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 둘이 예루살렘을 뒤로 하고 산길을 빨리 걸어간다. 예루살렘의 언덕들은 산꼭대기와 계속적으로 기복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다른 산들 뒤로 차차 사라진다.
  그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데, 나이 더 많은 사람이 기껏해야 서른다섯쯤 되었을 때 동행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이렇게 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난 가족이 있고 자네도 가족이 있어. 성전 사람들이 하는 일을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돼. 그들이 옳은 건지 옳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네. 내가 아는 건 그 사람들이 이 모든 걸 영원히 끝내버릴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런 큰 죄를 지으면서 말이지요. 말은 바른대로 해야 합니다. 그건 적어도 큰 죄란 말입니다.”
  “그건 형편 나름이야. 우리 마음 속엔 최고회의를 반대해서 사랑이 술렁이고 있는 거야. 그렇지만 어쩌면… 알 수 있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비추어 주지 오류로 이끌어 가지는 않습니다.”
  “최고회의 사람들도, 사제들도, 지도자들도 사랑하고 있어. 그 사람들도 야훼를 사랑해, 하느님과 성조들 사이에 계약이 체결된 때부터 이스라엘 전체가 사랑한 그 분을 사랑한단 말이야. 그럼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사랑은 빛이고 오류로 이끌어가지 않는 거야!”
  “그 사람들의 사랑은 주님께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여러 세기째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씀 좀 해보세요. 성전의 우두머리들, 바리사이파 사람들, 율법학자들, 사제들이 우리에게 주는 믿음이 그대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시겠어요? 이건 사람들이 벌써 아는 일이고, 적어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짐작은 하는 일이었지만, 주님께 바친 돈으로 배반자를 매수했고, 지금은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을 매수한단 말입니다. 배반자는 그리스도를 배반하라고, 병사들은 거짓말을 하라고 말입니다.… 아이고! 영원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 어떻게 벽을 옮겨놓고 성전의 휘장을 찢어 놓는 것만으로 만족하셨는지 전 알 수가 없어요! 아버님께 말씀이지만 새 시대의 펠리시데 사람들이 무너진 돌더미 밑에 깔려버렸으면 좋았겠어요. 모두!”
  “클레오파! 자네는 복수덩어리가 되겠네.”
  “전 복수덩어리가 될 거야. 왜냐하면 선생님이 예언자에 지나지 않으셨다고 인정합시다. 그래 죄없는 사람을 죽여도 괜찮단 말입니까? 선생님은 죄가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아버님은 사람들이 선생님이 지으셨다고 비난하는 죄를 하나라도 지으신 것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아니, 아무 죄도. 그렇지만 선생님은 잘못 하신게 한 가지 있어.”
  “그게 어떤 것입니까?”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신 잘못 말이야.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고 믿지 않는 불경한 사람들을 벌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도전에 응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야 했어.”
  “선생님은 그보다 더한 일을 하셨어요. 부활하셨으니까요.”
  “그게 참 말인가? 어떻게 부활하셨어? 영으로만 부활하신 거야, 그렇잖으면 영과 육체로 부활하신 거야?”
  “아니! 영은 영원합니다. 그러니까 부활할 필요가 없어요!” 하고 클레오파가 외친다.
  “그건 나도 알아. 내 말은 인간의 모든 계략을 초월하시는 오직 당신의 천주성만으로 부활하셨느냔말이야. 이제 선생님의 영은 인간의 공포에 의한 계략을 아셨으니까 말이야. 자네도 들었나? 마르코는 선생님이 바위 앞에서 기도하러 가시던 게쎄마니에는 사방에 피가 있었다고 말했어. 그리고 마르코와 말을 한 요한은 마르코에게 ‘그 곳에는 하느님이시오 사람이신 분이 흘리신 피땀이 있으니까 짓밟지 못하게하라’고 말했어. 고문을 당하시기 전에 피땀을 흘리셨으면, 거기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신게 틀림없어!”
