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자렛의 회당이다. 그러나 안식일이다.
  예수께서는 아비멜렉에 대한 교훈담을 읽으셨는데, “‘그에게서 불이 나와 리반의 서양삼나무들을  휩쓸어 버리도록 하라’” 하는 말씀으로 끝맺으신다. 그런 다음 두루마리를 회당장에게 돌려주신다.
  “나머지는 읽지 않으십니까? 교훈담을 알아듣게 하는데 그것이 좋을 텐데요” 하고 회당장이 말한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아비멜렉와 시대는 매우 오래전 시대입니다. 나는 옛날의 우화를 현시대에 적용합니다.
  나자렛의 주민 여러분, 들으시오.
  여러분은 회당장의 가르침을 통해서 아비멜렉에 대한 교훈담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의 회당장은 제 때에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고, 그 선생은 또 다른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세기 동안 계속되었고, 언제나 같은 방법과 같은 결론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내게서는 여러분이 다른 적용을 들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총명을 기울여서 우물의 도르레에 맨 밧줄같이 되지 말기를 부탁합니다. 우물의 도르레에 맨 밧줄은 낡아서 못쓰게 되지 않으면 도르레에서 물로, 물에서 도르레로 왔다 갔다 할 뿐 절대로 변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매놓은 밧줄도 아니고, 기계적인 연장도 아닙니다. 사람은 이해력이 있는 뇌를 가지고 있으며, 필요와 상황에 따라서 자신이 그것을 써야 합니다.
  말씀의 글자는 영원하지만, 상황은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에서 매번 새로운 가르침을, 즉 오래되고 지혜로운 말씀이 항상 내포하고 있는 정신을 나오게 하는 피로와 만족을 원할 줄 모르는 선생들은 불행합니다. 그들은 제 것은 아무것도 거기에 넣지 못하고 오직 한마디 단어만을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되풀이할 줄밖에 모르는 메아리와 같습니다.        
  나무들, 즉 큰나무와 작은 나무와 풀이 있는 수풀로 상징되는 사람은 누군가에 의해서 인도될 필요를 느낍니다. 이 누군가 하는 사람은 모든 영광을 맡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 짐스럽게 여겨지는 것이지만 권위의 모든 책임도 맡아가지고 있고, 그에게 딸린 사람들의 행복이나 불행에 책임이 있고 자기에게 딸린 사람들 앞과 이웃 민족들의 앞에서, 그리고 이것은 무서운 일이지만 하느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일을 맡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왕관이나 또는 아무리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라도 사람들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하느님의 허락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승인이 없으면 어떤 인간적인 힘도 강제력이 없는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던 왕조나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던 권력이 생각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었던 변화를 겪는 것이 이것으로 설명됩니다. 그것들은 국민들에 대한 벌이나 시련의 역할에서 도를 지나칠 때에는 하느님의 허락으로 국민들 자신에 의해 쓰러져서 먼지나 또 때로는 수채의 진흙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내 말은 이렇습니다. 즉 국민들은 자기에게 딸린 사람들과 이웃 나라들과 하느님께 대한 모든 책임을 맡을 사람을 뽑을 필요를 느끼는데, 하느님께 대한 책임을 맡는 것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역사의 심판은 무서운 것입니다. 백성들의 이해관계로 역사의 심판을 바로 놓으려고 애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미래의 사건들과 백성들이 그 심판을 처음의 무서운 진실로 되돌려 놓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일이 너무도 많지만,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압력도 받지 않으시고 기분이나 판단이 바뀔 수 없으며, 더구나 판단을 잘못 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심판은 더 엄격합니다. 그러므로 국민들의 지도자와 역사의 창조자가 되라고 선출된 사람들은 성인들에게 고유한 영웅적인 정의를 가지고 행동해서 미래의 세월에 명예가 손상되지 않고, 영원 무궁세에 하느님께 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의 우화를 다시 하기로 합시다.
  그러니까 나무들은 왕을 뽑고자 해서 올리브나무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올리브나무는 주님 앞에서 타는 기름을 내기 때문에 신성한 나무이고 초자연적인 용도에 쓰이는 나무로서, 십일조(十日租)와 제사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제단과 사제들과 왕들에게 바르는 데 쓰이는 거룩한 향유를 만들기 위한 기름을 제공하고, 말하자면 기적적인 특성을 가지고 몸 안으로 들어가거나 몸 위에 부어지는데, 이 나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거룩하고 초자연적인 내 임무를 소홀히 하고 세상의 일로 나를 비천하게 할 수가 있겠소?’ 하고.
