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중요한 원인은 죄를 범한 후에 부끄러워서 바로 고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끄러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마귀에게 입을 틀어 막혀 어떤 죄는 그 범행 실황과 횟수를 발표하지 못하고, 또는 똑똑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귀는 누구에게든지 죄를 저지르도록 부추길 때는 그 사람 옆에 와서 속삭이기를, “이 죄를 범한다 해도 너에게 무슨 해가 있겠는가? 하느님은 무한히 인자하시니까 구태여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너는 고해하면 되지 않느냐? 하느님은 몇 번이고 사해주시지 않느냐? 젊은 때는 이런 죄를 범하기 쉬운 것이다. 이 다음에 나이 들어서 보속을 많이 하면 될 것 아니냐?” 라고 오늘도 내일도 되풀이 한다. 사람들은 결국 마귀의 꾐에 빠져 죄를 범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 번 범한 죄는 거듭 범하기가 쉽다. 이미 한 번 범한 죄이니, 두 번 범하나 세 번 범하나 고해하면 마찬가지 아니냐? 이러한 마귀의 속삭임과 마음의 느슨함이 그 사람의 지혜를 흐리게 하고, 자유의지를 약하게 만들어 버린다.
  한 번, 두 번 죄를 범한 뒤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고해하려고 할 때 마귀의 전술은 또 달라진다. “어떻게 네가 이 죄를 남에게 말할 수 있나? 고해 사제가 너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나무랄 것이다. 너를 나쁘게 여길 것이다. 좀처럼 용서도 안해줄 것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차차 기회를 봐서 고해하면 되지 않느냐? 아직 바쁘지 않다. 다음에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것이 아니냐?” 마귀는 이렇게 속삭인다.
  큰 죄를 한 번 범한 사람은 흔히 이 속삭임에 속아 입을 다물게 되고, 신부 앞에 가서 바로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하여 마침내 모고해를 하게 된다.

  마귀란 놈이 이 술책을 쓰는 것을 피렌체 대주교 성 안토니오에게 솔직하게 고백했다. 어느 날 성인이 고해소 옆에 숨은 마귀를 보시고 꾸짖으며 다음과 같은 문답을 했다.
  “이놈, 너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
  “네, 대답을 하지요.”
  “무슨 대답이냐? 똑똑히 말해보아라. 바로 말하지 않으면 단단히 혼을 내줄 테다.”
  “죄를 범할 때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공포심과 수치심을 지금 돌려주려고 여기 서 있습니다.”
  성 돈 보스코도 이런 깜찍한 짓을 하는 마귀를 보았다.
  어느 날 성인이 토리노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고해를 받고 있었다. 고해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특히 젊은이들이 많았다. 순서대로 들어와 고해를 하는데 한 젊은이가 들어와 고해대에 꿇어 절반쯤 고백하다가 갑자기 입을 닫아버린다. 돈 보스코 성인은 하느님의 특별한 성총의 빛으로 자기 제자들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성인인지라 친절히 말하기를, “계속하시오. 또 다른 고해거리는 없소?”
  “예, 없습니다. 이뿐입니다.”
  “이 사람아, 그대는 왜 모고해를 해서 마귀를 기쁘게 하고 우리 주 예수님을 울리려 하는가?”
  “신부님, 정말입니다. 별로 다른 죄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계시로써 이 불쌍한 젊은이가 어떤 위험에 놓여 있는가를 잘 아시는 성인은 쓸데없는 문답을 그치고 나서, “자, 그대 어깨 뒤에 무엇이 있는가 보라!” 하고 말하였다.
  그 젊은이는 신부의 말씀대로 돌아다보고는 갑자기 쓰러지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성인의 목을 끌어안고, “예, 예, 신부님! 저, 저, 또 고해할 죄가 있습니다.” 하고 지금까지 말할 용기를 잃었던 그 죄를 고해했다.
  성당 안에서 그 젊은이의 고함을 들었던 친구들이 그가 성당을 나올 때 그를 둘러싸고 이유를 물었다. 젊은이는 아직도 무서움에서 덜 풀려 벌벌 떨면서 미소를 짓고 말하기를, “아니, 참으로 큰일 날 뻔했다. 최후로 고해할 것이 한 가지 꼭 있었는데 도저히 고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만 말문이 콱 막혀버렸지. 신부님이 다른 고해할 것이 없느냐고 물으시기에 없다고 했다. 그러자 신부님이 네 뒤를 돌아다보라 하시기에 돌아다보았더니… 아이구 무서워, 눈동자는 타는 불같고, 원숭이처럼 생긴 마귀가 기다란 발톱으로 나를 움켜잡으려고 하지 않겠어….” 하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을 마친다.
  물론 돈 보스코는 성인이시다. 고해 사제가 성인이신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다. 모든 고해 사제가 이 돈 보스코와 같이 다 성인은 아닐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며 또한 한없이 인자하시어 항상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이시다. 그의 대리자인 고해 사제도 예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신다. 그러면 우리는 어째서 그를 신뢰하지 않고 바르게 고해할 것을 꺼리는가? 어째서 우리는 마귀의 꾐은 달게 받고, 안자하신 하느님에게는 부끄러움과 무서움 때문에 거짓말을 할 것인가?

