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작은 티베리아 포구에 닿았을 때 작은 부두에서 오락가락 하고 있던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달려온다. 여러 계급과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의 갖가지 색깔로 된 긴 옷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더부룩한 머리털과 위엄있는 수염이 튼튼한 로마 사람들의 흰 모직으로 만든 더 짧은 옷과 맹송맹송한 얼굴과 짧은 머리털, 그리고 그리이스 사람들의 날To고 여성적인 몸에 걸친 한층 더 짧은 옷과 섞여 있다. 그리이스 사람들은 그들의 자세에까지도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의 조국의 예술을 소화 흡수한 것 같고, 인간의 육체를 빌어 세상에 내려온 신들의 조각과 닮았다. 그들의 몸에는 부드러운 짧은 옷을 입었고, 곱슬곱슬하고 향수를 뿌린 머리 아래 있는 얼굴은 고전적이며, 팔에는 팔찌들을 끼고 있어, 그들이 일부러 꾸며서 움직일 때에 반짝인다.
수많은 창녀들이 로마인들과 그리이스인들과 섞여 있다. 그들은 광장이나 길거리에서 그들의 사랑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팔레스티나 사람들은 나중에 그들의 집안에서 창녀들과의 자유로운 사랑에 빠져드는 일이 있더라도 공공연하게 드러나게 하지는 않는다. 이 일이 분명한 것이 창녀들이 갑작스럽게 부르는 사람들이 무섭게 노려보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히브리 사람들의 이름을 친숙하게 부르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리본으로 장식한 바리사이파 사람도 있다.
예수께서는 시내를 향하여, 가장 멋부리는 군중이 더 많이 있는 그리로 바로 향하여 가신다. 멋을 부리는 군중이란 대부분이 로마 사람과 그리이스 사람이구 약간의 헤로데의 궁인(宮人)과 다른 사람들인데, 시돈과 띠로와 상점들과 배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 도시들쪽 페니키아 해안의 부유한 상인들인 것 같다.
공동목욕탕의 바깥 회랑들에는 이런 한가한 멋쟁이들이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은 가장 날쌘 투원반 선수나 육상경기자 또는 그레코 로만형 레슬링을 가장 균형잡히게 하는 사람 따위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을 토론하느라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또는 유행과 연회 이야기를 하고, 가장 아름다운 창녀와 귀부인들을 청하러 가서 즐거운 소풍을 위한 약속을 한다. 그 창녀들과 귀부인들은 향수를 뿌리고 머리를 지지고 공동목욕탕이나 호화로운 저택에서 나와 마치 응접실 모양으로 전부 대리석으로 장식된 티베리아의 이 중심지로 흩어진다.
이 일행이 지나가는 것은 자연 대단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호기심은 어떤 사람이 예수를 가이사리아에서 본 일이 있기 때문에 알아볼 때에나 어떤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를 알아볼 때에는 극도로 커진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겉옷으로 몸을 폭 감싸고 이마와 뺨에까지 아주 낮게 내려오는 흰 베일을 쓰고 걸어간다. 그래서 이렇게 베일을 쓰고 더구나 머리를 숙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그리 잘 보이지 않는다. “저 사람은 발레리아의 어린 딸의 병을 고쳐 준 나자렛 사람이야” 하고 한 로마인이 말한다.
“나도 기적을 보았으면 좋겠다” 하고 다른 로마인이 대답한다.
“나는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싶네. 저 사람은 위대한 철학가라는군. 우리 말 좀 해달라고 해볼까?” 하고 그리이스인이 묻는다.
“테오다트 상관하지 말아, 저 사람은 바람만을 설교한단 말이야. 저 사람은 풍자시를 읊는 비극 배우였으면 어울렸을 거야” 하고 다른 그리이스 사람이 대답한다.
“걱정 말아, 아리스토불, 저 사람은 구름에서 내려와서 육지로 가는 거야. 저 사람이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걸 보나?” 하고 한 로마인이 농담을 한다.
“아니, 저 여자는 막달라의 마리아야!” 하고 한 그리이스 사람이 외친다. 그리고 “루치우스! 꼬르넬리우스! 띠뚜스! 아니 보라구, 마리아야!” 하고 부른다.
