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인데, 예수께서… 올리브나무 아래 계신 것이 보인다. …예수께서는 늘 취하시는 자세로, 즉 팔꿈치를 무릎에 괴시고 아랫팔을 앞으로 내미시고 두 손을 합장하신 채 비탈에 앉아 계신다. 해가 져가며 올리브나무 아래에는 점점 어둠이 드리워진다. 예수님은 혼자이시다. 더우신지 겉옷을 벗으셨고, 그분의 흰 옷은 황혼으로 희미해져 가는 초록빛깔에 흰 빛깔을 얹어준다.
한 남자가 올리브나무 사이로 내려온다. 누구를 또는 무엇을 찾는 것 같다. 그는 키가 크고 선명한 색채의 옷을 입었다. 분홍빛이 도는 노랑색인데, 그 빛깔로 인하여 나부끼는 술장식을 잔뜩 단 겉옷 빛깔이 더 잘 눈에 띄게 된다. 날이 어두워 가고 거리가 있어서 잘 볼 수 없지만, 얼굴에 아주 낮게까지 내려오는 겉옷 한 구석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예수를 보자 그는 “저기 계시군!” 하고 말하는 듯한 몸짓을 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몇미터 거리에 와서는 “선생님,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한다.
예수께서는 몸을 휙 돌리시고 머리를 드신다. 그 사람이 갑자기 예수님 곁에 비탈에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근엄하게 바라보시는데, 서글픈 태도로 보시는 것 같다. 그 사람은 되풀이해 말한다.
“선생님, 인사드립니다. 저는 가리옷의 유다입니다. 못알아보시겠습니까? 생각 안나십니까?”
“생각도 나고 당신을 알아보기도 하오. 지난 과월절에 토마와 같이 내게 말을 한 그 사람이지요.”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곰곰이 생각하고 내가 돌아오기 전에 결정을 하시오.’하고 말씀하셨지요. 이제 결정을 하고 왔습니다.”
“유다, 왜 오시었소?” 예수께서는 정말 슬퍼하신다.
“그것은… 지난번에 그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왕국을 열망하였는데, 선생님을 그 왕국의 왕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온거요?”
“그 때문입니다. 저는 저 자신과 제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 능력과 지식과 우정과 힘을 모두 선생님을 섬기는 데 바치고 이스라엘을 재건하기 위한 선생님의 사명에 봉사하기 위해 바치겠습니다.”
두 사람이 이제는 가까이 마주 서서 서로 뚫어지게 살펴본다. 예수께서는 슬퍼하시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근엄한 태도로 살펴보시고, 상대방은 자기의 몽상에 잠겨 미소지으며, 아름답고 젊은이답고 경쾌하고 야심적이다. “유다, 나는 당신을 찾지 않았소.”
“그러신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며칠을 두고 사람을 성문으로 보내서 선생님이 오시는 것을 알리라고 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오시리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선생님을 알아보기가 쉬우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선생님이 병자를 고쳐 주셨다고 한떼의 순례자가 선생님을 찬미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오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말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장소를 생각해 내고 온 것입니다. 만일 여기서도 선생님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선생님을 찾아내는 것을 단념했을 것입니다….”
“나를 찾아낸 것이 당신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오?”
“그렇습니다. 그것은 제가 선생님을 찾았고, 갈망했고, 또 원하기 때문입니다.”
“왜 나를 찾았소? 왜?”
“아니,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요! 제 말씀을 못알아들으셨습니까?”
“알아들었소. 암, 알아들었지요. 그러나 당신도 나를 따르기 전에 내 말을 이해하기를 바라오. 오시오.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합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걷기 시작하며 나란히 서서 올리브나무 재배지의 경계를 나타내는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유다, 당신은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를 따르고 있소. 나는 그것을 말릴 수밖에 없소. 나는 그 때문에 오지는 않았소.”
“그러나 유다인들의 왕이 되기로 정해진 분이 아니십니까? 예언자들이 말한 그분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여럿 일어났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는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았고, 바람에 불려 올라갔다가 바람이 자면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기적을 행하실 정도로 하느님을 모시고 계십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에는 사명의 성공이 틀림없습니다.”
