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평야이다. 햇볕은 다 여문 낟알을 볶다시피해서 벌써 빵을 연상시키는 냄새를 풍기게 한다. 해와 빨래와 낟알의 냄새, 즉 여름 냄새이다.

왜 이렇게 말하느냐 하면 어떤 달이든지, 또 하루의 어떤 시간이든지 그 독특한 냄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고장이든지 매우 예민한 감각과 매우 날카로운 관찰력에는 각기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것과 같다.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이 부는 겨울날의 냄새는 안개낀 겨울날의 무거운 느낌을 주는 냄새나 눈이 풍기는 냄새와 다르다. 또 이 냄새들은 다가오는 봄냄새, 향기가 아닌 향기로 이렇게 봄을 알리는 냄새, 그러나 겨울 냄새와는 사뭇 다른 이 냄새와 얼마나 다른가! 아침에 일어나면 공기 냄새가 다르다. 그것은 봄의 첫번째 숨결이다. 그리고는, 또 그리고는 꽃이 핀 과수원 냄새, 그 다음에는 정원과 익는 곡식 냄새, 또 그 안에는 막간 모양으로 소나기가 온 뒤의 흙냄새 … 가 있다.
그리고 또 시간은 어떤가? 새벽 냄새가 오정의 냄새와 저녁이나 밤의 냄새와 같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밖의 일일 것이다. 새벽읠 신선한 냄새는 순결하고, 둘째 냄새는 즐겁고 명랑하고, 그 다음 냄새는 나른함을 풍기는 냄새이고, 또 낮 동안에 발산한 모든 냄새의 포화(飽和)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 냄새, 즉 밤의 냄새는 마치 대지가 그 자식들의 휴식을 받아들이는 엄청나게 큰 요람인 것처럼 조용하고 명상적이다.
또 장소는 어떤가? 오! 강가나 바닷가의 냄새는 새벽과 저녁이 아주 다르고, 오정 때와 밤이 아주 다르며, 폭풍우가 몰아칠 때와 고요한 때가 몹시 다르고, 바위가 많은 지방과 평평한 강변이나 해변이 아주 다르다! 그리고 썰물이 떨어뜨리고 가는 해초의 냄새는 어떤가? 마치 바다가 깊은 속을 열어서 저 밑의 아린 냄새를 들이마시게 하려는 것과 같다.
창조주의 무한은 너무나 큰 것이어서 당신이 창조하신 무한히 많은 물건 하나 하나에 각기 독특한 빛과 빛깔과 향기와 소리와 형태와 높이를 줄 수 있었다. 이제는 이렇게 환상을 통해서나 볼 수 있고, 또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작품을 통하여, 그리고 그것들을 보는 데서 내가 얻은 기쁨을 위하여 그 분께 기도를 드리는 것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나 보게 되는 무한한 아름다움, 너는 얼마나 넓고 힘있고 무진장이고 지루한 줄을 모르게 하느냐! 네게는 지루함이 없고, 지루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내 주님의 우주, 너를 바라다보면 사람이 새로워진다. 너를 바라다보면 사람이 더 착해지고 더 깨끗해지며, 높이 올라가고 잊어버리고 한다. … 오! 항상 너를 바라다보고 사람들의 열등한 것은 잊어버리고, 영혼을 통해서 그리고 영혼을 위하여 사람을 사랑하여 그들을 하느님께서 인도할 수 있었으면!
