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그 전날들보다도 한층 더 꽉 찬 성전에 들어가신다. 오늘은 아마포 옷을 입으셔서 온전히 흰빛이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날이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마당으로 예배를 하러 가시고 사람들의 행렬이 그 뒤를 따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벌써 회랑 밑의 제일 좋은 자리들을 차지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방인들인데, 그들은 회랑 너머 첫째 마당 저쪽으로는 갈 수가 없으므로 히브리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라갔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매우 많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떼가 그들을 방해한다. 그들은 항상 그들의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 힘으로 길을 뚫고 어떤 병자 위에 몸을 숙이고 계시는 예수께로 가까이 간다. 그들은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시기를 기다려, 질문을 시키려고 율법학자 한 사람을 그분 곁으로 보낸다.
사실 알라못이라고도 하는 요엘이 선생님께 질문을 하러 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잠시 말다툼이 있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 하나가 그것을 반대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지지해서 이렇게 말한다. “안돼, 자네는 비록 비밀리에 행동하지만 선생님 편이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야. 우리야를 가게 해….”
“우리야는 안돼” 하고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다른 젊은 율법학자가 말한다.
“우리야는 말할 때에 너무 격렬해. 그는 군중을 자극할 거야. 내가 가겠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반대는 그 이상 듣지 않고 선생님 곁으로 갔는데, 그것은 마침 예수께서 병자에게 “믿음을 가져라, 너는 나았다. 이제는 열과 고통이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보내시는 순간이었다.
“선생님, 율법에서 어떤 계명이 제일 큰 계명입니까?”
그를 등 뒤에 두고 계시던 예수께서 몸을 돌리시며 그를 바라보신다. 부드럽고 환한 미소가 그분의 얼굴에 떠오른다. 그런 다음 머리를 드신다. 왜냐하면 키가 작고 게다가 경의를 표하려고 몸을 굽히고 있는 율법학자 때문에 머리를 숙이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군중 쪽으로 눈길을 돌리시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학자들의 집단을 뚫어지게 보시다가 뚱뚱하고 값진 옷을 입은 바리사이파 사람 뒤에 반쯤 가려진 요엘의 창백한 얼굴을 알아보신다. 예수의 미소는 환해진다. 그것은 마치 성실한 율법학자를 쓰다듬어 주는 빛과 같은 것이다. 그런 다음 이야기 상대자를 보시려고 다시 머리를 숙이시며 대답하신다.
“모든 계명중의 첫째 가는 계명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주 네 하느님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여라.’ 이것이 첫째 가고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 다음 둘째 계명은 이것과 비슷하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 하여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입니다.”
“선생님, 지혜롭게 진리로써 대답하셨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그분 이외에 다른 하느님은 없습니다. 하느님을 자기 마음을 다하고 지능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은 모든 희생과 모든 제물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다윗의 ‘당신께는 희생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느님게 드리는 제물은 뉘우치는 마음입니다’ 하는 말을 묵상할 때에는 완전히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희생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니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희생이 가장 완전한 희생입니까?” 하고 율법학자는 무슨 비밀이라도 말하는 듯이 빨리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가르치심을, 하느님의 나라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 이 보배를 떨어뜨리시면서 사랑으로 얼굴이 환해진다. 그래서 그에게도 몸을 숙이시고 말씀하신다.
“완전한 희생은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고 원한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평화를 차지할 것입니다.
유순한 사람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고, 풍부한 평화를 차지할 것이다 하는 이런 말이 있지요. 정말 잘 들어 두시오. 제 원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완덕에 이를 것이고 하느님을 차지합니다.”
율법학자는 공손히 예수께 인사하고 그의 무리로 돌아가니 그들은 그가 선생님을 칭찬한 것을 작은 목소리로 나무라고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넨 그에게 무엇을 물어 보았나? 혹시 자네가 그에게 사로 잡힌 건가?”
“나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그분의 입술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네.”
“자넨 바보야 자넨 아마 그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건가?”
“난 그렇게 믿네.”
“정말이지, 이제 얼마 안가서 우리 율법교사들의 학교들이 텅 비고 저 사람을 따라 헤메는 것을 보게 될 걸세. 그런데 자넨 무엇으로 그가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나?”
“무엇 때문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나는 그분이라고 느끼는 거야.”
“미쳤어!” 그러면서 그들은 화가 나서 그에게 등을 돌린다.
예수께서는 그 대화를 지켜 보셨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화가 나서 빽빽한 무리를 지어 당신 앞을 지나가시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셔서 말씀하신다.
“이것 보시오. 당신들에게 무얼 좀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 생각에는 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입니까? 누구의 자손입니까?”
“다윗의 자손일 것입니다.” 하고 그들은 “일 것입니다”를 강조하며 대답한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예수께 이해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다윗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까?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고?’ 그러므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의 자손이 될 수 있습니까?”
무엇이라고 대답할지를 몰라 그들은 그들의 독을 되씹으면서 멀어져 간다.
예수께서는 햇볕이 좍 퍼진 지금까지 계시던 곳에서 자리를 뜨시어 떨어진 헌금궤가 있는 방 곁에 헌금 넣는 구멍들이 있는 곳으로 가신다. 아직 그늘이 진 그곳에는 히브리인 청중들에게 향한 요란스러운 몸짓을 하며 젠체하고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는 스승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전을 향해 몰려오는 사람이 끊임없이 늘어나므로 청중의 수는 끊임없이 늘어난다.
스승들은 그들의 연설로 그리스도께서 지난 며칠 동안 또는 오늘 아침에 주신 가르침을 무너뜨리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면 그럴수록 항상 신자의 무리의 수가 더 불어나는 것을 본다. 과연 그 장소는 매우 넓은데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로 우글거린다.
예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과부의 헌금에 대한 환상(幻像-vision) (1944년 6월 19일)을 내가 일러 주는 대로 고쳐서 여기에 삽입해라.” 그리고 환상이 계속된다.
1944년 6월 19일.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그리고 끈질기게 다음 환상이 나타남을 본다.
처음에는 성전에 달린 것으로 알아볼 수 있는 마당과 회랑들, 그리고 예수님밖에는 안보인다. 예수님은 회랑의 홍예를 떠받치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네모기둥에 기대어 계신데, 어떤 황제 같아 보이신다. 그만큼 선명한 붉은 옷과 역시 붉은 빛이지만 더 진한 빛깔의 망토를 입고 계신 모습이 장엄하다.
예수께서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신다. 나는 이틀 전부터 뵙지도 못하고 말씀도 듣지 못한 예수님을 기쁨에 차서 쳐다보는 데 자신을 잊어버린다.
이 환상은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되고, 이렇게 계속되는 동안에는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내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면이 활기를 띠는 것을 보는 지금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글을 쓴다.
그 장소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로 꽉찬다. 사제들과 신자들,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가고 어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학자들의 말을 들으며, 어린 양들을 데리고 있거나 비둘기들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곳을 향해 가는데, 아마 제물로 바치려고 가는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기둥에 기대 서시어 말씀을 안하신다. 두 번이나 사도들에게 질문을 받기까지 하셨는데 아니라는 표를 하셨지만 말씀은 안하셨다. 예수께서는 매우 주의깊게 관찰하시는데, 그분의 표정으로는 보아 바라보시는 사람들에 대해서 판단하시는 것 같다. 그분의 눈길과 얼굴 전체가 내가 천당에 관한 환상에서 그분이 사심판으로 영혼들을 심판하실 때 뵌 그분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지금은 물론 사람이신 예수이시다. 하늘에서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이셨고 따라서 한층 더 위엄이 있었다. 그러나 아주 자세히 관찰하시는 얼굴 표정의 변화는 같다. 꼼꼼하게 자세히 탐색한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리 뻔뻔스러운 사람이라도 떨게 할 만큼 엄한 표정을 보이시지만, 때로는 그분의 눈길이 애무로 보일 정도로 웃음짓는 애수를 띤 지극히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신다.
예수께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것을 듣고 계시는 것이 틀림없다. 과연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어떤 학자를 둘러싸고 모여있는 한 집단에서 “다른 어떤 계명보다도 이 계명이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즉 성전을 위한 모든 것은 성전에 가야 한다. 성전은 아버지, 어머니보다 높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가진 것을 모두 바치기를 원하면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축복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전보다 높은 혈연도 없고 애정도 없기 때문이다 하는 것입니다” 하고 주장하는 코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예수께서는 그 쪽으로 천천히 머리를 돌리시고 나를 그런 태도를 보시는 것을 원치 않을… 그런 태도로 바라보신다.
예수께서는 전체를 보시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작은 노인이 예수 곁에 있는 일종의 정원으로, 더 안쪽으로 있는 다른 마당으로 통하는 것 같은 정원의 다섯 계단을 올라갈 준비를 하면서 지팡이를 짚다가 자기 옷에 얽혀서 거의 넘어지다시피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그 긴 팔을 뻗어 노인을 붙잡아 부축하시고, 안전하게 된 것을 보시고나서야 비로소 놓아주신다. 작은 노인은 그의 주름진 얼굴을 들어 그의 큰 구원자를 쳐다보고 축복의 말을 중얼거리고, 예수께서는 그에게 미소를 보내시며 반쯤 대머리가 진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그리고는 다시 계시던 기둥으로 돌아오셨다가 다시 한번 거기서 떨어지져서 어머니의 손에서 빠져 나와 첫계단에 배를 깔고 바로 당신 발 앞에 엎어져서 우는 어린이를 일으켜 주신다. 예수께서 어린이를 일으켜 쓰다듬으시고 위로해 주신다. 어머니는 당황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예수께서는 그 어머니에게 미소를 지으시면서 어린이를 그에게 돌려 주신다.
그러나 잔뜩 거만을 부리는 바리사이파 사람 하나가 지나갈 때에는 웃지 않으시고 율법학자와 누구인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떼를 지어 지나갈 때에도 웃지 않으신다. 이 무리는 요란스러운 몸짓과 절을 하며 인사를 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꿰뚫으시는 것처럼 뚫어지게 그들을 바라보시고 인사를 하신다. 그러나 열성이 없는 인사다. 예수께서는 준엄하시다. 사제 한 사람이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비켜서며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거물인 모양이다. 그는 잔뜩 뽐내며 지나간다. 예수께서는 그를 오래 바라보시는데, 그 시선이 어떻게나 준엄한지 오만이 가득한 그 사람도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 그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의 눈길에 저항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그를 보기를 그만두시고,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계단을 올라가서 입을 벌린 사자나 그런 종류의 다른 짐승의 머리들이 있는 벽 쪽으로 간다(짙은 밤색 옷을 입은 가엾은 작은 여자를 살펴보신다). 많은 사람이 그리로 가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을 상관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그 작은 여자의 거동을 지켜보신다. 예수의 눈은 그 여자를 연민의 정을 가지고 바라보시며 그 여자가 팔을 뻗어 그 사자들중 하나의 돌로 된 입에 무엇인지 던지는 것을 보시고는 매우 부드러워지신다. 그리고 그 가엾은 여자가 물러나오면서 당신 곁을 지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먼저 그 여자에게 “여인이여,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말씀하신다.
여자는 깜짝 놀라 당황한 모습으로 머리를 든다.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예수께서 되풀이하여 말씀하신다. “가시오. 왜냐하면 지극히 높으신 분이 그대에게 강복하십니다.”
그 가엾은 여인은 입을 벌린 채로 있다가 이윽고 인사말을 중얼거리고 간다.
“저 여자는 그의 불행 속에서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께서는 침묵을 깨시면서 말씀하신다. “지금 저 여자는 하느님의 강복이 같이 가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친구들과 내 주위에 계신 여러분 들으시오. 저 여자를 보시오? 저 여자는 동전 두 닢밖에 바치지 못했습니다. 장속에 있는 참새 한 마리의 모이 값을 치를 만한 것도 못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새벽에 성전이 열린 뒤로부터 성전의 헌금궤에 바친 모든 사람보다 많이 바쳤습니다.
