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1944년) 11월 9일, 조금 뒤에

겐네사렛 호수의 물가가 보이고, 호숫가에 끌어올린 고기잡이 배들이 보인다. 거기에는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배에 기대 서서 일꾼들이 가져온 그물들을 손질하고 있다. 그 그물들은 일꾼들이 지저분한 것을 호수에 털어버렸지만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는 요한과 야고보가 그들의 배에 몸을 구부리고 사환 한 사람과 50세 내지 55세 가량 된 남자의 도움을 받으며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있는데, 사환아이가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또 야고보와 모습이 아주 비슷한 것을 보면 아마 제베대오인 것 같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어깨를 배에 대고, 아무 말도 없이 그물코를 매만지고 부표들을 제자리에 고쳐 다를 일을 하고 있다. 그저 이따금씩만 그들의 일에 대하여 몇 마디 말을 주고 받는데, 내가 알기로는 일이 신통치 않았던 것 같다.
베드로는 돈주머니가 비었다거나 쓸 데 없이 피로했다고 불평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말한다. “이거 기분나쁘단 말이다… 저 불쌍한 사람들을 어떻게 먹이느냐 말이야. 헌금은 있다고 해야 가뭄에 콩나기지, 그리고 요 나흘 동안에 받은 이 10데나리온과 7드라크마는 건드리지 않겠다. 이 돈을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는 선생님만이 알아서 하실거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안식일 전에는 안돌아 오시거든! 고기라도 잡혔으면! … 잔챙이를 끓여서 저 불쌍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집에서 누가 투덜거렸더라도 그건 상관하지 않았을 거다. 성한 사람들은 급식을 받으러 나갈 수 있지만, 병자들은 어떻게 하느냐 말이야!…”
“저 반신불수 말이야!… 그리고 저 사람들은 반신불수를 데리고 오느라고 길을 많이 걸었거든…”하고 안드레아가 말한다.
“이거봐 안드레아야, 내 생각에는 말이야… 선생님과 떨어져 있을 수는 있지만, 선생님이 왜 우리를 항상 데리고 다니지 않으시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저 불쌍한 사람들은 보지 않게 될거고, 또 본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여기 계시다’고 말할 수 있을거란 말이다.”
“나 여기 있다!” 예수께서는 부드러운 모래 위로 조용히 걸어서 가까이 오셨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깜짝 놀라서 외친다. “아이고! 선생님!” 그리고는 부른다. “야고보, 요한! 선생님이 오셨네. 어서 오게!”
두 사람은 달려온다. 그리고 모두가 예수를 바짝 에워싼다. 어떤 사람은 예수의 옷에 입맞춤하고, 어떤 사람은 손에 입맞춤한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의 허리를 껴안고 머리를 예수의 가슴에 기대기까지 한다. 에수께서는 요한의 머리에 입맞춤하신다.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느냐?”
“샌생님… 선생님이 여기 계셨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왜들 그랬느냐?”
“선생님을 뵙고, 선생님을 뵙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그랬고, 또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위해서도 그랬습니다. 저 사람들은 이틀 전부터 또 그 이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다했습니다. 저기 아무것도 심지 않은 밭 가운데 있는 저 오두막집이 보이지요, 그 사람들을 거기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배를 손보는 사람들이 배고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저는 반신불수 한 사람과 열이 많은 남자 한 사람, 그리고 엄마 품에서 죽어가는 어린아이를 그곳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보낼 수가 없었거든요.”
“잘 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데려온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었느냐? 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면서!”
“그러믄요. 부자들은 마차와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다리밖에 없습니다. 저 사람들은 선생님을 찾아가기에는 너무나 좋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데까지 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제가 받은 헌금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맡으십시오.”
“베드로야, 네가 직접 주어도 되었을걸 그랬다. 물론이다…. 베드로야, 나 때문에 네가 비난을 듣고 지치고 했으니 안되었구나.”