“천만에, 마리아가 아니야! 마리아가 저런 차림을 하고 있다니 ! 자네 취했나?”
“마리아라니까. 저렇게 변장하고 있어도 나는 잘못 볼 수 없어.”
로마인들과 그리이스인들은 회랑과 분수가 많은 광장을 비스듬히 건너질러 가는 사도들의 집단 곁으로 모여 온다. 여자들도 구경꾼들과 합류한다.
그리고 마침 마리아를 더 잘 보려고 거의 그의 베일 밑에 간 한 여자가 틀림없이 마리아라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그 여자는 “너 그런 옷을 입고 뭘 하는 거냐?” 하고 물으며 냉소한다.
마리아는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손을 들어 베일을 뒤로 젖혀서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비열한 모든 것 위에 군림하였던 귀부인, 그러나 벌써 자기의 느낌을 억누를 줄 아는 막달라의 마리아가 나타난다. “그래, 나야” 하고 매우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며 굉장히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한다. “나예요. 그리고 내가 이 성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당신들이 생각하지 말라고 베일을 벗은 겁니다.”
“오! 오! 마리아가 성인들과 함께 있다니 ! 아니 그 사람들 그냥 내버려두라구! 너 자신을 모욕하지 말구!” 하고 그 여자가 말한다.
“나 자신을 모욕한다구, 나는 지금까지 그랬어. 그러나 이제는 모욕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야.”
“아니, 너 미쳤니? 그렇지 않으면 변덕이라도 부리는 거냐?” 하고 그 여자가 말한다.
로마 사람 하나가 마리아를 흘낏 바라다보며 건방진 투로 말한다. “나하고 같이 가자. 인생을 괴롭혀서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그 수염 달린 곡녀(哭女) 같은 사람보다 내가 더 아름답다. 인생은 아름답다! 승리다! 기쁨의 대향연이다! 오너라. 내가 모든 사람보다 뛰어나게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하고 얼굴이 뽀족하지만 기분좋게 생긴 약간 갈색 머리의 젊은이가 말하며 마리아를 만지려고 한다.
“비껴요! 나를 만지지 말아요. 당신이 제대로 말했어요. 당신들이 하는 생활은 흠뻑 마시고 즐기는 생활이고 그것도 가장 부끄러운 통음난무(痛飮亂舞)의 생활이예요. 나는 그것에 싫증이 나요.”
“오! 오! 얼마 전만 해도 그게 네 생활이었는 걸” 하고 그리이스 사람이 대답한다.
“이제는 처녀인 체하는구먼” 하고 헤로데 당원이 놀린다. 너는 성인들을 망친다. 네 나자렛 선생은 너하고 있으면 그의 후광(後光)을 잃을 거다. 우리와 같이 가자“ 하고 어떤 로마 사람이 계속 말한다.
“당신들이 나와 같이 선생님을 따르시오. 이젠 짐승 노릇 그만두고, 적어도 사람들같이나 되시오.”
일제히 웃고 놀리는 소리가 마리아에게 대답한다.
어떤 늙은 로마인만이 이렇게 말한다. “여인을 존중하게. 이 여자는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자유가 있어. 나는 이 여자를 변호하네,”
“선동정치가! 이 양반 말 들어보라구! 어제 저녁 마신 술 때문에 몸이 아픈 겁니까?” 하고 한 청년이 묻는다.
“아니야, 등이 아파하는 걸 보면 심기증(心氣症) 환자야” 하고 다른 사람이 대답한다.
“긁어 달라고 나자렛 사람에게 가보시오.”
“자네들하고 교제해서 묻힌 진흙을 긁어내 달라고 그리로 가겠네” 하고 노인이 대답한다.
“아이고! 그리스푸스가 예순 살에 난봉을 부렸다네!” 하고 많은 사람이 그를 빙 둘러싸고 놀린다.
그러나 그리스푸스라고 불린 사람은 비웃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생님 계신 곳으로 가는 막달라 마리아의 뒤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어떤 광장의 두 쪽께 걸쳐 있는 반원형의 매우 아름다운 건물의 그늘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티베리아에, 그것도 그런 사람들과 같이 왔다고 비난하는 율법교사와 벌써 다투고 계시다.