  “가엾은 우리 선생님!…”이라 말하고, 그들은 몹시 슬퍼하며 입을 다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물으신다. “누구 이야기를 하고 계셨소? 조용하기 때문에 당신들 말이 가다가다 들리더군요. 누가 죽임을 당했습니까?” 그것은 갈 길이 바쁜 보잘 것 없는 길손의 수수한 모습에 가려진 예수님이시다.
  두 사람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선생은 다른 곳에서 오셨소?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으셨소? 선생의 먼지투성이 옷하고 그 지경이 된 샌들을 보니 지칠 줄 모르는 길손 같은 생각이 드는 군요.”
  “그렇소. 아주 먼 곳에서 옵니다….”
  “그럼 피곤하시겠군요. 그리구 먼 데로 가시오?”
  “아주 먼 곳으로 가오. 내가 떠나 온 곳보다도 더 멀리 가오.”
  “장사를 하시오? 장을 찾아다니시는 거요?”
  “나는 가장 높은 양반을 위해서 수없이 많은 양떼를 사아 하오. 나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양과 어린 양을 골라야 하고, 야생 양떼들 있는 데까지도 내려가야 하오. 그 야생 양떼들은 길이 들면 지금 야생 양들이 아닌 양들보다도 더 훌륭하게 될거요.”
  “어려운 일이로군요. 그래서 예루살렘에도 들르지 않고 길을 계속하셨소?”
  “그건 왜 물으시오?”
  “선생만이 요새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거요.”
  “무슨 일이 있었소?”
  “선생은 멀리서 왔기 때문에 아마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그렇지만 선생의 말씨로 보아 갈릴래아 말씬데요. 그러니 외국 왕의 하인이거나 망명한 갈릴래아 사람들의 아들이라도, 만일 선생이 할례를 받은 분이면 우리 고향에 나자렛의 예수라는 위대한 예언자가 일어났다는 걸 아실 텐데요. 그분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행동과 말이 능하시고, 온 나라를 두루 다니시며 전도를 하셨소. 그러면서 당신이 메시아라고 말했어요. 그분의 말과 행동은 그분이 말하는 대로 실제로 하느님의 아들다웠어요. 그렇지만 하느님의 아들답기만 했지요. 온전히 하늘 같은… 이제는 왜 그런지 아시겠지요. … 그런데 선생님은 할례를 받으셨소?”
  “나는 맏아들이고 주께 봉헌된 사람이오.”
  “그럼 우리 종교를 아시겠구려?”
  “한획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소. 계명과 관습들도 알고 있고, 할라카(Hallachah)와 미드라심 (Midrashim)과 하가다(Hagadah)도 막태어난 사람의 지능과 본능과 욕구가 맨 먼저 찾는 기본요소인 공기와 물과 불과 빛과 같이 알고 있소.”
  “그러면 선생은 이스라엘이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그러나 이스라엘을 다시 모을 강력한 왕과 같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시겠구려. 그런데 이분은 반대로 그렇지 않았소….”
  “어떠했는데요?”
  “그분은 이 세상 권력을 노리지 않았소. 그분은 자기가 영원하고 영적인 나라의 왕이라고 말했소. 그분은 이스라엘을 모아놓기 보다는 오히려 분열시켰소. 지금 이스라엘은 그분을 믿는 사람과 그분을 악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갈라져 있으니까요. 사실 그분은 왕의 기질은 가지고 있지 못했소. 그분은 온유와 용서만 원했으니까요. 이런 무기를 가지고야 어떻게 지배하고 이기겠소?…”
  “그래서요?”
  “그래서 사제장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그분을 잡아서 사형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판결했지요.… 사실을 말하자면, 그분을 사실이 아닌 죄가 있다고 고발하면서 그랬던 겁니다. 그분의 잘못은 너무 인자하고 또 너무 엄한 것이지요….”
  “인자하면서 어떻게 엄할 수가 있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너무 엄했고, 옳지 못한 그분의 원수들을 즉사시키는 죽음의 기적을 그들에게 행하지 않을 만큼 너무도 인자했으니까 그럴 수가 있었던 거지요.”
  “그분은 세례자처럼 엄했소?”
