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미논 사람들은 호기심에 끌려서, 선생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제자들이 있는 곳을 하루 종일 못 살게 굴었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여자 제자들은 시간을 허송하지 않고 먼지와 땀투성이 옷들을 빨았다. 그래서 작은 해변에는 바람과 햇볕에 마르고 있는 옷들의 명랑한 전시가 있다. 해가 기울기시작하고, 저녁과 더불어 소금기를 머금은 습기가 느껴지려고 하는 지금은 아직 조금 덜 마른 옷들을 서둘러 걷어서 두드리고 개키기 전에 이리저리 잡아당겨서 잘 정돈된 모습으로 각기 주인들 앞에 나타날 수 있게 한다.
  “마리아에게 옷을 즉시 갖다 주도록 하세” 하고 알패오의 마리아가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어제하고 오늘, 공기가 통하지 않는 그 오막살이에 있은 건 마리아에게 큰 희생이었어! …”
  이래서 나는 예수께서 이 곳에 계시지 않은 것이 하루 더 되었다는 것과 옷이 한 벌밖에 없는 막달라의 마리아는 얻어 입은 그의 옷이 마를 때까지 숨어 있어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산나가 대답한다. “다행히도 마리아는 절대로 불평을 안해요! 저는 마리아가 그렇게 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그리고 겸손하다고도 자넨 말해야 할 걸세. 그리구 조심성 있구. 가엾게두! 정말이지 마귀가 그를 괴롭혔던 거야! 우리 예수에게 구출되어서 다시 자기 자신이 된 거야. 틀림없이 아주 어렸을 적에 그랬을 것처럼 말이야.”
  두 여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빨래한 옷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부엌에서는 마르타가 음식을 준비하는 데 골몰하고, 성모님은 구리냄비에 야채를 씻은 다음 저녁에 먹게 하려고 익히신다.
  “자, 모두 마르고, 모두 깨끗하게 개켜졌어요. 그럴 필요가 있었지요. 마리아한데 가서 옷을 주세요” 하고 수산나가 마르타에게 옷을 주면서 말한다.
  조금 후에 두 자매가 함께 돌아온다. “두 분 고맙습니다. 여러 날 동안 갈아입지 못한 옷으로 인한 희생이 제게는 가장 힘들었어요” 하고 막달라의        마리아가 미소지으면서 말한다. “이제는 아주 산뜻해진 것 같아요.”
  “밖에 가서 앉아라, 기분좋은 산들바람이 불고 있어. 그렇게 오랫동안 틀어박혀 있었으니 넌 그럴 필요가 있을 거다” 하고 마르타가 지적한다. 마르타는 동생보다 키가 작고 몸이 홀쭉하기 때문에 그의 옷을 빠는 동안 수산나나 알패오의 마리아의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해서 어려운 고비를 넘겼지만, 이 다음에는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작은 배낭을 만들어 가지고 다녀야겠어. 그래야 이런 난처한 일을 당하지 않을 거야” 하고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다.
  “뭐라구? 너도 우리처럼 선생님을 따라다닐 생각이냐?”
  “물론이지. 그와 반대되는 명령을 내리지 않으시면 말이야. 이젠 그분들이 돌아오는지 보러 해변엘 가봐야지. 오늘 저녁에는 돌아오실까?”
  “그럴 걸로 생각한다” 하고 성모님이 대답하신다. “나는 예수가 페니키아에 갔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그러나 나는 예수가 사도들과 같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또 페니키아인들이 어쩌면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예수를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그가 돌아왔으면 한다. 샘에 갔더니 어떤 어머니가 나를 붙잡고 ‘부인은 갈릴래아 선생님, 사람들이 메시아라고 부르는 분과 같이 계십니까? 그럼 와서 제 아이를 보세요. 일년째나 열병에 시달리고 있답니다’ 하고 말했어. 그래서 어떤 작은집으로 들어갔었다. 가엾은 어린 것! 꼭 죽어가는 작은 꽃 같았어! 예수한테 말하겠다.”
  마르타가 말한다. “병을 고쳐 달라고 청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르침보다는 병나음을 바랍니다.”
  “사람은 아주 영적인 존재가 되기가 어렵다. 사람은 육체의 호소와 그 요구를 더 많이 듣는다” 하고 성모님이 대답하신다.