“그러면 당신은 왜 여기 와 있소. 왜 내가 티베리아에 온 것을 비난하오? 그리고 티베리아에도, 아니 다른 데보다도 여기에 구해야 할 영혼이 더 많다고까지 말하겠소”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 영혼들은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고 이교도들이 고 죄인들입니다.”
나는 죄인들을 위해서 왔소. 참 하느님을 알게 하려고 모든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위해서도 왔소.“
“나는 선생도 구세주도 필요없어요. 나는 깨끗하고 유식하니까요.”
“당신이 적어도 당신의 처지를 알 만큼 유식했으면 좋겠소!”
“그런 선생은 창녀와 같이 다니는 것이 얼마나 선생에게 불리한지 알았으면 좋겠군요.”
“나는 이 여자를 대신해서 당신을 용서하오. 이 여자는 겸손으로 그의 죄를 없애고 있소. 그런데 당신은 교만으로 당신의 잘못을 곱절로 만들고 있소.”
“나는 죄가 없어요.”
“당신은 가장 큰 죄를 가지고 있소. 당신은 사랑이 없소.”
율법교사는 “라까” 라고 말하고 예수께 등을 돌린다.
“선생님, 제 탓입니다!” 하고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창백해지시는 것을 보고 괴로워한다.
“용서해 주세요. 저 때문에 아드님이 모욕을 당하십니다. 제가 물러가겠습니다.”
“아니다, 너는 그대로 남아 있어라. 내 명령이다” 하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그리고 눈이 하도 빛나고 몸 전체에 얼마나 큰 지배력이 느껴지는지 거의 쳐다볼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 다음 더 부드럽게 말씀하신다 “너는 그대로 남아 있어라. 그리고 누가 네 곁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으면, 그 사람만 가라고 해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도시의 서쪽을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나신다.
“선생님!” 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변호한 뚱뚱하고 나이 많은 로마인이 외친다.
예수께서 돌아다보신다.
“저들이 선생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나도 선생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반은 철학자이고 반은 쾌락추구자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마 나를 성실한 사람을 만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똑바로 바라다보시고 말씀하신다. “나는 천한 인간의 동T성이 판을 치고 극도로 업신여기는 이 도시를 떠납니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하신다.
그 사람은 예수의 걸음이 빠르고 그는 뚱뚱하고 늙스구레하며, 또 악습로 인하여 둔해졌기 때문에 뒤에서 땀을 흘리며 애를 쓴다. 베드로가 뒤돌아보고 그 일을 예수께 알린다.
“걸으라고 내버려두어라. 걱정하지 말고”
조금 후에는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우리를 따라오는데요. 이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 동정으로 그러느냐, 아니면 다른 동기로 그러느냐?”
“그 사람을 동정해서요? 아닙니다. 조금 더 뒤에는 아까의 율법교사가 다른 유다인들과 같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 하는 대로 내버려두어라. 그러나 너는 너보다는 그 사람을 더 동정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선생님을 동정하는 것입니다.”
“아니다, 너를 동정하는 것 말이다. 네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인정할 만큼 솔직해라.”
“저는 정말 저 늙은 사람을 동정합니다. 선생님을 따라오느라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고 베드로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한다.
“완전을 따라가려면 언제나 애를 쓰는 법이다, 시몬아.”
그 사람은 여자들 곁에 있으려고 애를 쓰면서 끈기있게 그들을 따라온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결코 말을 걸지는 않는다.
막달라 마리아는 베일 속에서 말없이 울고 있다.
“마리아, 울지 말아” 하고 성모님이 그를 위로하시려고 손을 잡으시며 말씀하신다. “이 다음에는 세상 사람들이 너를 존경할 거야. 처음 얼마 동안이 제일 힘든 거야.”
“아이고! 저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만일 저 때문에 선생님이 해를 입으시면 저 자신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율법교사가 한 말을 들으셨습니까? 저는 선생님의 명예를 위태롭게 합니다.”
