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교제=성관계’ 공식 권하는 사회

성적 가치관은 어떻게 형성될까? 독일의 작가 마틴 발저가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라고 했는데, 인쇄문화 시대에는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가치관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책의 시대일까? 책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책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 TV,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영상매체가 등장했다. 이런 영상문화 시대의 사람은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을 통해 만들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문제는 책을 통해 자주 접하는 내용과 영상매체를 통해서 자주 접하는 내용이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다르다는 데 있다. 책은 인문 고전을 주로 접하게 해주지만, 영상매체는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광고,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상업적 영상물의 압도적 통로가 되기 때문에 지배적 매체가 바뀌면 성적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긴다. 이것은 단순한 세대차가 아니라, 영상매체가 형성해 준 완전히 새로운 성 의식이다.

영상매체의 무서운 각인 효과

부모교육 특강 때 다음과 같은 사진을 보여 주고 그 대사를 물어 보면, 40~50대 어머니들이 모두 정답 “이 안에 너 있다”를 정확히 말한다.

10년도 더 지난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고, 기억력이 후퇴하는 연령대의 성인들이 정확히 그 대사를 기억해 내는 것인데, 이를 보면 영상매체의 각인 효과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성인이 이 정도인데, 무엇이든 잘 흡수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상물 제작자가 아이들의 무의식에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조각칼로 새겨 넣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원하는 이상적인 첫 키스를 자세히 써보라고 하고 한 사람씩 읽게 하면, 여학생의 70%는 ‘눈 내리는 날 가로등 불 밑’에서, 남학생의 절반은 ‘골목길’ 혹은 ‘자동차 안’에서 해야 한다고 한다. 왜 이렇게 획일적일까? 어려서부터 일상적으로 본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광고에서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첫 키스의 전형을 이렇게 무의식에 각인받았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안녕하십니까

무의식 안의 내용은 전문가가 들춰내 주기 전까지는 그 존재조차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인간 행동의 상당 부분을 지배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섭지만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이런 정교한 행동 조작이 가능하다.

영화와 드라마는 낭만적인 연애의 환상을 반복해서 주입한다. 연애하면 놀이동산에도 가야 하고, 극장에도 가야 하고, 며칠이면 특정 이벤트를 해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가르친다. 그렇게 여행 가서 해가 지면 어디를 가야 하냐고 물어보면, 대학생들은 웃으며 “MT”라고 말한다. 멤버십 트레이닝(membership training)이 아니라 모텔(motel)이다. 같은 질문을 제주의 여고 1학년들에게 특강 때 하니 전교생이 일제히 “펜션”을 외쳤다. 제주에는 펜션이 많고 육지에서 여행 온 젊은 커플들이 펜션에 오는 것을 익숙하게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가 보여 주는 연애에는 성관계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런 영상물을 통해서 배운다는 의식 없이 성을 접한 세대는 연애하면 성관계는 당연히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무의식에 ‘이성 교제=성관계’라는 등식이 자리를 잡은 것인데, 이런 현상을 우리 주교님들께 알려드린 적이 있다. 2013년 주교회의 춘계총회 주교연수 특강이었는데, 주교님들이 납득이 잘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셔서 “주교님, 이해가 안 되시면 외우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인쇄문화의 영향권 아래서 살아온 50대 이상 세대에게는 ‘이성교제 안에 성관계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는 가치관과 성 행동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또 이런 현상을 인정한다 해도 극히 일부의 일탈일 뿐 ‘내 아이는 그렇지 않아!’라고 단정하기 때문에 교육적 대안을 마련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초고속 인터넷과 와이파이의 역습

그런데 아이들이 성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만 배울까?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이 가정집 안방까지 다 들어와 있고, 무제한 사용이 가능한 전 세계 유일 국가다. 이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서 이미 빛의 속도로 확산돼 버린 것이 무엇일까? 포르노그래피다. 상황이 이렇기에 우리나라는 1인당 포르노 소비량이 전 세계에서 압도적 1위다. 뉴스위크 인터넷판(2011년 2월 6일)에 ‘1인당 포르노 산업 매출 1위 국가는 한국’이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초고속 인터넷과 어디서나 연결되는 와이파이 덕분에 대한민국은 1인당 포르노 소비량 세계 1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르노를 어느 정도로 소비할까? 해외 포르노 업자가 검찰에 저작권 소송을 걸 정도로 소비한다. 실제로 2009년 ‘헤비 업로더’(불법 저작물을 인터넷에 대량으로 올리는 사람) 수천 명이 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포르노 제작사가 대규모 저작권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는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포르노 소비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어린이, 청소년들은 세계에서 포르노를 제일 많이 보는 아이들인 것이다. 성을 환상적으로 상품화하는 드라마, 영화, 그리고 포르노그래피를 통해서 성을 배워 버린 세대는 성관계라는 문턱을 쉽게 넘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보다 ‘성’에 더 개방된 대한민국

페이스북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표준 연애진도표<사진>다. ‘첫경험 나이 19.4세, 첫키스 나이 18.2세, 평균 사귄 후 첫키스까지 시간 6.7일, 평균 사귄 후 잠자리까지 시간 29.3일’이란다. “대한민국 평균 미달인 녀석들 반성해라”라는 글까지 달렸다. 이러한 게시물에 댓글이 “나도 XX”, “다합격” 등이 달렸다. ‘좋아요’가 2만 4553건, 공유가 838건이다. 연애하면 한 달 안에 성관계하는 것이 연애의 기본 공식이 되어 버린 현실을 잘 반영해 주는 게시물이다.

한 달 안에 성관계가 이루어지면 그 연애가 지속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삐꺽거리다가 깨진다. 대학생 청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빠른 아이들은 중학생부터 그렇다. 그런데 이것 자체가 잘못된 성 문화라고 알려주는 성교육이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 그냥 콘돔만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환상을 주입하는 교육이 대한민국 성교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청소년 첫 성 경험 연령이 지속적으로 내려가서 2014년에는 12.8세까지(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내려갔다. 성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만의 평균 연령을 산출한 것이지만, 성이 개방되었다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우리가 더 낮다. 성 개방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나라인 네덜란드 청소년의 첫 성 경험 연령이 2010년 이후에 18세 이상으로 올라간 것과 비교하면 우리 사회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교육과 사회적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거대 피임 산업과 유착돼 그들의 후원을 받는 피임 교육이 아닌, 상식적이어서 오히려 낯설고 생소한 교육적 대안을 앞으로 연재를 통해 보여 줄 것이다.

–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04816&path=201712
– 가톨릭 평화신문 기획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