  마귀는 항상 이러한 수단을 쓴다. 마치 승냥이가 양을 잡아먹으려면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먼저 양의 목을 졸라매는 것과 같이 사람의 영혼을 그 방법으로 잡는다. 죄를 숨겨 말을 못하도록 그 사람의 목을 졸라매어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한번 마귀에게 속은 사람은 몇 번이고 그 올가미에 걸리게 된다. 참으로 이런 사람이 많다. 모고해를 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매우 불행한 지경에 빠진다. 6계를 범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러한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다. 신덕의 도리를 의심한다든가, 남을 욕했다든가, 원수의 죄를 고해하려고 할 때는 그만 부끄러워져서 죄를 둘러대서 범행 사실을 바르게 말하지 않거나, 여러 번 범한 횟수를 바로 대지 않아 모고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 또 그 다음 계속해서 모고해를 거듭하게 된다. 이와 같이 몇 해를 계속할 뿐 아니라 모고해를 한 다음에는 모령성체가 저절로 따라다니게 된다. 소년시절에 범한 어떤 대죄를 숨겨, 늙어 죽을 때까지 모고해를 계속하다가 한 번도 바른 고해를 못한 채 죽은 사람도 있다.
  특히 젊은 남녀에게 이 ‘부끄러움의 약점’이 대단히 강하다.

  성 레오나르도는 세 번이나 임종할 듯하면서도 그 부끄러움 때문에 모고해한 사람을 보았다고 말했으며, 성 알퐁소 교리를 가르칠 때나 강론할 때, 종종 죄를 감추게 하는 부끄러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도 하고, 모고해 때문에 생기는 해독을 명시하려고 힘썼다. 왜 이 성인이 이 문제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였느냐 하면 어디서든지 이런 나쁜 습관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소녀가 7살 때 정절을 더럽힌 죄를 범했다가 너무나 부끄러워서 첫 고해 때부터 계속해서 그 죄를 아뢰지 못하고 중병에 걸려 고해 사제를 청하여 임종의 모든 성사를 잘 받고 죽었다.
  그 어머니와 형제자매들과 친구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다가도  평소에 열심하고 착하게 살았으니 영혼을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장례를 지냈다. 사흘만에 신부가 그 영혼을 위하여 미사를 지내려고 제대로 올라가려 할 때 누군가가 제의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신부님! 저를 위해 미사를 지내지 마십시오. 저는 지옥에 떨어져 있습니다. 7살 때 지은 죄를 고해하지 못하고 죽는 순간까지 모고해를 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있습니다.” 라고 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13살 먹은 어떤 소녀가 부활주일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영성체 난간에 꿇어 막 성체를 받아 삼키고 나서 별안간 경련을 일으켜 쓰러졌다. 깜짝 놀란 사람들은 소녀를 안고 가까운 집으로 데리고 갔다. 미사가 끝나고 주임신부가 그 소녀에게 갔더니 그녀는 미친 듯이 중얼대며 몸을 비틀고 돌아다니다가 쓰러진다. 신부는 그 아이 이름을 부르며 말하기를, “정신을 차려라. 예수님께 단단히 맡겨라. 금방 성체를 영한 그 예수님을 신뢰하라.” 고 천천히 타일렀다.
  신부의 말을 듣고 그 아이는 눈을 두리번 거리며 무서워하는 기색으로 소리지르기를, “예수님! 저는 모령성체를 했습니다. 고해할 때 숨긴 죄 때문에 모령성체를 했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또 미치광이처럼 돌아다니다가 얼마 후에, 거기 모인 여러 사람들의 커다란 충격과 공포속에서 죽고 말았다.
  여러분은 이러한 예를 보아도 모고해가 얼마나 무섭고 흔히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해할 때는 죄를 바로 고할 것을 힘써야 한다. 조금도 무서워할 것이 없고, 조금도 부끄러워할 일도 없다. 예수께서는 잘만 고해하면 무슨 죄든지, 몇 번을 범했든지 모두 용서해주신다. 고해 사제는 혹독한 사람이 아니요, 정이 갚은 아버지의 마음씨를 지녔다. 그래서 고해할 때 들은 죄를 즉시 잊어버린다. 천주교가 시작된 후로 오늘까지 고해 때 들은 죄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낸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이것을 다른 방도로 이용한 일도 없었다. 그러니 무서워할 것이 무엇이냐? 어떤 죄든, 몇 백 번을 범했든, 항상 바로 고해만 하면 의심 없이 용서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