  오! 올리브나무의 친절한 대답!
  하느님께서 어떤 거룩한 사명을 채우라고 뽑으신 모든 사람이 왜 이 대답을 배워서 실천하지 못합니까? 그들만이라도, 다시 말하지만 그들만이라도 말입니다.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왕이고 하느님의 아들이어서 그렇게 되게 하는, 즉 왕이고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고, 초자연적인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에, 사람이면 누구나 다 마귀의 권유에 이 대답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제단이요 집인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제단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아들이요 백성인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려고 내려오시는 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영혼은 어느 것이나 제단이기 때문에,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제단을 지키는 사람인 사제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레위기에는 ‘사제는 오염(汚染)하지 말아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유혹에 이렇게 대답할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영적인 존재이기를 그치고 물질적인 일, 죄로 이끌어 가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단 말이냐?’ 하고.
  그러자 나무들은 무화과나무를 찾아가서 그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내가 내 부드러움과 대단히 맛있는 내 열매를 버리고 당신들의 왕이 될 수 있겠소?’ 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왕으로 맞이하려고 그 사람 쪽으로 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 사람의 부드러움을 우러러 보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부드럽다 못해 꼭두각시 같은 왕이 되고 말아서, 그에게서는 어떤 동의도 다 받아내고 그에게는 얼마든지 제멋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드러움은 마음약함이 아니라 친절입니다. 그 부드러움은 올바르고 영리하고 확고합니다. 부드러움을 절대로 마음약함과 흔동하지 마시오. 부드러움은 덕행이고, 마음약함은 결점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움은 덕행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올바른 양심을 주어서 인간의 권유와 유혹에 저항할 수 있게 합니다. 인간의 권유와 유혹은 하느님의 이익이 아닌 그들의 이익 쪽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돌리게 하려고 주의를 기울이지만, 이 덕행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기의 운명에 충실합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남의 질책을 절대로 사납게 물리치지 않을 것이고, 그에게 애원하는 사람을 결코 박정하게 물리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용서하고 미소 지으면서 항상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형제여, 나를 내 기분좋은 운명에 그대로 내버려두시오.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당신을 위로하고 돕기 위해서요.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왕은 될 수가 없소. 내가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쓰는 왕권은 오직 내 영혼과 당신의 영혼을 위한 왕권, 즉 영의 왕권이기 때문이오’ 하고.
  나무들은 포도나무를 찾아가서 그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내가 기쁨과 힘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당신들의 왕이 될 수 있겠소?’ 하고
  왕노룻을 하는 것은 책임 가책 때문에 항상 정신을 흐리게 하도록 이끌어갑니다. 죄를 짓지 않고 가책을 만들어 내지 않는 임금은 검은 금강석보다도 더 드물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등대처럼 멀리서 반짝이는 동안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지만, 가까이 갔을 때에는 그것이 별빛이 아니라 개똥벌레의 불빛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있습니다. 권력이란 왕을 둘러싸고 움직이는 수많은 잇권의 수많은 밧줄에 결박된 힘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신(朝臣)들의 잇권, 인척들의 잇권, 개인적인 잇권과 친척들의 잇권. 기름을 발라 왕을 만드는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왕이 ‘나는 공평무사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나서 나중에 그렇게 되지 못하는 왕이 얼마나 많습니까? 연하거나 가는 담장이 덩굴이 처음에 감겨 올 때 ‘저놈은 하도 약해서 내게 해를 끼칠 수 없어’ 하고 말하면서 반감을 가지지 않고, 또 화환을 두른듯 그렇게 장식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이 올라올 때에 붙잡아 주는 보호자가 된다고 자부하는 힘있는 나무와 같이, 왕도 조신이나 인척이나 자기 개인이나 친척들의 이익이 그에게로 향해 처음 다가올 때에는 자주, 자주라기보다는 오히려 항상 양보하고, 그것에 대한 너그러운 보호자가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양심이 그에게 ‘조심 하여라!’ 하고 소리치면 그는 ‘이것은 별것이 아니야!’ 하고 말하고 그것이 그의 권력이나 명성에 해를 끼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무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에서 가지로 올라가면서 힘과 길이가 자라고, 땅의 진을 빨아먹는 탐욕과 빛과 태양을 얻으려고 올라가는 욕심도 자라서, 담장이 덩굴은 그 힘센 나무 전체를 감고, 짓누르고, 숨막히게 해서 죽이는 날이 오고야 맙니다. 그렇게도 약하던 그놈이! 그렇게도 강하던 그 나무를!
