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죄를 범한 어떤 청년이 수도원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두드렸더니 원장은 청년을 맞이하여, 수도원에 오기 전 모든 죄를 청산하고 또한 보속하며 새로운 정신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다음 주일에 총고해를 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성찰을 잘 하고 나서 고해를 잘 해보려고 죄를 전부 종이에 적었다. 그는 명령받은 주일이 와서 고해를 하기로 되었다. 고해 사제는 늙은 수사 신부였다. 청년은 종이에 적은 죄를 한 가지씩 고해해 나갔다. 신부는 천사가 그 종이에 적힌 죄를 한 가지씩 지우는 것을 보았다. 결국 그 종이는 청년의 영혼이 얻은 결백을 상징하는 것처럼 하얗게 되었다.

  알레의 주교 체자리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죄가 꽤 많은 파리의 어떤 학생이 개심해 보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수도회의 어떤 신부를 찾아 총고해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는 통회의 눈물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서 말을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신부는 그 죄를 종이에 적어보라고 권했다. 학생은 곧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죄를 적었다. 신부는 적은 것을 읽어보는 중에 자기의 판단력에 자신이 없다고 여겨서, 고해자의 승락을 얻은 후 원장 신부께 그 문제를 상의하러 가게 되었다.
  원장은 종이에 적힌 것을 읽어보려고 손에 받아 쥔 즉시 말하기를, “이게 뭐요? 아무 것도 적힌 것이 없지 않소?”라며 그 종이를 내밀었다.
  하느님께서는 영적으로 이미 그 학생의 영혼에서 없앤 죄를 그 종이에서도 다 지워버리셨던 것이다.

  그러면 죄를 똑똑히 기억하기 위해 그것을 적어두는 것이 좋은 습관일까?
  대개의 경우에는 그렇게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적어두어도 좋지만, 매우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고해한 뒤에는 즉시 그 종이를 불태우거나 없애서 아무도, 심지어 고해자 자신까지도 읽어 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성 요한 돈 보스코 전기 중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소년이 될 수 있는 대로 바른 총고해를 하려고 자기 죄를 작은 노트에 가득 적었다. 그런데 그는 주의를 하지 못했다 할까, 그 재미 없는 노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소년은 주머니 속을 뒤지고, 책상 서랍을 낱낱이 찾아보았지만 그 노트를 찾지 못했다. 불쌍한 소년은 마침내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그 노트는 성인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친구들이 왜 우느냐고 달래며 물어도 그는 대답도 않고 울기만 했다. 그리하여 친구들은 그를 성인에게 데리고 갔다.
  “왜 그러느냐? 차고미이노야. 어디가 아프냐? 무슨 서러운 일이 있느냐? 누가 때리더냐?”
  하고 친절히 물었다. 소년은 눈물을 닦더니 용기를 내어 대답하기를,
  “신부님! 죄를 잃어버렸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계시는 성인은 유쾌하게 말씀하시기를, “죄가 없어진 것은 행복이다. 그것을 다시 찾지 않으면 더욱 행복이다. 죄가 없어야 천국에 들어가게 되니까.”하고 웃으시니까, 소년은 성인이 사정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이라고 생각하여, “죄를 적은 노트를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성인은 수단의 주머니 속에서 그 비밀을 꺼내면서 말씀하시기를, “내 아들아, 안심해라. 너의 죄는 좋은 손에 들어왔다. 여기에 있다.”라고 하셨다.
  그 소년은 노트를 보자 금방 명랑해지며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이 이 노트를 발견하신 줄을 알았더라면 우는 대신 웃었을 것을, 그리고 오늘 저녁 고해할 때 ‘신부님 주머니 속에 있는 그 죄를 고백합니다’하고 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