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 다락방에 쏟아진 은총 …김혜경

1982년 순천 성 가롤로병원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해질녘에 성모상 앞에서 성가를 부르며 묵주기도를 바치시는 수녀님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개신교 신자였던 저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이상하게도 가톨릭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저는 광주 지산동 성당에서 교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이 생겨 영세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치는 수녀님들을 통해 나를 부르셨다는 걸 깨닫고 성모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려고 했다면 좋았으련만, 솔직히 그때는 영적인 눈이 안 뜨였고 그 후 10년 간 영세도 안 받고 성당을 다니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환경에서 자란 저에겐 항상 성모님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성모상을 향해 인사를 올리는 신자들에게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엔 영세를 받고 싶다는 갈망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1992년에 다시 교리를 시작하여 광주 ‘명상의 집’에서 대피정을 끝내고 거기 계시는 예수 고난회 신부님의 권유로 영세를 받게 되었고, 제 두 아이도 첫영성체를 하게 되었습니다.

별다른 거부감 없이 3년째 신자생활을 하고 있던 차에 어느 날 직장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당혹스럽고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동료 의사들이 수술이 아주 잘 됐다고 해서 저는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신약성서를 필사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도 예수님께서 제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몰랐고, 또 건강을 되찾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도 드리지 못한 채 현대의학의 탁월함만 믿고 교만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수술 부위에 통증이 엄습해 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CT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진통제만 먹으며 지냈으나 이것도 차도가 없어 여러 부위를 정밀조사한 결과 척추에 남아 있던 암세포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3개의 척추를 잘라내야만 했습니다. 그런 뒤로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누워서 밥을 받아먹어야 했습니다.

주님께 제발 얼른 데려가시라는 기도만 입에 달고 침대에 묶여 지내던 중 콩팥까지 망가져 양쪽 콩팥에 호스를 꽂고 살게 됐습니다. 이미 많은 신경들이 잘려버린 뒤라 매일 단말마의 고통 때문에 마약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심해진 고통 때문에 하루에 마약주사를 24차례나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자매가 찾아와 다락방 기도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누구와 만나는 것도 싫었고, 본래 성모 신심이 없던 터라 그 자매의 권유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내게 무안을 당하고 돌아가는 자매님 뒷모습을 보면서 나를 도와주려고 찾아왔는데 너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영적으로 저를 돌봐주시던 신부님께 상의를 드렸더니 그 자매의 간곡한 성의를 봐서 2,3개월만이라도 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껏 성모상을 향해 고개 한번 숙인 적이 없던 저는 다른 본당의 어느 자매와 함께 다락방 기도를 시작해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 입원해 있을 때에는 전화로 성모님의 메시지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저의 내적 정화를 위해서 성모님의 원의에 따르기 위해 성당 유아방에 누워 첫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를 5개월간 봉헌하였고 예전에는 자주 보지 않던 고해 성사도 자주 보고 있습니다. 극심한 통증속에서 하루하루 저를 지탱해주는 것은 그 자매와 하는 다락방 기도입니다. 다락방 기도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잠시나마 통증을 잊게 해주는, 그래서 제가 목을 빼고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하느님의 섭리와 성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며 지낸다고 했지만, 마약에 찌들어 폐인이 다 돼가는 제 모습을 보고는 동료 의사들과 가족들이 정신병원에라도 입원을 시켜 주사를 끊게 해야 한다고 계획을 세웠나 봅니다. 그런데 다락방 기도를 해나가던 중 정말 놀랍게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다락방 기도의 은혜 안에서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절대 못 끊는다던 마약을 입원하지 않고 끊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이 사실을 믿지 못해 거듭거듭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신교 신자 친구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제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옛날의 제가 아닌 새로운 저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단말마의 고통과 번민, 돌볼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에 빠져 있던 제가 다락방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지켜보던 부모님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요한과 요안나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메주고리에를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7일간 온힘을 다해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출발 당일이 돼도 몸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깊은 절망감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이게 끝인가보다 하고 죽음을 떠올리며 고통스럽게 울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강물 같은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제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막달레나 마리아의 심정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하고 울고 있는 막달레나 마리아의 등 뒤에서 주님이 “마리아!”하고 부르셨을 때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큰 기쁨과 위로와 평화로 가득찼겠습니까!

저에겐 아직도 끊어야 할 애착과 집착의 끈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잘라내 티없으신 당신의 성심에 봉헌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주님과 성모님의 은혜를 체험했기에 누가 뭐래도 다락방 기도 모임을 널리 알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