잘 들으시오. 많은 부자들이 그 여자를 1년 동안 배불리 먹일 수 있고, 깨끗함 만으로 품위를 지키는 그의 가난한 몸에 옷을 입힐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저 구멍에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나는 거룩한 도성의 빈민을 하루 또는 그 이상 배불리 먹게 해서 주를 찬미할 수 있게 했을 만한 돈을 겉으로 보아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스스로의 만족감을 가지고 넣는 부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정말이지 나는 저 여자보다 더 많이 바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저 여자의 헌금은 사랑인데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고, 저 여자의 헌금은 너그러움인데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저 여자의 헌금은 희생인데, 다른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저 여자가 자기의 주린 배에 빵을 주기 위하여는 우선 급료를 받기 위해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 여자는 예비금도 없고, 그 여자를 위하여 벌이를 해주는 친척도 없습니다. 저 여자는 혼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모와 남편과 자식들을 빼앗아가셨고, 그들이 남겨 준 얼마 안되는 재산도 빼앗아 가셨습니다. 하느님보다도 사람들이 그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여러분, 지금 요란한 몸짓으로 넣는 저 사람들이 보입니까? 그들의 여분을 저 안에 계속 던져 넣고 있는 저 사람들 말입니다. 그 여분의 대부분은 약하고 배고픈 사람들의 가엾은 손에서 고리(高利)로 강탈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보다 높은 혈연도 애정도 없다고 말하며, 이와같이 이웃을 사랑하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성전 위에 사랑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율법은 사랑이고, 하느님께서는 이웃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여분의 돈, 고리와 원한과 냉혹과 위선으로 더러워진 돈은 하느님의 찬미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며 또 그런 돈은 바치는 사람에게 하늘의 축복을 끌어오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물리치십니다.
그는 이 헌금궤를 살찌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향을 사기 위한 금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사제들이여, 당신들을 뒤덮어버리는 진창입니다. 그것은, 오 자기들이 생각해낸 교리들을 가르치는 학자들이여, 당신들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입니다. 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여, 그것은 당신들이 아직 가지고 있는 한가닥 양심까지도 부식시키는 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아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카인처럼 되지 마시오. 하느님께서는 냉혹한 마음의 열매는 원치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불평하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나는 허기진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해 주어야 되었는데, 사람들은 저 안에 자신들의 호사를 과시하기 위해 내게 그것을 거절하였다. 나는 늙은 아버지와 비틀거리는 어머니를 도와드려야 했었는데, 사람들은 그 도움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내게 거절하였다. 그래서 나는 세상사람들이 증여자를 보도록 내 합주 종소리를 울려 퍼지게 해야 합니다’하고 남은 것을 하느님께 바쳐야하고 하느님께 바치기 위하여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거절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스승이여, 당신은 틀렸습니다.
첫째 계명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을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여라.’ 그러므로 여분의 것을 하느님께 드릴 것이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통받기를 좋아함으로써 우리의 혈(血)인 것을 바쳐야 합니다. 고통을 받아야지, 남에게 고통을 당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재물을 버리는 것이 괴롭기 때문에, 주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고, 또 사람의 마음은 천성적으로 고약하기 때문에 그 재물을 주기가 대단히 고통스러우면, 바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정의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지 하느님의 착하심으로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희생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바치기 위해서는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고통을 받아야 하지, 되풀이 합니다만, 남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둘째 계명은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하느님 다음으로 우리가 존경과 도움을 드릴 의무가 있는 이웃이 부모라고 명확히 밝혀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에게 정말로 말합니다. 저 여자가 지혜로운 사람들보다 율법을 더 잘 이해했고 그 어느 누구 보다도 의로와지고 축복받았습니다. 그것은 그 여자는 가난한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쳤는데, 당신들은 여분의 것을 드렸고, 그것도 사람들에게 존경을 더 받기 위해서 바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당신들이 나를 미워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 입이 말을 할 수 있는 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내가 칭찬하는 가난한 여자에 대한 멸시에다 내게 대한 당신들의 증오를 더 합니다. 그러나 이 돌 두 개로 당신들의 오만을 위한 이중 밑받침을 만든다고 믿지 마시오. 그것은 당신들을 으깰 맷돌이 될 것입니다.
가자, 독사들이 서로 물어서 그들의 독을 증가시키게 내버려두자. 순수하고 착하고 겸손하고 뉘우치고 하느님의 참 얼굴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나를 따르라.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든 것을 내게 바쳤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너도 그 마지막 동전 두 닢을 내게 다오 네가 내게 바친 그 많은 것에 비하면 그것들이 외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밖에 없는 너에게는 그것들이 전부이다. 그것들을 네 주의 손에 놓아라. 그리고 울지 말아라. 또는 적어도, 혼자 울지는 말아라. 너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진리에 대하여는 언제나 타산적인 보자기가 되는 인간성의 막연한 것 없이 너를 이해하는 오직 한 사람인 나와 같이 울어라.”
날이 정말 숨막힐 것 같기 때문에 예수께서 성전 담의 보호를 받다시피 하는 첫 번 성벽의 그 장소, 조금 서늘한 곳으로 돌아오실 때 사도들과 제자들과 군중이 빽빽한 집단을 이루어 따라온다. 땅이 짐승들의 굽으로 울퉁불퉁해지고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이 그들의 울타리의 천막을 치려고 쓰는 돌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으므로 이스라엘의 스승들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그들은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하는 것을 허락하였었다. 그러나 며칠 전에 그곳에서 쫓겨난 네발짐승들의 발자국들이 잘 지워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의 샌들 바닥에 묻혀 혐오를 느끼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싫어하지 않으시고, 많은 청중에 둘러싸이시어 그리로 피신하신다. 그러나 말씀하시기 전에 사도들을 당신 곁으로 부르시어 말씀하신다. “와서 잘 들어라. 어제 너희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고, 또 어제 요셉의 정원에서 쉴 때에 내가 막연한 암시만 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지금 말을 해 주겠다. 그러므로 단단히 주의를 기울여라. 이것들은 모든 사람에게, 특히 내 사제들이고 후계자들인 너희에게 큰 교훈들이기 때문이다.
잘 들어라. 모세의 자리에 필요하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앉았다. 그 때는 조국으로서는 마음 괴로운 시간 이었다. 바빌론의 귀양살이가 끝나고 치루스의 아량 덕택으로 나라가 다시 세워지자, 국민을 지도하던 사람들은 종교예식과 율법 지식의 재건의 필요성도 깨달았다. 왜냐하면 시민들의 부도덕, 지도자들에 대한 반항, 여러계층과 당파들 사이의 분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죄, 종교심의 결여 등과 같이 나라의 가장 강력한 적과 자신들에게는 불화의 요소가 되고 그들이 유발하는 천벌의 원인이 되는 것에 대한 자기 옹호와 지도자와 지지자로서의 종교예식과 율법지식을 가지지 못한 민족은 불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자비한 귀양살이의 유산인 칼레아말을 해서 순수한 히브리말로 씌어진 성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던 백성을 가르치기 위하여 율법학자 즉 율법의 박사들이 일어났다. 수효가 부족한 사제들을 도와 군중들을 가르치는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일어났다. 사람들에게 주님에 대한 지식을 가져다 주고 그들을 주께 인도하고 있었는데, 그는 주를 공경하는데 박식하고 봉헌된 평신도였다. 이 평신도직은 그 존재 이유가 있었고 좋은 일을 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너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세월이 흘러 가면서 타락한 이것의 경우가 그런 것처럼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변질하는 것들까지도 항상 어떤 좋은 것을 가지고 있고, 적어도 처음에는 존재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분은 타락이 극도에 달해서 그들을 흩어버리시는 순간까지는 그들이 높아지고 존속하시기를 허락하신다.
그 다음에는 바리사이파라는 다른 파가 생겼다. 이들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누스 시대에 시작되어 멀지 않아 우리 조국을 지배하기 위하여 그의 군대보다는 마음 속에서의 믿음의 붕괴에 더 기대를 걸고 있던 그 교활한 왕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가 된 압력과 유혹으로 친 그리이스 문화파가 형성되어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꾀할 때에 가장 엄격한 도덕으로 모세의 율법에 대한 가장 완강한 복종과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지원하기 위하여 일어났던 앗시테아파가 변형된 파이다.
또 이것도 기억해라. 외국의 군대들보다는 오히려 그의 쉬운 동맹과 아첨을 더 무서워해라. 과연 너희가 하느님과 조국의 법률에 복종하는 동안은 너희가 강력한 군대에 포위당해 있다 하더라도 이길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에게 대해서 꾀를 생각해낸 적이 취하게 하는 술처럼 주는 잘 스며드는 독으로 썩어버리면, 하느님께서 너희 죄 때문에 너희를 버리실 것이고, 그러면 거짓 동맹국이 너희에게 대해서 피흐르는 전투를 하지 않았는데도 너희는 지고 예속되고 말 것이다.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 보초와 같이 경계를 하지 않고, 개인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고, 우리의 것이 아니고, 거룩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를 주께 불쾌한 사람이 되게 하는 관습과 풍속으로 마음을 타락시킴으로써 개인들의 지배를 시작하는 교활한 거짓이웃이나 동맹국이나 지배자의 교활한 계략을 물리치지 않는 자는 불행하다! 불행해!
조국의 아들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외국의 총애를 얻고 누리기 위해 외국의 관습과 풍속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조국이 겪은 모든 결과를 기억해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우리와 믿음을 같이하지 않고 우리의 관습을 가지지 않고 여러 세기가 지나가는 동안 우리를 해친 국민들에 대해서까지도 가지는 사랑은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의 이웃인 그 국민들에 대한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이웃에게서 우려내는 어떤 이득을 계산해서 하느님과 조국의 율법을 버리게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안되고 말고. 외국인들은 조국의 가장 거룩한 것을 버리기에 이르기까지 비굴한 자들을 업신여긴다. 아버지와 어머니인 하느님과 조국을 모른다고 함으로써 존경과 자유를 얻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외국의 관습과 풍속이 더럽게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알맞은 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일어선 것은 좋을 일이었다. 되풀이 말하지만 불쑥 나타나서 존속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하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이 과거에 한 것 때문에 그것을 존중해야한다, 그것이 흠이 있다하더라도 이제부터는 사람들이 그것을 욕할 권리가 없고, 칠 권리는 더구나 없다. 그것을 할 수 있는 분이 있으니, 하느님과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시다. 그분은 너희와 그들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생각을 알아듣고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너희 입을 열고 너희 눈을 뜨게 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다. 나이지, 다른 아무도 아니다. 나라는 것은 내가 하느님 명령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것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을 볼 때에는 너희가 분개하지만, 너희들도 기회만 있으면 저지를 수 있는 죄들 중의 아무 죄도 나는 가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조용하게 시작하셨던 예수께서 목소리를 차차 높이시어 이 마지막 말씀을 하실 때에는 나팔을 부는 소리처럼 힘차다.
히브리 사람들과 이방인들이 정신을 집중하고 주의해서 예수의 말씀을 듣는다. 히브리인들은 예수께서 조국을 상기시키고 그들을 예속시키고 괴롭혔던 외국들의 이름을 공공연하게 말씀하실 때에 박수를 치는데, 이방인들은 연설의 웅변조를 감탄하고 대웅변가다운 그 연설을 듣는 것이 기쁘다고 서로 말한다.
예수께서 말씀을 다시 시작하실 때에는 목소리를 다시 낮추신다. “이 말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존재 이유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는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들이 말하며 그들의 말이 헛되지 않은지를 너희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대로 해라.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본받지 말아라. 그들은 이러저러하게 행동하라고 말하지만, 그리고 나서는 해야 된다고 그들이 말한 것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에 있어서 그들은 모세 5경의 인도의 법칙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다음에 그들은 질 수 없고 인정없는 엄청난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우고 그들 자신은 그 짐들을 들기 위해서는 커녕 그것을 만지기 위해서조차도 새끼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한다.