  “그렇지만 기적이 있은 다음에는 영의 생명에 태어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르타야, 그렇다. 그래서 내 아들이 그렇게 많은 기적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대한 인자로 그러기도 하지만, 이 방법으로 사람들을 그의 길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러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길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와 같이 가지 않았던 엔도르의 요한이 집으로 돌아오고, 그와 더불어 그들이 사는 작은 집으로 갔던 많은 제자들이 온다. 거의 동시에 막달라 마리아가 돌아오면서 말한다. “돌아들 오세요. 어제 새벽에 떠났던 배 다섯 척이예요. 저는 아주 잘 알아봤어요.”
  “피로하고 목들이 마를 거야. 물을 또 길으러 가야지. 샘물이 아주 시원해” 하고 알패오의 마리아가 말하면서 물병들을 들고 나간다.
  “예수, 마중을 나가자. 오너라” 하고 성모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막달라 마리아와 엔도르의 요한과 같이 나가신다. 마르타와 수산나는 화덕 옆에 남아서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가지고 식사 준비를 마저 하느라고 골몰해 있기 때문이다.
  해안을 끼고 가서 다른 어선들이 들어와서 쉬고 있는 작은 부두에 이르렀다. 부두 끝에서는 만(?) 전체와 만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도시가 보이고, 항행하느라고 약간 기운 채 빨리 달려오는 배 다섯 척도 보인다. 돛들은 유리한 북풍으로 팽팽하게 부풀었고, 바람은 더위에 시달린 사람들을 식혀준다.
  “시몬과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요령있게 일을 처리하는지 보세요. 암초를 지났습니다. 이제는 이곳에는 해류가 세기 때문에 그것을 우회하느라고 먼 바다로 나갑니다. 보세요.… 이제는 모두가 잘 되었습니다. 곧 이리로 올 겁니다” 하고 엔도르의 요한이 말한다. 과연 배들이 점점 더 가까이 오고, 배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첫배에 이사악과 같이 계시다. 예수께서는 일어서셨다. 그러니까 그분의 큰 키가 대단히 위엄있게 나타난다. 그러다가 내리는 돛에 가려 몇 분 동안 안 보이시게 된다. 과연 배는 빙 돌아서 방향을 바꾸어 부두 윗쪽에 있는 여자들 앞을 지나서 작은 부두의 안전지대로 들어가려고 한다. 예수께서는 여자들에게 인사하시느라고 미소를 보내시고, 여자들은 하선지점에 동시에 도착하려고 빨리 걷기 시작한다.
  “아들아,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라!” 하고 성모님이 부두에 내려오시는 예수께 인사를 하신다.
  “어머니,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십시오. 걱정하셨습니까? 시돈에 갔더니 우리가 찾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띠로에까지 갔는데, 거기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혜르마스데아야, 오너라.… 요한아, 자, 이 젊은이는 사람들이 가르치기를 원하는 아인데, 네게 맡기겠다.”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 애를 가르쳐서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고 엔도르의 요한이 말한다.
  “아들아, 가엾은 어린 병자도 하나 있는데, 그 어머니가 너를 보기를 원한다.”
  “곧 가겠습니다.”
  “선생님, 그가 누군지 제가 압니다. 제가 선생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헤르마스테아야, 너도 가자, 우리 주님의 무한한 인자를 알기 시작해라” 하고 엔도르 사람이 말한다.
  둘째 배에서는 베드로가 내리고, 셋째 배에서는 야고보가, 넷째 배에서는 안드레아가, 다섯째 배에서는 요한이 내린다. 이 네 조종사를 따라 그들과 같이 있던 사도들이나 제자들이 내려서 예수와 성모님 둘레에 모인다.
  “집으로 가거라. 나도 곧 가마. 그동안 식사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저녁 늦게 말하겠다고 일러라.”
  “그런데 병자들이 있으면요?”
  “그 사람이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식사 전에라도 우선 그들을 고쳐 주겠다.”
  그들은 헤어진다. 예수께서는 엔도르의 사람과 헤르마스테아와 같이 시내 쪽으로 가신다. 다른 사람들은 자갈이 깔린 해변을 다시 걸어오며, 마치 어머니에게로 돌아오는 아이들같이 기뻐서 그들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가리옷 사람 유다도 만족한다. 그는 자주 조개잡이 어부들이 그에게 주고자 한 모든 헌금을 보이고, 특히 값진 물질이 들어 있는 아름다운 꾸러미를 보인다.