“아니올시다, 주님. 그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다만 자선을 더 베풀 수 없었던 것이 슬플 뿐입니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안다. 네가 헛수고를 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음식은 없었다 하더라도 사랑은 남아 있다. 살아 있고, 활발하고,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거룩한 사랑이 말이다.”
어린이들이 “선생님이다! 선생님이야!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이 오셨어!”하고 외치면서 달려온다. 그들이 예수께 매달리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쓰다듬어 주신다.
“시몬아, 나는 네 집으로 돌아가겠다. 너와 다른 사람들은 내가 왔다고 말하여라. 그리고 병자들을 데려오너라.”
제자들은 빨리 여러 방향으로 간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은 어린이들 덕택으로 가파르나움 전체가 알고 있다. 어린이들은 벌통에서 나와 꽃을 찾아가는 벌들과 같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그 꽃들이 집과 길거리와 광장들이다. 어린이들은 좋아라고 왔다갔다 하면서 엄마와 지나가는 사람들과 햇볕을 쬐고 있는 노인들에게 소식을 알리고는 다시 와서 그들을 사랑하는 분이 또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린다. 그 중에서 담대한 한 어린이는 예수께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 오늘은 우리들한테 말해줘요. 우린 선생님이 좋아요. 그리고 우린 어른들보다 더 착해요.”
예수께서는 어린 심리학자에게 미소를 지으시면서 약속하신다. “너희들한테만 말해주마.” 그리고는 어린이들 앞장을 서서 집으로 가셔서 당신이 늘 하시는 평화의 인사를 하신다. “평화가 이 집에 있기를.”
사람들이 뒤에 있는 방으로 몰려 온다. 그 방은 그물, 밧줄, 바구니, 노, 돛, 식량을 넣어두는 방이다. 베드로가 그 방을 예수님더러 쓰시라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자리를 내느라고 모든 것을 한구석으로 몰아 놓았다. 그 방에서는 호수가 보이지 않고, 그저 물결이 가볍게 철썩거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그 대신에 정원의 푸르스름한 낮은 담과 늙은 포도나무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보인다. 사람들이 방에서 넘쳐 정원으로, 정원에서 길로 나가서 행길에까지 몰려 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시작하신다. 앞줄에는 위압적인 태도와 그들에 대하여 서민들이 가지게 되는 두려움 덕택으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지위가 높은 다섯 사람이다. 넓은 겉옷하며, 호화로운 옷하며, 교만한 태도하며, 그 모든 것으로 보아 그들이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학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 둘레에 꼭 어린이들을 두고자 하신다. 순진한 작은 얼굴들과 맑은 눈을 가지고 천사와 같은 미소를 짓는 어린이들이 빙 둘러 앉아서 예수님을 보려고 얼굴을 쳐들고 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하신다. 말씀하시면서, 당신 발앞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머리를 당신 무릎에 기대고 있는 꼬마의 곱슬곱슬한 머리를 가끔 쓰다듬으신다. 예수께서는 그물과 바구니를 많이 쌓아 놓은 더미에 올라앉아 말씀하신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정원 가운데에서 향기를 만끽하고 백합꽃을 꺾으려고 향기 가득한 화단이 있는 그의 정원으로 내려왔네. …그이는 백합꽃 향기를 만끽하네.’ 이것은 이스라엘의 메시아인 나의 조상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한 말입니다.