그들의 생활 규칙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보고 주목하고 박수 갈채를 보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의 계율을 위반한다. 왜냐하면 자기들을 별개의 인간으로 규정하기를 좋아하고 자기들의 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업신여기며, 제자들에게서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받기를 좋아하며 자기 자신들은 하느님께도 드리지 않는 숭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혜와 능력으로 자기들이 신이라고 믿고, 제자들의 마음 속에 자기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높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기들의 가르침이 하느님 가르침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자기들의 가르침이 진짜 율법을 변질시키더라도, 여기 있는 이 산이 팔레스티나 전체를 굽어보는 대(大) 헤르몬산에 비해서 훨씬 높은데 진짜 율법에 비해 비교가 안될 정도로 더 낮은 자기들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를 요구한다.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교도와 같이 윤회(輪廻)와 운명론을 믿고, 어떤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은 부인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예배해야 할 유일한 신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로 하느님 뒤에 오며,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이 하느님이 아닌 선생보다 아버지 어머니께 더 복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을 믿을 것이라고 알려 주신 것을 효과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실제로는 부인함으로써 이단자가 된다. 지금 내가 너희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고 말하는 것은 너희가 존경하고 도와 드려야 할 부모에 대해 무관심하라고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니, 그분들에게 ‘이것은 성전의 돈입니다’하고 말하면서 그분들에게 드려야 할 도움을 빼앗거나 ‘ 제 직책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유숙할 곳을 빼앗거나 ‘아버지(어머니)가 선생(예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입니다’하고 말하면서 목숨을 빼앗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부모에게 대해 마땅히 가져야 할 사랑을 가지라고, 즉 참을성 있고 부드러운 가운데에서도 강한 사랑 -생명의 길인 내 길을 걷는 너희를 따르지 않아서 죄를 짓거나 슬프게 하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미워해서는 안되고- 내 율법과 가정적인 이기주의와 가정적 폭력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랑을 가지라고 그러는 것이다. 너희 부모를 사랑하고 거룩한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에게 순종하여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로 하여금 내가 양성하러 온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라고 너희 안에 하느님께서 넣어 주신 소명을 배반하게 만들려고 하거든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을 각오를 하여라.
일치해 있는 체하지만 서로 분열되어 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본받지 말아라. 그리스도의 제자인 너희들은 참으로 일치해 있어야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오직 한 가지, 아랫사람들에 대하여는 지극히 부드러운 우두머리가 되고, 지휘자들에 대하여는 지극히 온순한 아랫사람이 되며, 사랑과 우리들의 일치의 목적, 즉 내 나라를 쟁취하고 영원한 심판에서 내 오른편에 있게 된다는 목적에서 오직 하나가 되어야 한다. 분열된 나라는 이미 나라가 아니며, 존속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러므로 너희는 나와 내 가르침에 대한 사랑 안에서 결합해 있어라. 그리스도인의 똑같음, 내 신민의 이름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 즉 사랑과 일치, 너희들 사이의 옷에 있어서의 평등, 재산의 공유, 마음의 우애가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를 위하여, 각자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어야 한다.
가진 사람은 겸손되어 주어라. 가지지 못한 사람은 겸손되이 받고, 형제들에게 그들을 형제로 알고 겸손되이 자기의 필요를 설명해야 하고, 형제들은 자기들이 그들에게 참으로 형제임을 깨닫고 그들의 요구를 다정스럽게 들어야 한다. 너희 선생님도 자주 시장했고 추웠고 그밖에 수많은 결핍과 부자유를 겪었고, 하느님의 말씀인 그가 그것들을 겸손되이 사람들에게 설명했다는 것을 기억해라. 동정하는 마음으로 물 한모금을 준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상급을 받으리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낫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이 세 가지 기억 속에서 가난한 사람은 내가 그보다 먼저 그렇게 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자존심이 꺾인다고 생각하지 말고 청하는 힘을 얻어내고, 만일 누가 그를 냉대하면 사람들이 짐승떼를 지키는 개에게도 주는 자리와 음식을 사람의 아들에게 거절한 것이 여러번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용서하는 힘을 얻어내야 한다. 또 부자는 마귀가 추구하게 하고 또 세상의 멸망의 열에 아홉의 원인이 되는 비루한 돈, 추악한 돈이, 만일 그것을 사랑으로 주면, 불멸하는 천국의 보석으로 변한다는 변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의 재산을 주는 아량을 얻어내야 한다.
너희는 덕행을 옷입듯이 갖추어라. 너희 덕행이 커야 한다. 그러나 오직 하느님께만 알려져야 한다. 성서 글귀를 쓴 더 넓은 양피지와 더 긴 장식술을 달고 다니며, 회당에서 첫째 자리에 앉기와 광장에서 존경의 표시를 받기를 좋아하고 백성들이 ‘선생님’ 하고 부르기를 원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하지 말아라. 너희들에게 선생님은 오직 한분, 그리스도이다. 장차 새로운 박사들이 될 너희들, 내 사도들과 내 제자들인 너희들에게 하는 말인데, 나만이 너희 선생이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그리고 너희들 가운데 있지 않게 될 때에도 역시 너희 선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오직 지혜만이 가르치는 선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하지 말아라. 너희들 자신이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요구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아무에게도 그 명칭을 주지 말아라. 모든 사람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이 진리가 너희로 하여금 지휘하는 사람이나 지휘를 받는 사람이나 너희 모두가 참으로 서로 형제들임을 느끼게 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너희는 의좋은 형제들처럼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지휘하는 사람 중의 아무도 인도자라고 부르게 하지 말아라. 너희 모두에게는 그리스도라는 인도자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제일 높은 사람은 너희 하인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 되는 것이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했던 나, 항상 아담의 후손인 내 형제들에 대해 사랑을 가질 준비를 하고 하느님으로서의 내 능력으로 그들을 도와줄 채비를 하고 있는 나를 본받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천주성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사실 참된 왕은 사람들보다는 사람들의 격정을 지배하는 사람인데, 격정의 첫째 가는 것은 어리석은 교만이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고,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주께서 창세기 제2장에서 말씀하시는 여인,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동정녀, 임마누엘의 동정녀인 어머니가 ‘주께서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도다’ 하고 노래함으로써 새시대의 이 진리를 예언하였다. 하느님의 지혜는 은총의 어머니요 지혜의 옥좌인 여인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정녀를 손상 시키지 않고 사람인 내가 하느님으로 그대로 있으면서 동정녀의 태중에서 형성 되고 있을 때 우리의 기묘한 활동에 대하여 나를 성부와 성령과 함께 찬미한 영감받은 말씀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낳고 그리스도의 왕국에 도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법칙이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들을 숭배하고 자기 자신들의 뜻을 숭배하는 교만한 자, 간음하는 자, 우상숭배자들에게는 구세주 예수, 즉 그리스도가 없을 것이고, 천국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선자인 그대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대들은 실행 할 수 없는 격언들로 그들의 힘든 하루하루의 세상살이에서 힘을 얻어내기 위하여 하늘나라로 그들의 정신을 들어올리는 사람들의 얼굴 앞에 천국의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실 그 격언들이 하느님께 비준되면 대부분의 사람에 대하여는 그것이 열 수 없는 자물쇠가 될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지도 않고, 들어가기를 원치도 않는 그대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대들은 천국의 율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문앞에 와 있는 다른 사람들을 들어가게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대들의 비타협 때문에, 하느님께서 만들어놓지도 않으신 그 문의 자물쇠를 그대들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긴 기도를 드린다는 핑계로 과부들의 재산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그대들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대들은 엄혹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대들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대들은 한 사람을 개종시키려고 그대들의 것이 아닌 재산을 써가면서 바다와 육지를 돌아다니지만, 개종시킨다음에는 그대들보다 갑절이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을 만든다!
그대들 눈먼 인도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대들은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황금을 두고 한 맹세는 꼭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어리석고 눈먼 사람들! 어느것이 더 중요하냐? 황금이냐? 또는 황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또 그대들은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그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두고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 고 말한다. 눈먼 사람들!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제단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대들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대들은 박하와 운향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같은 대단히 중요한 율법은 무시해버리고 있다. 덜 중요한 다른 것들도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이것들이야말로 가져야 할 반드시 필요한 덕행이다! 눈먼 인도자들, 그대들은 음료에 빠진 작은 파리 한 마리를 삼켜 전염병에 걸리까봐 겁이나서 음료는 걸르면서 낙타는 그대는 삼키면서도 그대들은 더러워진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대들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대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씻지만, 그대들 안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차 있다. 눈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먼저 그대의 잔과 접시의 속을 씻어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그대들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대들은 밤새들같이 어둠 속을 날아다니면서 그대들의 죄악의 일을 하고, 밤동안에 이교도들과 도둑들과 배반자들과 흥정을 하고는 아침에는 그대들의 비밀 거래의 표를 말끔히 지우고 나서 좋은 옷을 입고 성전을 올라온다.
그대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대들은 레위기에 들어 있는 사랑과 정의의 법은 가르치면서 탐욕스럽고 도둑이고 거짓되고 중상하며 압제하고 불공평하고 복수심이 강하고 증오심이 가득하며, 그대들에게 귀찮게 구는 사람은 비록 같은 핏줄이라 하더라도 쓰러뜨리고 그대들의 아내가 된 처녀를 내보내고 그 아내에게서 얻은 자식들을 몸이 성치 못하다고 해서 버리며, 이제는 그대들의 마음에 들지 않게 된 아내를 버리기 위하여 간통을 했다거나 더러운 병에 걸렸다고 고발하기에 이른다. 그대들의 행동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음란한 그대들의 마음으로는 불결하기 짝이 없는 그대들의 말이다. 그대들은 회칠을 해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에는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차 있는 무덤과 같다. 그대들도 이와 똑같다. 마찬가지이고 말고! 겉으로는 옳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대들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대들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화려하게 만들어 놓고 의인들의 묘비를 화사하게 꾸며놓고는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고 있었더라면 예언자들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들과 공범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일에 가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그대들은 그대들의 예언자들을 죽인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그대들에게 불리하게 증언한다. 게다가 그대들은 그대들의 조상들이 시작한 것을 마다하고 있다…. 뱀 같은 자들, 독사의 족속들아! 그대들이 어떻게 지옥의 선고를 면하겠느냐?
이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인 내가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하느님은 새 예언자들과 현자들과 율법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런데 그대들은 그들을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십자가에 매달고 또 더러는 재판정과 회당과 성 밖에서 채찍질하고 또 더러는 이 동네 저 동네로 잡으러 다닐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무죄한 아벨의 죄로부터 베레기야의 아들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서 흘린 의인들의 모든 피값이 그대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즈가리야는 그대들에 대한 사랑으로 죄를 뉘우치고 주께 돌아오라고 그대들의 죄를 깨우쳐 주었기 때문에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죽였다.
사실이 이러하다. 그대들은 이익을 원하고 사랑으로 그대들을 하느님의 길로 다시 부르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정말 그대들에게 말하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시점에 와 있고 죄악과 그 결과가 올 시점에 이르렀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오! 예루살렘! 예루살렘! 예루살렘아! 너는 네게 보낸 이들을 돌로 치고 예언자들을 죽이는 구나! 암탉 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었느냐?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 예루살렘아 들어라! 이제는 자, 나를 미워하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미워하는 너희 모두 잘 들어라. 이제는 자, 나를 사랑하는 너희들, 그리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박해하는 자들에게 그들에게만 주려고 따로 남겨 둔 그 벌 안에 끌려가게 될 자들아 잘 들어라. 그리고 이 백성에 속해 있지 않지만 그래도 내 말을 듣는 너희들, 너희에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미래의 모든 것이 현재이기 때문에, 새의 나는 모습과 노래를 연구할 필요도, 천체의 현상과 제물로 바치는 짐승들의 내장도 제물의 불꽃과 연기도 살펴볼 필요도 없이 너희에게 말하고 예언하는 그가 누구인지 알기 위하여 듣고 있는 너희도 들어라. ‘너희 집인 이 집은 황폐한 채로 너희에게 남겨질 것이다.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너희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고 말하기까지 너희는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하고 나는 말한다.”