  “사실은… 그걸 말하지 못하겠소. 그분은 특히 마지막 시기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몹시 책망하고 성전 사람들을 하느님의 노여움의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라고 위협했소. 그렇지만 그 다음에 어떤 사람이 죄인인데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 그분이 그 사람 마음속의 참된 뉘우침은 읽으면, 어머니보다도 더 인자했지요. 나자렛 선생님은 율법학자가 책을 읽는 것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읽었으니까요.”
  “그런데 로마는 그 무죄한 사람을 죽이라고 허락했소?”
  “빌라도가 그분에게 사형을 언도했소. … 그러나 빌라도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소.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카이사르에게 그를 고발하겠다고 위협하는 바람에 겁을 집어먹었소. 결국 선생님은 십자가형의 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소. 이 일도 있고 동시에 최고회의 위원들이 무섭기도 해서 우리는 기가 몹시 꺾였소. 왜냐하면 나는 클레오파의 아들 클레오파이고 이분은 시몬이고, 우리 둘이 다 엠마오 사람인데 친척이기 때문이오. 내가 이분의 맏딸과 결혼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예언자의 제자였지요.”
  “그럼, 이젠 그분의 제자가 아니오?”
  “우리는 그분이 이스라엘을 해방할 분이시기를 바랐고, 또 기적으로 당신의 말을 확증하기를 바랐었소. 그런데 오히려…”
  “그분이 무슨 말을 했었소?”
  “말했지 않소? ‘나는 다윗의 왕국에서 왔습니다.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왕이오’ 하는 등등의 말이지요. 또 그분은 ‘내 나라로 오시오’ 하고 말했지요. 그렇지만 우리에게 나라를 주지 않았소. 또 이렇게 말했소. ‘사흗 날에 부활하겠소’ 하고, 지금이 그분이 돌아가신지 사흗날이오, 오후 세 시가 벌써 지났으니까 사흗 날도 다 지나갔소. 그런데 그분은 부활하지 않았소. 여인들과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은 그렇다고, 즉 그분이 부활했다고 말하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못 보았소. 지키던 병사들이 이제는 나자렛 선생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간 것을 변명하느라고 그런 말을 했다고 말하고 있소. 그렇지만 제자들!… 우리는 그분이 살아 있을 때 모두 겁이나서 그분을 버렸소. … 그러니 분명히 그분이 돌아가신 것을 훔치지는 않았소. 그리고 여자들은… 누가 여자들의 말을 믿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던 거요. 우리는 그분이 다시 하느님의 영이 되신 영으로 부활하겠다고 말한 것인지, 육체로도 부활하겠다고 하는 말이었는지 알고 싶었던 겁니다. 여자들은 그분이 죽은 일이 없는 사람같다고 말했다고 하오- 여자들은 지진이 일어 난 다음에 천사들을 보았다고 말하거든요. 그런데 금요일에도 벌써 의인들이 무덤밖에 나타난 일이 있으니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실, 그런 선생님을 여자들이 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우리들 중 두 사람이, 두 우두머리가 무덤에 가 보았지요. 그리고 여자들이 말한 것처럼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분은 거기서도 다른 곳에서도 보질 못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모르게 되었으니 대단히 슬픈 일이오!”
  “아이고! 당신들은 정말 어리석고 이해하는 머리가 둔하기는 하오! 그리고 예언자들의 말을 믿는 데 느리기도 하구려! 그런데 그런 말을 당신들도 듣지 않았소! 이스라엘의 잘못된 생각은 이런 것이오. 즉 그리스도의 왕권을 잘못 해석했단 말이오. 그 때문에 당신들이 그분의 말을 믿지 않는 거요. 그 때문에 그분을 두려워했고, 그 때문에 당신들이 지금 의심하고 있는 겁니다. 저위에서, 저 아래에서 성전과 마을들에서, 어디서나, 사람들은 인간성으로 본 왕을 생각하고 있었소. 하느님의 생각에는 이스라엘 왕국의 재건이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시간과 공간과 방법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었소.
