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 처럼 일하며 살고 죽어야 합니다.”
성 호세마리아의 “밭고랑” 에서
880 당신이 죽음에 관해서 생각할 때 당신의 죄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이미 당신이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과 당신이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는가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그분을 찾는다면 그분께서는 탕아를 환영한 그 아버지같이 당신을 환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885 죽음에서 비극을 만들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랑이 없는 자녀들만이 자기네들의 부모를 만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876 죽음에 직면할 때는 조용해지십시오. 나는 당신이 이교도의 냉철한 극기심을 갖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마는, 생명이 바뀌는 것이지 빼앗겨 버리는 것이 아님을 아는 열정을 갖기를 원합니다. 죽는 것은 사는 것입니다!
879 죽음은 오고 회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의 생명에 우리들의 존재의 중심을 둔다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허영인지요.
많은 남녀들이 얼마나 많이 괴로워 하는가를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생명이 종말에 오고 있고 생명을 떠나는 것이 그들을 아프게 하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다른 사람들은 생명이 계속되고 있고 그들이 생명을 귀찮게 여기기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두 가지의 경우에는 다, 우리들의 이 세상에서의 삶을 그 자체에서 끝나게 한다는 그릇된 견해를 성립시킬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버리고 자신이 다른 것, 곧 영원한 것에 머물러 있게 해야 합니다. 지나가 버릴 자기 중심적인 동기들로부터 자신을 비우기 위해, 그리고 영원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새로워지기 위해 총체적인 변개가 요구됩니다.
882 시간은 영생을 살 돈인, 우리들의 보물입니다.
884 우리들의 친구인 그 사제는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의 아버지다운 손에 매달리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이 기본되는 생각들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해주는 동안 분발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ㅇㅐㄲ네가 죽을 때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인데, 그것은 그분께서 계속 일들을 돌보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887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혁명은 아픔을 결실 많은 고난으로 바꾸는 것과 악한 것을 무엇인가 선한 것으로 되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악마로부터 이 무기를 빼앗아 버렸고, 그리고 그 무기로 우리들은 영생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891 만약에 당신이 당신 자신을 영 형편없는 피조물이라고 보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들의 누이인 죽음에 대한 생각에 불안을 느낀다면 마음을 다잡으십시오. 하늘나라가 우리들을 기다리니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무한한 아름다움과 위대함, 그리고 행복과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인 보잘것없는 진흙 그릇에, 언제나 새로운 기쁨의 신선함으로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부어지게 될 때 그 경지는 무엇 같겠습니까?
893 그들이 죽을 때에 엄청나게 행복한 것은 틀림없이 자기 생명의 일분마다를 영웅적으로 산 이들일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이 만남을 위해 조용한 조바심으로 여러 해 동안 준비해 온 이들의 기쁨을 내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895 죽음에 관한 생각은 당신이 사랑의 덕행에서 자라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과 함께 있는 이 독특한 순간이 최후의 것이 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또는 당신 또는 나는 어느 한 순간에 가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898 우리 성모님은 육신과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그분한테서 떨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소원을 들어 주실 것입니다!
성 호세마리아의 “대장간” 에서
987 하느님의 자녀는 삶도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의 영적 새명은 신적 자녀라는 의식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이시고 그분은 모든 선의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끝없이 자비하시다.
그러나 그대와 나는,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자녀처럼 행동하고 있습니까?
988 그대가 내 말을 알아 들었기에 기뻤습니다. 그대와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일하며 살고 죽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이런 식으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037 죽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믿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과연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대가 계속 이 세상에 있기를 주님께서 바라시는 한, 그대가 죽으려는 것은 겁을 집어먹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위해 사는 것, 즉, 살아 고통받고 일하는 이것이 그대의 임무입니다.
– 성 십자가와 오프스데이 http://www.opusdei.org/art.php?w=24&p=11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