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 사제에 대한 순종이라 함은 그를 신뢰하고 신용하며 그의 판단에 자기를 아주 맡기며, 그의 명령과 훈계와 권면을 충실하게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혹시 내가 아직 전부를 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고해 사제가 좋다, 알았다, 그만 해도 넉넉하다라고 말할 경우가 있다. 그때는 한 마디도 더 말할 필요가 없고 곧 잠자코 순종할 따름이다. 그 때는 모두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해도 상관 없다. 그 사람의 영혼 상태를 고해 사제는 벌써 짐작했고, 미처 말 못한 부분까지 다 잘 알았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또는 고해 사제가 무엇을 물어보려고 고해자의 말을 가로막을 때도 있다. 그 경우에도 고해자는 아무런 구애를 받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아직 덜 고해한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다 고한다고 신부의 말씀을 귀에 담아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자꾸 하려는 것도 안되는 일이다. 가령 아직 덜 고한 죄를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 할지라도 신부의 말씀부터 주의해 들어야 한다. 그리고 신부의 질문이 다 끝나거든 그때 아직 덜 고한 죄를 고해할 것이다. 이렇게 하다가 사실 무슨 죄(대죄일지라도)를 잊었다 할지라도 그 고해의 효과가 없지 않다. 그러나 잊었다고 생각되는 죄는 다음 고해 때에 할 의무가 있음을 알라. 그 고해가 유효한 까닭은 신부의 말씀에 주의하다 잊었지, 일부러 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해가 유효하였으니 다음 고해할 때 그 잊은 죄를 고할 마음을 먹고 영성체를 해도 무방하다.

  고해 사제보다 학식이 많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신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해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예수 그리스도가 신부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해할 때마다 신부의 긴 설명과 교훈을 들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 희망은 허영심에서 오는 것이다. 고해소는 무슨 설교대나 강론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고해 사제 쪽에서 무슨 긴 말씀이 있을 때는 주의 깊게 귀담아 들을 일이다.

  또 한 가지는, 고해 사제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 고해 사제가 고해자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 함과 같이 고해자도 신부의 말씀을 솔직하게 믿을 의무가 있다. 신부의 권면을 듣지 않고 자신을 변명하려 드는 사람은 마치 자기 병을 고치겠다는 기분만 가지고 의사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는 이치와 같다. 도리어 의사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그를 신용하여 자기 생각에는 덜 맞을지라도 약이나 주사를 선정하는 책임을 의사에게 맡기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해야, 병을 고치든지 건강을 회복하든지 할 것이다. 영혼의 의사인 고해 사제의 권면을 안 듣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요, 또한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우리는 고해 사제를 신용해야 한다. 자기의 의견을 버리고 솔직하게 고해 사제의 훈계와 위로를 받아들이는 영혼만이 참된 평화를 마음에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