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시어 천상의 모후라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영광스럽게 천상의 모후가 되신 것은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찬미가인 마니피캇에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시고”라고 노래하셨듯이 당신 자신을 허무에까지 낮추신 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낮추심을 보시고 성모님께 여왕이라는 영광을 주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낳으시고 예수님의 고난에도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타에서 자신을 성부께 봉헌하신 것처럼, 마리아도 골고타, 즉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 안에서 당신 아드님을 성부께 봉헌한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순종의 영광
창조주 하느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이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께 받은 것입니다. 선도 마찬가지여서 피조물인 인간이 가진 선 역시 하느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느님처럼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원조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지킴으로써 하느님처럼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뱀이 하는 말을 들으면, 하느님과 대등한 관계, 경쟁관계가 되면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느님의 명령을 어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하느님과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완전한 선이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느님께 완전히 순종할 때에만 완전한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과 떨어졌기 때문에 선을 이룰 수 없었고, 하느님처럼 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 순종할 때에만 하느님을 닮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조 아담과 하와와는 달리 성모님은 하느님께 완전히 순종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이신 성자를 낳으실 수 있었고 하느님을 닮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천상의 모후라는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의 종으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사랑의 여왕
참사랑이란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소멸하고 상대방만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순수한 사랑입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받을 것을 알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첨하는 것 등이 그렇습니다. 남녀의 사랑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사랑했으니 상대방도 이만큼 사랑해주겠지 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순수한 사랑은 완전히 상대방만을 향합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지옥에라도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데레사를 하느님께서 지옥에 보내실 수 있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데레사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면 지옥에라도 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완전한 사랑이십니다. 모든 사람 앞에 순수한 사랑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당신을 죽이는 사람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하느님께는 미움이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또 그분은 생색을 내지 않는 사랑을 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받았지만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분은 자신을 소멸시키셨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바로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소멸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자기자신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자서전에서 “칭찬을 받아가며 위대한 일을 하는 것보다 순수한 사랑으로 하는 조그만 선행이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만이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바로 그런 순수한 사랑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피앗(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종이란 자기 것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데 성모님은 하느님 앞에 종으로 계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는 순수한 사랑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님을 ‘사랑의 여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사랑을 더럽히지만 순수한 사랑은 사랑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 프란치스코회 권용희 도미니코 신부
– 마리아 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