내 정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천사들이라는 꽃이 만발하여 있는 하늘의 정원보다 더 아름답고 하느님께 더 어울리는 정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요 사람의 아들인 내가 원한 것은 다른 정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내가 사람을 위하여 육체를 가지고 났기 때문인데, 육체를 가지고 나지 않으면 사람이 육체로 지은 죄를 대속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의 아들들인 아담의 아들들이 벌통에서 나오는 귀여운 벌들과 같이 지상낙원에서 퍼져 나와서, 모두가 천국에 가기로 운명지어져 있는 성인들의 무리를 이 세상에 가득채웠더라면, 이 정원도 하늘의 정원보다 그리 못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가 아담의 마음에 찔레나무와 가시나무의 씨를 뿌렸고, 거기에서 찔레나무와 가시나무가 땅에 퍼졌습니다. 이제는 정원이 아니라, 열병이 들어있고 뱀이 살고 있는 황량하고 잔인한 수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은 맘몬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아직 정원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천상 음식, 즉 사랑과 순결을 배불리 먹을 정원이 있고, 그에게 소중한 백합꽃을 딸 화단이 있습니다. 육욕과 탐욕과 교만의 때가 없는 정원이요 화단입니다. 이 어린이들이 바로 그 정원과 화단입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주의를 기울이고 쳐다보는 빙 둘러앉은 머리 위로 손을 스치게 하시며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어린이들을 쓰다듬어 주신다. 다만 한번 어린이들의 머리를 스치시는데, 그들을 기뻐서 환하게 웃는다) 이 어린이들이 내 백합꽃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영화 속에서도 골짜기에 향기를 풍기는 백합꽃보다 더 아름다운 옷을 입지 못하였고, 진주빛깔 같은 꽃받침을 가진 백합꽃의 아름다움보다 더 그윽하면서도 호화롭게 꾸며진 아름다운 왕관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마는, 내 마음에는 이 어린아이들 중의 어느 어린이보다도 더 값어치가 있는 백합꽃은 없습니다. 다만 백합꽃만 가꾸어 놓은 부자들의 화단이나 정원이라도 깨끗하고, 순진하고, 솔직하고, 소박한 이 어린이들 중의 어느 하나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남녀 여러분! 재산이나 지위가 훌륭하거나 보잘 것 없거나 한 여러분, 잘 들으시오! 나를 알고 사랑하려고 여기 와 있는 여러분은 내 사람이 되는 첫째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어려운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한층 더 어려운 본보기도 주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어린이들을 본보기로 삼으시오’하고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 자라지 않고 아주 어린 아들이나 조카나 동생이 집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맑은 샙겨과 같이 깨끗한 영혼을 가진 이 순진한 어린이들 중의 하나가 부부와 친척과 친구들 사이에 휴식이 되고 위안이 되고 유대가 되지 않습니까? 이들의 얼굴이 불화를 사라지게 하고, 희망이 솟아나게 하며, 이들이 쓰다듬는 것으로 인하여 눈물이 마르고 생명력이 솟아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들에게 그와 같은 힘이 있는 것입니까? 약하고 무력하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말입니다. 그것은 이들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고, 하느님의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믿을 줄 안다는 참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어린이들은 믿고 원할 줄을 압니다. 이들은 이 사랑과 이 믿음을 가지고 살 줄을 압니다. 이 어린이들과 같이 소박하고 깨끗하고 사랑하고 솔직하고 믿는 사람이 되시오.
이 어린이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어린이보다 더 훌륭한 현자는 이스라엘에 없습니다. 이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의 나라는 이들의 것입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아버지의 아들의 사랑을 받는 내 정원의 꽃들, 내 평화가 너희들 위에 있고, 내 사랑을 위하여 너희들을 본받을 사람 위에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셨다.
“선생님!” 하고 군중 가운데에서 베드로가 소리친다. “여기 병자들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선생님이 나오시는 것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사람들 때문에 꼼짝 못합니다…. 그리고 서 있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뚫고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을 돌려보내야 하겠습니까?”
“아니다, 지붕으로 해서 내려보내라.”
“좋습니다. 곧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말로 집의 일부를 이루지는 않아서 시멘트로 된 옥상이 없고, 섶다발로 된 지붕에 일종의 슬레이트 같은 것을 얹은 방의 지붕 위에 사람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그 슬레이트가 어떤 돌인지는 모르겠다. 그 지붕에 구멍을 뚫고 밧줄로 병상을 내려보내는데, 거기에는 불구자가 한 사람 있다. 병상이 바로 예수님 앞에 내려졌다. 사람들은 더 잘보려고 한층 더 밀려든다.
“너도 그렇고, 나를 데려온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 대단한 믿음을 가졌었구나.”
“아이고! 주님! 어떻게 주님을 믿지 않겠습니까?”
