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0년쯤 전에 신문에서 재미있는 설문조사 결과를 접한 적이 있었다. “당신에게 정신질환자가 도움을 청해 오면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라는 물음을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목사님들은 대부분 “안수기도를 해서 마귀를 쫓아내겠다”고 답했던 반면에, 신부님들은 대부분 “적당한 정신병원을 소개해주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정서는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니 새 시대가 올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목사님들은 저술에서도 설교를 통해서도 공공연하게 ‘마귀’ 얘기를 하는데 신부님들 입에서는 거의 들리질 않는다. 할아버지 신부님들을 통해서나 이따금 들을 정도니 말이다.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에는 공식 구마사(exorcist)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교회에서는 이런 용어를 거의 듣지 못한다. 중세의 마녀사냥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추억 때문일까?
어쨌든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는 ‘마귀’ 얘기를 하면 근본주의자 아니면 보수주의자로 내몰리거나 공부 안한 사람으로 몰리는 분위기인 것만은 확실하다.
문제는 사목일선에서 생겨난다. 곧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을 모두 정신병으로 돌리고 책임을 회피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연 그 가운데 소위 ‘신들림’ 곧 부마(付魔)된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1996년 판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주님의 기도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대목을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청원에서, 악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한 인격체, 사탄, 악한 자, 하느님께 대항하는 천사를 가리킨다. ‘마귀’는 하느님의 계획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된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가로막는’ 자이다”(2851항).
곧 하나의 위격(位格, 라: persona)을 지닌 사탄 또는 악마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교리서는 교회의 오랜 전통을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악이 본래부터 있었다고 보는 이원론(二元論)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악의 기원을 하느님에게 돌리지도 않는다. 하느님은 선하시고, 본래 그 창조는 선했다. 그러니 하느님은 악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에 대해 교회는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제4차 라테란공의회(1215) 입장을 따른다.
”마귀와 악신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선한 본질로 창조됐지만 자기들 탓으로 악하게 됐다.”
그렇다면, 마귀(그: diabolos)는 세상에 나와 무엇을 할까?
첫째, 마귀는 유혹자이다. 마귀는 본질적으로 자기들보다 못난 사람들이 창조돼 자기들이 들어가지 못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시기하고 질투해 그들을 지옥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그러기 위하여 죄를 짓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지혜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인간을 불멸한 것으로 만드셨고 당신 본성을 본떠서 인간을 만드셨다.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악마의 시기 때문이니 악마에게 편드는 자들이 죽음을 맛볼 것이다”(지혜 2,23-24).
하와를 유혹해 재미를 봤던 ‘거짓말의 아비'(요한 8,44) 사탄은 온갖 감언이설로 인류를 타락시키려 한다. 사람들을 도덕적 불결로 이끌어 더러운 생각을 하게 하고, 더러운 말과 더러운 행동을 하게 한다. 죄를 짓도록 시험하며(요한 13,2 참조), 진리를 믿지 못하게 유혹한다(2데살 2,9-12 참조).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 본성을 지녔지만 언제든 마귀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둘째, 마귀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원 행위를 방해한다. 마귀가 누구인가는 예수님 생애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예수님을 사막으로 이끌어내어 유혹함으로써 구원 활동을 방해하려 한다(루가 4,1-13 참조). 그는 인류의 첫 조상들을 유혹할 때처럼, 우선 귀에 그리고 마음에 속삭이고 끝에 가서는 행동으로 옮기도록 한다. “만일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라고 하면서, 유혹자는 예수님이 아들의 직분을 남용하도록 뒤흔들어 놓았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거뜬히 물리치셨지만 말이다.
사탄은 속임수로 교묘하게 예수님의 구원 활동을 방해하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번번이 그 속셈을 알아채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첫번째 술책이 ‘속임’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일러주셨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요한 8,44).
셋째,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사탄은 ‘살인자’다(요한 8,44 참조). 사탄은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에 질병을 가져온다(루가 13,11 참조). 욥기 1장에서 사탄은 타락시킬 사람을 찾으러 “땅 위를 이리저리”(욥기 1,7; 2,2) 자유롭게 다닌다고 호언장담한다. 훗날 사도 베드로는 욥기에서 이 이미지를 골라내 이렇게 경고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 5,8).
넷째, 마귀는 세상의 권세, 세력, 암흑세계를 배후 조정한다.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에페 6,12). 겉으로 나타나기는 사람들끼리 불목이요 지역간 민족간 갈등이지만, 그 배후에는 악신과 악령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 곧 사탄의 힘은 무한하지 않다. 예수님의 구마 행위와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됐고 사탄의 나라가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는 궁극적 승리를 준엄하게 선언하셨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이 선언을 하셨을 때 이미 싸움은 끝났다. 다만 뒷수습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묵시록 20장 10절을 찾아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그들을 현혹시키던 그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에 던져졌는데 그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묵시 20,10).
예수님께 의지하면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 그분께는 이 세상 모든 악의 세력을 굴복시키는 힘이 있으시다.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22. 골치 아픈 문제, 악
– 가톨릭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