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끔 시나이, 다볼, 갈바리의 정상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산이라는 상징을 이용하여, 안또니오 성인은 그리스도의 표양과 도움으로 보다 용이하게 도달할 수 있는 덕에 대한 우리의 접근에 대하여 기술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으로 올라 가셨다.” (마태 17,1)
   위의 세 자자들, 즉 예수님의 특별한 친구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각각 영혼의 세가지 특성을 나타냅니다.
   이 세가지 영혼의 특성이 없이는 광채를 발하는 높은 산을 오를 수 없으며 하느님과의 친분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을, 야고보는 인내를, 그리고 요한은 하느님의 은총인 사랑을 나타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바를 그대로 믿고 따르며 구원을 희망하는 사람은 베드로를 본받아 자기가 지은 죄를 인정하고, 특히 교만과 육욕의 갈망 그리고 물직적 부의 탐욕을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야고보를 본받아 교만을 부수고, 욕정을 억제하며, 덧없는 이 세상의 물질적 부의 축적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 (묵시 3,20) 하느님의 은총인 요한을 본받아 자신이 저지른 죄를 인정하고, 자신이 행한 선행을 보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계시된 세 사도(종도)

   이 세 사도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다볼에 있는 상수리 나무 쪽으로 건너가시오. 거기에서 그대는 하느님을 예배하러 베델로 올라가는 세 사람과 마주칠 것이오.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세 마리를 안고 한사람은 떡 세 덩어리를 가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술 한 자루를 메고 올 것이오” (1사무 10,3) 라고 권고했을 때 나온 세 사람과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상수리나무와 다볼산은 덕망 높은 고결한 삶의 탁월성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결한 삶은 궁극적인 인내 안에서 힘과 견고함을 창출한 까닭에 상수리나무와 같습니다. 다볼산은 고결한 삶을 상징하며, 좋은 표양의 빛을 발하는 광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지조, 하느님께 대한 관조, 좋은 표양의 빛은 고결한 삶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여러분이 다볼산 쪽으로 건너갈 때에, 여러분은 하느님을 예배하러 베델로 올라가는 세 사람, 즉  염소 새끼 세 마리를 안은 죄를 인정한 베드로와 떡 세 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죄를 극복한 야고보, 그리고 술 한 자루를 진 하느님의 은총인 요한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한 죄인 배드로는 죄의 악취를 의미하는 세 마리 염소를 안고 있습니다. 이 세마리 어린 염소는 우리가 범하기 쉬운 교만, 욕정의 갈구, 물질적 부의 탐욕이라는 주요한 세 가지 죄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빛의 산에 오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죄를 뜻하는 세 마리의 염소를 안고 올라가야 합니다.
   야고보는 이런 죄악을 극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떡 세 덩어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떡의 달콤한 향기는 겸손한 마음과 육체의 순수함, 그리고 깨끗한 사랑안에서만 발견되어 질 수 있는 영혼의 기쁨을 자아냅니다. 이 아름다운 체험은 먼저 이 세 가지 죄를 극복할 때에 비로소 맛볼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와 같은 떡 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는 교만을 무너뜨리고, 욕정에 대한 향수를 극복하며, 물질적 부의 탐욕을 과감하게 버립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한 요한은 성령의 은총을 상징하는 술 한 자루를 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신 것처럼 우리 또한 다볼산의 정상을 향하는데 있어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덕의 사다리

   산은 가파르기 때문에 올라가는데 용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서에 언급된 사다리로 산의 정상에 오르는데는 용이합니다.
   “야곱은 꿈에 땅에서 하늘에 닿는 사다리가 있고 그 사다리로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하느님께서 그의 옆에 서 계셨다.” (창세 28,12-13)
   ‘야곱은 보았다’는 죄의 고백을 뜻합니다.
   이것에 관하여 성 베르나르도는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하느님은 나의 죄악을 볼 수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통찰력도 나에게 베풀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의 ‘야곱’은 죄를 극복한 신약의 ‘야고보’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꿈에’는 평화로이 잠들게 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하느님 은총의 잠으로 그의 정욕을 극복했을 때 정신적인 힘은 증가됩니다.
   여러분은 정욕의 욕망이 감소되고, 정신의 힘이 증가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가서에서 “나는 잠들었지만, 나의 정신을 깨어 있었네” (5,2) 라고 신부가 말한 것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야고보가 꿈에 본 사다리로 다볼산을 오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사다리

   야고보의 꿈에 나타난 사다리는 두 개의 축대와 여섯개의 층계 혹은 십자가 발판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두 개의 축대는 그분의 두가지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을 의미하며, 여섯 개의 층계는 그리스도의 여섯 가지 덕, 즉 겸손, 가난, 지혜, 사랑, 인내 그리고 순종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이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겸손의 표양을 보여주셨습니다. “주께서 비천한 종의 신분을 취하셨다” (루가 1,48)
   그리스도의 가난은 하느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비천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심으로써 분명해졌습니다. 마리아는 아기를 눕힐만한 곳이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히지” (루가 2,7)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지혜는 “그분이 행하고 가르치셨을 때” (사도 1,1) 이미 모든이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13) 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모든 죄인들에게 당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욕받고, 괴로움 당하며, 빰을 맞아도 “차돌처럼 내 얼굴빛 변치 않는다” (이사 50,7) 라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행하셨습니다. 단단한 돌인 차돌은 누군가에게 맞아도 앙갚음하지 않고 맞아서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공생활 동안 “그분은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으며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면서” (1베드 2,23) 행동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립2,8)
   야고보가 꿈에 본 사다리는 지상에 내리워져 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기적으로 지탱되고, 그분의 가르침에 의해 확고히 지상에 서 있습니다. 이 사다리는 “예수께서 산에 들어가 밤을 세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던” (루가 6,12) 까닭에 천상에 닿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이 사다리에 오르기를 주저하십니까? 여러분은 왜 손과 발을 이용하여 네 발로 땅을 기어 다닙니까? 야고보가 본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사들과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 이 사다리에 오르는 것처럼 천상에 이르는 사다리에 오르십시오. “야훼의 어지심을 맛들이고 깨닫기” (시편 34,9) 위해 이 사다리를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이웃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는 그들을 돕기 위하여 사다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왜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위험이 따르는 방법을 사용하여 올라가려 하십니까?
   “너희는 어리석고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루가 24,25) 나는 여러분이 믿는 까닭에 믿어 달라는 말을 하지 않겠지만 여러분이 믿음을 실천에 옮기기를 주저하는 까닭에 어리석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겸손과 가난의 사다리를 밟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지않고 다른 어떤 수단들을 이용하여 하느님의 빛이며, 천상적 지복의 영광인 다볼산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주님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태 16,24)고 말씁하십니다.
   성 아우구스띠누스는 “아픈 사람은 쓴 약을 복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그리고 성 그레고리오는 “한 컵의 쓴약은 건강의 즐거움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말씀히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두려워마시고 주님께서 손수 바쳐주신 사다리로 올라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하느님께 영광을 받았듯이 여러분이 이 사다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빛의 산에 오른다면 여러분 역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 출처 : 백합의 향기 (SEEK FIRST HIS KINGDOM)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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