“가없어라! 그러나 그런 말들은 네가 예수에게로 올 생각을 하기도 전에 예수 주위에서 뱀들만큼이나 새액새액 휘파람 소리를 냈다는 걸 모르느냐? 시몬이 말한 건데, 작년에 벌써 예수가 전에 죄녀였던 여자 문둥병자를 고쳐주었기 때문에, 그일로 해서 그들이 예수를 비난했단다. 그 여자는 예수의 어머니인 나보다도 더 나이 많은 사람이고, 또 기적을 행할 때에 보고 그 뒤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네 자매 중의 한 사람인 불행한 여자가 구원을 받으려고 ‘고운 내’에 갔었기 때문에 예수가 그곳에서 피해 나와야 했다는 것을 모르느냐? 예수가 죄가 없는데 그들이 어떻게 그를 비난하겠니? 거짓말로 하겠지. 그런데 그 거짓말을 어디서 얻어내겠니? 사람들 가운데에 다하고 있는 그의 사명에서 찾아낸다. 착한 행위를 그들은 죄의 증거라고 내놓는다. 그래서 내 아들이 무슨 일을 하건 그들에게는 그것이 언제나 잘못일 것이다. 만일 내 아들이 외진 오두막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하느님의 백성을 소홀히 하는 잘못을 저지를 것이고, 하느님의 백성에게로 내려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일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내 아들이 항상 잘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악의가 있군요 !”
“아니다. 그 사람들도 고집스럽게 빛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내 예수는 영원히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고, 언제나 그럴 것이고, 점점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어머님은 그것이 괴롭지 않으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어머님이 대단히 침착하신데요.”
“그런 말 말아라. 내 마음은 찌르는 가시에 둘러싸인 것과 같다. 숨을 쉴때마다 그 가시들이 내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내 아들이 그걸 알아서는 안 된다! 나는 아들을 내 침착으로 뒷받침해 주려고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어미가 그의 기운을 돋워 주지 않으면, 내 예수가 어디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겠니? 그렇게 한다고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입지 않고 누구의 가슴에 머리를 기댈 수 있겠니? 그러니까 내가 벌써 내 마음을 괴롭히는 가시와 외로울 때에 내가 삼키는 눈물은 고려하지 않고 내 아들을 더 걱정 없게… 더 안심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아한 사랑의 겉옷을 입고, 미소를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증오치 물결이 하도 심해서 어미의 사랑도 소용이 없게 될 순간까지 말이다…” 눈물 두 줄기가 성모님의 창백한 얼굴에 흘러내린다.
두 자매는 심한 충격을 받고 성모님을 쳐다본다. “그렇지만 선생님께는 선생님을 사랑하는 저희가 있습니다. 사도들도 있구요” 하고 성모님을 위로하려고 마르타가 말한다.
“그래, 너희들이 있고, 사도들이 있다.… 아직 그들이 맡은 일을 감당하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내 아들이 모두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내고통은 더 심하다….”
“그러면 선생님은 제가 필요하다면 저를 제물로 바치기까지 선생님께 순종하고자 한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군요?” 하고 막달라 마리아가 묻는다.
“알고 있다. 너는 그의 힘드는 길에 큰 기쁨이 된다.”
“오! 어머님!” 하고 막달라 마리아는 성모님의 손을 잡고 감격하여 입맞춤한다.
티베리아는 변두리의 정원들로 끝난다. 그 저쪽으로는 가나로 가는 먼지투성이의 길이 있는데, 한쪽에는 과수원들이 있고, 또 한쪽에는 여름해가 쨍쨍 내리쬐는 풀밭과 밭들이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과수원 한 군데에 들어가셔서 잎이 우거진 나무 그늘에서 걸음을 멈추신다. 여자들이 예수 계신 곳으로 가고 뒤이어 숨을 헐떡이는 로마사람이 그리로 오는데, 그 사람은 정말 기진맥진하였다. 그 사람은 약간 떨어져 있으면서 말은 하지 않고 바라다본다.
“쉬는 동안 음식을 먹도록 하자”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여기엔 우물이 있고 아주 가까이 농부도 한 사람 있다. 저 사람에게 가서 물을 좀 달라고 청해라.”
요한과 타대오가 그리로 간다. 그들은 꼭대기까지 물이 가득 찬 물병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뒤에는 농부가 따라와서 훌륭한 무화과들을 드린다.
“하느님께서 이 호의를 건강과 추수로 갚아 주시길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선생님을 보호하십니다. 선생님이시지요?”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겠습니까?”