그래서 지금 사도들과 같이 익은 곡식이 가득한 저 평야를 통하여 길을 가시는 예수를 따라가면서, 그 분의 찬란한 업적을 통하여 하느님에 대한 말을 하는 기쁨에 사로잡힘으로써 다시 내 주제에서 벗어났었다. 피조물이 피조물 안에서 그가 사랑하는 것을 찬양하거나 그저 그가 사랑하는 피조물을 찬양하기 때문에 역시 그것도 사랑이다. 그런데 피조물과 조물주 사이의 관계가 이러하다. 조물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분을 찬양하고, 조물주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조물주 자신 때문에 그리고 그 분의 업적 때문에 더욱 더 찬양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내 마음에 침묵을 명하고, 숭배자로서가 아니라 충실한 편년사가(編年史家)로서 예수를 따라간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낟알이 익어가는 밭들 사이를 지나가신다. 날씨는 덥고 이 지역은 무인지경이다. 밭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다. 여문 밀이삭과 여기 저기에 나무들이 있을 뿐이다. 해와 낟알과 새와 도마뱀과 조용한 공기 속에는 꼼짝 하지 않고 있는 푸르른 덤불들, 이런 것이 예수를 둘러싸고 있다. 곡식 바다를 건너지르는 먼지끼고 눈부신 리본과 같은 큰 길을 예수께서 가시는데, 그 양쪽 끝 한쪽에는 작은 마을이 있고 또 한쪽에는 농가가 하나 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땀을 흘리며 말없이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겉옷을 벗었다. 그러나 비록 가볍다 하더라도 모직옷을 입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것이 틀림없다. 예수와 사촌 두 사람과 가리옷의 유다만이 아마포나 베로 지은 옷을 입었다. 예수와 가리옷 사람의 옷만이 분명히 흰 아마포로 만든 것이고, 다른 옷들, 즉 알패오의 아들들의 옷은 두껍기 때문에 아마포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그리고 마침 바래지 않은 삼베 빛깔같이 어두운 상아빛깔 물감을 들였다. 다른 사람들은 늘 입는 옷들을 입었고, 머리에 쓴 아마포 두건으로 땀을 씻으면서 걸어간다.
그들은 한 네거리에 있는 나무숲에 이른다. 그리고 기분좋은 나무 그늘로 들어가서 그들의 수통의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물이 불에 올려놓았던 것처럼 뜨겁구먼.” 하고 베드로가 투덜거린다.
“개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한탄을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아무것도! 조금만 있으면 난 물이 다 없어지고 말아.”
“나는 산이 더 낫다고 말할 지경이야.” 하고 더워서 얼굴이 시뻘겋게 된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탄식한다.
“제일 좋은 건 배야. 서늘하고 아늑하고 깨끗하고, 아!”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의 마음은 호수와 그의 배로 간다.
“너희들의 말이 모두 옳다.” 하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시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죄인들은 산에도 있고 평야에도 있다. 만일 그들이 우리를 ‘고운 내’에서 내쫓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우리를 줄곧 추적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곳에 데벳달과 스밧달 사이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멀지 않아 바닷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더운 공기가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완화된다.”
“허! 정말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모두 죽어가는 곤들매기 같습니다. 그렇지만 밀들은 물이 없는데 어떻게 하기에 저렇게 아름답습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지하수가 있어서 그것이 땅을 축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하고 예수께서 설명하신다.
“물이 땅 밑에 있는 것보다 표면에 있는 것이 더 나을 텐데요. 땅 밑에 있으면 제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뿌리가 아니거든요!” 하고 베드로가 격렬하게 말한다. 그래서 모두 웃는다.
그러나 이어서 유다 타대오가 정색을 하고 말한다. “땅도 사람들과 같이 이기주의적이고 똑같이 메말라. 그들이 그 마을에 우리가 머물러서 안식일을 지내게 내버려두었더라면 우리가 그늘도 얻고 휴식도 하고 물도 얻었을 텐데 말이야. 그러나 그들이 우리를 내쫓았거든 ….”
“먹을 것도 구했을 텐데, 그것조차도 없단 말이야. 난 배가 고파. 과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만 과일나무들은 아주 집 가까이에 있으니 누가 가겠어? 그 사람들이 우리를 내쫓은 사람들과 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말이야! …” 하고 토마가 동쪽에 그들이 떠나온 마을을 가리키며 말한다.
“내 음식을 먹게. 나는 배가 몹시 고픈 때는 도무지 없어.” 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내 것도 먹어라.”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시장기를 더 느끼는 사람은 먹어라.”
