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의 통공에 관한 교리는 아는 것만으로 넉넉하지 않다. 마땅히 생활로 옮겨야 한다]
우리는 이 만남을 기다려 온 연옥 영혼들이오.
그대를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나 틀림없이 유익한 만남일 터이니 말이오.
현세 생활을 하고 있거나 우리처럼 현세를 떠나 있거나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사랑은 항상 유익하고 풍성한 결실을 내기 마련이오.
성인들의 통공에 관한 교리는 이를 믿고 생활화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성덕의 열매를 맺소.
옷타비오 형제여,
우리는 물론 지금 다루고 있는 이 교리의 숭고하고 기묘한 실재를 믿고 생활로 옮기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지만,
아직 지상에서 순례 중인 그대들은 영혼의 능력을,
특히 지능을 발휘해서 이 교리를 알고 생활로 옮기는 이들에게 생기는 결과를 알려고 힘써야 하오.
또한, 이를 받아들이고 생활로 옮기기를 원하는 것은 의지의 행위이므로 그대들의 의지력을 쓰려고 힘써야 하오.
마지막으로 기억력을 발휘하도록 힘써야 하오.
기억 작용을 통해서 이것이 언제나 지능과 의지 안에 간직되도록 하면
이 지능과 의지가 그것을 기억하고 원하기 때문이오
옷타비오 형제여,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오.
성인들의 통공 교리는 다른 많은 초자연적 실재와 마찬가지로 영혼의 본성적 능력을 행사하기를 요구하지만
특히 영혼 속에 주입된 은총의 신적 생명을, 따라서 믿음을 실천하기를 요구하오.
이 교리가 효과적인 것이 되게 하려면 확고하게 믿어야 하고, 그것도 아무 가림이나 제한 없이 믿어야 하오.
이 교리가 또 요구하는 것은 애덕의 실천이오.
꾸며낸 가공적 사랑이 아니라 참되고 실제적인 사랑, 행동이 따르는 사랑 말이오.
이 교리의 성질상 그것이 어떤 행동이 되겠는지에 대해서는 그대와 그대들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오.
여기에는 또 망덕의 실행도 요구되는데,
희망은 투명한 빛과 같이, 우리가 알고 원하고 사랑하는 이 교리가
그대들과 우리 안에 가져올 유익한 결과를 그대들로 하여금 엿볼 수 있게 하고 또 갈망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오.
[찾아내어 활용해야 할 보물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
옷타비오 형제여,
지금까지 우리는 기묘하고 찬란하기까지 한 하나의 실재에 대해서 말했거니와,
우리가 이보다 더 힘찬 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사용해서라도 그대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깨닫게 했을 것이오.
그것은 찾아내어 활용해야 할 보물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 모른다는사실이오.
이를 모르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르기 때문에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으니,
그들을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나 그만큼 손실이큰 것이오.
생명을 선물로 받는 것만으로는 넉넉하지 않소.
생명은 육신생명이건 지적이고 영적인 생명이건 살아 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오.
살아 내지 않는 생명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피상적인 믿음과 바람과 사랑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홀히 여기고 성취하지 못하는 선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오!
믿음과 바람과 사랑은 놀라운 선물이건만,
납득할 수 없는 미지근함과 경솔함으로 아주 흔히 허비되곤 하는 것이오.
그대들은 우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선행의 가능성이 거의 무진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오.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자연적인 차원에서 은총의 초자연적인 차원으로 들어올리면서 거기에
“연옥의 거룩한 영혼들을위하여” 라는 지향을 붙이면 되니 말이오.
더욱이, 거룩한 미사를 집전하거나 미사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초자연적인 성격의 일을 할 때면 바로 위의 지향만 붙이면 되는 것이오.
[출발 신호를 해야 하는 쪽은 지상에 있는 그대들이다]
형제여, 알다시피 우리 쪽에서는 즉각 응답하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면에 그대들을 위해서는 아주 많은 일을 할 수 있소.
그러나 성인들의 통공 교리가 효험이 있는 것이 되게 하려면
신앙과 시련 속에서 살고 있는 그대들이 이를테면 출발 신호를 해야 하는 것이오.
옷타비오 신부여,
그대들에게는 물질적인 필요와 욕구, 특히 영적인 필요와 욕구가 대단히 많은 것은 사실이오.
그런데 연옥 영혼들인 우리 역시 그대들의 개인적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어째서 고려에 넣지 않는 것이오?
“연옥” 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대가 안다면!
우리를 잊어버리고 마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제대로 생활화하지 못하고
우리보다는 우리의 썩은 유해를 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안다면,
옷타비오 신부여,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하지 않겠소?
우리에 대한 사랑과 의로움으로 말이오!
우리 사이의 통공을 크게 활성화시키면,
유익한 결과를 풍성히 얻으면서 하느님의 강복도 많이 받게 될 것이오! (1976년 6월 9일)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