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36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03년 1월 1일)

지상의 평화: 영원한 과업

1. 40여 년 전인 1963년 4월 11일 성목요일에 교황 요한 23세께서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발표하셨습니다. 발표 후 두 달 만에 돌아가신 저의 선임자께서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이 회칙의 첫 문장에서 [지상의 평화]의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하셨습니다. “지상의 평화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집니다”([지상의 평화], 머리말: [사도좌 관보] 55[1963년], 257면).

분열된 세상에 평화를 말하기
2. 교황 요한 23세께서 회칙을 쓰시던 당시에, 세계는 깊은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20세기는 진보에 대한 커다란 기대를 품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0세기가 시작된 지 60년이 채 지나지 않는 동안 세계는 두 차례의 대전과 파괴적인 전체주의 체제,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고통 그리고 교회 역사상 가장 혹독한 박해를 치렀습니다.

[지상의 평화]가 발표되기 불과 2년 전인 1961년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져, 그 도시를 둘로 가르고 서로 대치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지상의 도시를 이해하고 건설하는 방식도 갈라놓았습니다. 장벽의 이쪽과 저쪽에서는 서로 의심하고 불신하는 가운데 상반된 통치 법칙에 따라 서로 다른 생활 양식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세계관에서나 실생활에서나 베를린 장벽은 인류 전체를 가르고 인간의 마음과 정신에 고스란히 자리잡아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처럼 보이는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또한, 회칙이 발표되기 6개월 전이며 로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세계는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핵전쟁 직전까지 가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겪었습니다. 평화와 정의, 자유의 세계로 가는 길이 막혀버린 듯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침략 행위나 불상사로 인류 역사상 최악이 될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하면서도, 인류가 언제까지나 ‘냉전’이라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언제든 이용 가능한 원자 폭탄을 비축하고 있다는 것은 전쟁으로 인류의 미래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평화의 네 기둥
3.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회칙 [지상의 평화]를 통하여, 평화는 그것이 요구하는 모든 진리와 함께 베를린 장벽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열의 장벽 이쪽과 저쪽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회칙은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모두 한 인류 가족이라고 말하였으며, 안정과 정의, 미래에 대한 희망 속에 살고자 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에 빛을 밝혀 주었습니다.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그분 특유의 깊은 통찰력으로 평화의 필수 조건들을 인간 정신의 네 가지 요구인 진리, 정의, 사랑, 자유로 규정하셨습니다([지상의 평화], 제1부: [사도좌 관보] 55[1963년], 265-266면 참조).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도 진정으로 인정한다면 진리가 평화를 이룩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실제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이행한다면 정의가 평화를 이룩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자신의 요구로 느끼고 자신들이 가진 것, 특히 자신들의 정신적 심적 가치들을 남들과 나눈다면 사랑이 평화를 이룩할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한 수단을 선택할 때 사람들이 이성에 따라 행동하고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자유가 평화를 이룩하고 그 평화를 더욱 발전시킬 것입니다.

신앙과 이성의 눈으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신 교황 요한 23세 복자께서는 역사의 흐름을 더욱 깊이 통찰하셨습니다. 사물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전쟁이나 전쟁에 대한 풍문 가운데서도 교황님께서 바람직한 정신 혁명의 시작으로 보셨던 그 중요한 무엇이 인간사에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양도할 수 없는 인간 권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
4.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인류가 새로운 여정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쓰셨습니다([지상의 평화], 제1부: [사도좌 관보] 55[1963년], 267-269면 참조). 식민주의의 종말과 신생 독립국들의 출현,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 새롭고 환영할 만한 여성의 공공 생활 참여 등은 인류가 실제로 역사의 새로운 단계, 곧 “모든 인간은 타고난 존엄 때문에 평등하다는 확신”([지상의 평화], 제1부, 44항: 사도좌 관보 55[1963년], 268면)이 폭넓게 확산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입증하였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세계 여러 곳에서 여전히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고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교황님께서는 그러한 비극적 상황에서도 세계는 정신적 가치들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평화의 네 기둥인 진리, 정의, 사랑, 자유([지상의 평화], 제1부: 사도좌 관보 55[1963년], 268-269면 참조)의 의미를 더욱 널리 받아들이고 있음을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을 지역과 국가와 국제 생활에 불러들이고자 노력하면서 인간은 그들이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맺는 관계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들 삶의 든든한 토대이자 최고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깊이 의식하게 되었습니다([지상의 평화], 제1부: 사도좌 관보 55[1963년], 268-269면 참조). 교황님께서는 이러한 발전적인 영적 통찰이 공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하셨습니다.

