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브로스 찰링워드만큼 실업계에서 성공을 거듭한 실업가도 드물었다. 사실 그가 손을 대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금세 번창했다. 일생 잠들어 있는 듯한 그의 얄팍한 신앙심만 제외하면 말이다. 신앙 생활만 제외하고 그는 모든 일에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이었다. 대지에 굳건히 두 발을 딛고서 그는 인생의 온갖 즐거움을 만끽했고, 내세 운운하는 것은 모두 병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지었다. 매우 건강한데다가 권세와 명성을 손에 쥐고 있으며, 은행 잔고 또한 넉넉하니 미래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하느님이 그의 꿈에 나타나심으로써 그 모든 호언 장담이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하느님은 두 손에 고대의 모래 시계를 들고 계셨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모래 시계는 원래 그렇듯이 두 개의 칸이 중간에 있는 좁은 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위칸에 가득 담긴 모래알이 연결관을 통해 아래칸으로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하느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암브로스, 여기 모래 시계가 하나 있다. 위칸의 모래알이 아래로 모두 떨어져 없어지는 순간이 바로 너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이다.”
눈을 떠 보니 침대 옆 테이블 위에 꿈에 보았던 모래 시계가 놓여 있었다. 벌써 위칸의 모래알이 아래칸으로 조금씩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누구나 다 그렇듯이 암브로스도 살아 있을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래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떨어지는지 판단하고자 필사적으로 모래 시계를 주시했다. 수심 가득한 얼굴로 온종일 떨어지는 모래알만을 지켜 보았다. 오후가 되자 상당량의 모래가 연결관을 통해 떨어져 내렸음을 볼 수 있었다.
궁지에 몰린 그는 대처할 벙법을 궁리하며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다음날 그는 친척과 찬구들에게 자신의 임종이 임박함을 부랴부랴 알렸고, 유언장도 썼으며, 그외 여러 가지 정리할 일도 거의 다 처리했다.
그날 저녁 무렵, 전체 모래알의 3분의 2가 떨어져 내렸다. 죽음에 대한 암브로스의 두려움은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하지만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내리 뜬눈으로 보낸 그는,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는데, 이번엔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는 모래 시계부터 살폈다. 떨어지는 속도가 다소 늦추어진 듯했지만, 멈출 조짐은 전혀 없었다. 진행 속도로 추축해 보건대 그는 앞으로 잘해야 24시간 정도밖에 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우선 신부님부터 모셔다 고해성사를 보고, 친척 모두를 불러들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였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모래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모래알은 이제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한밤중이 되었다. 마지막 단 한 알의 모래알이 연결관 중간쯤에 걸렸다. 유리관 표면에 작은 흠집이 나 있는 덕분에 거기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마지막 모래알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그렇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 암브로스의 운명이었다. 그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며 온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새벽이 되어도 그 모래알은 여전히 그렇게 연결관 중간쯤에 달려 있었다. 다음날도 하루가 다가고 또 밤을 새웠지만 운명의 모래알은 그대로였다. 같이 있던 사람들 모두가 마음의 긴장으로 기진맥진하여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낮과 밤이 다시 한 번 지나도 상황이 바뀌지 않자 집안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져 갔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암브로스는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불안으로 신경이 마비될 상태에 이르렀다. 계속되는 밤샘으로 지쳐 버린 가엾은 암브로스는 이제 더 이상 쏟아지는 졸음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날 밤, 크고 작은 소동이 일어나 암브로스는 깜짝깜짝 놀라며 몇 번씩이나 잠을 깨곤 했다. 첫번째는 거센 돌풍을 수반한 폭풍우 때문이었다.
다음은 집 전체를 뒤흔드는 지진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음속 항공기가 바로 머리 위에서 벼락치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바람에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일제히 덜커덩거렸다. 이 때문에 모래 시계까지도 옆으로 갸우뚱했다. 심한 요동에 놀라 잠이 깰 때마다 암브로스는 노심 초사하며 모래시계만을 노려보았다. 그때마다 모래알은 떨어지지 않고 흠집난 유리관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이러한 예기치 못한 사건의 전환으로 다소 안심이 된 암브로스는 약간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선잠이 들었다.
하느님이 두 번째로 꿈 속에 나타나신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느님은 능청맞게 물으셨다.
“암브로스, 왜 그렇게 안절 부절 못하느냐?”
불쌍한 암브로스는 얼토당토 않은 하느님의 질문에 화가 나서 소리쳤다.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느냐고요? 당장이라도 제 목숨이 끊어질 판국이라는 것을 훤히 다 아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주님, 당신께서 제게 주신 모래 시계를 보십시오. 저 작은 모래알 하나로 제가 지금 죽음을 면하고 있잖습니까! 제 운명이 저렇듯 실날처럼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데, 그렇게 물으시는 겁니까?”
하느님은 다정하면서도 여전히 놀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암브로스, 네가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죽 그랬었잖느냐?”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라고요?”
그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물론이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까지 너의 목숨을 지켜 준 것은 바로 나였다. 네가 그것을 몰랐을 뿐이야. 넌 네 목숨이 너의 건강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지. 권세와 돈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었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이제 방금 알게 되었듯이 말이다.”
바로 그 순간 암브로스는 마음 속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 언제나 이모저모 살피시고 지켜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잊고 지낸 지난 세월이 얼마나 한심하고도 어리석었던가!
암브로스는 부끄러운 마음을 고백했다.
“주님의 말씀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날 이때까지 주님이 늘 제 곁에 함께 계셨으며 매순간마다 저를 새롭게 이끌어 주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지금이 순간부터 전 당신만을 믿겠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암브로스는 완전히 새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 순간부터 그는 모든 일에 하느님만을 의지했다. 아무리 사업이 순조롭게 잘 풀리고 건강한 때에도 그는 모래 시계-벽장 안에 소중히 안치해 두었다-를 바라보곤 했다. 작은 모래알 하나가 여전히 연결관 중간쯤에 간신히 걸려 있는, 가파른 절벽에 붙어 있는 자신의 모습처럼 아슬아슬한 모래 시계를 바라볼 때마다 인간의 목숨이란 정말 풀잎 끝에 맺힌 이슬과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인간의 운명은 이 세상의 그 무엇에도 좌우되지 않는다는 묘한 안도감에 휩싸였다. 실낱 같은 목숨이란 말이 사실이긴 하지만, 바로 그 실낱을 거머쥐고 계신 분이 다름 아닌 하느님이셨던 것이다.
– 닐 기유메트 『영혼에서 샘솟는 아름다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