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이탈리아 남부 한 외딴 마을에 의좋은 마리오(토호의 아들)와 안셀모(구두수선공의 아들)가 살고 있었습니다.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소년은 늘 함께 어울려 다녔습니다.
어느날 산에 올라 마리오가 “말을 잘하는 재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탄식하자 안셀모는 “마리오야, 그런 재주를 갖도록 내가 매일 기도할게” 하고 말했습니다.
그 후 마리오는 카푸친회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혼자 된 안셀모는 카푸친회 수도원을 찾아가 평수사가 됩니다. 그후 마리오는 주교가 되었고 그의 강론은 나날이 그 명성을 더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강단에 올라 강연을 하는데 뭔지 허전한 기분이 들어 강단 아래를 보니 언제나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안셀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마음이 들어 안셀모를 찾았지만 “15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노 수사의 전갈을 받습니다.
더욱이 “여러 달 동안 불치의 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주교님이 아실까 말도 않고 아픔을 참아오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셀모의 숙소를 찾은 주교는 “그 동안 그가 어찌 지냈던가?” 물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동산에 올라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가끔은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끊임없이 기도를 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 말에 주교는 “기도를?” 안내자는 “그는 훌륭한 목적이 있다고만 말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주교는 어찌 된 일인지 더이상 명강의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강의의 생명을 잃은 그는 건강마저 잃어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가 본체요, 나는 단지 빈 껍데기에 불과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안셀모의 무덤을 찾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그의 마음엔 큰 변화가 일었습니다. 오만함이 사라지고 더없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어느날 기도하고 있는 그에게 수도원장이 “옛날처럼 명강의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까?” 하고 묻자 그는 “아닙니다. 저는 더 큰 은혜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허의 마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시험이 있지만 우리가 마지막에 치를 시험은 하느님 앞에서의 시험, 그것 하나뿐입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 뜻에 맞갖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 강혜진(서울대교구 당산동 천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