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얼마나 큰 즐거움을 맛보았는지 모릅니다.
신부님이 아시는 그 수를 놓으면서 친한 친구들과 같이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늘 하던 일에서는 주의가 딴 데로 쏠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환상이 보이면서 제가 하던 일에서 제 정신을 떼어놓고 제 얼굴을 딴 얼굴로 바꾸어놓았습니다. 다행히도 이것을 깨달은 것은 빠올라뿐이었습니다. 저는 늘 맞이하는 허탈의 순간까지 오후 내내 이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 허탈의 순간이 어느 때보다 일찍 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 환상들을 볼 때에는 제 육체적인 힘, 특히 심장의 힘이 심한 분산을 겪지만 그 분산은 매우 큰 영적인 기쁨으로 보상되기 때문에 제게 고통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의 복음을 ‘보았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 그 복음을 읽으면서 “이것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할 복음서의 삽화로구나. 이 삽화는 환상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으니까” 하고 생각했다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그런데 반대로 제가 도무지 생각하고 있지 않던 순간에 마침 저를 찾아와서 기쁨이 넘치게 했습니다. 제가 본 것은 이렇습니다.
과히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은 배 한 척이 있다. 그것은 그 위에서 대여섯 사람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어선이다. 그 배는 진한 파란색 호수의 물을 가르며 나아간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주무신다. 여느 때와 같이 흰옷을 입으셨다. 왼팔에 머리를 얹으셨고, 팔과 머리 밑에는 여러 번 접은 회청색 겉옷을 놓으셨다. 뱃바닥에 누워 계시지 않고 앉아 계시며 머리를 고물 끝에 있는 판자에 얹고 계시다. 이 판자를 뱃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예수께서는 조용히 주무신다. 피로하셨다. 평온하시다.
베드로는 키를 잡고 있고, 안드레아는 돛을 보살피고, 요한과 누군지 알 수 없는 다른 두 사람은 아마 밤에 고기잡이를 할 준비를 하려는 것처럼 배 밑바닥에서 밧줄과 그물들을 정돈하고 있다. 해가 벌써 서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니 해가 저물어 가는 것 같다. 제자들은 모두 더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노며 걸상이며 바구니며 그물 따위를 지나서 배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데 옷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속옷들을 걷어 올렸다. 그들은 모둔 겉옷을 벗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한 야산 꼭대기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소나기 구름 뒤로 해가 가려지는 것이 보인다. 바람이 구름을 호수 쪽으로 빨리 몰고 온다. 지금 당장은 바람이 윗쪽에 있어서 호수는 아직 잔잔하다. 다만 빛깔이 더 짙어지고 수면에 주름이 잡힌다. 아직 파도는 아니지만 벌써 물이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하늘과 호수를 살펴보고 배를 부두에 대기 위하여 조종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람이 호수를 덮쳐 몇 분 사이에 모든 것이 부글부글 끓고 거품이 인다. 서로 부딪고 배에 부딪히는 파도들은 배를 들어올렸다 내려놓았다 하며 배를 사방으로 이리저리 돌려서 키를 조작하지 못하게 하고, 바람은 돛대에 붙잡아매야 하는 돛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을 방해한다.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시다. 제자들의 발걸음과 흥분한 목소리에도, 휙휙거리는 바람 소리와 뱃전과 이물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에도 깨지 않으신다. 예수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물보라를 조 맞으신다. 그러나 그대로 주무신다. 요한은 이물에서 고물로 가서 어떤 널빤지 아래서 꺼낸 그의 겉옷을 덮어 드린다. 그는 마음을 쓰는 사랑으로 예수를 덮어 드린다.
푹풍은 점점 더 거칠어진다. 호수는 잉크를 쏟아부은 것처럼 시꺼멓게 되었고 파도의 거품으로 줄무늬가 졌다. 배에는 물이 넘쳐 들어오고 바람에 밀려서 호수 가운데로 더 들어가게 된다. 제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조종을 하고 파도가 들여보내는 물을 퍼낸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무 소용도 없다. 그들은 이제 무릎까지 차는 물 속에서 철벅거리고 배는 끊임없이 더 무거워진다.
베드로는 그의 침착성과 참을성을 잃었다. 그는 키를 아우에게 맡기고, 비틀거리면서 예수께 가서 세차게 흔든다. 예수께서는 잠을 깨시며 머리를 드신다.
“선생님, 살려 주십시오, 저희들은 죽습니다!” 베드로가 외친다(들리게 하려면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를 똑바로 들여다보시고 다른 제자들을 바라보신 다음 호수를 바라보신다. “너는 내가 너희를 구해 줄 수 있다고 믿느냐?”
“빨리요, 선생님” 하고 베드로가 외치는데, 그때 정말 산더미 같은 파도가 호수 한가운데에서 일어나 빨리 초라한 배를 향하여 온다. 그 파도가 얼마나 높고 무서운지 회오리 바람에 불려 올라가는 커다란 물기둥 같다.
그 파도가 오는 것을 보는 제자들은 무릎을 꿇고 이제는 끝장이로구나 하고 확신하며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잡고 늘어진다.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고물에 있는 널빤지에 올라서신다. 예수의 흰 얼굴이 납빛깔의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뚜렷이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파도를 향하여 팔을 내미시고 바람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멎고 잠잠하여라.” 그리고 물을 향하여 “잔잔해져라, 명령이다.” 하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엄청나게 큰 파도가 녹아 거품이 되어 손해를 끼치지 않고 주저앉는다. 마지막으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사라지면서 속삭임이 되고, 휙휙거리는 바람소리도 한숨으로 변한다. 그리고 고요하여진 호수 위에는 청명한 하늘이 다시 오고 제자들의 마음에는 바람과 믿음이 돌아온다.
예수의 위엄을 나는 묘사할 수가 없다. 그것을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위엄을 마음 속 깊이 맛본다. 그것은 그 위엄이 항상 내 안에 현존하며, 예수의 잠이 얼마나 평온하였는지 또 바람과 파도에 대한 그 분의 지배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시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