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지옥 같은 밤이었는가! 정말이지 마귀들이 이 세상에서 기분전환을 하는 것 같았다. 대포소리, 천둥, 번개, 위험, 공포, 내 침대가 아닌 침대에 있다는 고통, 그리고 이 모든 것 가운데, 마치 불과 고생 가운데 한 송이 기분 좋은 흰 꽃 모양으로, 금발을 땋아 내린 머리가 어깨에 드리워져 있고 흰 옷에 온화하고 조용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어제 본 환상에서보다 약간 나이가 더 든 마리아의 상냥스러운 존재가 있다. 마리아가 마음 속에 거두어들인 영광스러운 신비 쪽으로 향한 내면에서 나오는 미소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환상을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인성과 비교하는 것으로 밤을 보내면서. 중상을 하는 증오 앞에서 부르는 사랑의 살아있는 노래인 어제 아침의 그분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였다‥‥
오늘 아침에는 내 방의 고요 속으로 돌아와 이 광경을 목도하였다.
마리아는 여전히 성전에 있다. 지금 마리아는 엄밀히 말해서 다른 동정녀들과 같이 성전에서 나온다. 아름다운 황혼의 아주 새빨간 환경 속에 향 냄새가 터지는 것으로 보아 어떤 의식이 있는 모양이다. 약간 애조를 띤 하늘이 마치 청명한 10월 처럼 예루살렘의 정원들에 내리덮이고, 그 정원들에는 멀지 않아 떨어지려는 나뭇잎들의 황갈색이 올리브나무들의 은빛 도는 초록색에 노랗고 빨간 반점을 찍어놓고 있으니까 늦가을인 것 같다.
꿀벌떼라고 말할 수 있을 동정녀들의 무리는 뒤에 있는 작은 마당을 건너지르고, 계단을 올라가고, 어떤 작은 문을 지나, 덜 화려한 네모반듯한 다른 마당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는 동정녀들이 방금 들어간 출입구 외에 다른 출입구는 없다. 그것은 성전에서 쓰는 동정녀들의 작은 거처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마당인 모양이다. 각 처녀가 마치 비둘기가 제 둥지를 찾아가듯이 자기의 독방으로 향하여 가기 때문이다. 모였다가 헤어지는 비둘기들이 날아가는 것 같다. 모두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처녀들이 헤어지기 전에, 작은 목소리지만 기쁘게 서로 말을 한다. 마리아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 다만 다른 처녀들과 헤어지기 전에 그들에게 다정스럽게 인사를 하고 나서 오른쪽 한 구석에 있는 그의 작은 방으로 향한다.
그 방으로 어떤 여선생이 마리아를 찾아왔다. 그 여자는 파누엘의 딸 안나처럼 늙지는 않았지만 나이가 많아 보인다.
“마리아야, 대사제님이 오라신다.”
마리아는 약간 놀라서 여선생을 쳐다본다. 그러나 질문은 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이렇게만 대답한다.
“곧 가겠습니다.”
마리아가 들어가는 큰 방이 사제의 집에 딸린 것인지 또는 성전에 고용된 여자들의 아파트의 일부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그 방이 넓고 매우 환하게 불이 밝혀지고 대단히 잘 정돈되어 있으며, 즈가리야와 파누엘의 딸 안나가 화려한 옷을 입은 대사제와 거기에 같이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문지방에 이르러서 허리를 깊이 굽히면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대사제가 “마리아야, 앞으로 나아오너라. 무서워하지 말고” 하고 말할 때에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 마리아는 몸을 다시 일으키고 천천히 앞으로 간다. 민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무엇인지 모를 엄숙함으로 그렇게 해서 그를 더 여인답게 보이게 한다.
안나는 용기를 주려고 마리아에게 미소를 보내고, 즈가리야는 인사를 한다.
“사촌 동생아, 너에게 평화가 있기를.”
대사제는 주의 깊게 마리아를 살펴보더니 즈가리야에게 말한다.
“이 처녀에게서는 다윗과 아아론의 혈통이 분명히 나타나 보이는군요. 딸아, 나는 네 우아함과 착함을 안다. 네가 날마다 하느님과 사람들의 눈에 지식과 은총으로 자랐다는 것도 안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네 마음에 가장 다정스러운 말씀을 속삭인다는 것을 알고, 네가 하느님의 성전의 꽃이고, 네가 성전에 있은 다음부터는 증언대 앞에 셋째 케루빔 천사(역주: 마리아를 뜻함)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네 생활의 향기가 날이 새로 시작될 때마다 계속 향과 더불어 올라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율법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이제 너는 어린 소녀가 아니라 한 여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여인이든지 아들을 주께 바치기 위하여 아내가 되어야 한다. 너도 율법의 계명을 따라라. 두려워하지 말고, 얼굴을 붉히지 말아라. 나는 네가 왕가의 후예임을 잊지 않고 있다. 각 남자에게는 같은 혈통의 여인이 주어져야 한다는 명령하는 율법이 벌써 너를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칙이 없더라도 나는 네 혈통의 고귀함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마리아야, 네 가문에서 네 남편이 될 만한 남자를 아무도 모르느냐?”
마리아는 수줍어서 새빨개진 얼굴을 든다. 그의 속눈썹에는 첫 번째 금강석이 반짝이고, 마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무도 없습니다.”
“이 애는 아주 어려서 여기 들어왔기 때문에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가문은 너무도 박해를 받아 흩어져서 그 여러 분파가 모여서 왕가의 종려나무에 새로운 손을 나오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고 즈가리야가 말한다.
“그러면 선택을 하느님께 맡겨 드립시다.”
그 때가지 참았던 눈물이 솟아나와서 떨리는 입으로까지 흘러내리고, 마리아는 여선생에게 애원하는 눈길을 던진다.