예수께서는 길고 우레 같은 연설과 동시에 바람 한점없는 이 날 숨막힐 듯한 더위로 눈에 띄게 지치시고 열에 떠 계시다. 군중에 의하여 벽을 뒤로하고 포위당하시고 수천 개의 눈동자가 뚫어지게 쳐다보는 가운데 이교도들의 마당 회랑 아래에서 당신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온 증오심과 등마루와 땀을 줄줄 흘리시면서 벌개진 얼굴에 내리쬐는 태양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이의 사랑과 감탄을 느끼시면서 예수께서는 참으로 지쳐보이신다. 예수께서는 원기 회복의 필요를 느끼시며 그것을 찾으시어, 쐐기처럼 군중 사이를 천천히 뚫고 와서 이제는 예수 둘레로 충실한 사랑의 울타리를 이루면서 맨 앞줄에 있는 사도들과 72명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성전에서 나가 나무들 사이의 야외로 가자. 나는 그늘과 고요와 서늘한 기운이 필요하다. 정말이지 이곳은 벌써 하늘의 분노의 불로 타는 것 같다.”
그들은 예수께 어렵게 길을 터 드려, 이렇게 하여 가장 가까운 문으로 나갈 수가 있게 된다. 거기서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시려고 애쓰시지만 소용이 없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를 따르려고 한다.
제자들은 그 동안 거의 정오가 되어 태양에 번쩍이는 입방체(立方體)의 성전을 살펴보고 에페소의 요한은 선생님께 건축물의 훌륭함을 지적한다. “얼마나 굉장한 돌들이고 얼마나 굉장한 건축인지 보십시오”하고, “그렇지만 이것들 중에서 돌 위에 제대로 얹혀 있는 돌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렇습니까? 언제? 어떻게요?” 하고 여러 사람이 여쭈어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말씀을 안하신다.
예수께서는 모리아 개울을 내려가시어 오벨과 에브라임문 또는 거름문으로 지나 시내에서 나가셔서 우선, 즉 사도도 아니고 제자도 아니면서 예수를 따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사람들이 육중한 큰 대문을 열게 한 마나엔이 위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모두에게 “가시오, 여기는 내가 들어오라고 하는 사람들밖에는 들어오지 못하오”하고 말하자 천천히 떠나가는 동안, 왕의 정원 한 가운데로 피신하신다.
그늘과 적요, 꽃향기, 장미와 카네이숀, 육계(肉桂)껍질, 꿀풀, 그밖에 수없는 여러 가지 향초(香草)의 향기하며, 틀림없이 홍예처럼 우거진 잎들 밑에 있는 이웃 샘물과 빗물받이 웅덩이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의 졸졸거리는 소리하며, 새들의 지저귐 따위로 이 곳은 낙원과 같은 휴식 장소가 된다. 시내는 장식 홍예 창틀들로 어두워지거나 또 햇빛을 받아 눈부실 정도 까지 되는 좁은 거리들과, 냄새들과 항상 청소하지도 않는 하수구와 네발 가진 짐승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깨끗할 수가 없는 거리, 특히 덜 중요한 거리에서 풍기는 악취, 이런 것들을 간직한 채 여러 마일 떨어져 있는 것 같이 생각된다.
정원지기가 공손하면서도 친밀하게 예수께 인사를 드리고, 예수께서는 그의 아이들과 아내의 안부를 물으시는 것을 보면, 그가 예수를 썩 잘 아는 모양이다.
그 사람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싶어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더없는 즐거움의 산책용 정원인 넓은 왕의 정원의 시원하고 휴식이 되는 평온을 더 좋아하신다. 그리고 라자로의 지칠줄 모르고 지극히 헌신적인 두 하인이 음식 소쿠리를 가지러 가기 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주인아씨들에게 오시라고 하게. 우리는 여기서 내 어머니와 같이 몇 시간을 머물러 있을 터이니까. 그러면 매우 즐거울 걸세….
“선생님은 매우 피로하셨습니다! 얼굴에 그렇게 나타납니다” 하고 마나엔이 지적한다.
“맞았네. 하도 지쳐서 더 멀리 갈 힘이 없을 정도였네.”
“그렇지만 요사이 여러번 이 정원들을 선생님께 드렸었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선생님께 평온과 위안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를 아십니다.”
“마나엔, 알고 있네.”
“그런데 어제는 선생님이 그 근처가 대단히 마르고, 올해에는 이상하게 초목이 나지 않은 그 쓸쓸한 곳에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쓸쓸한 문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말입니다!”
“나는 내 사도들을 기쁘게 하려고 했네. 그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이야, 따지고 보면 큰 아이들이지. 그들이 저기서 얼마나 즐겁게 원기를 회복하고 있는지 보게!… 이 담 밖에서 내게 대해서 꾸미고 있는 것을 즉시 잊고 말일세….”
“그리고 선생님이 이다지도 괴로워하시는 것을 잊고요…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가 많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장소가 다른 때 더 위험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을 안하신다. 나는 요 며칠 동안 예수께서 이렇게 바라보시면서 말씀을 안하시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모른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제자들을 바라보기 시작하신다. 그들은 머리수건과 망토와 샌들을 벗고 얼굴과 손발을 시원한 작은 시냇물에 담가 식히는데, 72명의 제자들중 여럿이 그들이 하는 대로 한다. 제자들의 수가 이제는 휠씬 더 많다고 생각되는데, 그들은 모두가 이상의 우애관계로 결합하여 있으며, 예수께서 조용히 쉬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조금 떨어져서, 여기저기에 쉬기 위하여 눕는다.
마나엔도 예수를 조용하게 계시게 하려고 물러간다. 모두가 극도로 피로하신 스승의 후식을 존중한다. 예수께서는 정자의 역할을 하는 꽃핀 말리(茉莉)나무가 뒤덮인 밑으로 피해 가셨는데, 그 정자는 풀과 꽃이 잠겨 있는 작은 운하로 해서 졸졸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물줄기로 분리되어 있다. 그 곳은 진짜 피신처로 손바닥 폭 두 개되는 넓이에 네 개되는 길이를 가진 온통 말리꽃뿌리로 된 화환으로 꾸며진 작은 다리로 해서 들어가게 된다.
하인들은 마르타가 그를 섬기는 모든 사람의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고자 하였기 때문에 다른 하인들과 같이 돌아와서 그들의 여주인들이 곧 올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불러오게 하시어 그에게 말씀하신다. “내 형제 야보고와 함께 내가 하는 것처럼 강복하고 바친 다음 나누어 주어라.”
“나누어 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강복하는 것은 안됩니다. 주님, 바치고 강복하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네가 내게서 멀리 떨어져서 동료들을 지휘할 때에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주님이 저희와 같이 계시는 주님이 강복하십시오. 주님이 바치시고 저희에게 나누어 주시면 더 맛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충실한 시몬은 지쳐서 그 그늘에 앉아 계신 예수를 껴안고, 이렇게 주를 껴안고 입맞출 수 있는 것이 기뻐서 예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울인다….
예수께서는 몸을 일으키시며 그에게 이 기쁨을 안겨 주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쪽으로 가시어 음식을 바치시고 강복하신 후 나누어 주시고 그들이 즐겁게 먹는 것을 보시며 말씀하신다. “그런 다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리고 나중에 너희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 깨어 기도할 수 있게, 또 너희가 원기가 넘치고 완전히 깨어 있는 것이 필요할 때 피로와 쇠약으로 너희 눈과 정신이 마비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쉬어라.”
“선생님은 우리와 같이 안 계시겠습니까? 식사를 안하시겠습니까?”
“나를 쉬게 내버려다오. 내게 필요한 것은 이것뿐이다. 먹어라, 먹어!”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면서 가시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을 쓰다듬어 주시며 당신이 계시던 자리로 돌아오신다….
어머니가 당신 아들 곁으로 오시는 발걸음은 즐겁고 기분좋으시다. 마리아는 자신있게 앞으로 나아가신다. 왜냐하면 큰 대문 곁에서 지키고 있던 마나엔이 다른 사람들보다 덜 지쳐으므로 예수께서 계신 곳을 가리켜 드렸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들, 히브리인 여제자들- 로마인 여제자 중에서는 발레리아 혼자만 있는데- 그들은 풀 위에 누운 양들과 같이 나뭇잎 그늘에서 자고 있는 제자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얼마 동안 조용히 발걸음을 멈춘다. 6시(정오)이다.
마리아는 작은 나무다리와 땅의 자갈소리를 내지 않고 줄기가 지붕처럼 덮인 밑으로 들어와서, 피로에 못견디어 그 밑에 있는 돌팍에 머리를 얹고 잠드신 아들에게로 한층 더 조심하며 가까이 간다. 예수의 왼팔은 머리로 가려진 얼굴 밑에서 베개 노릇을 한다. 마리아는 피로한 아들 곁에 참을성 있게 앉아서 그를 들여다보신다…. 어떻게나 들여다보았던지… 그 입술에는 비통하고 다정한 미소가 떠오르고 눈물이 소리없이 가슴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마리아는 입술을 다물고 말이 없지만, 그의 마음은 있는 힘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며, 그 기도와 기도의 기운의 힘이 무릎위에 모아 잡은 손으로 나타난다. 그 손은 떨지 않으려고 꼭 깍지끼고 있지만 그래도 가볍게 떨리고 있다. 깍지낀 손은 주무시는 분의 얼굴에 잠을 깨울지도 모르는 귀찮은 파리가 앉으려는 것을 쫓기 위하여만 풀린다.
아들을, 그가 지켜볼 수 있는 아들의 마지막 잠을 지켜보는 어머니이다. 이 과월절 전 수요일에 어머니의 얼굴은 고통으로 인하여 창백해지고 모습이 쇠약해져 있기 때문에 주의 탄일의 어머니 얼굴과는 다르지만, 베들레헴의 구유에 몸을 숙이고 아기의 불편한 처음 잠을 사랑으로 보호할 때에 가졌던 것과 같은 다정한 눈길의 순결, 떨리는 보살핌이다.
예수께서는 몸을 움직이신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아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빨리 눈물을 훔치신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깨지 않으셨고, 얼굴이 위치를 바꾸어 다른 쪽으로 돌아누웠을 뿐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다시 꼼짝하지 않고 계속하여 아들을 지켜보신다.
그때 그 무엇인가가 마리아의 가슴을 부수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주무시면서, 그리고 희미하게 중얼중얼하시면서 우시는 것을 듣는 일이었다. 예수께서는 팔과 옷에 대고 꼭 다문 입으로 말씀을 하시고 유다의 이름을 부르시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일어나서 가까이 다가가서 아들에게로 몸을 숙인다. 마리아는 양손으로 가슴을 꼭 누르면서 그 어렴풋한 중얼 거림을 열심히 듣는다. 똑똑 끊어지기는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닌 예수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이 꿈을 꾸시고,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다시 꿈꾸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예수께서는 마침내 무엇인가 소름끼치는 것을 피하시려는 것처럼 소스라쳐 깨신다. 그러나 어머니의 가슴, 어머니의 팔, 어머니의 미소,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 어머니의 입맞춤, 어머니의 애무, 그리고 “너는 편안치 않아서 꿈을 꾸는 구나… 얘야, 지쳐서 땀이 흠뻑 났구나” 하고 말하면서 눈물과 땀을 닦아주려고 얼굴에 가볍게 스치게 하는 어머니의 베일을 만나신다. 어머니는 아들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주고 얼굴을 닦아주고, 어렸을 때처럼 무릎에 올려 놓을 수가 없으므로 가슴에 꼭 껴안는다.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언제나 어머니이십니다. 위로하시고 모든 것을 배상해 주시는 어머니, 내 어머니!”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곁에 앉히시고, 어머니 무릎위에 한 손을 내맡기신다. 마리아는 몹시 우아하지만 또 몹시 튼튼하기도 한 장인다운 그 긴 손을 그의 작은 두 손으로 잡고 손가락과 손등을 쓰다듬고, 주무시는 동안에 늘어뜨리고 있었기에 부풀어 오른 핏줄을 매끈하게 한다….