당시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나타난 인권 의식의 증대를 지켜보시면서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이러한 현상의 잠재력을 간파하시고 그것이 역사를 바꿀 유일한 힘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나중에 중동부 유럽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분의 통찰력을 확인시켜 주게 됩니다. 교황님께서는 회칙에서, 평화로 가는 길은 인간의 기본권을 옹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의 기본권은 특정한 사회 계층이나 국가가 부여해 주는 혜택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인간은 지성과 자유 의지를 갖고 있고, 인간 본성에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권리와 의무를 지닌 주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권리와 의무는 보편적이며, 불가침적이고,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지상의 평화], 제1부 9항: [사도좌 관보] 55[1963년], 259면).

곧이어 역사가 보여 주듯이, 이것은 단순히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지대한 영향력을 지닌 생각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동등한 존엄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과, 사회는 그러한 확신에 따라 형성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커지면서 인권 운동이 불같이 일어났으며, 현대 역사의 커다란 힘 가운데 하나, 곧 평화를 위한 활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인 자유에 대한 추구를 정치적으로 공고히 표현하였습니다. 사실상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던 이러한 운동이 독재 정부를 좀더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정부로 바꾸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인권 운동은 실제로 평화와 진보는 오직 인간 마음에 새겨진 보편적인 도덕률을 존중할 때에만 이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국제연합 총회에서 한 연설, 1995년 10월 5일, 3항 참조).

세계 공동선
5.  [지상의 평화]는 세계 정치 발전의 다음 단계에 주목함으로써 또 다른 면에서 그 예언자적인 성격을 보여 주었습니다. 세계는 점점 더 상호 의존적이고 세계화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인류의 공동선은 국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이를 “세계 공동선”([지상의 평화, 제4부: [사도좌 관보] 55[1963년], 292면)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 가운데 하나는 국제적 차원에서 세계 공동선을 증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능힘을 지닌 공적 권위에 대한 명백한 요구였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곧이어 그러한 권위는 강압이 아니라 오직 국가들의 동의를 통해서만 확립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기구는 “인간 권리의 인정, 존중, 수호, 증진”([지상의 평화] 제4부: 사도좌 관보 55[1963], 294면)을 기본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황 요한 23세께서 1945년 6월 26일에 창설된 국제연합 기구를 희망과 기대로 바라보신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기구를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강화할 확실한 기구로 보셨으며, 1948년의 국제연합 세계인권선언에 대하여 특별한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세계인권선언을 “세계 공동체의 법적 정치적 조직을 위한 중요한 진일보”([지상의 평화], 제4부: [사도좌 관보] 55[1963년], 295면)로 생각하셨습니다. 사실 교황님의 말씀 내용은 세계인권선언이 세계가 무질서보다는 질서, 힘보다는 대화를 특징으로 하는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도덕적 토대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국제연합을 통한 활발한 인권 옹호는 이 기구가 국제적 안전을 증진하고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토대임을 시사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인권과 자유, 평화에 이바지하는 실질적인 국제적 공적 권위에 대한 교황 요한 23세의 전망이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명백할 뿐만 아니라, 국제 공동체는 여전히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할 의무에 대하여 많이 주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의무는, 갖가지 형태의 차별과 불의를 합리화할 수 있는 독단적인 선택을 제외한 모든 근본 권리에 영향을 미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로운 번영과 새로운 기술의 결과로 선진 사회에서 증진되고 있는 일련의 새로운 ‘권리’들과, 특히 저개발 상황에서는 아직도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다른 더욱 기본적인 인권들 사이에 심각한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예를 들어 식량과 식수, 주택과 안전, 민족 자결과 독립에 대한 권리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보장받고 실현되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격차가 하루빨리 좁혀지고 사라져야 합니다.

또 다른 고찰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 공동체는 1948년 이래 양도할 수 없는 인간 권리에 관한 헌장을 지니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에 따르는 의무는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권리를 임의적으로 행사하지 않도록 권리에 대한 한계를 설정할 의무입니다. 인간의 보편적 의무에 대한 인식의 증대는 평화의 대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에 의존하지 않고 사물의 질서를 함께 인식할 수 있는 도덕적 바탕 위에 평화를 정착시킬 것입니다.