  왕들의 경우도 이와 같습니다. 칭찬이 기분 좋고, 보호자인 체 하는 것이 기분 좋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임무와 한번 타협을 하고, 양심의 목소리를 듣고 한번 어깨를 들썩하면, 왕이 지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잇권이 지배하는 때가 오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가두고, 그의 입을 틀어막아 숨이 막히게까지 하고, 또 왕보다 더 강해져서 왕이 빨리 죽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를 없애버리는 때가옵니다.
  정신으로는 언제나 왕인 보통사람도 만일 교만이나 탐욕으로 하등 부분의 왕권을 인정하면 파멸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오는 정신적인 침착성을 잃습니다. 그것은 마귀와 세속과 육신이 허망한 권력과 향락을 줄 수 있지만,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오는 영적인 희열을 회생시켜서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기쁨과 힘, 너희들은 사람이 이렇게 말할 줄 알게 할 만한 자격이 있다. ‘만일 내가 너희들과 결합하게 됨으로 힘과 내적인 기쁨과 하늘과 하늘의 참된 왕권을 잃는다면, 내가 어떻게 내 하등부분으로 왕이 되는 것을 수락할 수 있겠느냐?’ 하고
  또 하늘 나라를 차지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이 나라가 아닌 어떤 재물도 업신여기는 마음으로 가난한 저 지극히 행복한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동물성(動物性)이라는 메마른 사막에 살아서, 죽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유모를 잃은 어린 아이와 같이 생명유지에 필요한 액으로 영양을 얻기 위하여는 갈증을 풀 필요가 있는 우리 자매인 저 인류를 위하여 몸을 튼튼하게 하고 기쁨을 가져다 주는 즙을 성숙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인데, 어떻게 그것을 줄이기에 이를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품을 잃은 인류의 유모입니다. 만일 그 인류가 일체의 지상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기쁜 노고를 하는 우리를 만나지 못하고,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화가 있다는 확신을 우리가 그들에게 주지 않으면, 헛수고나 하고 병들어 방황하다가 결국 절망적인 죽음과 어두운 회의주의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이익 때문에 이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무들은 가시덤불에게로 갔습니다. 가시덤불은 나무들을 물리치지는 않았으나 가혹한 협정을 강요했습니다. ‘만일 너희가 나를 왕을 삼고자하면, 내 밑으로 오너라. 그러나 나를 선출한 다음에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나는 가시 하나하나를 활활 타는 고통을 만들어 너희 모두를 불사르겠고, 리반의 서양삼나무까지도 태우겠다’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것이 세상이 참된 것으로 보는 왕권입니다. 타락한 인류는 압제와 잔인성을 참된 왕권으로 보는 반면, 온유와 인자는 어리석음과 비천으로 봅니다.
  사람은 선을 따르지 않고, 악에 복종합니다. 사람은 악에 매혹되고, 따라서 악에 의해 타버립니다.
  이것이 아비멜렉의 우화입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우화를 하나 내놓겠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고, 또 먼 옛날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고. 현재의 것입니다.
  짐승들이 왕을 뽑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놈들이 간사하기 때문에 힘이 세거나 사납다는 공포를 주지 않을 짐승을 고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놈들은 사자와 고양이과의 모든 동물은 제쳐놓았습니다. 그놈들은 독수리들은 그놈들의 부리 때문에 원치 않는다고 선언했고, 어떤 맹금류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놈들은 말도 경계했는데, 그것은 말이 빠르기 때문에 저희들을 따라잡아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있겠기 때문이었습니다. 짐승들은 나귀도 경계했습니다. 나귀가 참을성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갑자기 성을 낸다는 것과 힘센 발굽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짐승들은 암원숭이가 너무 영리하고 복수심이 강하기 때문에 암원숭이를 왕으로 삼는다는 생각에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뱀이 사람을 꾀는 일에 사탄에게 동의했다는 구실이 있기는 해도, 짐승들은 뱀의 빛깔이 우아하고 몸 움직임이 멋이 있기는 해도 왕으로는 원치 않는다고 언명했습니다. 사실에 있어서 그놈들이 뱀을 원치 않은 것은 뱀이 소리없이 다니는 것과 근육이 대단히 힘있다는 것과 독이 무서운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황소나 뾰족한 뿔이 달린 다른 짐승을 왕으로 뽑으면 어떨까? 체! 나귀도 뿔이 있단 말이야’ 하고 짐승들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짐승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느 날 반란을 일으키면, 그놈은 우리를 뿔로 물살할 거야’ 하고.