  시간으로 한정되지 않았소. 모든 왕권은 아무리 강력한 것이라도 영원하지는 못하오. 모세 시대에 히브리인들을 압제한 강력한 파라오들을 생각하시오. 끝나지 않은 왕조가 얼마나 되오? 그리고 그 왕조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지하의 비밀 납골소(納骨所) 안에 있는 영혼없는 미이라들뿐이오! 그리고 무엇이 남아 있다면, 한 시간 동안, 아니 그들의 세월을 영원한 시간에 비해서 재보면 그보다도 못한 시간 동안 있는 그들의 권력의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오. 그런데 이 나라는 영원하오.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았소. 이런 말이 있지요. 이스라엘의 왕국은, 이스라엘에서 인류의 근원이 왔고, 말하자면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씨가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창조된 사람들의 나라라는 말이 있소. 그러나 메시아 왕의 왕권은 팔레스티나의 좁은 면적에 한정되지 않고, 북쪽에서 남쪽까지, 동쪽에서 서쪽까지, 육체 안에 영을 가진 인간이 있는 곳은 어디까지든지, 즉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까지든지 미치는 것이오. 피를 강물같이 흘리지 않고 또 군인들의 잔인한 압제로 모든 사람들을 예속시키지 않고는 어떻게 다만 한 사람이 서로 원수가 져 있는 모든 백성들을 자기 자신에게로 불러 모아서 오직 한 나라를 만들 수 있겠소?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왕이 어떻게 예언자들이 말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왕이 될 수 있었겠소?
  방법으로도 한정되지 않았소. 인간적인 방법은 압제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인간 이상의 방법은 사랑이오. 인간적인 방법은 백성들이 결국 압제자에 반항하기 때문에 항상 한정되어 있소. 그러나 사랑은 사랑을 받기 때문에 인간 이상의 방법은 한정되지 않았소. 만일 사랑을 받지 못하면 조롱을 받지요. 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직접 공격을 받지는 않지요. 그런데 무한하신 분인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같은 방법을 원하시오. 하느님께서는 영원하신 분, 즉 영이시기 때문에 한이 없는 것을 원하시고, 영에 속해있는 것, 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원하시오. 틀린 생각이 어떤 것이었나 보시오. 즉 머리 속에 방법과 형태가 잘못된 메시아 사상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것이오.
  어떤 왕권이 가장 높은 것이오? 하느님의 왕권이오. 그렇지요? 그러면 저 훌륭한 분, 저 임마누엘, 저 거룩하신 분, 저 숭고한 싹, 저 강한 분, 장차 올 저 세월의 아버지, 저 평화의 왕, 그분을 보내신 분과 같은 저 하느님이- 그분이 그런 분이라 불리고, 메시아가 그런 분이니까요- 당신을 낳으신 분의 왕권과 같은 왕권을 가지지 않았소? 그렇소, 그 분은 그런 왕권을 가질거요. 아주 영적이고 영원한 왕권, 폭력과 피에 물들지 않고, 배반과 불의를 모르는 왕권을 말이오. 그분의 왕권! 그것은 영원한 인자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에게 영광과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불쌍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왕권이오.
  그러나 다윗은 이 강력한 왕이 모든 것을 발아래 두어 자기의 발판이 되게 하였다고 말하지 않았소? 이사야는 그분의 수난을 다 말하지 않았소? 또 다윗은 말하자면 그분이 받을 고문을 다 열거하지 않았소? 그리고 그분이 구세주이고, 자기를 번제물로 바쳐 죄인인 사람을 구속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그리고 요나가 그의 상징이지만, 그분이 사흘 동안을 땅의 탐욕스러운 뱃속에 삼켜졌다가 요나 예언자가 고래 뱃속에서 튕겨 나온 것과 같이 땅에서 배출 되리라는 분명한 말이 있지 않소? 그리고 그분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소? ‘내 성전, 즉 내 육체는 부숴졌다가 사흗 날에 나에 의해서(즉 하느님에 의해서) 다시 지어 질 것이라고? 그래 당신들은 어떤 생각을 했었소? 그분이 무너진 성전을 마술로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고 생각했소? 그게 아니었소. 벽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것이었소. 그런데 하느님만이  당신 자신을 다시 살게 하실 수 있는 것이었소. 그분은 진짜 성전을, 즉 어린 양인 당신의 육체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오.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또 모세가 예언 한 것과 같이, 하느님의 자녀이면서 사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죽음에서 삶에로, 노예상태에서 자유에로 ‘건너감’을 준비하기 위하여 희생된 어린 양의 육체 말이오.
