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매체의 발달로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청각에서 시각으로 바뀌었다. 대중가요 산업에서 가사와 가창력보다는, 비주얼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따라서 상품으로서의 뮤직비디오(이하 뮤비)에는 고도의 기호학적 영상 전략이 집약될 수밖에 없다. 뮤비에 등장하는 어느 것 하나도 우연히 들어간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입장에서 뮤비 ‘보핍보핍’을 꿰뚫어 볼 필요가 있다.
뮤비 ‘보핍보핍’은 한 편의 포르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 왜 그럴까? 이 뮤비가 포르노의 영상 문법을 그대로 차용해 왔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가 클럽에 가서 섹시하게 춤을 추고 남자를 유혹해서 호텔에서 성관계를 한다. 성행위 도중에 여성이 카메라를 두 번이나 직접 쳐다본다.
지금까지 평생 본 일반적인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등장 인물이 카메라를 직접 쳐다보는 경우가 있는가? 신인 배우가 하는 NG다. 그런데 특정 영화에서는 여배우가 카메라를 노골적으로 쳐다본다. 무슨 영화일까?
남중생에게 질문하면, 전교생이 동시에 즉답한다.
“야동이요! 포르노요!”
남중생들은 어찌 이리도 잘 알까? 포르노는 그들이 일용할 양식으로 퍼먹는 일상적 경험이기 때문에, 그 대답에 막힘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배우가 성행위 도중 카메라를 직접 쳐다보는 것은 화면 밖의 남성에게 직접적인 유혹의 시선을 보내기 위한 포르노 영화만의 전형적인 시선처리 기법이다.
제작자는 포르노의 그것을 코드로 정교하게 사용했고, 아이들은 열광하고 환호하면서 그 코드를 무의식적으로 정확히 해독했다. 이것이 문화라는 공기의 중요함이자 무서움이다.
뮤비는 하룻밤 사랑을 마친 여자가 다시 클럽으로 와서 두 번째 남자를 유혹한 후, 그 품에 안긴 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이 ‘쳐다보기’는 무슨 의미일까? ‘다음에는 네 차례야!’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인터넷을 열고 ‘보핍보핍’ 뮤비를 통찰해 보시길 권한다.
원나잇 스탠드를 주도적으로 반복하는 섹시한 여자가 클럽에 다시 와서 두 번째 남자 유혹에 성공한 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뮤비가 끝난다.
이 ‘쳐다보기’의 의미는 ‘다음에는 네 차례야!’라고 지난주에 설명했다. 이 눈빛의 의미를 물으면 재미있는 차이가 발견된다.
40대 이상 부모들은 전혀 갈피를 못 잡는다. 20대 청년은 10초, 여고생은 더 빨리, 여중생은 거의 즉답 수준으로 의미를 해독해낸다. 왜 나이가 어릴수록 해독이 정확하고 빠를까?
‘21세기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발터 벤야민이 20세기 초에 한 말이다.
소통의 수단이 문자에서 영상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매체(영상)가 새로운 문맹(영상맹)을 낳았기 때문이다. 거대자본이 만드는 영상물을 소비하면서 어린이들은 배운다는 의식조차 없이 왜곡된 성을 내면화하고 있는데, 정작 어른들은 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때때로 익히(學而時習)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현대세계에서 커뮤니케이션 매체는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에게 가정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특히 성교육 분야에도 개입하여 그들에게 지속적인 지식과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는 매체에 매료되어 무방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어른과 어린이들도 자연히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게 된 상태이다. 그들은 작은 화면에 도취되어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몸동작을 모방하게 되고, 거기에서 나오는 감정과 느낌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앞서서 더 잘 감지하게 된다.’
교황청 성교육 지침의 일부이다. 밑줄 친 ‘다른 사람들’은 누구인가? 부모와 교회의 지도자들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인간 생명을 지키고자 한다면, 성의 이상적 모습만을 하향식 우이독경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이 왜곡된 성을 배우는 그 낮은 자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해야 한다.
– 이광호(베네딕토·생명문화연구가)
– http://blog.daum.net/prolifecorpus/1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