“그것을 바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선생님, 제가 있습니다. 목마를 때 아주 맛이 좋은 물보다도 더 원합니다” 하고 로마 사람이 외친다.
“목이 마릅니까?”
“몹시 마릅니다. 저는 시내에서부터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티베리아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샘이 많은데요.”
“선생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또는 그러는 체 하지 마십시오.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왜 따라오셨습니까?”
“왜 그런지, 어떻게 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저 여자를 보고 그랬습니다(그러면서 막달라 마리아를 가리킨다).모르겠습니다. 무엇인가 제게 ‘저분이 네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네게 말해 줄 것이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저분에게 물과 무화과를 드려라. 몸에 기운을 내시게.”
“그러면 정신은요?”
“정신은 진리로 기운을 냅니다.”
“저는 그 때문에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저는 지식에서 진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타락을 찾아냈습니다. 학설에는 아무리 훌륭한 학설에도 항상 좋지 않은 어떤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싫증이 나도록,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말고는 다른 장래가 없는 혐오감을 주는 인간으로까지 타락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갖다 드린 빵과 무화과를 드시면서 그 사람을 유t히 바라다보신다.
식사는 이내 끝났다.
예수께서는 앉으신 채로 마치 단순히 당신 사도들을 가르치시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농부도 바로 곁에 그대로 있다.
“일생 동안 진리를 찾는데도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청동판을 눈에 갖다 대고 보기를 원하며 경련적으로 더듬어서 점점 더 진리에서 멀어지거나 미친듯이 찾는중에 옳기거나 진리 위에 떨어뜨려서 그것을 가리는 미친 사람들과 같다. 그들은 진리가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진리를 찾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지능과 사랑을 합쳐야 하고, 사물을 현명한 눈으로만 볼 뿐 아니라 착한 눈으로도 보아야 한다. 착함은 지혜보다 더 값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진리로 가는 길을 가지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육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고 육체로 즐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육욕이다. 사랑은 영혼과 영혼 사이, 높은 부분과 높은 부분사이의 애정이다. 이 애정을 통해서 사람은 아내를 종으로 보지 않고 자녀를 낳는 여자로, 오직 이것으로만 본다. 즉 남자와 하나의 전체를 이루어 생명을, 여러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반쪽으로 보는 것이다. 즉 남자의 어머니요 자매요 딸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갓난 아기보다도 더 약하거나 사자보다도 더 강하며, 어머니와 자매와 딸로서 신뢰하고 보호하는 존경으로 사랑해야 할 아래로 보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은 사랑이 아니라 타락이다. 그것은 사람을 위로 데려가지 않고 아래로 끌고 가며, 빛으로 데려가지 않고 어두움으로 이끌어가며, 별로 데려가지 않고 진흙탕으로 끌어간다. 이웃을 사랑할 줄 알기 위하여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하느님을 사랑할 줄 알기 위하여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진리의 길은 발견된 것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아, 진리는 여기에 있다. 진리는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지식을 이해하는 비결이다.
하느님의 가르침 외에는 결함 없는 학설이 없다. 사람이 그에게 해답을 주실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어떻게 그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최고의 장인(匠人)이 아니고서는 누가 우주의 신비를 그저 순전히 그 신비만이라도 꿰뚫어 볼 수 있느냐? 어떻게 사람이라는 살아있는 기적을 이해하겠느냐? 그 안에 동물적인 완전과 영혼이라는 불멸의 완전이 혼합되어 있는 사람, 만일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 즉 짐승의 가치까지도 떨어뜨릴 만한 그런 잘못을 사람이 저지르면서도 오히려 그런 짓을 하는 것을 자랑하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신들이 되는 그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말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욥이 한 것과 같은 말을 하겠다.‘마소에게 물어보아라, 그놈들이 너를 가르쳐 줄 것이다. 새들에게 물어 보아라, 그놈들이 너를 이해하게 해줄 것이다. 땅에게 말하여라, 땅이 네게 대답할 것이다. 물고기들에게 말하여라, 그놈들이 네게 알려줄 것이다.