세계의 새로운 도덕 질서
6. 많은 어려움과 방해가 있었지만 지난 40년 동안 교황 요한 23세의 숭고한 전망을 이행하는 데에 매우 큰 진전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전세계 국가들이 인권을 존중할 의무를 느낀다는 사실은 도덕적 신념과 정신의 통찰이라는 도구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보여 줍니다. 그것은 유럽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냈던 1989년의 비폭력 혁명을 가능하게 한 양심의 혁명을 통하여 뚜렷하게 입증되었습니다. 또한 방종과 같은 자유에 관한 왜곡된 생각이 아직도 민주주의와 자유 사회를 위협하고 있지만, [지상의 평화] 발표 이후 40년 동안 세계의 많은 지역이 더욱 자유로워지고, 국가 간의 대화와 협력 체계가 강화되었으며, 교황 요한 23세를 무겁게 짓눌렀던 세계 핵전쟁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감히, 그러나 매우 겸손하게,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한 ‘올바른 질서, 곧 평화로운 질서‘(tranquillitas ordinis)([신국론][De Civitate Dei], 19, 13)인 평화에 대한 교회의 1500년 된 가르침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 가르침은 40년 전에 [지상의 평화]로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였으며, 현대 세계에서 개인은 물론 국가 지도자들에게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국제 문제에 심각한 무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유롭고 정의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이러한 무질서를 몰아낼 수 있는 질서는 어떤 것일까 하는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는 그러한 무질서 속에서도 경제, 문화, 정치 등 여러 방면에서 ‘질서’와 체계가 잡혀가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시급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됩니다. 바로 어떠한 원칙에서 이 새로운 형태의 세계 질서가 전개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광범위한 문제들은 평화의 문제라고 보아야 하는 세계 질서의 문제가 윤리 원칙의 문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달리 말하면, 평화의 문제는 인간 존엄과 인권의 문제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지상의 평화]가 가르치는 영원한 진리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는 [지상의 평화] 발표 40주년을 맞아 이를 기억하고 성찰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민족 간의 평화와 조화, 그리고 전체적인 발전을 참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인류 가족의 새로운 헌법 체계를 만들기 위하여 협력해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범세계적인 초국가적 헌법을 만들자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과정, 곧 정치적 권한, 나아가서는 국제적인 정치적 권위를 행사할 참여 방법에 대한 요구와 모든 차원의 공공 생활에서 투명성과 신뢰성에 대한 거의 전세계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속적이고 심오한 과정을 뜻합니다.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은 선성(善性)에 대한 확신으로 온 세계에 공공 생활과 공적 권위에 대한 더욱 숭고한 전망을 호소하셨으며, 현재의 무질서 상태를 넘어서 인간 존엄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의 국제 질서를 모색하라고 과감히 촉구하셨습니다.

평화와 진리의 유대
7. 정치가 당파적 이익에만 매달리는, 도덕성과는 상관없는 필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하여,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지상의 평화]에서 인간 실재의 더욱 참된 모습을 설명해 주시고 모든 사람을 위한 더 나은 미래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인간 행위도 도덕적 판단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정치는 하나의 인간 행위입니다. 따라서 정치 또한 특별한 도덕적 감시를 받아야 합니다. 국제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황 요한 23세께서 말씀하셨듯이, “자연법이 개인들의 관계와 각 정치 공동체들의 관계를 다스려야 합니다”([지상의 평화], 제3부, 80항: [사도좌 관보] 55[1963년], 279면). 국제 정치 생활이 도덕적 판단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난 20세기의 인권 운동이 국가와 국제 정치에 미친 영향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회칙의 가르침에서 예견하였던 이러한 현상은, 국제 정치는 도덕률이 지배하지 않는 ‘자유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분명하게 반박합니다.

아마 오늘날 중동과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상황만큼 정치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 잘 보여 주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서로에 대한 증오에 찬 배척으로 쌓인 앙금 그리고 폭력과 보복의 끝없는 악순환은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허사로 돌렸습니다. 불안정한 그 곳의 상황은 국제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이해 관계가 충돌하면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권력 행사 방식을 진정으로 개혁하고 그들 민족의 복지를 보장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평화를 앞당길 수 있을지 생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날마다 성지를 뒤흔들고 중동 지역의 눈앞의 미래를 결정지을 세력들을 분쟁으로 몰아넣는 동족 상잔의 전쟁은 인간 존엄과 인권 존중의 원칙 위에서 신념을 가지고 굳건히 정책을 이행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 줍니다. 그러한 정책은 갈등을 지속시키기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훨씬 더 큰 이익을 줍니다. 선동, 특히 용납할 수 없는 의도를 숨긴 선동보다는 분명히 더 큰 자유를 보장해 주는 이러한 진리 위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평화의 조건
8. 평화의 활동진리의 존중은 서로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 제공, 평등한 법률 체계, 개방적인 민주 절차 등은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며, 진실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추구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항구한 평화를 위한 참된 전제 조건들입니다. 지역적 국제적 차원의 정치적인 정상 회담은 각 당사자가 공동 협약을 존중할 때에만 평화의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회담은 아무런 의미도 쓸모도 없는 것이 되기 쉽고,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더 대화를 신뢰하지 않게 되며, 더욱더 폭력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입니다. 국가와 정부 수반들은 협약만 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 평화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합니다.