  “이건 선생님이 쓰실 것이야. 만일 선생님이 이걸 달지 않으시면 누가 이걸 달 수 있겠어? 그 사람들은 나를 따로 불러 가지고 이렇게 말했어. ‘우리 배에는 값진 산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주도 하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건 보물입니다. 어떻게 그런 행운이 우리에게 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선생님을 위해서 기꺼이 당신에게 그것들을 주겠습니다. 와서 보세요.’ 그래서 선생님이 기도하시려고 어떤 동굴로 들어가신 동안 나는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그리 갔었어. 매우 아름다운 산호들이 있고, 진주도 하나 있었지. 크진 않지만 아름다운 것이었어.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이것들을 포기하지 마시오. 선생님은 보석을 지니지 않으십니다. 차라리 이 주홍빛 옷감을 조금 주시오. 선생님의 옷에 장식을 좀 만들어 드리게’ 하고. 사람들은 이 꾸러미밖에 없었는데, 막무가내로 내게 다 주겠다는 거야. 어머님, 받으세요. 우리 주님을 위해서 어머님이 그렇게도 잘 하시는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십시오. 아니, 그렇게 하세요, 아시겠습니까? 선생님이 그걸 눈치 채시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걸 팔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선생님께서 입으셔야 마땅한 대로 입으신 것을 보는 것이 저희는 마음에 좋습니다. 그렇지?”
  “오! 그렇구말구, 그건 사실이야!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렇게도 수수한 옷을 입고 계신 것을 보면 난 가슴이 아파. 선생님은 왕이신데. 그들은 노예보다도 못한 자들인데 리본을 여기저기 달아서 장식하고 찬란한 옷을 입었단 말이야. 그러면서 선생님을 마치 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가난뱅이로 본단 말이야 !”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형 보았어, 응? 우리가 어부들과 작별 인사를 할 때 띠로의 양반들이 웃는 걸 말이야?” 하고 베드로의 아우가 대답한다.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어. ‘이 비겁한 인간들, 부Rm러움을 아시오! 선생님의 흰옷의 실 한 오라기만으로도 당신들의 그 모든 싸구려 장신구보다 더 값어치가 있소’ 하고.”
  “이왕 유다가 그걸 얻을 수 있었으니, 저는 아주머니께서 장막절을 위해 그걸 마련하셨으면 합니다” 하고 다른 유다, 즉 타대오가 말한다.
  “나는 자주빛 옷감을 길쌈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해보겠다….” 성모님은 빛깔이 찬란한 부드럽고 가볍고 폭신폭신한 아주 고운 양털을 만지시면서 말씀하신다.
  “제 유모가 그걸 잘 압니다” 하고 아름다운 것에는 정통한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다. “우리는 가이사리아에서 유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유모가 어머님께 어떻게 하는지 보여 드릴 것입니다. 어머님은 무엇이든지 잘 할 줄 아시니까 이내 배우실 것입니다. 저는 목과 소매와 옷 아래에 선을 두르겠습니다. 아주 하얀 아마포나 아주 하얀 모직 위에 자주빛 옷감을 달고, 성소의 대리석에 있는 것과 같은 종려나무 가지와 장미꽃 모양의 장식을 하고, 한가운데에는 다윗 매듭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러면 썩 잘 어울릴 것입니다.”
  마르타가 말한다. “저희 어머니가 이 무늬가 아름답기 때문에 오빠의 옷에 그 그림을 넣었었습니다. 오빠는 시리아의 토지가 생겨서 그리로 여행을 갈 때 그 옷을 입고 갔습니다. 그것이 저희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지으신 옷이기 때문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걸 어머님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나는 너희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것을 만들겠다.”
  집들 있는 데까지 왔다. 사도들은 선생님을 원하는 사람들, 특히 병자들을 모으려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예수께서는 엔도르의 요한과 헤르마스테아와 함께 돌아오셔서 작은 집들 앞에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로 인사를 하며 지나가신다. 예수의 미소는 축복이다.