  이리저리 헛되이 찾다가 짐승들은 푸른 풀밭에서 즐겁게 깡총거리며 어미의 퉁퉁 불은 젖을 빨아먹는 포동포동한 흰 새끼양을 보았습니다. 새끼양은 뿔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눈은 4월의 하늘과 같이 온순했습니다. 새끼양은 온순하고 순진했습니다. 그놈은 무엇이든지 다 만족스럽게 여겼습니다. 분홍빛 작은 주둥이를 박고 물을 먹는 작은 개울의 물도, 그놈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여러 가지 다른 맛을 가진 꽃들도, 배가 부를 때에 가서 누우면 기분이 좋은 무성한 풀도, 파란 풀밭 저 위에서 뛰놀며, 저희들이 하늘에서 그러는 것처럼 풀밭에서 뛰어 다니며 놀라고 권하는 다른 어린 양들같이 보이는 구름들도, 또 특히 아직 따뜻한 젖을 빨아먹도록 허락하면서 그동안 분홍빛 혀로 제 흰털을 핥아 주는 어미의 애무도,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잘 보호된 양의 우리도, 그 위에 누워 어미 곁에서 자면 기분이 좋은 부드럽고 향긋한 잠자리 짚도, 모두.
  ‘저 놈을 만족시키는 건 쉬운 일이구나. 저놈은 무기도 없고 독도 없어. 순진하고. 저놈을 왕을 삼자.’
  그래서 그 새끼양을 왕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새끼양이 아름답고 착하고, 이웃나라 국민들이 우러러보고, 그 참을성 많은 친절 때문에 신하와 백성들에게서 사랑을 받기 때문에 그 왕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린 양이 어른 양이 되었는데, 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다스릴 때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내 사명을 완전히 알고 있다. 내가 왕으로 뽑히기를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은 내게 다스릴 능력을 주셔서 나를 내 사명에 알맞게 육성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선물을 소홀히하지않기 위해서만이라도 내 통치력을 완전히 행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신민들이 미풍양속이나 사랑이나 친절이나 성실, 또는 절제, 순종, 존경, 신중 등등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왕은 목소리를 높여 그들을 나무랐습니다.
  고양이과 동물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나 먹이를 덮치려고 빨리 날아 내려오면서 지르는 독수리의 소리처럼 무섭지 않고. 뱀이 새액새액 하는 소리나, 심지어는 겁이 나게 하는 개의 짖는 소리까지도 무섭지 않는 양의 얌전하고 부드러운 울음을 신민들은 비웃었습니다.
  어른 양이 된 어린 양은 매애매애 하고 우는 데 그치지 않고. 범죄자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다시 다하게 하려고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뱀은 양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독수리들은 양을 내팽개치고 높이 날아올라 갔습니다. 고양이과 동물들은 펠트같이 부드러운 발로 양을 떼밀면서 위협했습니다. ‘지금은 당신을 떼밀기만 한 부드러운 우리 발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어? 발톱이 들어 있어’ 하고 말들과 일반적으로 달리는 짐승들은 양을 놀리면서 그 주위로 마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육중한 코끼리들과 가죽이 두꺼운 다른 짐승들은 주둥이 짓으로 양을 이리저리 던지고, 암원숭이들은 나무 위에서 물건들을 양에게 던졌습니다.
  어른 양이 된 어린 양은 마침내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뿔과 힘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이 목에 힘이 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전쟁할 때에 장애물을 쳐부수기 위해 내 목을 모형으로 한 무기를 만들 것이다. 나는 사랑과 설득을 쓰고자 했기 때문에 뿔과 힘은 쓰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너희가 이 무기를 가지고 나를 공격하기 때문에 나도 힘을 쓰겠다. 너희들은 나와 하느님에 대한 너희 의무를 게을리하지만, 나는 하느님과 너희들에게 대한 의무를 게을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들을 정의와 선으로 인도하라고 너희들과 하느님에 의해서 이 자리에 앉혀졌다. 그래서 나는 정의와 선이, 즉 질서가 여기에서 지배하기를 원한다’ 하고.