약속은 준수되어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옛 격언도 있습니다. 약속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야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 약속은 특히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겨 준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행복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는 약속에 대한 믿음을 깨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원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불의를 한층 강화하는 것입니다. 가난의 고통에 신뢰감마저 잃어버린다면 결국 남는 것은 절망뿐입니다. 국제 관계에서 신뢰를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회적 자산입니다.

평화의 문화
9. 결국 평화는 본질적으로 구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법적 정치적 경제적인 면에서 평화의 구조나 장치는 물론 필요하고 또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역사적으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망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무수한 평화의 행위로 축적된 지혜와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평화의 행위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마음 속에서 평화를 키우는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마태 5,9 참조)의 마음과 이성에서 나오는 활동입니다. 평화의 행위는 사람들이 그들 삶의 공동체적인 차원을 온전히 인식하고 자신들의 공동체와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와 결과를 파악할 때 가능합니다. 평화의 행위는 평화의 전통과 문화를 만듭니다.

종교는 평화의 행위를 장려하고 평화의 조건을 강화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종교가 자체의 고유한 영역, 곧 하느님을 생각하고 보편적인 형제애를 촉진하며 인간적인 연대의 문화를 전파하는 일에 전념한다면 이러한 역할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2002년 1월 24일 아시시에서 제가 여러 종교 대표자들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을 가졌던 것은 이러한 목적에서였습니다. 아시시 대회는 평화의 문화와 영성을 전파함으로써 평화를 키워가고자 하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지상의 평화]의 유산
10. 교황 요한 23세 복자께서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을 깊이 신뢰하시며 낙관적인 자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분께서 신앙심이 깊은 환경에서 자라셨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분쟁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아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으로 사셨던 그분께서는 주저 없이 당시의 지도자들에게 세상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가지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유산입니다. 올 2003년 세계 평화의 날에 우리 모두 그분과 같은 전망을 가지도록 결심합시다. 우리에게 형제애를 호소하시는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느님을 믿으며, 다른 모든 시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음 속에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 있는 우리 동시대인들을 신뢰합시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 땅에 평화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지금,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러한 희망이 저절로 샘솟습니다. 40년 전 [지상의 평화]에서 선의의 모든 사람에게 제안하였던 고귀한 사명에 모든 사람이 새롭게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이 회칙에서 말한 “거대한” 과제란 “진리, 정의, 사랑, 자유 안에서 사회 생활의 상호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는 곧 “개인들 사이의 상호 관계, 시민들과 정치 공동체들 간의 관계, 그리고 개인들, 가정들, 종교 단체들, 국가들간의 관계, 다른 한편 세계 공동체간의 관계들을 바르게 건설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시며, “여기서 가장 고상한 과제는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 안에서 참된 평화를 실현하는 것”([지상의 평화], 제5부, 163항: [사도좌 관보] 55[1963년], 301-302면)이라고 결론지으셨습니다.

[지상의 평화] 발표 40주년은 교황 요한 23세의 예언자적 가르침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적절한 기회입니다. 가톨릭 공동체는 올해 이 40주년을 어떻게 경축하여야 할지 잘 알 것입니다. 저는 가톨릭 교회가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를 촉진하며 “그들을 갈라놓는 장벽들을 부수고, 상호 사랑의 결합을 강화하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며, 다른 이들이 끼친 손해를 용서하도록 마음의 불을 밝혀 주고자 하는”([지상의 평화], 171항: [사도좌 관보] 55[1963년], 304면) 진실한 바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활동들을 펼치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희망을 품고 저는 우리의 모든 선의 원천이신 전능하신 하느님께 기도 드립니다. 억압과 분쟁에서 벗어나 모든 이를 위한 자유와 협력으로 나아가도록 촉구하시는 하느님께서 온 세상 사람들이 교황 요한 23세 복자께서 당신의 역사적인 회칙에서 네 개의 기둥으로 지적하신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유 위에 더욱 확고히 자리잡은 평화의 세계를 건설하도록 도와 주시기를 빕니다.

2002년 12월 8일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