“우리 여럿이 왔다. 모두, 발레리아까지 왔단다. 다른 사람들은 안또니아에 있어. 글라우디아가 그들을 거기 있으라고 했는데, ‘몹시 슬퍼한다’고 그의 해방된 여종이 말했다. 글라우디아는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많은 눈물을 예상한다고 말한다. 미신이지!… 하느님만이 그 일들을 알으시니까….”
“여제자들은 어디 있습니까?”
“저기 정원 어귀에 있다. 마르타가 네가 지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네게 음식과 시원한 음료를 마련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봐라, 네가 이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져왔다. 이것이 내 분담이다. 어미가 만든 것이니까 더 맛이 있을 거다.”
마리아는 꿀과 두툼하게 구운 작은 빵과자를 예수께 보이면서 과자에 꿀을 발라 아들에게 주며 말한다. “네가 제일 더운 시간에 좀 쉬고 나서 잠이 깨서 더워하면 나는 서늘한 동굴에서 이 간식을 가지고 오곤 하던 나자렛에서와 같이….” 마리아는 목소리가 떨리기 때문에 말을 중단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보시며 말씀하신다. “그리고 아버지가 계실 때에는 두 사람 몫의 간식과 더 차게 하려고 흐르는 물에 담근 초벌구이 항아리에서 찬물을 떠 가지고 오셨지요. 그리고 물에는 야생 박하줄기를 넣어서 더 시원하게 하셨지요. 거기에는 올리브나무 밑에 박하가 얼마나 많았어요! 그리고 박하 꽃에 벌은 또 얼마나 많았구요! 우리 꿀에는 늘 그 향기가 배어 있었지요….” 예수께서는 생각하시고… 기억을 되살리신다.
“우리는 알패오를 보았단다. 요셉은 아이가 좀 아파서 지체했다. 그렇지만 내일은 틀림없이 시몬과 함께 이리로 올거다. 시몬의 살로메가 우리집과 마리아의 집을 보고 있단다.”
“어머니가 혼자 계시게 되면 누구와 같이 계시겠습니까?”
“아들아, 네가 같이 있으라고 하는 사람과 있겠다. 아들아, 나는 너를 가지기 전부터 네말을 들었다. 네가 나를 떠난 뒤에도 그렇게 하겠다.”
마리아의 목소리는 떨린다. 그러나 입술에는 용맹한 미소를 띠고 있다.
“어머니는 순종할 줄을 아십니다. 어머니와 같이 있으면 얼마나 마음편한지 모릅니다! 왠지 아시겠어요?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저는 순종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 아주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들 곁에서는 마음이 편안하십니다. 만일 불복종이 세상에 오지 않았으면,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당하시고 피로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세상의 고통이 오고… 거기에서 우리의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야, 우리의 평화도 거기서 온다. 우리는 우리의 순종이 영원하신 분을 위로해 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 특히 나로서는 이 생각이 기막힌 생각이다! 피조물인 내가 내 창조주를 위로해 드릴 수 있게 되다니!”
“오! 하느님의 기쁨! 오! 우리의 기쁨이신 어머니는 어머니가 방금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것인지를 모르십니다! 그 말씀은 하늘의 합창대의 화음보다 더 낫습니다… 찬미받으십시오! 제게 최후의 순종을 가르치시고 이 생각으로 그 순종을 지극히 하기 쉽게 해 주시는 어머니는 찬미 받으십시오!”
“내 예수야, 너는 내가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내가 모든 것을 네게 배웠으니까.”
“사람인 예수는 모든 것을 나자렛의 마리아에게서 배웠습니다.”
“그것은 네 빛이 내게서 나가던 것이다. 너의 빛, 그리고 사람의 형상속에 사라진 영원한 빛에서 오는 빛이었다… 요안나의 오라비들이 네가 한 연설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감탄해서 넋을 잃고 있다. 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해서 용감했다….”
“어머니, 지금이야말로 최고의 진리를 말해야 할 시간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그것들이 죽은 진리로 남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진리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랑과 준법으로 그들을 악에서 빼앗아 내기 위한 마지막 싸움을 시도해야 합니다.”
“사실이다. 요안나의 오라비들이 말하는데 회랑 밑의 어떤 방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던 가믈리엘이 끝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을 보고 ‘비난을 받고 싶지 않거든 올바르게 행동을 하는 것이지’ 하고 말하고, 이 말을 한 다음에 떠났다더라.”
“선생님이 제 말을 들었다는 것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런말을 전했습니까?”
“라자로가 그러더라. 그리고 라자로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 방에 있었던 엘르아잘이 말했다더라. 라자로는 6시(정오)에 왔었는데, 인사를 하고는 해질 때까지 붙잡아 두려고 하는 누이동생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돌아갔다. 라자로는 요한이나 다른 사람들을 보내서 과일들과 알맞게 핀 꽃들을 가져가라고 말했다.”
“내일 요한을 보내겠습니다.”
“라자로는 매일 온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그가 유령같다고 성을 낸다. 라자로는 성전에 올라갔다가 와서 명령들을 내리고는 다시 간다.”
“라자로도 순종할 줄을 압니다. 라자로까지 잡으려고들 하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누이동생들에게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라자로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제자들을 찾아 가십시다.”
“가만 있거라. 내가 가서 불러 오마. 제자들은 모두 자고 있다….”
“그러면 자게 내버려 두십시다. 제가 조용한 게쎄마니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그들은 밤에 별로 잠을 자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나갔다가 여자들과 같이 돌아오는데, 여자들은 어떻게나 발걸음이 가벼운지 이제는 무게가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여자들은 깊이 존경의 표를 보이며 인사하고, 다만 클레오파의 마리아만이 약간 친숙할 뿐이다. 마리아는 커다란 주머니에서 물기가 스며나오는 항아리를 꺼내고 마리아는 역시 초벌구이 단지에서 베다니아에서 온 싱싱한 과일들을 꺼내 언니가 마련한 것, 즉 불꽃에 올려 놓아 구워서 오독오독하고 입맛을 돋우는 비둘기 옆에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께 맛보시라고 말씀드린다. “잡수세요, 이 고기는 영양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준비했습니다.”
요안나는 또 요안나대로 분홍빛 식초를 가져왔다. 요안나는 설명한다. “식초는 이 첫 번 더위에 아주 시원하게 해 줍니다. 제 남편도 긴 기마여행을 한 후 지쳤을 때에도 식초를 씁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어요” 하고 살로메의 마리아와 클레오파의 마리아와 수산나와 엘리사가 사과를 하기 위하여 말한다. 그리고 니까와 발레리아도 역시 이렇게 말한다. “우리두요. 우리는 오게 되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 전부를 내게 주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또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잡수신다. 그러나 특히 마르타가 초벌구이 항아리에서 따라드리는 시원한 꿀물을 마시시고 기진한 분에게 기운을 돋구어 주는 싱싱한 과일들을 드신다.
여제자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께서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본다. 그들의 눈은 사랑과 불안을 나타낸다. 갑자기 엘리사가 울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말하면서 사과한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마음이 슬픔에 짓눌립니다….”
“우리 모두가 슬픔을 가지고 있어요. 궁궐에 있는 글라우디아까지도…” 하고 발레리아가 말한다.
“나는 벌써 오순절이었으면 좋겠어요.” 하고 살로메가 중얼거린다.
“나는 오히려 세월을 이 시간에 붙들어 매놓고 싶어요”하고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다.
“마리아야, 그러면 너는 이기주의자일 것이다” 하고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신다
“왜요, 선생님?”
“너는 너만을 위해서 구속의 기쁨을 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 또는 이 시간 때문에 속량될 사람이 수천 수백만이 있다.”
“그렇군요. 저는 그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막달라의 마리아는 눈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과 떨리는 입술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면서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전히 용맹한 전사여서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내일 오시면 선생님이 보내신 옷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옷은 시원해 보이고 깨끗해서 과월절 만찬에 어울립니다.”
“오마… 여러분은 내게 할 말이 없습니까? 말이 없고 몹시 슬퍼하는군요. 이제는 내가 예수가 아닙니까?…” 예수께서 여자들에게 상냥스럽게 웃으신다.
“오! 그야 예수님이시지요! 그렇지만 요사이는 어떻게나 커 보이시는지 이제는 선생님을 전에 안아 주던 어린아이처럼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고 알패오의 마리아가 외친다.
“그리고 나는 요한과 야보고를 찾아서 내 부엌에 들어오시던 보통 선생님처럼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고 살로메가 말한다.
“저는 선생님을 항상 이대로 알았습니다. 제 영혼의 왕으로!” 하고 막달라의 마리아가 단언한다.
그리고 요안나는 그윽한 즐거움을 잔뜩 안고 말한다. “저도 선생님이 죽어가는 저를 살려 주시려고 나타나신 꿈을 꾼 다음부터 하느님 같으신 분으로 알았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고 기운을 다시 차린 엘리사가 한숨을 지으면서 말한다.
“그리고 여러분도 모든 것을 내게 주셨습니다.”
“너무나 적게 드렸습니다!” 모든 여자가 말한다.
“선물이 이 시간 후에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내 충실한 제자들이 나와 함께 내 나라에 있을 때에야 비로소 끝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기 위하여 내 옆에 있는 열 두 옥좌에 앉지는 않겠지만 내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하는 합창을 하기 위하여 천사들과 같이 호산나를 노래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지금과 같이 여러분을 보면서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저는 젊으니, 주님의 나라에 올라 가려면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안나리아는 행복합니다!” 하고 수산나가 말한다.
“나는 늙었지만 늙은 것이 기쁨니다. 내게는 죽음이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엘리사가 말한다.
“나는 아들들이 있어서… 그 하느님의 종들에게 봉사하고 싶습니다!”
클레오파의 마리아가 한숨 짓는다.
“주님, 저희들을 잊지 마세요” 하고 막달라 마리아가 극도의 불안을 억제하며 말한다. 그의 영혼의 절규라고 나는 말하겠다. 그만큼 자는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작게 내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부르짖음보다도 더 감동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을 잊지 않고 오겠습니다. 요안나는 내가 아주 멀리 있어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지요…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남기겠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하느님의 나라에 가 있을 때까지 여러분 안에 나를, 내 안에 여러분을 간직해 줄 신비를 남겨 주겠습니다. 이제는 가시오. 여러분은 내가 너무 말을 적게 했다고, 그것쯤으로 여러분을 오게 한 것은 거의 쓸데없는 일이었다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나는 이해를 따지지 않고 나를 사랑한 마음들을 내 주위에 모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의 이스라엘의 왕을 위한 마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 예수를 위한 마음들을 말입니다. 가시오. 그리고 다시 한번 축복을 받으시오. 여기 오지 못했지만 사랑을 가지고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 안나, 미르따, 아나스따시까, 사라, 마르첼리나, 필립보의 딸들, 야이로의 미리암, 내게로 와서 내게는 남자들보다도, 가장 훌륭한 남자들보다도 더 나은, 오! 훨씬 더 나은 자매요 어머니였던 동정녀들, 해방된 여종들, 아내들, 어머니들도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모두, 모두에게 축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주는 이 축복으로 은총이 벌써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은총과 용서가 여자 위에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자아, 가시오….”
예수께서는 여자들을 보내시고 어머니만 남겨 놓으시고 말씀하신다. “저녁이 되기 전에 라자로의 저택으로 가겠습니다. 어머니를 또 뵐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요한도 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머니와 다른 여자들은 마리아와 마르타와 수산나만 원합니다. 하도 지쳐서요….”
“우리들만 있을 것이다. 잘 있거라….”
두분은 포옹을 하고 서로 헤어지신다…. 마리아는 천천히 가신다. 나가기 전에 돌아다보신다. 작은 다리를 떠나기 전에 또 돌아다보신다. 예수를 볼 수 있을 동안은 자꾸 돌아다보신다…. 예수에게서 멀어질 수 없는 것같이 보인다….
