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 수녀의 치유에 대한 자세한 보고가 인도 캘커타의 대주교 헨리 수자(Henry D’Souza)에게 전해져 마더 데레사의 시복 청원서와 함께 바티칸에 제출되었다.

   마리아 산티시나 밤비나(Maria Santissina Bambina)수도회 소속의 선교 간호사 리타 수녀는 캘커타에서 차편으로 8시간 가량 떨어딘 거리에 있는 가난하고 외딴 페룰리아에 있는 소규모의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70세의 고령이었으나 마을의 가장 가난한 이들, 특히 위생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주 심한 피부병을 앓는 어린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리타수녀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편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아랫배의 통증으로 얼번 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음은 그녀가 직접 쓴 보고서이다.
   “1997년 8월, 외과 수술 후에 간호사가 수술 부위의 실밥을 뽑을 때, 나는 갑자기 말할 수 없이 심한 통증을 느껴 움직일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통증을 잘 참을 수 있었는데 그 통증은 다른 것과는 달리 단순히 참을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다리를 펴면 통증이 심해졌기 때문에 계속 오므리고 있어야 했다. 의사들은 난감해 했고 이 끔찍한 통증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럴 즈음에 리타 수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마더 데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1997년 9월 5일이었다.
   “내 동료 수녀가 고인의 시신에 닿았던 작은 천 조각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그녀는 그것이 병자에게 위안을 가져다 줄 것을 확신했다.
   “나는 내 동료 수녀가 가져다 준 천 조각을 상처에 대었다. 그리고 속수무책의 의사들이 내게 수많은 약과 주사와 진정제를 주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나는 예수님께 간청하고 마더 데레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9월 17일 1시쯤이었다. 여전히 나는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게 명령하는 아주 분명한 목소리를 나는 듣게 되었다. ‘왼쪽으로 돌아 누워라!’ 그 소리에 나는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곧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누워라!’ 그러나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 누웠다!
   아침 7시에 나는 다시 그 전날 밤에 들었던 것과 똑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일어나서 걸어보아라!’ 나는 곧 순종하여 일어나 걸었다! 나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완전히! 통증을 전혀 느낄 수 없었고 통증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약을 끊고 즉시 페룰리아로 돌아갔다. 소리의 주인공이 마더 데레사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인도어가 아니라 영어였다. 그리고 마더 데레사는 선교지에서 오로지 영어로 말했었다! 나는 이것에 대해 교회에 진술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이 치유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걸어서 로마까지라도 가겠다!”

   리타 수녀는 방글라데시 전쟁(1972년) 때에 마더 데레사와 친분을 맺었었다. 그때 그들은 인도에 들어 온 수천만 난민들을 함께 돌보았다. 그 당시 그녀의 눈에는 마더 데레사가 이미 성인으로 보였다. 예를 들면, 마더 데레사는 식사 때 언제나 소금을 뿌린 한 줌의 쌀만 먹었고 다른 손에는 기도를 하기 위해 언제나 묵주를 들고 있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돌보았는데도 마더 데레사에겐 한 줌의 쌀이면 중분했던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자기 포기와 금욕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친절하고 자비로우십시오
그 사람을 더 착하고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오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선하신 하느님의 살아있는 증거가 되십시오.
여러분의 얼굴에, 눈에, 웃음 속에, 따스한 인사속에,
선을 지니십시오.
우리는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착한 등불입니다.
여러분들은 결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을 잊을 정도로
근심 걱정에 싸이지 마십시오.
그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 마더 데레사의 말씀

– 헨리 수자; 마리아 1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