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말씀에서 라자로의 가정에 위기가 닥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위기는 바로 라자로의 죽음입니다. 오빠만을 의지하며 살아오던 삼남매의 가정에서 오빠 라자로의 죽음은 마리아와 마르타에게 말할 수 없는 슬픔이요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비록 병으로 앓아 누워있기는 했지만 이가정의 유일한 희망이 라자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라자로가 죽었습니다. 라자로의 죽음이란 당시 사회에서 그 가정에 희망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가정의 희망이 죽은 것입니다. 그 가정의 보호자가 죽은 것입니다. 그 가정의 믿음의 대상이 죽은 것이고 가문의 운명을 짊어진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절대절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서는 우리가 이렇게 슬픔을 당했을 때 고통가운데 기도하라고 합니다. 하느님께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들도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계십니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4절) 하시며, 그 소식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고 전합니다. 슬픔을 당한 라자로 가정을 외면하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라자로의 가정은 아마 보통 사람들보다 상처를 더 크게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그 가정을 사랑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도 예수님께 자주 기도를 드렸지만, 우리가 간절하게 구했던 것을 그분께서 아예 들어주지 않으시거나 혹은 너무 늦게 들어주시는 것처럼 여겨 크게 실망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보면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라자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도와 주시다’는 뜻을 가진 라자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바람대로 직접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그분께서 더 좋은 것을 계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라자로에게도 마찬가지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 모든 사람들과 임종하신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 어둠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빛과 생명으로 이끌어내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둘째로는 다시 살아난 라자로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해주셨습니다. 라자로를 다시 살려내는 기적을 통하여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모든 죽음을 생명으로 다스리는 주님이라는 신앙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이 이틀을 지체하며 늦게 가셔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깊은 뜻이었습니다. 라자로의 죽음을 통해서 라자로 가정의 믿음이 얼마나 굳건해졌는지 보십시오. 이제는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라자로 이야기의 관건은 어떤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사건이 아니라, 나 자신이 다시 살아나는 사건의 다름 아닙니다.
세 번째로는 믿음의 놀라운 파급효과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다인들도 믿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부활과 생명은 세상의 마지막 날이나 삶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누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결단을 내리는 순간부터 살아 있는 생명에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부활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헛되이 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믿게 하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라자로는 자기의 죽을 병을 내어놓고 그 죽을 병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은 라자로를 통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도구로 쓰셨습니다. 우리의 달란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죽음까지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시는 도구로 쓰시는 예수 그리스도님은 찬미 받으소서.
-김성규 안드레아 신부 ( 천주교 부산교구 좌동성당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