예수께서는 다시 혼자 계시다. 예수께서는 일어나 나가신다. 어린아이처럼 꽃 가운데에서 배를 깔고 자고 있는 요한을 부르러 가셔서 요안나가 예수께 가져온 분홍빛 작은 식초 단지를 맡기시면서 “오늘 저녁에 어머니께 간다. 하지만 우리 둘만 간다” 하고 말씀하신다.
“알겠습니다. 여자분들이 왔습니까?“
“응, 너희를 깨우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잘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더 기쁘셨겠습니다. 여자분들이 저희들보다 선생님을 더 사랑할 줄 알거든요…”하고 요한은 울먹이며 말한다.
“나하고 같이 오너라.”
요한은 예수를 따라간다.
“무슨 일이냐?” 음식이 남아 있는 지붕같이 된 나뭇가지 밑에 초록 빛도는 희미한 빛 속으로 다시 들어오자 예수께서 요한에게 물으신다.
“선생님, 저희는 아주 나쁩니다. 모두요. 저희들에게 순종이 없고… 선생님과 같이 남아 있고자 하는 욕망이 없습니다. 베드로와 시몬까지도 떠났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그 기회를 타서 말다툼을 걸었습니다.”
“유다도 갔느냐?”
“아닙니다 주님. 그 사람은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선생님을 보호하기 위해 꾀하는 음모에 그는 공범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안나의 집에 가고 다른 사람들이 여기 머물러 있는 갈릴래아 사람들을 만나러 간 것은 나쁜 짓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또 저는 요나의 시몬과 열렬한 사람 시몬도 수상한 술책을 꾸밀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마라. 사실 너희가 쉬고 있는 동안 유다는 아무데도 갈 필요가 없었다. 유다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로 가면 좋을지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다른 제자들 앞에서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것이다. 안심해라, 내 어린 양.”
“제가 선생님의 어린 양이라구요? 어린 양은 선생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 네가 어린 양이다. 나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고, 너는 하느님의 어린 양의 어린 양이다.”
“오!!! 또 한 번, 선생님을 모시던 시초에 벌써 이 말씀을 제게 하셨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녹음이 우거진 가운데에서 지금처럼 둘만이 있었습니다. 화창한 계절이었습니다.” 요한은 머리에 떠오르는 추억으로 매우 유쾌하다. 그래서 속삭인다. “저는 여전히 아직도 하느님의 어린 양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쓰다듬어 주시고, 양피지에 싸여서 탁자 위에 남아 있는 구운 비둘기 고기 한 덩어리를 주신다. 그런 다음 즙이 많은 무화과를 쪼개서 주시고 요한이 먹는 것을 보시며 기뻐하신다. 예수께서는 탁자가에 비스듬히 앉으셔서 얼마나 요한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시는지 요한이 이렇게 여쭈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제가 게걸스럽게 먹어서 그러십니까?” 하고.
“아니다. 네가 어린애 같기 때문이다… 오! 귀여운 것아! 너의 그와 같은 마음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사도의 금발에 입맞추시려고 몸을 숙이시며 말씀하신다.
“이대로, 언제까지나 이대로 교만도 원한도 없는 너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라. 잔인성이 폭발하는 시간에도 이대로 남아 있어라. 얘야, 죄를 짓는 사람들을 본받지 말아라.”
요한은 다시 불안하여져서 말한다. “그렇지만 저는 시몬과 베드로를… 다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네가 그들을 죄인으로 믿으면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마셔라. 이것은 맛있고 시원한 음료이다. 마르타가 만든 것이다… 이제는 네가 배불리 먹어라. 이 때까지 네가 확실히 식사를 제대로 끝내지 못했었다고 생각했다.”
“사실입니다. 눈물이 나서요. 사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우리중의 한 사람이 암시를 하다니….”
“그 생각은 이제 하지 말아라. 너와 나는 시몬과 열렬한 사람이 정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불행히 유다가 죄인이라는 것도 너도 안다. 하지만 지금은 말하지 말아라. 많고 많은 세월이 지난 후 내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모두 말하는 것이 좋다. 그 때에는 내가 사도에게서 받은 것 외에 그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서 받은 고통까지도 말하여라. 가자. 이제 이곳을 떠나 갈릴래아 사람들의 야영지에 갈… 시간이다.”
“우리가 오늘밤도 거기서 지낼 참입니까? 그리고 그전에 게쎄마니에 갑니까? 유다가 그것을 알고 싶어하던데요. 그는 한데서 그다지도 짧게, 그리고 불편하게 쉬는 데 지쳤다고 합니다.
“그것도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내 뜻을 유다에게 말하지는 않겠다…”
“선생님이 그러실 의무는 없지요. 선생님이 우리를 인도하셔야지, 우리가 선생님을 인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요한은 배신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한다. 며칠 전부터 예수께서는 무엇을 하실 작정이라는 것을 절대로 말씀하지 않으시는 신중의 이유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잠자는 사람들 가운데 와 있다. 잠자는 사람들을 부른다. 이들은 잠을 깬다. 한편 마나엔은 그의 임무를 다하고 나서 남아 있을 수가 없다고, 또 다음 날은 저택에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성전에서 선생님 곁에 모시고 있지 못하겠다고 용서를 빈다. 이 말을 하면서 마나엔은 그동안 돌아온 베드로와 시몬을 뚫어지게 바라보니 베드로는 “알았다”고 말하려는 듯이 빨리 머리로 표시를 한다.
그들은 정원에서 나간다. 아직 덥다. 아직 해가 있다. 그러나 벌써 저녁의 미풍이 더위를 식히고 말간 하늘에 작은 구름 몇 조각을 몰고 간다.
그들은 나환자들이 있는 곳을 피하여 실로암으로 해서 올라간다. 예수를 믿을 줄을 알지 못하는 몇 명 안되는 남아 있는 나환자들에게 열렬한 사람 시몬이 자기들이 식사하고 남은 것을 갖다 줄 참이다.
전에 목자였던 마티아가 예수께 가까이 와서 여쭙는다. “주님이신 선생님, 저는 동료들과 같이 선생님의 말씀을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피곤해서 저희가 내놓았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전에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전보다도 더 바보가 되었습니다. 요사이 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저희가 잘 알아들었다면, 선생님은 비록 율법은 변하지 않고 남아 있겠지만 다른 많은 것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새 예언자들과 현자들과 율법학자들과 더불어 새 성전을 지어야 할 것이며, 사람들이 그 새 성전에 도전을 하겠지만, 역시 제가 잘 알아들었다면, 이 성전은 멸망하기로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새 성전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성전은 멸망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다니엘의 예언을 경계해라….”
“그렇지만 왕들이 이 성전을 짓느라고 고생을 했는데, 가난하고 수효도 별로 많지 않은 저희가 어떻게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 성전은 어디에 지어야 합니까? 저 사람들이 선생님을 보내신 분으로 찬미할 때까지는 이곳이 황폐한 채로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여기는 아니겠구요.”
“그렇다.”
“선생님의 나라 안에도 아니지요. 저희는 선생님의 나라가 정신적인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성전을 어떻게 어디에 세워야 하겠습니까? 선생님은 진짜 성전은 -그러면 이 성전은 진짜가 아닙니까?- 진짜 성전은, 저들이 그것을 파괴했다고 믿을 때에야말로 진짜 예루살렘으로 개선해야 올라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진짜 예루살렘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희들 마음은 매우 혼란합니다.”
“사실이 그렇다. 원수들더러 진짜 성전을 허물라고 해라. 나는 사흘 만에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 그리고 그 성전은 사람이 해할 수 없는 곳에까지 이르러서 다시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로 말하면, 그것은 너희들 안에 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 어느 곳에나 있다. 지금 당장은 흩어져 있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온 땅 위에 퍼질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영원하고, 하나가 되고 완전하게 될 것이다. 그곳 하느님의 나라에, 즉 내 가르침, 하느님의 나라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새 성전이 지어질 것이다. 너희가 가난하고 수효가 별로 많지 않으니 어떻게 새 성전이 세워지겠느냐고? 오! 사실을 말하자면 개인이나 집단에 하느님께서 계실 집을 짓는 데에는 돈도 권력도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들 안에 있다. 그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가진 모든 사람의 일치, 그들 안에 하느님을, 은총이신 하느님, 생명이신 하느님, 빛이신 하느님, 사랑이신 하느님을 모신 모든 사람의 일치가 이 땅 위에 하느님의 위대한 나라, 즉 새 예루살렘을 세울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세상 끝까지 퍼지게 되고 완성되고 완전하고 결함이 없고 어두움이 없이 하늘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어떻게 해서 너희가 성전을 도성을 세우겠느냐? 오! 이 새 것들을 세우는 것은 너희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그저 하느님께 너희들 착한 뜻을 드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착한 뜻이다. 내 가르침을 사는 것이 착한 뜻이다. 너희들이 결합하여 있는 것이 착한 뜻이고, 가장 작은 모든 부분에 이르기까지 오직 하나의 체액으로 영양을 취하는 오직 하나의 몸을 이루기까지 내게 결합하여 있는 것이 착한 뜻이다. 오직 하나의 기초 위에 서 있고 신비스러운 단결로 결합하여 있는 오직 하나의 건물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분께 기도를 드리라고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고 또 내가 죽기 전에 너희를 위해 그분께 기도 드릴 아버지의 도움이 없이는 너희들이 사랑과 진리와 생명 안에, 즉 역시 나 안에, 그리고 우리는 유일한 천주성이므로 나와 더불어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 있지 못하겠기 때문에, 끝을 알지 못할 성전이 되려면 너희 안에 하느님을 모시라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 자신으로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우지 않으시면,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머무르지 못하실 곳에는 세우실 수가 없다. 사람들이 지으려고 또는 다시 지으려고 움직여도 쓸데없는 것이다. 새 성전 즉 내 교회는 너희 마음이 하느님의 집이 될 때에야 비로소 세워질 것이고, 하느님께서 살아 있는 돌들인 너희를 가지고 당신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요나의 시몬이 교회의 우두머리라고, 그 위에 선생님의 교회를 세우실 돌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또 선생님이 그 교회의 주춧돌이라고 이해시키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도대체 누가 교회의 우두머리입니까? 그 교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중단한다.
“나는 교회의 신비적인 우두머리이고 베드로는 볼 수 있는 우두머리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말과 고통과 내게 충실했던 사람들의 벗이 될 성령을 통하여 너희들에게 생명과 빛과 은총을 남겨주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영적인 몸인 교회와 하나이며, 그 머리이다. 머리에는 뇌, 즉 정신이 들어 있다. 정신은 지식의 본거이고, 뇌는 지체를 움직이는 데 있어서 다른 어떤 자극보다 더 힘이 강한 비물질적인 명령으로써 지체들의 움직임을 지휘하는 것이다. 죽은 송장의 뇌를 살펴보아라. 그 지체에 혹 움직임이 있느냐? 완전히 바보인 어떤 사람을 살펴보아라. 그는 아마 가장 하등 동물, 우리가 지나가면서 밟아 죽이는 벌레가 가지고 있는 저 불완전한 본능적인 움직임까지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둔하지는 않겠지? 마비로 인해서 지체들 중의 하나나 혹은 여러 지체의 뇌와 접촉이 끊어진 어떤 사람을 살펴보아라. 혹은 머리와의 생체유대를 잃은 부분에 움직임이 있겠는가? 그러나 정신이 그 비물질적인 명령으로 지휘하지만, 다른 기관들, 즉 눈, 귀, 혀, 코, 피부 따위가 감각을 정신에 전달하고, 또 신체의 다른 부분들이 지능이 비물질적인 것만큼 물질적이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기관에 의해서 통고를 받는 정신이 명령하는 것을 이행하고 또 이행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앉아라 하고 말하지 않고 너희를 이 산 비탈에 앉게 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앉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너희는 내가 내 생각을 말로 나타내지 않고 내 혀와 입술을 써서 내 생각을 너희에게 말하지 않는 한 너희는 그것을 모른다. 만일 내가 다리가 피곤하기 때문에 앉겠다는 생각을 하기만 한다 해도 다리가 구부러져서 이렇게 나를 앉히기를 거절한다면 나 자신을 앉을 수 있겠느냐?