  그분이 어떻게 부활했는가 하고 당신들은 의아해 하지요. 내가 대답하겠소. 죽어야 할 어떤 육체에나 영혼이 마음 속에서 지배하며 살고 있는 것과 같이, 그분 안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의 영과 그분의 진짜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셨소. 그분은 모든 것을 갚고, 원죄와 인류가 날마다 짓는 무한한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모든 고통을 겪은 후에 이렇게 부활하였소. 그분은 예언의 베일로 가려서 희미하게 말한 것과 같이 부활하였소. 다니엘의 말을 기억하시오. 그분은 때가 되었을 와서 때가 되었을 때 희생되었소. 그리고 이제는 잘 듣고 기억하시오. 하느님을 죽인 도시는 그분이 죽은 후, 예언된 때에 파괴될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충고를 하겠소. 예언자들의 글을 성경 첫머리에서부터 희생된 말씀에 이르기까지 교만한 정신으로 읽지 말고 영혼으로 읽으시오. 말씀을 어린 양이라고 가리킨 세례자를 기억하고, 모세의 상징적인 어린 양의 운명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하시오. 그 피로 이스라엘의 맏아들들이 구해졌소. 그리고 그 어린양의 피로 하느님의 맏아들들, 즉 착한 뜻으로 자기를 주님께 바친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다윗의 메시아에 관한 시와 메시아를 예언한 이사야의 글을 기억하고 이해하시오. 다니엘을 기억하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의 왕권에 대한 모든 말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시오. 그러나 당신들의 기억을 진흙탕에서 파란 하늘로 올리면서 그렇게 기억하시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그 승리와 자기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 그 부활에 대해서 이보다 더 옳고 더 강한 다른 표는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으시오.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십자가 위에다 벌하는 것은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사명에 반대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그분은 업신여김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이었어도 역시 구세주였소! 팔다리는 못박혀 있었지만, 그분의 정신과 의지는 자유로웠소. 그리고 이 정신과 의지를 가지고 그분은 당신을 믿고 자기들 위에 당신의 피를 부를 시간을 죄인들에게 주기 위하여 더 기다리고자 했소. 하느님을 모독하는 외침으로 그분의 피를 부르지 않고, 통회의 탄식으로 그 피를 부를 시간을 말이오.
  이제 그분은 부활했소. 그분은 모든 것을 이루었소. 그분은 강생 이전에 영광스러웠소.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육체를 가지고 겸손하게 행동한 다음, 하느님의 뜻을 세우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을 줄 알 정도로 완전히 순종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으로 바친 지금은 삼중으로 영광스럽소. 하늘에 올라가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지금, 그분은 이스라엘이 이해하지 못한 통치를 시작함으로써 영광스럽게 된 그분의 육체로도 지극히 영광스럽소. 그분은 자기가 가득히 가지고 있는 사랑과 권위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종속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간절하게 이 왕국으로 부르시오.
  이스라엘의 의인들과 예언자들이 예견한 것과 같이 모든 민족이 구세주께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유다인이나 로마인도 없고, 스키티아 사람이나 아프리카 사람도 없고, 이베리아 사람이나 켈트 사람도 없고, 에집트 사람이나 프리지아 사람도 없을 겁니다. 유프라테스강 저쪽 지방이 영원한 강의 근원과 합쳐질 것이오. 북방낙토(北方樂土)의 백성들이 누미디아 사람들과 나란히 그분의 나라로 올 것이고, 인종들과 방언이 소멸할 것입니다. 풍속과 피부와 머리 빛깔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 질 것이고, 다만 찬란하고 순수한 한없는 백성이 있을 것이고, 오직 한가지 말, 하나의 사랑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요 하늘나라일 것입니다. 영원한 왕은 희생으로 바쳐졌다가 부활한 그분일 것이고, 영원한 신하와 백성은 그분의 믿음을 믿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분에게 속해 있기 위해 믿으시오.