  그리고 양은 이웃들에게 계속 귀찮게 구는 고집센 발바리를 팔을 써서 벌했습니다. 그러나 양은 착하기 때문에 가볍게 벌했습니다. 그런 다음 탐욕스럽고 이기주의적인 돼지가 다른 짐숭들의 손해는 돌보지 않고 식량을 쌓아둔 우리의 문을 그 힘센 목으로 부수었고, 음란한 원숭이 두 마리가 그놈들의 부정한 사랑을 위해서 고른 담장이 덩굴이 우거진 덤불도 부수었습니다.
  ‘저 왕이 너무 강력해졌다. 진짜로 통치하려고 한다. 왕은 우리더러 얌전하게 살라고 한다. 이건 우리 마음에 안들어. 왕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 하고 짐승들이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교활한 작은 원숭이 한 마리가 그놈들에게 권고했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정당한 동기를 꾸며 가지고처만 하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민족들에게 초라하게 보이고 하느님께 불쾌감을 주는 존재가 될 거다. 그러니까 어른 양이 된 어린 양의 일거일동을 살펴서 정의를 가장해서 그놈을 고발할 수 있도록 하자.’
  ‘내가 그걸 생각한다’ 하고 뱀이 말했습니다.
  ‘나도 생각해’ 하고 암원숭이가 말했습니다.
  한 놈은 풀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한 놈은 나무 꼭대기에 남아 있으면서 어른 양이 된 어린 양의 행동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저녁, 양이 그의 임무를 하느라고 피로한 것을 쉬고, 국민의 반란을 억제하고 그들의 죄를 이기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와 써야 할 말을 깊이 생각하려고 그의 방으로 돌아갈 때에, 짐승들은 얼마 안 되는 성실하고 충실한 놈들만 빼놓고는 두 첩자, 즉 두 배반자의 보고를 듣기 위해 모이곤 했습니다.
  사실 뱀과 암원숭이는 첩자이고 배반자였으니까요.
  뱀은 왕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임금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임금님을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누가 임금님을 공격하면 저는 임금님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암원숭이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임금님을 우러러 봅니다! 저는 임금님을 돕고자 합니다. 보십시오. 여기서 저는 목장 너머에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을 봅니다. 달려가세요!’ 그리고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양은 어떤 죄인들의 잔치에 참석했다. 양은 그들을 회개시키러 간다고 가장하고 그리로 갔지만, 그후 실제로는 그들과 같이 푸짐한 식사를 했다.’
  또 뱀은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양은 그의 백성 밖에까지 가서 나비와 파리와 끈적끈적한 괄태충(括胎蟲)들과 사귄다. 양은 불신자다. 부정한 외국인들과 관계를 유지한다.’
  그놈들은 죄없는 양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줄 알고, 무지한 양에게 손해를 끼쳐 가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양의 사명을 다하도록 그를 양성하셨던 주님의 영은 국민들의 음모의 실상도 그에게 밝혀 주셨습니다. 양은 분개해서 짐승들을 저주하며 도망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은 마음이 온순하고 겸손했습니다. 어린 양은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고. 하느님의 뜻을 채우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희생해 가며 그의 사명을 다하면서 끝까지 꾸준히 사랑하고 용서하는 한층 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오! 사람들이 보기에 그 잘못들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이 얼마나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던지, 그로 인해서 양은 유죄 선고를 받게까지 되었습니다.
  ‘그놈은 죽어야 한다! 우리가 그놈의 압제에서 풀려나려면 말이다.’  그리고 뱀이 어린 양을 죽이는 소임을 맡았습니다. 뱀은 항상 배반자이니까요….
  이것이 둘째 우화입니다. 나자렛의 주민 여러분, 이 우화를 이해하고 안하고는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나는 나자렛에 나를 결합시키는 사랑 때문에 여러분이 적어도 반감에나 머물러 있고 그 이상으로 가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아주 어릴 때에 와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이 땅에 대한 사랑으로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반감을 가지는 이상의 일은 하지 마시오. (그를 넘겨준 배반자와 그의 불공평한 재판관들도 나자렛에서 왔다)고 역사가 말하도록 행동하지는 마시오’ 하고.