  궤양성 안염으로 인하여 거의 소경이 된 어쩔 수 없는 안질 병자를 사람 들이 예수께 보여 드리니, 예수께서는 그의 병을 고쳐 주신다. 그 다음에는 마르고 중국 사람처럼 노란, 분명히 말라리아를 앓는 어떤 사람의 차례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도 고쳐 주신다. 그 다음에는 예수께 이상한 기적을 청하는 여인이다. 젖이 나오지 않는 유방에 젖이 나오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양실조가 되고 체온 과도로 인한 것처럼 새빨갛게 된 난지 며칠밖에 안 된 아이를 보인다. 그 여자는 울면서 말한다. “보세요. 저희들은 남자에게 복종하고 자녀를 낳으라는 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은 다음에 저희 아이들이 쇠약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애가 제가 세 번째 낳은 아인데, 이 메마른 가슴 때문에 두 아이는 벌써 무덤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이 애도 더운 때에 났기 때문에 벌써 죽어 갑니다. 다른 아이들은 하나는 열 달을 살았고, 또 하나는 여섯 달을 살았습니다. 그애들이 장이 나빠져서 죽을 때 저는 더 울리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제가 젖이 있었더라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들여다보시며 말씀하신다. “당신 아이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시오.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집에 도착하거든 아기에게 젖을 물리시오. 믿음을 가지시오.”
  여인은 복종해서 가엾은 어린 것을 데리고 간다. 아이는 고양이 새끼처럼 앓는 소리를 내고, 엄마는 아기를 꼭 껴안는다.
  “그렇지만 저 여자가 젖이 나게 될까?”
  “물론이지, 젖이 날 거야.”
  “나는 아이는 죽지 않겠지만 젖은 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네. 그렇지만 아이가 살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기적일 거야. 아이는 먹지 못해서 죽은 거나 마찬가지거든.”
  “천만에. 난 젖이 나을 거라고 장담하네.”
  “그래.”
  “아니야.”
  사람에 따라서 의견이 다르다. 그러는 동안 예수께서는 식사를 하시려고 물러가신다. 예수께서 전도하시려고 다시 나오실 때에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사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는 즉시 행하신 열병을 앓던 어린이에 대한 기적의 소문이 시내에 퍼졌다.
  “나는 내 말을 듣도록 여러분의 정신을 준비시키기 위해 여러분에게 내 평화를 줍니다. 폭풍우 속에서는 주님의 목소리가 도달할 수 없습니다.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만큼 평화로운 것이기 때문에 혼란은 어떤 것이건 지혜에 해롭습니다. 반대로 혼란은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안, 번민, 의혹 따위는 사람의 아들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그들을 하느님과 갈라놓기 위한 마귀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르침을 여러분이 더 잘 이해하도록 이 비유를 말하겠습니다.  한 농부가 그의 밭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나무와 포도나무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포도나무 중에는 큰 값어치가 있는 것이 하나 있어서 그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한 해는 그 포도나무에 잎은 무성한데 포도송이는 별로 달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가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그건 자네가 가지를 별로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하고. 다음해에는 그 사람이 가지를 많이 쳐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햇가지가 별로 많이 생기지 않고 포도송이는 훨씬 덜 달렸습니다. 셋째 해에는 그 사람이 포도나무를 그대로 놓아두었습니다. 그랬더니 포도나무에는 포도송이가 하나도 달리지 않고, 잎도 별로 많이 나지 않은데다가 빈약하고 오그라들고 곰팡이 얼룩이 뒤덮였습니다. 셋째 친구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이 포도나무는 땅이 좋지 않아서 죽는 걸세. 태워버리고 말게’ 하고 ‘아니, 다른 포도나무들하고 같은 땅이고, 똑같이 보살피는데 왜 그런 거야? 처음에는 포도가 많이 열렸었는데!’ 그 친구는 어깨를 들썩해 보이고 가버렸습니다.
  알지 못하는 길손이 지나가다가 시름없이 포도나무에 기대어 서있는 농부를 살펴보려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왜 그러고 계십니까? 댁에 초상이라도 났습니까?’ 하고 그 길손이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가 대단히 사랑하던 이 포도나무가 죽어 가고 있어서 그럽니다. 이제는 수책이 없어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한해는 별로 많이 내지 못하더니, 다음해에는 그보다도 못했고, 올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그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알지 못하는 길손은 밭으로 들어가 포도나무로 다가갔습니다. 그러더니 잎을 만져보고, 흙덩어리 하나를 집어 가지고 냄새를 맡아보고, 손가락으로 비벼 부수어 보고, 포도나무를 받쳐 주고 있는 나무줄기를 쳐다보았습니다.  ‘이 나무줄기를 치워야 합니다. 이 나무줄기가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포도나무가 여러해 전부터 그 줄기에 의지하고 있는데요?!’
