는 두 사람의 기력을 북돋아 주시려고 아이에게 물으신다. “네 양들은 이제 뭘 할 거냐? 양들이 보고 싶지 않니?”
“아이고! 난 선생님하고 같이 있는 걸요! 그렇지만 양들 생각은 늘 해요. ‘어머니가 양들을 풀밭에 데려갔을까? 수푸마가 호수에 가지 못하게 살펴봤을까?’ 하고 생각해요. 수푸마는 성질이 아주 급해요? 아시겠어요? 어미가 부르고 또 불러도…소용없어요! 제 맘대로 하니까요. 그리고 네베는 너무 욕심 사납게 먹어서 병이 날 지경이예요. 선생님 아시겠어요? 난 선생님의 이름으로 사제가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아요. 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깨달아요. 저이들은(그러면서 뒤에 오는 사도들을 손으로 가리킨다), 저이들은 번드르르한 말을 많이 하고, 계획을 아주 많이 세워요…그리고서는…난 이렇게 말해요. ‘난 양들의 양치기가 되는 것처럼 사람들의 목자가 될 거야. 그리고 이거면 넉넉해’하고. 어머니가, 내 어머니와 선생님의 어머님이 어제 예언서의 아주 훌륭한 대목을 말해 주었어요.…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예수가 꼭 이렇단다’ 하고. 그리고 나는 맘속으로 ‘나두 꼭 그렇게 될 거야’ 하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당장은 내가 어린 양이지만, 이 다음에는 양치기가 될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예수님은 지금은 목자이지만, 그리고는 어린 양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어머니는 늘 어린 양이예요. 양젖보다도 더 기분 좋은 희고 아름답고 사랑받는 어린 양이요. 그래서 예수님이 정말 진짜 어린 양이예요. 주님이 어린 양인 어머니에게서 났으니까요’ 하고.”
예수께서는 몸을 홱 구부리시고 그를 껴안으신다. 그리고 “그럼 너는 정말 사제가 되고 싶으냐?”
“물론이지요, 주님. 그래서 착한 사람이 되고 많이 알려고 애를 써요. 난 엔도르의 요한에게 늘 가요. 요한은 언제나 나를 어른 대접을 하고 또 대단히 친절하거든요. 난 길잃은 양과 길 잃지 않은 양의 목자가 되고, 예언자가 말하는 것처럼 상처입고 뼈가 부러진 양들을 고쳐 주는 의사 목자가 되고 싶어요. 오! 정말 아름다워요!” 그러면서 아이는 손뼉을 치며 깡총깡총 뛴다. “이 조그마한 까만 머리가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도 기뻐하지?”하고 베드로가 다가오면서 묻는다.
“이 애는 제 길을 보고 있다. 끝까지 똑똑히 …그리고 나는 이 애가 거기에 대해서 보는 것을 ‘오냐’ 하는 말로 인정한다.”
일행은 높은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 집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오펠  변두리쪽에 있다. 그런데 이곳은 그곳보다 더 호화롭다.
“우리가 여기 머무릅니까?”
“연회를 하라고 라자로가 우리에게 준 집이다. 마리아는 벌써 여기 와 있다.”
“마리아는 왜 우리하고 같이 오지 않았습니까? 조롱이 무서워서 그랬습니까?”
“오! 그건 아니다. 내가 그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주님, 왜요?”
“성전은 임신한 아내와 같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성전의 감정을 해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비겁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셔도 선생님께는 아무 소용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 같으면 성전에 부딪칠 뿐 아니라,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아울러서 모리아산 아래로 던져버리겠습니다.”
“시몬아, 너는 죄인이다.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해야지 죽여서는 안 된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죄인이 아니십니다.…그리고… 선생님은 그렇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죄의 한도에 이르렀을 때 그렇게 할 것이다.”
“어떤 한도 말씀입니까?”
“성전을 가득 채우고 예루살렘으로 넘쳐흐를 만한 한도 말이다. 너는 알지 못한다.…오! 마르타야! 나그네에게 네 집 문을 열어 주려므나!”
마르타는 누구라는 것을 알리고 문을 열게 한다. 일행은 모두 긴 안뜰로 들어가는데, 그 안뜰을 지나면 네 귀퉁이에 나무 네 그루를 심은 돌을 깐 마당이 나온다. 아랫층 위에는 넓은 방이 열려 있는데, 열린 창문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비탈길들이 많은 도시 전체가 내다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집이 도시의 남쪽 또는 서남쪽 비탈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방은 대단히 많은 손님을 치르도록 준비되어 있다. 식탁이 매우 많이 평행으로 놓여 있다. 백명 가량이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겠다. 막달라 마리아가 달려온다. 마리아는 다른 곳에서, 즉 부속건물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예수 앞에 와서 엎드린다. 라자로도 병색이 깃든 얼굴에 지극히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온다. 손님들이 조금씩 들어오는데, 어떤 사람들은 좀 거북해 하고 어떤 사람들은 좀 더 스스럼없다. 그러나 여자들의 친절로 인하여 그들은 이내 마음이 편하게 된다.