그렇다, 푸르러지고 꽃이 핀 이 땅, 나무 위에서 굵어지고 있는 저 열매들, 번식하는 저 새들, 구름을 분산시키는 이 바람, 수백, 수천 년째 뜨는 시간을 틀리지 않는 저 해, 이 모든 것이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고, 하느님을 설명하고,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고 공개한다. 만일 지식이 하느님께 근거를 두지 않으면 오류가 되어, 사람을 고상하게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천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식이 신앙인 때에는 타락이 아니다. 하느님을 통해 아는 사람은 그의 품위를 느끼고 그의 영원한 장래를 믿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재(實在)의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 신들이 아니라 아직 정신적인 무지(無智)의 기저귀에 싸여 있는 사람들의 망상인 환상들을 찾아서는 안 된다. 이들에게 그들의 종교에 지혜의 그림자도 없고, 그들의 믿음에 진리의 그림자도 없다.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지혜롭게 될 수 있다. 이것도 욥서에 있는 말이다. ‘저녁 때에도 한낮의 빛과 같은 빛이 너를 위하여 떠오를 것이고, 네가 끝장이 났다고 생각할 때에 샛별과 같이 네가 일어날 것이다. 너를 기다리는 바람으로 너는 자신만만하게 될 것이다.’
진리를 찾아내려면 착한 뜻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진리가 언젠가는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발견하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의 고집불통인 사람들을 본받아서 그 진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 이스라엘의 고집쟁이들은 하느님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길잡이, 즉 내게 대해서 성서에서 말한 모든 말을 벌써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리를 인정하고자 하지 않고 그것을 미워하며, 그들의 지성과 마음에 퉁명스러운 증오와 틀에 박힌 말투를 쌓아올린다. 그들은 승리의 행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형식주의와 원한과 이기주의의 예속시키는 발걸음에 지나지 않는 그들의 걸음 밑에서 그들의 무게로 인하여 땅이 갈라지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여러 민족들이 그들의 행동의 기준을 삼으려고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진 이교(異敎)보다도 더 죄 되는 이교를 알고도 다른 죄인들이 가는곳으로 떨어져서 삼켜질 것이다.
나로서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뉘우치는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고 그들에게 믿으라고 준 것을 믿고 마음속으로 ‘저희에게 진리를 주십시오’ 하고 탄식하면서 말하는 저 우상숭배자들도 물리치지 않는다.
말 다했다. 이제는 이 사람이 허락하면 이 녹음 속에서 쉬자. 오늘 저녁에는 가나로 간다.”
“주님, 저는 주님을 떠나갑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제게 주신 지식을 모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으로 티베리아를 떠나겠습니다. 저는 이 땅을 떠납니다. 제 하인을 데리고 루가니아 해안으로 물러가겠습니다. 거기에 집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늙은 쾌락주의자에게 그 이상의 것을 주실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도 저는 벌써 제 생각을 다시 가다듬을 만한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티베리아에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유일한 사람인 이 늙은 그리스푸스를 위해 선생님의 하느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리비티나의 포옹이 있기 전에 선생님의 말을을 다시 듣도록, 그리고 선생님의 말씀을 가지고 제 안에 만들어 놓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수단을 가지고 선생님을 더 잘 이해하고 진리를 더 잘 이해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그러면서 그 사람은 로마식으로 인사를 한다. 그러나 그런 다음 조금 떨어져 앉아 있는 여자들 곁으로 지나가면서 막달라 마리아 앞에서 머리를 숙이면서 말한다. “마리아, 고맙네. 자네를 안 것이 좋은 일이었네. 연회의 늙은 친구에게 자네는 그가 찾던 보물을 주었네. 자네가 벌써 도달한 그곳에 내가 다다르게 되면 그것은 자네 덕택일 걸세. 잘 있게.”
그리고 떠나간다.
막달라 마리아는 놀라고 환하게 된 얼굴을 하고 가슴을 두 손으로 꼭 껴안는다. 그리고 무릎으로 예수 앞으로 기어간다. “오! 주님! 주님! 제가 선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오! 내 주님 ! 너무나 친절하십니다!” 그리고 몸을 구부리고 얼굴을 풀에 대며 예수의 발에 입맞춤하고, 다시 눈물로 예수의 발을 적신다. 이제는 막달라의 위대한 애인의 감사하는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