  ‘여보시오, 바른 대로 대답하시오. 당신이 이 포도나무를 심을 때 포도나무는 어떠했고 이 나무줄기는 어떠했습니까?’
  ‘오! 이 포도나무는 3년 된 아름다운나무였습니다. 이걸 내 다른 포도밭 하나에서 파온 것인데, 여기다 심으려고, 이것이 자라던 곳에서 파낼 때에 뿌리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구덩이를 깊게 팠습니다. 여기도 구덩이를 마찬가지로 팠고, 포도나무가 이내 편하게 있으라고 훨씬 더 크게 팠습니다. 그리고 뿌리가 편하고 쉽게 뻗어 나가라고 그 둘레에 있는 땅을 두번 갈아서 뿌리에 닿는 흙을 더 부드럽게 했습니다. 그리고 밑에 완전하게 된 퇴비를 주어서 땅을 정성스럽게 손질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뿌리는 이내 영양분을 만나면 강하게 됩니다. 느릅나무는 덜 보살폈습니다. 이것은 포도나무 묘목을 버티어 주기만 하기로 된 작은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포도나무 묘목 가까이 거의 지면에다 심고 북을 주고는 갔습니다. 땅이 좋기 때문에 두 나무가 모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해가 가는 데 따라서 점점 더 자라고 사랑을 받고 전지가 되고 밑에 땅은 김이 매지고 했습니다. 반대로 느릅나무는 가까스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치가 별로 없었으니까요! … 그러다가 느릅나무가 튼튼해졌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시지요? 제가 멀리서 돌아올 때는 탑처럼 우뚝 솟아 있는 이 느릅나무 꼭대기가 보입니다. 그래서 제 작은 왕국의 간판과도 같습니다. 전에는        포도나무가 느릅나무를 덮어서 그 아름다운 잎들이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 위의 잎들이 햇빛을 받아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십시오! 그리고 줄기는 또 어떻구요! 늘씬하고 힘 있습니다. 이 나무는 포도나무가 이스라엘 탐험가들이 그라페의 계곡에서 파온 포도나무들만큼이나 힘 있게 되었어도 여러 해 동안 포도나무를 버티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런데 반대로 포도나무를 죽였지요. 느릅나무가 포도나무를 말라 죽게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포도나무가 사는데 유리했습니다. 땅도, 위치도, 빛도, 햇볕도, 또 당신이 그에 쏟은 정성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가 포도나무를 죽였습니다. 이 나무가 힘이 너무 세어졌습니다. 이 나무가 포도나무의 뿌리를 묶어서 마르게 했고, 흙의 진을 전부 빼앗았고, 포도나무에 재갈을 물려 숨을 못 쉬게 했고, 빛을 이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쓸 데 없고 기운이 센 나무를 즉시 베어 버리세요. 그러면 당신의 포도나무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참을성을 가지고 땅을 파서 느릅나무의 뿌리를 드러나게 해서 새싹이 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하면 한층 더 잘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뻗어 나간 마지막 잔뿌리들이 땅속에서 썩어서 죽음을 주는 대신에 생명을 줄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들의 이기주의에 대한 마땅한 벌을 받아 퇴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줄기는 태우시오. 그러면 당신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무익하고 해로운 나무는 불 때는 데에나 소용될 뿐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은 모두 좋고 유익한 나무에게로 가도록 쓸 데 없고 해로운 나무는 치워버려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이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내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그걸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안전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 길손은 갔습니다.