“좋다. 그러면 내가 말하겠다마는, 아들아(그 남자는 나이어린 젊은이다) 네 죄가 모두 용서를 받았다.”
그 남자는 울면서 예수님을 쳐다본다. …그 사람은 육체의 병이 낫기를 바랐기 때문에 약간 불만족스러운지도 모르겠다. 바라시아파 사람들과 학자들은 서로 수근거린다. 그들은 경멸하는 태도로 코와 이마와 입을 찌푸린다.
“왜 여러분은 입술보다는 마음 속으로 한층 더 그렇게 불평을 하십니까? 여러분 생각에는 반신불수 환자에게 ‘네 죄가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나 ‘일어나 네 병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쉽습니까? 여러분은 하느님만이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이보다 더 위대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데에는 대답을 못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육체의 기능을 잃고 나서 재산을 모두 써버렸지만 아무도 그의 병을 고쳐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능력을 가지신 분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도록, 사람의 아들이 육체와 영혼, 그리고 땅과 하늘에 대하여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도록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일어나, 네 병상을 들고 걸어가라. 집으로 가서 거룩하게 살아라.'”
그 남자는 몸을 흔들고 한번 부르짖더니 벌떡 일어나 예수의 발 앞에 쓰러지면서 발에 입맞춤을 하고 쓰다듬으며 한꺼번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부모와 군중도 울고 웃고 한다. 그런 다음 군중은 그 사람의 의기양양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 섰다가 그의 뒤를 따라가며 축하한다. 군중은 환영하지만 교만한 다섯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거만하게 말뚝처럼 뻣뻣하나 몸으로 자리를 뜬다.
이렇게 해서 아직 젖먹이인데 꼭 해골같이 바짝 마른 어린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린아이를 예수께 내밀면서 그저 이렇게만 말한다. “예수님, 선생님은 이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지요. 선생님의 사랑과 선생님의 어머니의 사랑의 이름으로!…” 그러면서 그 여자는 운다.
예수께서는 정말 다 죽어가는 아기를 받아서 가슴에 대신다. 그리고 작은 얼굴은 밀랍같이 하얗고 입술은 자주색으로 변하였고, 눈꺼풀은 벌써 감겨진 어린아이를 당신 입에 갖다 댄 채로 잠시 계신다. 한 동안 그대로 계신다…. 그런다가 아이를 당신의 황금색 수염에서 떼어놓으시니, 작은 얼굴은 볼그레해졌고 작은 입에는 어린이다운 미소가 살짝 지어진다. 그의 눈은 또릿또릿해져서 신기한 듯이 주위를 빙 둘러본다. 처음에는 오그라들었던 그의 손이 예수의 머리와 수염을 가지고 장난한다. 예수께서는 웃고 계신다.
“아이고! 내 아들아!”하고 엄마는 몹시 기뻐서 부르짖는다.
“받아 가지고 가서 행복하고 착하게 사시오.”
그리고 여인이 다시 살아난 아기를 받아서 품에 꼭 껴안으니, 아기는 음식에 대한 그의 권리를 즉시 행사해서 옷깃을 찾아 젖히고는 좋아하며 꿀떡꿀떡 젖을 먹는다.
예수께서는 축복하시며 지나가신다. 예수께서는 고열에 시달리는 병자가 있는 문간으로 가신다.
“선생님, 자비를 베푸십시오!”
“당신도 착하게 살고, 다시 찾은 힘을 정의를 위해 쓰시오.” 예수께서는 그를 쓰다듬어 주시고 나가신다.
예수께서 호숫가로 가시는데, 많은 사람이 혹은 따라오고 혹은 앞서가며 찬미하고 간청한다. “저희들은 선생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들에게도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겠다는 표를 하신다. 그런데 군중이 죄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므로 베드로 배에 오르신다. 그것도 부족하다. 사람들이 배의 걸상에까지 예수를 따라오기 때문이다. “배를 바다에 띄우고 호숫가에서 조금 떼어 놓아라.”

– 여기서 환상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