  두 분, 엠마오에 다 왔소. 나는 더 먼 데로 가오. 이렇게 많은 길을 가야 하는 길손은 쉴 수가 없소.
  “선생님,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보다도 더 유식하십니다. 만일 우리 선생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다른 진리들을 더 부연(敷衍)해 말씀하시는 것을 더 듣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증오의 소용돌이로 어지러워진 목자없는 양들인 우리로서는 지금은 성경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과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이것 보세요. 그러면 선생님이 우리를 더 가르치셔서 우리에게서 사람들이 빼앗아 간 선생님의 사업을 보충하실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분을 그렇게 오랫동안 모셨는데, 완전한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단 말이오? 저것은 회당이 아니오?”
  “회당입니다. 저는 회당장 클레오파의 아들 클레오파입니다. 제 아버지는 메시아를 안 기쁨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아직 의혹없이 못 믿는단 말이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탓이 아니오. 피는 있었지만 불이 아직 없소. 이 다음에는 당신들이 이해할 테니까 믿을 거요. 안녕히들 계시오.”
  “선생님, 벌써 저녁이 가까워 오고 해가 기울었습니다. 선생님은 지치시고 목이 마르십니다. 들어오셔서 저희와 같이 머무르십시오. 식사를 하는 동안 하느님께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들어가시나, 히브리 사람들의 손님 대접하는 관습에 다라 음료와 지친 발을 씻을 물을 갖다 드리면서 시중을 든다.
  그런 다음 식사를 하는데, 두 사람은 그를 대신 음식을 봉헌하라고 청한다.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손에는 빵을 드시고 눈은 붉게 물든 저녁하늘을 쳐다보시며 음식에 대한 감사기도를 하시고 앉으신다. 예수께서는 빵을 나누어 두 주인에게 주신다. 그렇게 하시면서 당신을 있는 그대로, 즉 부활하신 분으로 나타내 보이신다.
  당신께 더 소중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던 찬란하게 부활하신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긴 손에는 피부의 상아색 위에 빨간 장미 같은 매우 분명한 상처자국이 있는 의엄 가득한 예수님이시다. 보상을 받으신 당신 육체로 분명히 살아 계신 예수님이시지만, 그 눈길과 온 모십의 위엄으로는 하느님이기도 하신 예수님이시다.
  두 사람은 예수를 알아보고 무릎을 꿇는다. … 그러나 그들이 감히 얼굴을 들었을 때에는 예수에게는 남은 것이라고는 쪼개진 빵뿐이었다.
  그들은 빵을 집어 입맞춤한다. 각기 자기 몫의 빵을 집어 헝겊으로 싸서 거룩한 유물처럼 가슴에 넣는다.
  그들은 울면서 말한다. “선생님이셨어! 그런데 우리는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했어. 그렇지만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하실 때에 마음 속에 뜨거운 감동을 느끼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선생님이 하늘에서 오는 빛, 하느님의 빛에 둘러 싸여 계신 것을 다시 뵙는 것 같습니다.”
  “가세, 난 이제 피곤한 것도 시장한 것도 모르겠네.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세.”
  “가십시다. 아이고! 늙으신 아버지께서 이 시간을 즐길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실까요!”
  “아니, 그런 말하지 말게! 그분은 우리보다 더 이 시간을 즐기셨네. 의인 클레오파는 선생님이 우리 육체의 약함을 불쌍히 여겨서 쓰셨던 베일을 쓰지 않으신 하느님의 아들이 하늘로 돌아가시는 것을 정신으로 보았을 걸세. 가세! 가! 우린 한밤중에 도착하겠지만, 선생님이 하고자 하시면 통과하는 방식을 마련해 주실 걸세. 죽음의 문을 열어셨으니, 틀림없이 성문도 여실 수 있을 걸세! 가세!”
  그리고 완전히 붉게 물든 저녁놀을 이고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