사제 요한은 성전에서 데려온 두 사람을 예수께 데려온다. “선생님, 제 친한 친구 요나타와 제 젊은 친구 즈가리야입니다. 이 사람들은 악의와 원한 없는 진짜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선생들께 평화, 두 분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이 기분 좋은 풍습에서도 관례를 지켜야 합니다. 옛날 믿음이 그 그루에서 돋아난 새 믿음에 다정한 손을 내미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내 옆에 와서 앉으세요.”
나이가 많은 요나타는 말을 하는데, 젊은 레위파 사람은 신기한 듯이 놀란 눈으로 그리고 아마 겁을 먹기도 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나는 그가 거리낌 없는 태도를 취하려고 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물 밖에 나온 물고기 같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스테파노가 와서 그를 구해 주고, 사도들과 주요한 제자들을 하나씩 그에게로 데려온다.
늙은 사제는 눈같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한다. “요한이 바로 그의 선생인 제게 그가 병이 나은 것을 보이려고 왔을 때 저는 선생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저는 말하자면 제 울타리 안에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저는 늙었으니까요.…하지만 죽기 전에 선생님을 뵙기를 바랐는데, 야훼께서 제 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오늘은 성전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현자인 선배 힐렐보다 뛰어나십니다. 선생님께서 제 마음이 기다리는 분이시라는 것을 저는 의심하고 싶지도 않고 의심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러 세기에 걸쳐… 생각해내서 지금 것과 같은 것이 된 이스라엘의 율법을 80년 가까이나 마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피가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처럼 늙었구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신선한 샘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고! 그렇고말고요! 더럽혀지지 않은 물입니다! 하지만 저는…하지만 저는 아주 멀리서 오고…아주 많은 물건으로 인해서 무거워지고…더러워진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 포화(飽和) 상태에서 벗어나서 선생님을 좋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를 믿고 사랑하시면 됩니다. 의인 요나타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멀지 않아 죽을 건데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모두 믿기에 너무 늦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의 말씀을 모두 이해하거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그것을 알게 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사제님은 하늘에서 배우실 것입니다. 지혜와 영 이별하는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가지고 죽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고 지혜안에서 살게 됩니다.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생님께서는 제 친구 즈가리야의 아들이 앞서 가며 예고한 기다려지시는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을 아셨습니까?”
“제 친척이었습니다.”
“오! 그럼 세례자의 친척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사제님.”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그러나 그 사람을 ‘불쌍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정의에 충실했고 그의 사명을 다한 다음에 죽었으니까요, 그리고… 아이고! 우리는 흉악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제님, 이보다도 더 흉악한 시대가 올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로마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로마뿐이 아닙니다. 죄지은 이스라엘이 그 첫째 원인이 될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런 일을 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로마도… 제사를 드리다가 빌라도에게 학살을 당한 갈릴래아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셨지요. 그들의 피가 제물의 피와 섞였습니다. 바로 제단 옆에서! 바로 제단 곁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든 갈릴래아 사람이 이 불의에 격분하여 외친다. “거짓 메시아 문제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를 죽이고 나서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왜죽입니까? 그리고 왜 그 시간에요? 혹 그들이 더 죄인이었던가요?”
예수께서는 조용하라고 명령하시고 나서 말씀하신다. “너희들이 그 사람들이 수많은 다른 갈릴래아 사람들보다 더 죄인이었고,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그들이 더 죄인이 아니었다. 나 진정 너희들에게 말 한다마는 그들이 희생을 치렀는데, 만일 너희가 주님께로 회개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많이 희생을 치를 것이다. 만일 너희가 모두 속죄를 하지 않으면 갈릴래아에서나 다른 곳에서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죽을 것이다. 나 분명히 말한다. 타격을 당한 사람들이 언제나 가장 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각자가 자기 성찰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판단할 것이다. 또 실로에의 탑이 무너져서 깔려 죽은 저 열 여덟 명도 예루살렘에서 가장 죄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내 분명히 말하지만 만일 너희가 저 사람들처럼, 다만 정신적으로 만이라도 깔려 죽지 않으려거든 속죄를 하고 또 하여라. 이스라엘의 사제님, 가십시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사제는 항상 그가 상징하고 상기시키는 사상 때문에 존경해야 하는 분이니까, 음식을 바치고 축복하는 일은 모두 나이가 아래인 저희들 가운데 제일 연장자이신 사제님이 하실 일입니다.”
“선생님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제가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걸요!”
“사제님은 제단 앞에 향을 드리시지요! 그런데 혹 그곳에는 하느님이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아 그건 믿습니다! 제 온 힘을 다해서 믿습니다!”
“그러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영광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제물을 바치시는데, 사제님께 밤이 찾아오기 전에 사제님에게도 하느님의 강복을 갖다 드리려고 육체를 취한 자비 앞에서는 왜 두려워하고자 하십니까? 오! 이스라엘 사람들인 여러분은 사람이 하느님을 가까이 하면서도죽지 않을 수 있도록, 바로 그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내 천주성에 육체의 베일을 씌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셔서 믿고 행복하십시오. 저는 사제님을 통해서 아론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정의로운 사제일 마지막 사제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사제님에게 이르기까지의 모든 거룩한 사제들을 존경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사실 우리 가운데에서 사제의 성덕이 마치 돌보지 않고 내버려둔 초목과 같이 시들어 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