그러나 예수와 열성당원과 나타나엘의 음식을 함께 모아도 별것이 아닌 것 같다. 토마와 젊은 사도들의 놀란 시선이 그것을 웅변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극히 적은 음식의 몫들을 조금씩 갉아먹으면서 말이 없다.
열성당원은 타는 듯한 지면에 푸르른 흔적이 습기가 있나 보다 하고 짐작하게 하는 곳으로 참을성 있게 간다. 과연 모래바닥에 가느다란 물줄기가 하나 있는데, 빨리 사라지게 되어 있는 정말 실낱 같은 물줄기이다. 그는 멀리 있는 사람들이 와서 몸을 식히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니까 모두가 거의 마른 그 작은 개울가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의 불규칙적인 그늘을 따라 그리고 뛰어간다. 거기서 그들은 먼지투성이의 발을 씻고 땀이 흐르는 얼굴을 씻을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빈 수통에 물을 채워서 더 시원해지라고 그늘이 있는 물 속에 넣어둘 수가 있었다. 그들은 어떤 나무 아래 앉아 피곤해서 존다.
예수께서는 사랑과 동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시며 고개를 저으신다. 물을 마시고 돌아온 열성당원이 그것을 보고 예수께 묻는다.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그에게로 가시어 한 팔로 그의 목을 껴안으시고 다른 나무 아래로 데리고 가시며 말씀하신다. “왜 그러느냐고? 나는 너희들이 피곤한 것이 괴롭다. 만일 내가 너희들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고 있는 중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너희들에게 이렇게까지 궁핍을 겪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못할 것이다.”
“궁핍이라니요? 아닙니다. 선생님! 이것이 저희 기쁨입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있으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저희들은 모두가 행복합니다, 정말입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후회는 …”
“입 다물어라, 시몬아. 인간성은 착한 사람들에게서도 부르짖는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말하면 너희들이 부르짖는 것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을 너희들의 집과 가족과 이해관계에서 빼앗아 왔다. 그리고 너희들은 나를 따르는 것이 이런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다. … 그러나 지금의 너희 부르짖음, 너희들 안에서 부르짖는 것이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다.그 때에는 박해를 당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중상을 당하고 … 그보다 더 한 것, 한층 더한 것을 당하는 선생님을 따라 안개와 진흙탕, 먼지와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박해를 당하고 목마르고 피로하고 먹지도 못하며 그런 선생님을 따라오기를 잘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때에는 너희 생각이 달라지고 모든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볼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내 어려운 길로 해서 인도한 것에 대해서 나를 찬미할 것이다 ….”
“선생님은 침울하시군요. 그리고 세상 형편을 보니 선생님이 침울하실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만족합니다 ….”
“모두? 자신 있느냐?”
“선생님은 달리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시몬아, 달리 생각한다. 너는 언제나 만족하다. 너는 깨달았으니까. 다른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자는 사람들이 보이지? 저들이 자면서도 얼마나 많은 생각을 되새기고 있는지 아느냐? 또 제자들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은 어떻고? 모든 것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그들이 충실하리라고 생각하느냐? 보아라. 너도 어릴 적에 한 일이 있는 이 오래된 놀이를 해보자(그러면서 예수께서 돌틈에 나서 완전히 씨가 여문 아름다운 민들레 꽃을 하나 꺾으신다. 그것을 가만히 입으로 가져오셔서 훅 부신다. 그러니까 민들레꽃은 여러 개의 아주 작은 양산으로 갈라져서 아주 작은 대 위에 작은 장식 술을 똑바로 단 채 이리저리로 날아간다.). 자 보아라. … 내게 반한 것처럼 내 가슴에 다시 떨어진 것이 몇 개나 되느냐? 세어 보아라. … 스물 세 개가 있다. 그러면 다른 것들은? 보아라. 아직 날아다니는 것도 있고, 제 무게에 끌리듯이 벌써 다시 떨어진 것도 있고, 제 깃털장식을 뽐내며 우쭐해서 올라가는 것들도 있고, 우리가 수통으로 저어 놓은 수렁에 떨어지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 보아라, 보아 … 내 무릎 위에 떨어졌던 스물 세 개 중에서 일곱 개는 사라졌다. 저 뒝벌의 날개짓만으로 그것들이 날아가 버렸다! … 그것들이 무엇이 겁났었느냐? 또는 무엇이 그것들을 끌어당겼느냐? 어쩌면 침이 무서웠는지도 모르겠고, 또는 까맣고 노란 아름다운 빛깔이나 기분좋은 모양이나 또는 무지개빛 날개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 어떻든 거짓 아름다움을 따라서 … 그것들은 갔다 ….