정신은 사고력이 생각하는 작용을 하고 또 하게 하는 대 기관과 지체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내 교회라는 영적인 몸에는 나는 지능, 즉 지능의 본거는 머리인 것이고, 베드로와 그의 협력자들은 반응을 관찰하고 감각을 포착하여 그것들을 정신에 전달해서 정신으로 하여금 비추고 몸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해야 할 것을 명령하게 하고, 그 다음에는 그들이 내 명령으로 비추어지고 인도되어 말을 하고 몸의 다른 부분들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물건을 밀어내거나 썩은 물건이어서 부패시킬 수 있는 것을 물리치는 손과 너희를 부딪치지 않게 하고 넘어져서 다치지 않고 건너뛰는 발은 지휘하는 부분에게서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어린아이 뿐 아니라, 남에게서 받은 충고나 누가 해 준 말로 인해서 어떤 위험에서 구함을 받았다든지 교육, 이익, 결혼, 유리한 결연 따위의 어떤 이득을 본 어른까지도 그 충고와 그 말로 인해서 스스로를 해치는 일을 피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우두머리들은 하느님의 생각으로 인도되고 하느님의 빛으로 비추어지고 영원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 명령과 권고를 줄 것이고, 지체들은 영적인 건강과 이득을 얻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내 교회는 벌써 초자연적인 머리, 하느님이신 머리를 가지고 있고 제자들 이라는 지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 존재한다. 아직은 작다. 지금 생겨나고 있는 싹으로서, 그것을 지휘하는 머리 안에서만 완전하며, 나머지 다른 부분은 불완전하다. 완전하게 되려면 하느님께서 손을 대셔야 하며 커지려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정말이지 내 교회는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그 머리인 분과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의인들의 착한 뜻의 덕택으로 거룩하다. 이 교회를 향하여 마귀와 마귀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지옥이 수없이 덤벼들 것이고 수없이 많은 형태로 공격할 것이지만, 그들은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이 건물은 영원히 끄덕없을 것이다.
그러나 건물은 돌 하나만으로 되어 있지 않다. 저기 석양을 받아 아름다운 넓은 성전을 살펴보아라. 저것이 혹시 돌 하나 만으로 되어 있느냐? 저것은 하나의 조화있는 단일체,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는 돌의 총체이다. 우리는 성전이라고 말한다. 즉 하나의 단일체이다. 그러나 이 단일체는 그것을 구성하고 형성한 수많은 돌로 이루어져 있다. 기초가 나중에 벽과 지붕을 떠받치게 되어 있지 않고, 그 위에 벽돌이 세워지게 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기초를 다지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또 이렇게 큰 덩어리에 알맞은 튼튼한 기초를 우선 다지지 않았더라면 벽을 올리고 지붕을 떠받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새 성전도 부분들의 상호 의존으로 세워질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너희는 덩어리가 큰데도 내가 완전하게 다져 준 기초 위에다 새 성전을 세워라. 하느님의 지도 아래 그것을 세우기 위해 사용된 물건, 즉 하느님이 사시는 정신들의 착함을 가지고 그것을 지어라. 너희 마음으로 반들반들하고 금가지 않은 돌을 만들기 위하여 너희 마음 속에 하느님을 모시고 말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의 법칙과 더불어 너희 마음에 세워질 것이다. 너희 마음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져 있지 않으면 너희는 튼튼하지 못한 덜 구워진 벽돌과 벌레먹은 나무와 갈라지고 추위로 터진 돌이 되어 집짓는 사람이 신중한 사람이면 버릴 것이고, 혹은 아버지께서 성전 건축을 맡기신 건축가가 자신을 숭배하고 마음 속으로 젠 체하면서 세워지는 건축물과 그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쓰는 재료를 돌보지도 않고 애도 쓰지 않는다면 그 때문에 지탱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내려 앉아서 일부분은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우상숭배자인 건축가, 우상숭배자인 지도자, 우상숭배자인 관리자, 도둑들! 하느님의 신뢰와 사람들의 존경을 도둑하는 자들, 이익을 얻을 가능성을 가지는 것으로 만족하고 많은 건축자재를 가지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 자재들이 좋은 것인지 또는 무너지는 원인이 되는 나쁜 것인지에 주의도 하지 않는 도둑이요 교만한 자들이다.
너희들, 새 성전의 새 사제와 율법학자들은 들어라. 너희와 너희 뒤에 올 사람들이 자기를 숭배하고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신자들을 보살피고 감시하여 외양만을 보고 돌과 목재의 품질을 살펴보고 시험하지 않으면, 그리고 의심스럽거나 혹은 완전히 해로운 건축재료를 성전에 쓰이게 하고, 빈축을 사게 하고 화근을 유발함으로써 붕괴의 원인이 되면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들이 갈라진 틈이 생기게 내버려두고, 튼튼하고 완전한 기초 위에 균형이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무너질 안정성이 별로 없고 조잡한 벽이 만들어지게 내버려두면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이 재난은 교회의 설립자이신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고 너희 모두에게서 올 것이니, 너희는 주와 사람들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부지런하고 잘 살펴보고 식별(識別)을 잘 하고 신중하여라! 두꺼운 벽에서는 중대한 화근이 되는 돌과 벽돌과 약한 들보도 덜 중요한 부분에서는 쓰일 수 있고, 또 잘 쓰일 수 있다. 이와 같이 너희들은 선택할 줄을 알아야 한다. 약한 부분에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게 사랑으로 그렇게 하고, 하느님께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고 하느님의 건물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단호하게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만일 너희가 어떤 주요한 모퉁이를 떠받치라고 벌써 놓여져 있는 돌이 좋지 않거나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거든 용감하고 과감하게 그 돌을 그 자리에서 빼낼 줄을 알아라. 그리고 그 돌을 거룩한 열성의 정으로 쪼아 각도를 냄으로써 괴롭혀라. 돌이 아파서 소리를 질러도 상관없다. 그 돌이 나중에는 너희가 그것을 구원했기 때문에 두고두고 너희를 찬미할 것이다. 그 돌을 옮겨놓고 다른 기능을 맡겨라. 그 돌이 빈축과 붕괴의 대상이 되고 만일 너희 일을 거역한다는 것을 알게 되거든 완전히 치워버리는 것까지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돌을 얼마 안 쓰는 것이 많이 채우는 것도 낫다. 서두르지 말아라.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는 것은 만드시기 전에 잘 생각해보셨기 때문에 영원하다. 영원한 대신 새 성전은 세기가 계속 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우주를 보아라. 수세기, 수천 세기부터 우주는 하느님께서 계속적인 작용으로 만드신 그대로이다. 주를 본받아라.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하여라. 그분의 율법을 너희 안에, 그분의 나라를 너희 안에 가져라, 그러면 너희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으면 건물이 무너질 것이고, 너희가 그것을 세우느라고 고생을 한 것은 헛일이 될 것이다. 그 건물은 무너지고 거기에서 남는 것은 오직 모퉁이돌, 주춧돌뿐일 것이다… 저 성전도 그렇게 될 것이다! …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저 성전도 그렇게 될 것이다. 또 너희들의 새 성전도 이 성전에 있는 것과 같은 교오와 탐욕과 죄악과 음란 따위의 병든 부분을 두면 그와 같이 될 것이다. 저 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것같이 보이던 그렇게도 우아하게 아름답던 저 구름 정자가 한번의 바람으로 해체되는 것같이 거룩한 것이라고는 이름밖에 아닌 건물들도 초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벌(조벌)의 바람이 불면 무너질 것이다….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고 생각에 잠기신다. 말씀을 하실 때에는 “여기 앉아서 조금 쉬자”고 명령하신다.
그들은 넘어가는 해가 비추는 성전을 마주보고 있는 올리브나무 산의 비탈에 앉는다. 예수께서는 서글프게 그 장소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신다. 다른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자랑스럽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의 자부심에는 아까 하신 스승의 말씀으로 불안의 베일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저 아름다움이 정말 무너지게 될 것인가?…
베드로와 요한은 둘이서 말을 하고 있다가 그들 곁에 있는 알패오의 야보고와 안드레아에게 무엇인가 속삭이니 이들도 머리로 좋다는 표시를 한다. 그러나 베드로가 스승께로 돌아앉아 말한다. “외따로 오셔서 성전 파괴에 대한 선생님의 예언이 언제 실현되겠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다니엘이 그 말을 합니다만, 만일 다니엘이 말하는 것과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된다면, 성전은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군대도 보이지 않고 전쟁준비도 보이지 않습니다. 대관절 그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 징조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선생님은 오셨는데, 곧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일은 선생님이 사람들 가운데 계실 때에만 일어날 것임을 저희는 압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돌아오시겠습니까? 언제 돌아오십니까? 저희들이 알게 설명을 해 주십시오….”
“따로 떨어질 필요는 없다. 너도 보는 것처럼, 너희 열 두명을 크게 도와줄 가장 충실한 제자들이 남아 있다. 그들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들어도 된다. 다들 가까이 오너라!” 하고 끝에 가서는 모든 사람을 모으려고 외치신다.
비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예수와 사도들이 주된 집단 주위에 밀집하여 빽빽한 집단을 이루고 귀를 기울인다.
“장차 아무 꼬임에도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내가 그리스도이고 다른 그리스도는 없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와서 너희에게 ‘내가 그리스도다 ’ 하고 말해서 많은 사람을 사로잡더라도 너희는 그 말을 믿지 말아라. 그 말에 기적들이 곁들여지더라도 믿지 말아라. 거짓말의 아비이고 거짓말쟁이들의 보호자인 사탄이 그의 종들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거짓 기적을 써서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적들은 항상 공포와 불안과 거짓말과 연이어져 있기 때문에 진짜 기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의 기적들을 너희는 안다. 그것들은 거룩한 평화와 기쁨과 구원과 믿음을 주고, 거룩한 소원과 거룩한 일로 이끌어 간다. 그런데 다른 기적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너희는 장래에 거짓 그리스도와 백성들의 구원자라는 탈을 뒤집어쓰지만 반대로 백성들을 멸망시킬 맹수에 지나지 않는 자들의 행동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기적들의 형태와 결과를 심사숙고하여라.
너희들은 또 전쟁과 전쟁의 풍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할 것인데, 그들은 ‘이것이 종말의 징조들이다’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당황하지 말아라. 그것은 종말이 아닐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종말 전에 와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 종말은 아닐 것이다. 한 국민이 다른 국민을 거슬러,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거슬러,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한 대륙이 다른 대륙을 거슬러 들고 일어날 것이고, 흑사병과 기근과 지진이 여러 곳에서 뒤이어 올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난의 시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은 너희를 고생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고, 너희에게 그들의 고통의 책임을 돌리면서, 그리고 내 종들을 박해하고 파멸시킴으로써 그들의 고통에서 나오기를 희망하여 너희를 죽일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죄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당하는 불행의 원인을 죄없는 사람들에게 돌린다. 그들은 완전히 무죄하시고 지극히 착하신 하느님 자신이 그들의 고통의 원인이라고 그분을 탓하고 너희들에게 대하여 그렇게 행동할 것이며,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을 것이다. 사탄이 그들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서로 분노하고 서로 배반하고 서로 미워할 터인데, 역시 사탄이 그들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오류로 끌어들일 것이다. 그렇게 많은 악의 참다운 장본인은 역시 사탄일 것이다. 또한 죄악이 많아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이 식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항구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전에 하느님의 나라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을 위한 증언으로서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한다. 그 때에는 종말이 올 것이다. 그를 맞아주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고, 온 세상에 내 가르침이 전해질 것이다.
