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성 안드레아 축일은 나의 영명축일이다. 축하 전화와 꽃다발 … 바쁜 가운데서도 즐겁게 지낸 하루였다.
잠깐 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약간 쉰목소리의 어떤 아저씨가
“주 신부, 날쎄, 잘있는가? 축하 하네. 그래, 요즘 자네 건강은 좀 어떤가? ” 라고 하는게 아닌가!
누구일까 하면서도 나도 나이도 먹고 또 본당 신부쯤 됐는데 도대체 누가 날보고 “자네” 라고 말하는가 하여 “누구슈?”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참고 조금 더 들어보니 글쎄 추기경님이 아니신가!
나는 비스듬이 누워있다가 그만 질겁을 하여 벌떡일어나 곧추 앉았다.
“아이구, 추기경님, 안녕하십니까? 즉시 알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바쁘실텐데도 이렇게 친히 전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얼떨결에 황급히 인사 드렸다.
그날 걸려온 다른 어떤 축하 전화나 어느 인사보다도 훨씬 기뻤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때면 비록 지나가는 말처럼 “추기경님께서도 축하 전화를 주셨답니다.” 라고 가볍게 내비쳤지만 속마음은 그렇게 높으신 어르신께 나도 사랑받고 있는 사제임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어린애같은 마음이었다.
손님들 역시 “아, 그러시군요.” 하면서 함께 축하 해주어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날 즐거우면서도 웬지 마음 한구석 어딘가 텅빈것 같은 아쉬운 느낌이 자꾸들었다.
그것은 내가 아끼고 정을 흠뻑 쏟아주며 특별히 잘 해주었던, 누구보다도 먼저 축하해주리라 믿고 있던 어느 손아래 형제의 축하 인사가 끝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의 축일엔 잊지않고 매년 꼬박꼬박 축하를 해주곤했는데….. 너무 서운했다. 아니 서운하다 못해 꽁했다.
“오냐, 3일후 네 축일에 두고 봐라. ”
그날 잠을 자기전 늦은 밤에 이메일을 열어보니, 노인복지기관의 어떤 수녀님으로부터 영명축하 카드가 와 있었다.
” 존경하는 신부님 축하드려요….작년에 성탄을 앞두고 저희집에 오셔서 하신 신부님의 강론 말씀 아직도 잊지 않고 있어요….
<성탄날 눈이오면 얼마나 멋있을까요? 그러나 눈을 기다리는 사람은 많아도 자신이 스스로 눈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은 많지않습니다.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은 많아도 스스로 사랑으로 먼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행복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사랑으로
우리가 다시 태어남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이, 곧 진정한 성탄의 의미 입니다.
그 때 우리 모두는 새 날, 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순간 나는 긴 겨울잠에서 퍼뜩 깨어난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끄러웠다.
마치 애인앞에서 갑자기 가발이 벗겨졌을 때처럼….내가 왜 이렇게 옹졸했을까?
아, 이제까지 난 정녕 기도와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이었고 정작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때엔 외면하고,
사랑 받는데에만 익숙해 있었구나!
생각해보면,
추기경님께서는 내가 한번도 당신께 인사를 드리지 않았는데도 매년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던가!
되돌아올 것을 바라지 않고, 그냥 주는것으로만 기쁨을 삼으시는 추기경님이 그날 따라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아 ! 성스러운 분과 보통사람의 차이가 바로 이런것이로구나!’
영명축일에 하느님께서 내게주신 커다란 깨달음의 선물에
깊이 감사드리며, 잠시나마 섭섭하게 여겼던, 그 형제에대한 서운한 마음을 지울수 있었다.
3일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추기경님처럼 영명일을 축하해주는 내 마음은 한결 가볍고 평화로웠다.
주상배(안드레아) 신부 – 도림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