“당신은 말을 잘했소.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오. 나는 하느님의 말씀이오. 나는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 사람이고, 성조들에게 언약된 그 사람이고, 군중들이 기다리는 그 사람이오. 그러나 아아.. 이스라엘 백성들, 어찌하여 너희는 사실들의 실제적인 의미를 읽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듣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할 정도로 소경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었는지? 내 나라는 이 세상 것이 아니오. 유다, 당신 생각을 버리시오. 나는 이스라엘에 빛과 영광을 가져다주려고 왔소.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의 빛과 영광이 아니오. 나는 이스라엘의 의인들을 내 나라로 부르러 왔소. 그것은 주의 피를 수액으로 가진 영원한 생명의 나무가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더불어 생겨나고 자라야 하기 때문이오. 세상 마칠 때까지 온 땅 위에 가지를 뻗게 될 나무 말이오. 내 첫번째 제자들은 이스라엘에서 나올 것이고, 내게 대한 신앙을 맨 처음으로 표명하는 사람들도 이스라엘에서 나올 것이오. 그러나,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도 이스라엘에서 나올 것이고, 내 사형집행인들도 이스라엘에서 나올 것이고, 내 배반자도 이스라엘에서 나올 것이오….”
“아닙니다, 선생님.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선생님을 배반하더라도 저는 남아서 선생님을 지킬 것입니다.”
“유다, 당신이? 그런데 어디에 근거를 두고 그런 장담을 하오?”
“인간의 명예를 걸고요.”
“유다, 그것은 거미줄보다도 더 부서지기 쉬운 것이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될 힘을 우리는 하느님께 청해야 하오. 인간!… 인간은 인간의 일을 하오. 영의 일을 하기 위하여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메시아의 진리와 정의를 따르는 것은 영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니까 영의 일을 하기 위하여는 인간의 일을 죽이고 인간이 다시 태어나게 해야 되오. 당신도 그렇게 할 수가 있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 전체가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메시아에 대한 사형집행인과 배반자가 이스라엘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 입니다. 이스라엘이 수천년 전부터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는걸요!”
“그런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올 것이오. 예언자들과 그들의 말, 그들의 최후를 기억하시오. 나는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기로 예정되어 있소. 그런데 당신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오. 유다, 당신 앞에 있는 이는 온유한 사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언제까지나 가난한 사람으로 있기를 원하는 가난한 사람이오. 나는 남을 압도하고 전쟁을 하려고 오지 않았소. 나는 강자들과 유력자들과 어떤 나라도 어떤 권력도 쟁탈하지 않소. 나는 오직 영혼들을 가지고 사탄과 겨루고 내 사랑의 불로 사탄의 사슬을 끊으려고 왔을 뿐이오. 나는 자비와 정의와 겸손과 절제를 가르치러 왔소. 나는 당신에게, 또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오. ‘인간적인 재산을 갈망하지 말고 영원한 재산을 얻도록 힘쓰시오’하고. 유다, 만일 내가 로마와 지배계급을 압도하러 왔다고 믿는다면 환상을 버리시오. 헤로데나 카이사르 같은 사람들은 내가 군중에게 말하는 동안에는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소.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왕권을 빼앗으려고 오지 않았소… 그리고 영원한 내 왕권은 벌써 준비가 다 되어 있소. 그러나 내가 사랑인 것과 같이 사랑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내 왕권을 지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유다,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시오.”
“선생님은 저를 물리치시는 겁니까?”
“나는 아무도 물리치지 않소. 물리치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유다, 말해 보시오. 자기가 전염성 있는 병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은 어떤 사람이 누군가 그의 병을 모르고 그의 술잔으로 마시려고 할 때에 ‘자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하고 말한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규정짓겠소? 그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겠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겠소?”
“그 사람은 그 병을 모르는 사람이 건강을 헤치기를 원치 않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내 행위를 그렇게 해석하시오.”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제 건강을 해칠 수가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건강보다 더한 것을 해칠 수도 있소. 왜 그런고 하니, 잘 생각해 보시오. 믿는 사람을 죽이면서 정의를 행한다고 믿는 사람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별로 책임이 없을 것이오. 그러나 진리를 알고서도 그것을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진리의 원수가 되는 사람은 엄청난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이오.”
“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 저를 받아주십시오. 선생님이 저를 거절하실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이 구세주이시고, 제가 죄인이요, 길잃은 양이요, 정의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소경이라는 것을 아신다면, 왜 저를 거절하십니까? 저를 받아 주십시오. 저는 선생님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따르겠습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사실이오. 맞는 말이오. 그리고….”
“그리고 무엇입니까, 선생님?”
“미래는 하느님의 가슴 속에 있소. 가보시오. 내일은 물고기 성문 근처에서 만납시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주께서 선생님과 같이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자비가 당신을 구해주시기를 바라오.”
-그리고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