“마리아는 주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주님께 바치기로 약속했습니다. 글을 겨우 떠듬떠듬 읽을 줄 아는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서원으로 매여 있었습니다‥‥” 하고 안나가 마리아를 돕기 위하여 말한다.
“네 눈물은 그러면 그 때문이었느냐? 율법을 거역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고?”
“그 때문이지‥‥다른 이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의 사제님, 사제님께 순종합니다.”
“이것으로 내가 네게 대해서 들을 모든 말이 확인되었다. 몇 해 전부터 동정에 몸을 바쳤느냐?”
“처음부터라고 믿습니다. 제가 아직 성전에 오지 않았었을 때, 벌써 저를 주님께 바쳤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12년 전에 내게 와서 들어오기를 청한 어린 아이가 네가 아니냐?”
“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때 벌써 네가 하느님께 속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
“지난 날들을 뒤돌아보면 제가 하느님께 바쳐진 것을 다시 확인하곤 합니다‥‥제가 난 순간은 생각이 안나고, 어떻게 어머니를 사랑하기 시작하고 아버지께 ‘아버지, 저는 아버지 딸이에요’ 하고 말씀드리기 시작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제 마음을 하느님께 바친 것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첫 번 입맞춤과 같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제가 말한 첫마디 말, 제가 내디딘 첫걸음과 더불어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예, 맞습니다. 제 첫 번째 사랑의 기억을 저는 제 자신있는 첫걸음에 찾아낸다고 믿습니다‥‥ 저희 집‥‥저회 집에는 꽃이 가득찬 정원이 있고‥‥ 과수원과 밭이 있었고‥‥ 또 저 안쪽에는 조그마한 산 밑에 샘이 하나 있었는데. 그 샘물은 파져서 동굴을 이룬 바위에서 솟아나왔고‥‥ 바위에는 길고 가는 풀이 잔뜩 나서 사방으로 작은 초록색 폭포 모양으로 떨어져서 우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작고 가벼운 풀잎들, 자수같이 보이는 잎들에는 모두 작은 물방울들이 매달려 있어 그것들이 떨어지면서 조그마한 아주 조그마한 종악(種樂)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샘물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샘 윗쪽 비탈에 있는 올리브나무와 사과나무들에는 새들이 있었고, 또 흰 비둘기들이 와서 거울같이 맑은 샘물에 몸을 씻었습니다‥‥ 제 마음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쳤었고, 또 살아계실 때에나, 돌아가신 후에 사랑한 아버지 어머니 이 외에는 제 마음이 이 세상의 아무 물건에도 애착을 가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제님이 제게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 저는 언제 저를 하느님께 바쳤는지 찾아야 하는데‥‥ 제 아주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되살아옵니다‥‥.
저는 그 동굴을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물과 새들의 노래보다도 더 기분 좋은 목소리가 제게 ‘내 사랑하는 딸아,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거기서 제 주님의 표를 보기 때문에 소리 나는 금강석 같은 그 물방울들을 사랑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저 자신에게 말하는 데 골몰했습니다. ‘내 영혼아, 네 하느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알겠느냐? 북쪽에는 레바논의 서양삼송을 만드신 그분이 네 눈을 기쁘게 하시려고 작은 파리의 무게에도 휘는 져 자은 잎들을 만드셨고, 네 작은 발을 위해 융단 같은 풀밭을 만드셨다’ 하고요. 저는 깨끗한 물건들의 그 고요를 좋아했습니다. 가벼운 바람, 은빛같이 반짝이는 물, 깨끗한 비둘기 같은 것들을요‥‥ 저는 그 작은 동굴 위에 감도는 평화를 사랑했습니다. 그 평화가 때로는 꽃이 되어, 또 때로는 귀한 열매를 지니고서 사과나무와 올리브나무들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그 목소리가 제게, 그렇습니다, 제게 ‘너 훌륭한 올리브야 오너라, 너 단사과야 오너라, 너 봉인한 샘물아 오너라, 너 내 비둘기야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다정스러웠습니다‥‥ 저를 부르는 그분들의 목소리는 다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그 목소리는 ! 아아! 지상낙원에서, 죄지은 여자가 이렇게 그 목소리를 들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여자가 이 사랑의 목소리보다 휙휙거리는 소리를 더 낫게 여길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 남자가 하느님이 아닌 지식을 탐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어머니의 젖밖에 알지 못하던 제 입술로, 그러나 천상의 꿀로 취한 제 마음으로 전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갑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제 정신이 다른 사랑을 가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이신 당신 이외에는 아무 다른 주인도 제 육체를 탐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그리고 그 말을 할 때에는 저는 이미 말한 것을 다시 말하는 것 같았고, 이미 행한 의식을 다시 행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선택했던 정배가 제게는 낯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제가 벌써 그분의 사랑의 열렬함을 알았었고, 제 눈이 그분의 빛에 훈련되어 있었고, 제 사랑하는 능력이 그분의 품 안에서 발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제 그랬을까요?‥‥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이생 밖에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항상 주님을 모시고 있었고 주님은 저를 항상 차지하고 계셨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또 제가 있는 것은 주님 자신께서 당신의 성령의 기쁨과 제 기쁨을 위하여 저를 원하셨기 때문이라는 느낌을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사제님,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 제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계시니, 사제님이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네게 남편을 주실 것이다, 네가 너를 하느님께 바쳤으니 거룩한 남편을 주실 것이다. 남편에게 네 서원한 것을 말하여라.”
“받아들일까요?”
“그러기를 바란다. 딸아, 그가 네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하여라. 이제는 가거라. 하느님께서 항상 너와 같이 계시기를 바란다.”
마리아는 안나와 같이 물러가고 즈가리야는 대사제와 같이 남아 있다.
-환상은 이렇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