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4년 원장으로 있던 숙명유아원에서 ‘TV안보기 운동’을 시작하여 올해까지 11년째 이 운동을 벌이고 있다.

처음 이 운동을 벌였던 해의 TV안보기 주간 마지막 날은 전 국민이 다 TV를 보았음직한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터진 금요일이었다. 이 엄청난 사건을 두고도 라디오 뉴스속보로 궁금증을 쓸어내며 TV를 안보고 버텨내야 했다.
‘이런 경우에는 TV를 봐야한다’는 아빠와 ‘그래도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아이의 호소에 편을 든 엄마가 충돌하여 급기야는 리모콘을 던져 부수는 사건으로까지 전개된 가족도 있었다. 이 운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나는 ‘그렇게까지 TV안보기 서약을 지켜야했는가’라는 생각을 잠시 품었다. 그러나 가족생활에서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그 어머니의 진지한 접근에 숙연함을 느꼈다.
“이번만큼은 아빠의 권위를 세우고, 끝까지 보지 않겠다고 한 아이가 느끼게 될 미숙한 죄책감을 얼버무릴 것인가? 마지막 날까지 참아낸 성취감을 아이에게 심어줄 것인가? 나는 아이를 택했다”

부모들은 ‘TV안보기 운동’ 기간동안 자녀가 TV를 켜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자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자녀를 습관적인 TV시청자로 길들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비디오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TV만화시간이면 의례히 TV앞에 앉던 자녀가 TV없이도 얼마든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놀랬다고 했다.
무의식중에 TV를 켜면 아이는 여지없이 TV를 껐고 음식점이나 방문 장소에 TV가 켜져있으면 막무가내로 TV를 꺼야된다고 주장하여 부모는 고객과 주인에게 그 이유를 열심히 설명해야 했다. 아이들이 ‘TV안보기 운동’의 일등 홍보원이자 실천가인 셈이었다.

유아들은 부모가 자신이 만들어준 TV안보기 배지를 가슴에 달았는지 유심히 살폈고 혹 집에서 TV를 본 듯한 흔적이 있으면 결코 놓치지 않았다.
유아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울상스런 눈으로 엄마에게 묻는다. “누가 TV 봤나봐” “왜? 아무도 안봤어” “그런데 왜 코드가 꽂혀있어?” 아뿔싸! 아이가 없는 틈에 살짝 TV를 보고는 TV에 보자기를 덮어 감쪽같이 해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코드 빼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아빠는 아이가 그렇게까지 세심할 줄은 몰랐노라고 실토했다.
TV안보기 주간동안 특히 자녀가 아빠하고 같이 자겠다고 한다든지, 아빠가 좋다고 속삭여주어 자녀 키우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아버지의 응답이 적지 않았다. “집에 와도 본척만척하며 TV앞에 매달려있던 아이가 초인종 소리에 ‘아빠 왔다!’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얼른 달려와 문을 열고 매달리는데 너무 좋아서 눈물이 다 나왔다”는 어느 착한 아빠의 고백도 있었다.

부모는 아이와 장난을 치고 이야기하고 책을 읽으면서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고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게 하는 즐거움의 원천이 돼주었다. 구석진 방에서 늘 TV를 켜놓고 지내던 소외된 조부모도 TV대신 좋은 대리양육자가 되어 조손(祖孫)간의 관계가 새로워지고 삼대가족의 긍정적인 면을 느끼게 해주었다.
평소 유아원의 가족모임에 아버지는 잘 참석하지 못했는데 TV안보기 운동 종결 가족잔치에는 아버지들이 모두 참여하였다. 끝까지 자녀와 함께 이 운동을 잘 마감하려는 아버지들의 노력이 빛났다.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아동이 속한 기관이 운동을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아원에서는 아이들에게 빌려줄 장난감이나 책 목록을 만들고, 이 기간 중 할 다양한 활동거리를 준비했다.
부모들은 집에서 ‘TV안보기 운동’ 포스터를 만들고, 서약서에 손도장을 찍고, TV안보는 대신 할일을 계획하고, 공연티켓을 미리 구입했다. 그리고 집에서도 유아원에서처럼 가족이 모여 서약식을 거창하게 하고 출발했다.
후원가게도 큰 몫을 했다. 유아원 주변에 있는 각종 가게(문방구, 제과점, 꽃집, 서점, 철물점, 음식점, 미장원, 치과, 노래방 등)에 이 운동을 소개하고 ‘TV안보기 운동 배지’를 달고 가게를 방문한 유아원 가족에게 가격을 할인해주는 협찬을 받았다. 노래방 주인은 자기 아들이 정말 TV중독이어서 이 운동이 너무 귀하다고 박수를 보내며 반 이상 깎아주었다.
“유아원에서 나오자마자 아이는 TV안보기 운동을 후원한다는 가게부터 가보고 싶어했다. 정말 우리를 격려해주는지 확인해보고 싶은가보다. 제과점에 들러 빵을 샀다. 아이가 배지를 보여주자 주인이 450원을 할인해주며 칭찬했다. 우쭐해진 아이, 그 돈을 자기 저금통에 넣자고 했더니 더욱 좋아했다”

개인적 노력으로 TV안보기나 덜 보기가 잘 되지 않는다면 자녀가 다니는 학교나 자신이 속한 기관의 구성원들을 설득하여 난리피우는 이벤트를 벌여보는 것이 어떨까?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교인들을 이 흥미진진한 사건에 참여시키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4월 어린이주간에 전국의 여러 학교, 가족관련 기관, 시민단체들이 다 참여하여 이 운동을 벌이느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것도 다 같이 하면 더욱 성공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의 성공을 빕니다!

– TV 끄고 삶을 켜자 : 왁자지껄 TV안보기 운동, 서영숙
– 가톨릭다이제스트 2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