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263년 독일인 사제, 프라하의 베드로(Peter of Prague) 신부는 로마로 순례가던 도중 볼세나(Bolsena)에서 묵게 되었다. 그는 경건한 사제로 알려져 있었으나, 축성된 면병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가 순교자 성녀 크리스티나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에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고 있었는데, 성체 축성을 하자 말자 축성된 면병으로부터 피가 흐르기 시작하여 신부의 손가락들을 적시고, 제대와 성체포(聖體布) 위로 흘러내렸다.
신부는 몹시 당황하였다. 처음에는 피를 감추려고 했으나, 곧 그는 미사를 중단하고, 마침 교황 우르바노 4세께서 머물고 계시던 이웃 도시 오르비에또(Orvieto)로 인도해 달라고 하였다.
교황은 신부의 보고를 듣고 나서 그를 사면(赦免)하셨다. 교황께서는 즉시 이 일을 조사하도록 성직자들을 파견하셨다.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교황께서는 그 교구의 주교에게 그 성체와 피묻은 성체포를 오르비에또로 모셔오도록 명하셨다. 추기경들과 대주교들, 그리고 그 밖의 고위 성직자들 앞에서, 교황께서는 성체를 모셔오는 행렬을 맞으셨으며, 성체와 성체포를 대성당 안으로 모셨다. 성혈이 묻은 성체포는 아직까지도 오르비에또의 대성당 안에 정중하게 보관되어 전시되고 있다.
이 기적으로 격려되신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에게 성체를 공경하는 기도문을 짓도록 명하셨다. 이 기적이 있은지 1년이 지난 1264년 8월에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도문을 소개하셨으며, 성체 축일(the Feast of Corpus Christi)을 설정하셨다.
오르비에또의 대성당을 찾아오는 많은 순례자들은 그 곳에 이어서 볼세나에 있는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으로 가서 그 기적이 일어났던 현장을 둘러본다. 성당의 북쪽 복도로부터 기적이 일어났던 소성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체 축일 설정의 700주년이었던 1964년 8월에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기적의 성체포가 모셔져 있는 오르비에또의 대성당에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셨다.
12년이 더 지난 1976년에 바오로 6세께서는 볼세나를 방문하셨으며, 그 곳으로부터 그 때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고 있던 제 41차 국제 성체 대회에 텔레비젼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교황께서는 성체가 “위대하고도 무진장한 신비(a mystery great and inexhaustible)”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