  농부는 조금 망설였습니다. 그리고는 결정을 하고 톱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도와 달라고 친구들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니, 자넨 바본가?’ ‘포도나무를 잃은 위에 느릅나무까지 마저 잃으려고 하는 구먼.’ ‘나 같으면 포도나무에 공기가 통하게 느릅나무 꼭대기만 자르는데 그칠 걸세,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안할거야.’ ‘포도나무에는 그래도 버팀목이 필요할 건데. 자넨 쓸 데 없는 일을 하네.’ ‘자네에게 조언을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 혹 자네가 모르는 사이에 자네를 미워하는 어떤 사람인지도 물라.’‘미친 사람인지도 모르구?’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말한 대로 할 거야. 나는 그 사람을 믿어.’ 그러면서 느릅나무 밑동을 바짝 잘랐습니다.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빙 둘러서 넓게 파서 두 나무의 뿌리를 드러냈습니다. 그 사람은 참을성 있게 포도나무의 뿌리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하면서 느릅나무의 뿌리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큰 구덩이를 다시 메우고는 버팀목이 없이 서 있는 포도니무에 쇠로 만든 단단한 말뚝을 세워 주었습니다. 그 말뚝 꼭대기에는 널판에 쓴 ‘믿음’ 이라는 말이 달려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머리를 내저으면서 갔습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버팀대에 감긴 포도나무의 햇가지에는 우선 은빛 벨벳 주머니 속에 든 것같이 오무린 수많은 싹이 달리고, 그 다음에는 새로 돋아나는 작은 잎들의 에머랄드 빛깔로 벙싯 벌어지고, 그 다음에는 완전히 벌어지고, 그 다음에는 줄기에서 든든한 햇가지들이 돋아나고 작은 꽃들이 피더니, 포도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잎보다 포도송이가 더 많았는데, 잎들은 넘고 푸르고 튼튼해서 포도송이를 둘, 셋, 그 이상까지도 달고 있었고, 포도송이 하나하나에는 살찌고 물 많고 눈부신 포도알이 빽빽이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래 이제는 뭐라고 말하겠나? 내 포도나무를 죽게 하는 것이 그 나무였나, 아니었나? 그 현자의 말이 옳았나 옳지 않았나? 이 널판에 (믿음)이라는 말을 쓴 것이 잘한 일인가, 아닌가?’ 이렇게 그 사람이 믿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옳았네. 그리고 믿음을 가질 줄 알고, 자네에게 말해 준 과거와 해로운 것들을 때려 부술 수 있었으니 자네도 행복하네.’ 비유는 이렇습니다. 젖이 말라붙었던 여인의 일에 대해서는 시내 쪽을 보시오.”
  모든 사람이 시내 쪽으로 머리를 돌리니 조금 전의 그 여인이 뛰어 오는 것이 보인다. 그 여인은 뛰어 오면서도 불은 젖에서 아기를 떼어놓지 않는다. 퉁퉁 불은 젖을 아기가 어떻게나 게걸스럽게 먹는지 거기 빠져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여인은 예수의 발 앞에까지 와서야 걸음을 멈추고, 예수 앞 에서 잠시 아기를 젖에서 떼어놓으면서 외친다. “아기가 선생님을 위해서 살게 강복해 주십시오, 강복을요!”
  이 막간이 있은 후, 예수께서는 말씀을 다시 계속하신다. “그러면 여러분은 기적에 관한 여러분의 추측에 대한 대답을 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비유는 보상을 받은 믿음의 이 조그마한 삽화(揷畵)보다 더 넓은 뜻이 있습니다. 그 것은 이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포도나무, 즉 당신의 백성을 유리한 장소에 갖다 놓으시고 ,나무가 자라서 점점 더 큰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고, 율법을 쉽게 이해하고 그것을 힘을 만들어 가질 수 있게 선생님들에게 의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들이 입법자 위에 올라서고자 했고, 자라고, 자라고, 또 자라서 자신들을 영원한 말씀보다 더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에서 올바른 영혼을 가지고 이 번식불능을 괴로워하고 선생들이 하는 말이나 조언을 따라 이런 약 저런 약을 시험해 보는 사람들이 정말 유익한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자를 보내셨습니다. 사실 그 선생들은 인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초자연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지 못했고, 따라서 이스라엘의 정신에 생명을 다시 주기 위해서 해야 할 것에 대한 지식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이스라엘이 기운을 다시 차리지 못하고, 주님께 충실하던 좋은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기운차게 되지 못합니까? 그것은 거룩한 것, 즉 타협도 없고 망설임도 없고 위선도 없이, 주어진 그대로의 십계명의 율법을 희생으로 해서 발달한 모든 기생충 같은 존재를 치워버리라고, 그것들을 치워버리고, 포도나무, 즉 하느님의 백성에게 공기와 공간과 영양을 주고, 구부러지지 않는 강력하고 곧은 버팀목, 즉 믿음이라는 찬란한 이름을 가진 유일한 버팀대를 하느님의 백성에게 주라고 권고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권고를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이 멸망하리라고 말합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믿을 줄을 알고 용감하게 뉘우치고, 근본적으로 바꿀 줄을 알면 다시 살아나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평안히들 가시오. 그리고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