  안녕히들 계십시오. 여러분의 판단을 올바르게 하고 한결 같은 뜻을 가지도록 하시오. 내 동향인 여러분, 첫째 우화는 모두 여러분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우화는 여러분 중에서 올바르지 못한 생각으로 정신이 흐려진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나는 갑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을 찬성하는 두세 사람의 목소리로만 깨지는 비통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서글프게 고개를 떨어뜨리시고 나자렛의 회당에서 나오신다.
  맨끝에 알패오의 아들들이 있는데, 그들의 눈은 분명히 온순한 어린 양의 눈은 아니다.… 그들은 적의를 품은 군중을 엄하게 바라다보고, 유다 타대오는 서슴지 않고 그의 형 시몬의 앞에 똑바로 서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형이 더 성실하고 기개가 있는 줄로 생각했었어” 하고.
  시몬은 머리를 떨어뜨리고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형은 나자렛의 다른 사람들에게 격려되어 말한다. “너는 형님을 모욕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으냐?”
  “아니야, 나는 당신들 모두를 부끄럽게 생각해. 나자렛은 메시아에 대해서 그냥 계모가 아니라 타락한 계모야. 그렇지만 내 예언을 들으라구. 당신들은 샘에 물을 대어 줄 만큼 눈물을 많이 흘리면서 울 거야.그러나 그 눈물도 역사의 책에서 이 읍내와 당신들의 진짜 이름을 지우는 데에는 충분치 못할 거야. 그 이름이 무언지 알지? ‘어리석음’이야. 안녕.”
  야고보는 그들에게 지혜의 빛을 축원하면서 더 아량있는 인사를 한다. 그리고 사라의 알패오와 두 소년과 같이 나온다. 내가 제대로 알아본다면 그 소년들은 죽어가던 쿠자의 요안나의 마중을 나가는 데 쓰인 나귀를 몰고 갔        던 그 두 나귀몰이들이다.
  어리둥절한 군중은 속삭인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어디서 그 많은 지혜가 오는 걸까?”
  “또 기적을 행하는 능력은 어디서 받은 거야? 기적을 행하기는 행하니까 말이야. 팔레스티나 전체가 그 얘기를 하고 있거든.”
  “저 사람은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야? 우리는 저 사람이 나자렛의 목공소에서 탁자와 침대를 만들고, 수레바퀴와 자물쇠를 맞추는 것을 다들 보았어. 저 사람은 학교에도 가지 않았고, 저 사람의 어머니만이 그의 선생이었어.”
  “그것도 우리 아버지가 비난한 파렴치한 행위였어” 하고 알패오의 요셉이 말한다.
  “그렇지만 자네 아우들도 요셉의 마리아의 학교에서 공부를 끝마쳤어.”
  “이봐! 우리 아버지는 우리 어머니한테는 약했단 말이야…” 하고 역시 요셉이 대답한다.
  “그러면 자네 아버지의 아우도 그랬고?”
  “그랬어.”
  “하지만 저 사람이 정말 목수의 아들이야?”
  “보면 모르나?”
  “아! 서로 비슷한 사람이 하도 많아서 ! 내 생각에는 저 사람이 목수의 아들로 통하려고 하는 사람 같아.”
  “그렇다면 요셉의 아들 예수는 어디 있어?”
  “그의 어머니가 저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저 사람은 여기에 형제자매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저 사람을 친척이라고 부르고 있단 말이야. 그렇지 않은가, 자네 두 사람?”  알패오의 두 큰 아들은 그렇다는 표시를 한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미쳤거나 마귀가 들리거나 했어. 목수에게서는 저 사람이 말하는 것 같은 말이 나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저 사람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해. 저 사람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헛소리거나 마귀들린 사람의 말이니까.”
  예수께서는 광장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어떤 사람과 말하고 있는 사라의 알패오를 기다리신다. 그런데 예수께서 기다리시는 동안 회당 문 곁에 남아있었던 나귀몰이 중의 한 소년이 거기서 사람들이 말한 중상을 예수께 일러바친다.
  “슬퍼하지 말아라. 예언자는 일반적으로 그의 고향과 그의 집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사람은 예언자가 되려면 말하자면 생활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다. 그런데 동향인들과 친척의 성격을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더 잘 알고 기억한다. 그러나 진리가 승리할 것이다. 이제 나는 너와 헤어진다.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 바란다.”
  “선생님, 제 어머니의 병을 고쳐 주신 거 고맙습니다.”
  “너는 믿었기 때문에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내 능력이 여기서 힘이 없는 것은 여기에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 가자. 내일은 새벽에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