그런 다음 다른 징조가 하나 있을 것이다. 성전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징조이다. 다니엘이 말한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을 보게 되거든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알아듣고 예언서를 읽는 사람은 글 뒤에 숨은 뜻을 알아채기 바란다- 유다에 있는 사람은 산으로 도망가고, 옥상에 있는 사람은 집안에 있는 것을 꺼내려고 내려오지 말고, 밭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도망가는 일을 더 계속하지 못하게 되는 일을 당하지 않도록 돌아다보지 말고 도망갈 것이며, 도망가면서도 마음 속에 소름끼치는 광경을 간직하고 그로 인하여 미치지 않도록 돌아다보지 말 것이다. 그 때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 할 것이다! 그리고 도망가는 일이 안식에 일어나게 되면 불행할 것이다! 도망가는 것으로 죄를 짓지 않고 구원을 받기에 충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겨울이나 안식일에 피난가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여라. 그 때가 오면 무서운 재난을 겪을 터인데, 그런 재난은 세상 처음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없을 것이다. 그것이 종말일 터이니까. 만일 선택된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줄여 주시지 않는다면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마귀같은 사람들이 지옥과 합세하여 사람들을 괴롭히겠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또 주께 충실한 채로 있을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올바른 길에서 끌어내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그리스도가 저기 있다. 이 곳에 있다, 보아라’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겠지만 아무도 그들을 믿어서는 안된다.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예언자들이 나타나서 어떻게 해서라도 간선된 사람들마저 속이려고 기적과 이상한 일들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매우 적절하고 하도 훌륭한 교리를 말해서 만일 가장 착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진리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기적과 그 교리가 사탄에게서 온다는 것에 대해서 그들을 비추어 주실 하느님의 성령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들까지도 유혹을 당할 정도이다. 내가 이 말을 너희에게 한다. 내가 이것을 예언하는 것은 너희가 올바르게 처신할 수 있으라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넘어질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가 주안에 남아 있으면 유혹과 멸망에 끌려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 위를 걸어다닐 능력을 주었고, 모든 것이 너희에게 굴복할 것이므로 원수의 모든 힘에서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는 말을 내가 너희에게 한 것을 기억하여라. 그러나 그 능력을 얻으려면 하느님을 너희 안에 모시고 있어야 하고, 또 너희가 악의 세력과 독있는 것들을 제압하기 때문에 기뻐할 것이 아니라 너희 이름이 하늘에 씌어 있기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는 것도 상기 시킨다. 너희는 주 안에, 진리 안에 남아 있어라. 나는 진리이고 진리를 가르친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되풀이 말하지만 내게 대해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믿지 말아라. 나만이 진리를 말했다. 나만이 그리스도가 오리라고, 그러나 종말이 되었을 때에 오리라고 너희에게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광야에 나타났다’고 말해도 그리 가지 말고, ‘그리스도가 이 집에 있다’고 해도 믿지 말아라. 과연 사람의 아들이 두 번째 올 때에는 동쪽에서 쳐서 눈 깜짝할 사이보다도 더 빠르게 서쪽까지 번쩍이는 번개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이 번개는 갑자기 시체가 된 큰 몸 위를 빛나는 천사들을 거느리고 미끄러지듯이 지나가서 심판을 할 것이다.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 드는 법이다.
사람들이 말한 이 마지막날들의 재난이 지나간 다음에는 – 나는 지금 이 시대와 세상의 종말과 예언자들이 말하는 해골들의 부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을 것이며 별들이 마치 너무 익은 송이의 알들이 그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듯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 바로 그때 어두워진 하늘에 번개같은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울부짖을 것이며, 사람들은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사람의 아들을 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그의 천사들에게 명하여 곡식과 포도를 걷어들여서 낟알과 가라지를 갈라놓고 포도송이는 양조통에 넣게 할 것이다. 그것은 아담의 자손의 큰 추수의 때가 왔기 때문일 것이고, 작은 포도송이나 씨앗을 간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니 인류가 결코 죽은 땅 위에 영속하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울려 퍼지는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가 뽑은 사람들을 불러모아, 하느님이신 심판관 옆에 앉아 그와 함께 마지막 산 사람들과 부활하였을 사람을 심판하게 할 것이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배워라.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그리스도가 문 앞에 다가온 줄을 알아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나를 원치 않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내 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내가 말하는 것은 일어 날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변할 수 있으나 내 말은 변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은 사라지겠지만 내 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주의 천사들까지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가 오기전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거처를 정하고 하다가 하늘의 폭포가 터지고 홍수가 나서 모든 생물과 모든 것을 휩쓸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함께 밭에 있으면 조국의 원수들과 보다 한층 좋은 씨앗과 가라지를 갈라 놓을 천사들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고,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준비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다시 이것을 생각하여라. 만일 집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간에 오는지 알면 깨어 있어 제 집을 빈털터리로 만들게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이 갖가지의 악습과 무절제한 생활로 무감각상태에 빠지는 일 없이, 너희들의 정신이 세상의 일에 지나치게 마음을 씀으로 인하여 하늘의 일에서 멀어지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 없이, 그리고 너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 죽음의 올가미가 갑자기 너희를 낚아채는 일이 없이 항상 주인이 오는 것에 대비하면서 깨어서 기도하여라. 너희 모두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죽을 운명을 지니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이 개별적인 내림이 그 죽음과 그에 따르는 심판인데, 이 심판은 사람의 아들이 장엄하게 올 때에 모든 사람을 위해 되풀이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인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집의 다른 하인들에게 양식을 주라는 책임을 맡긴 그 하인은 어떻게 되겠느냐? 만일 집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서 그 하인이 제가 해야 할 일을 정성껏 정의와 사랑으로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 하인은 다행한 운명을 맞이 할 것이다. 정말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주인은 ‘착하고 충실한 종아 오너라. 너는 내 상급을 받을 만한 일을 했으니, 자, 내 모든 재산을 관리해라’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착하고 충실한 것처럼 보이고, 겉으로 위선적인 것만큼 속으로는 나쁜 사람이어서 주인이 떠난 다음 마음 속으로 ‘주인이 더디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즐겁게 지내자’ 하고 말하고 다른 하인들을 때리고 학대하기 시작하고 방탕아들과 주정뱅이들과 사용하기 위한 돈을 더 마련하기 위해 다른 하인들의 식량과 갖가지 물건을 가지고 폭리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 하인은 주인이 아주 가까이 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에 갑자기 돌아와서 그의 나쁜 행실이 탄로 나면 그의 자리도 돈도 빼앗길 것이고, 정의가 원하는 곳으로 쫓겨나 거기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어떻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지, 또 심판이 어떻게 임박했는지 생각하지 않고 ‘이 다음에 뉘우치겠다’고 말하면서 즐기고 악용하여 회개하지 않은 죄인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정말 너희에게 말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시간이 없을 것이고, 다만 하느님께 대한 모독의 말과 울음과 고통밖에 없는 무섭게 소름끼치는 곳에 영원히 남아 있도록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그의 온 존재를 가지고 죄를 지은 것처럼 최후 심판에 온전한 사람으로 나타나기 위하여 부활한 그의 육체를 다시 뒤집어쓰게 될 때에만 비로소 그곳에서 나와. 그의 육체와 영혼을 가지고 그가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았던 심판관 예수앞에 나타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사람의 아들 앞에 있을 것이다. 땅과 바다가 돌려 주어 오랜 세월 동안 먼지가 되었다가 다시 구성된 육체의 무한한 무리와 육체 안에 들어있는 영들, 해골에 돌아온 각 육체에 전에 그것에 생명을 주던 그 자신의 영과 다시 합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하느님의 위엄을 갖추고 그의 천사들이 받쳐들고 있는 영광의 옥좌에 찬란하게 앉아 있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아들은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사람들을 서로 갈라놓아 착한 사람들을 한 쪽으로, 악한 사람들을 다른 쪽으로 가게 할 것인데,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호의를 가진 모습으로, 거룩한 육체가 빛나는 가운데 영광스럽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용히 그들의 마음의 온 사랑을 담은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사람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려, 너희는 내가 굷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이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고 말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왼편에 있는 사람들 쪽으로 몸을 돌리고 엄한 태도로 말 할 것인데, 그의 눈길은 버림받은 사람들을 전율하게 하는 화살과 같을 것이고 그의 목소리에는 하느님의 분노가 꽝꽝 울릴 것이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과 세 가지 격정과 음란한 격정의 목소리로 그들의 말을 들을 자들을 가두려고 하느님의 격노가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히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너희는 오직 한 가지 법칙, 즉 너희 자아의 쾌락밖에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주님께서 언제 굷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습니까? 정말이지 저희는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저희는 세상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임금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세상에 있을 때에 너희는 세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가 나를 알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도 나의 말을 알았고 너희 가운데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헐벗은 사람, 병자,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있었다. 나에게 어쩌면 해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을 왜 그들에게 해주지 않았느냐? 내가 그들 가운데 있었던 그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자비로왔다고 말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내 형제들 안에 있고, 그들중의 하나가 고통을 당하는 곳에 내가 있으며, 너희가 가장 보잘 것 없는 내 형제 중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은 사람들의 맏이인 나에게 거절한 것임을 너희가 알지 못했더냐? 가서 너희 이기주의 안에서 불타라. 가라, 그리고 빛과 사랑의 불이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암흑과 얼음인 채로 있었으니, 암흑과 얼음이 너희에게 휩싸게 하겠다.’ 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갈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위에 말한 것은 미래는 이러하리라는 것이다… 이제는 가라. 그리고 서로 떨어지지 말아라. 나는 요한을 데리고 간다. 초경 중간쯤에 너희 곁으로 오겠는데 쉬고, 그런 다음 우리가 공부를 하기 위해서이다.”
“오늘 밤에두요? 매일 밤 이렇게 해야 합니까? 저는 이슬 때문에 온 몸이 쑤십니다. 이제부터는 어떤 인심 좋은 집에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늘 천막 밑에! 늘 깨어 있어야 하고, 그것도 차고 축축한 밤에 말입니다…” 하고 유다가 탄식하며 말한다.
“이것이 마지막 밤이다. 내일은… 다를 것이다.”
“아! 저는 선생님이 매일밤 게쎄마니에 가시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면….”
“유다야,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 갈릴래아 사람들의 야영지에서 지내는 마지막 밤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일은 우리가 과월절을 준비하고 어린 양을 먹은 다음 나는 게쎄마니에 가서 혼자 기도를 드리겠다. 그리고 너희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그렇지만 주님, 우리는 주님과 같이 가겠습니다. 대관절 언제 저희가 주님을 떠나려고 했습니까?”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과오를 범하고 있는 자네는 입닥쳐. 자네하고 열렬한 사람하고는 선생님이 자네들을 보지 않으시게 되기가 무섭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일밖에 안해. 나는 자네들을 지켜보고 있어. 성전에서… 낮 동안에…저기 천막에서….” 가리옷의 유다는 일러바치는 것을 기뻐하며 말한다.
“그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잘 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를 혼자 버려두지 말아다오… 제발 ….”
“주님, 저희는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저희 행동은 하느님께서 아시는데, 하느님께서는 불쾌하게 눈을 돌리지 않으십니다” 하고 열렬한 사람이 말한다.
“안다,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리고 쓸데없는 일은 언제나 손해를 줄 수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대로 결합해 있어라.” 그런 다음 마태오에게 말씀하신다. “내 훌륭한 연대기 편자인 너는 그들에게 지혜로운 열 명의 처녀와 미련한 열 명의 처녀의 비유와 종 세 사람에게 달란트들을 주어 그것들을 불리라고 하였는데, 종 둘은 곱절로 벌었는데 게으른 종은 제가 받은 달란트를 땅에 파묻은 비유를 되풀이하여라. 기억하느냐?”
“예, 주님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에게 그 비유들을 되풀이하여 들려 주어라. 모두가 그것들을 알지는 못하고, 아는 사람들도 다시 듣기를 좋아할 것이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렇게 슬기로운 대화로 시간을 보내라.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 너희 정신을 민첩하게 가져라.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예수께서는 요한의 손을 잡고 함께 시내로 향하신다…. 다른 사도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의 야영지로 향하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