시몬아, 내 제자들도 이러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동요로, 어떤 사람들은 변심으로, 어떤 사람들은 우둔함으로, 어떤 사람들은 교만으로, 어떤 사람들은 경박함으로, 어떤 사람들은 진창에 매력을 느껴서, 어떤 사람들은 무서워서, 어떤 사람들은 세상물정을 몰라서 떠나갈 것이다. 지금 내게 ‘저는 선생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 모두를 내 사명의 결정적인 순간에 내 곁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 내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화초의 작은 털다발이 확실히 예순 개는 더 되었었다. … 그런데 지금 내 품에는 일곱 개 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것들은 제일 가벼운 놈들에게 예 하고 대답하게 만든 저 바람결에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충실하게 남아 있기 위해 너희들 안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한다. … 시몬아, 오너라. 물 위에서 춤추고 있는 저 잠자리들을 살펴보러 가자. 네가 쉬기를 더 원한다면 몰라도.”
“선생님, 아닙니다. 선생님의 말씀으로 저는 슬퍼졌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고쳐주신 문둥병자, 선생님이 명예를 회복시켜 주신 박해받던 사람, 선생님이 동무들을 주신 외롭던 사람, 사랑을 얻고 주라고 하늘과 세상을 열어 주신 애정에 대한 향수를 느끼던 사람은 선생님을 버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선생님 … 유다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작년에 선생님은 그 사람 때문에 저와 함께 우셨지요. 그리고 … 저는 모르겠습니다. … 선생님, 그 잠자리 두 마리를 내버려두시고 저를 보시고 제 말씀을 들으십시오. 저는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겠습니다. 동료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그러나 선생님께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유다를 아무래도 사랑하지 못하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립니다만 제가 그를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을 그가 물리칩니다. 그 사람이 저를 업신여겨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사람을 아는 경험이 더 많다고 그가 짐작하는 나이많은 열성당원과 같이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방식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사람이 진실해 보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 잠자리 두 마리가 물 표면에 내려앉아 그놈들의 무지개빛 겉날개로 작은 무지개를 꽂아 놓는 것에 정신이 팔리신 것처럼 한동안 침묵을 지키신다. 그 무지개은 호기심 많은 각다귀 한 마리를 끌어들여 탐욕스러운 곤충 한 마리에 의하여 으스러지게 하는 데 소용되는 귀중한 무지개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잠자리가 날아가다가 숨어 있던 두꺼비인지 개구리인지에 채진다. 그리고 두꺼비인지 개구리인지 그 놈은 잠자리가 잡은 각다귀를 동시에 재빨리 먹어 치운다. 예수께서는 자연의 조그마한 비극을 보시기 위하여 거의 엎드리다시피 하셨기 때문에 몸을 일으키시면서 말씀하신다. “이런 것이다. 잠자리는 든든한 턱이 있어 풀을 먹을 수 있고 든든한 날개가 있어 각다귀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리고 개구리는 입이 넓어서 잠자리를 삼킬 수가 있다. 각 존재물은 그들 특유의 힘이 있어 그것을 사용한다. 시몬아, 가자. 다른 사람들이 잠을 깬다.”
“주님은 제게 대답을 안하셨습니다. 대답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대답했다! 내 나이많은 현자야, 곰곰히 생각해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다 ….” 예수께서는 모래톱을 다시 올라오셔서 잠이 깨서 당신을 찾는 제자들에게로 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