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을 ‘상지(上智)의 옥좌(玉座)’라고 부르는 이유는, 성모님께서 명문대의 유아교육학과를 나오셔서가 아니다. 바로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통해 성자를 기르시려고 노력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지식과 이해심만 가져서는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명심해야겠다.

부인의 태교
최고의 명문대를 나온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축산업을 연구하는 박사였고 부인은 명문대를 수석으로 합격한 선생님이었다. 부부는 결혼하자마자 남편의 연구활동을 위해 오지의 산간마을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부인은 동료 선생님의 선교 활동에 힘입어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입교식을 하던 날, 부부에겐 또 다른 경사가 생겼다. 부인이 첫 아이를 임신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교우들은 부인에게 하느님의 축복이라며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부인은 입덧이 심했음에도 1년 동안 열심히 예비자 교리를 받았다. 임신부의 건강을 염려한 교우들이 아기를 낳은 다음에 세례를 받는 게 어떠냐고도 했지만, 부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가 먼저 세례를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부인은 수녀님께서 가르쳐 주신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세례식과 함께 태어날 아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부인은 만삭의 몸으로 세례를 받았다. 교리 수녀님은 부인의 세례명을 마리아라고 지어 주었는데,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성모님은 상지(上智)의 옥좌(玉座), 즉 ‘지혜로 빛나는 의자’라는 칭호를 받으신 예수님의 어머니입니다. 이 세상은 보이는 것만 중요시하는 지식만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참다운 믿음과 희망,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통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매님은 앞으로 선생님인 동시에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될 것이므로, 그러한 지혜를 바탕으로 자식과 학생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모든 이웃들과 교우들이 그 아기의 탄생을 축하해 주었다.

믿음으로 지킨 아이
어느 추운 겨울 밤, 갑자기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눈이 충혈되면서 왼쪽 눈이 차츰 붓기 시작했다. 부부는 처음에 별것 아니겠지 했는데, 아기의 부은 눈은 금세 커다랗게 변했다. 부부는 당황했다. 읍내의 병원은 너무나 멀었고, 밤늦은 시간이라 다니는 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밖에서는 차갑고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부인이 묵주를 들고 성호를 그었다. 부인은 수녀님이 선물하신 그 묵주를 들고 묵주기도를 하면서 아이의 눈 주위를 성수(聖水)로 계속 닦아주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당황하지 말고 기도하며 성수로 성호경을 그으라는 수녀님 말씀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편의 마음은 이런 마음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묵주나 성수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기도에만 의지하다니… 저런 기도문(성모송)만 반복하는 것이 무슨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가? 저것 역시 미신이 아닌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무슨 도움이 되는가? 나는 저 여자를 참으로 지혜롭다고 생각했는데…’
참다 못한 남편은 밖에 나가서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한참을 지난 뒤 다시 집으로 들어간 남편은 기도만 하고 있는 부인에게 한 마디 쏘아붙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짓 좀 그만해! 날 밝으면 병원에 데려가라구!”
그래도 부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포기하는 심정으로 잠을 청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부인은 잠든 아기를 품에 안고 거실에서 자고 있었는데, 아기의 붓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은 것이었다. 남편은 얼른 부인을 깨워 병원에 가자고 채근했다. 그리고 읍내 병원의 의사는 자초지종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아주 현명하시군요. 이 아이는 눈 주위에 염분을 조절하는 균형이 깨져 있어서,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눈이 일시적으로 감염되었던 겁니다. 이럴 때 급하다고 항생제 같은 약을 함부로 복용하면 도리어 큰일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수로 아이의 눈을 반복해서 닦아 주셨다구요? 정말 잘하셨습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서 성수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식염수와 성질은 비슷할 겁니다. 그리고 밤새 아이를 잘 달래신 것 같아요.”
남편은 부끄러웠다.
“미안해, 여보! 난 그 때 괜히 짜증만 내고 당신과 당신의 신앙을 함부로 평가했어. 내가 잘못했어. 임신한 몸으로 예비자 교리를 들을 때, 당신은 아기를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며 기뻐했는데 말야. 난 그저 신앙을 미신이라고만 생각했어. 정말 미안해!”
그러자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수녀님 말씀이 맞았어요! 이 세상은 지식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었어요. 사랑과 믿음에서 나온 지혜로 살아야 하는 거죠. 성수가 식염수인지는 저도 몰랐어요. 하느님의 섭리이신 것 같아요. 성모님도 예수님을 키울 때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성모님은 평범한 인간인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잖아요. 하지만 그분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통해서 ‘성자의 어머니’라는 역할을 훌륭히 해내셨죠.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커간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어요.”
그 사건 이후 세례를 받은 남편은, 이제 가난한 산간 마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나눔의 봉사자가 되었다고 한다.
성모님을 상지의 옥좌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성모님께서 최고 명문대의 유아교육학과를 나오셔서가 아니라 기도와 믿음 그리고 사랑으로 성자를 기르신 노력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지식과 이해력만으로는 진정한 어머니가 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