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그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복음서를 모든 사람이 해석하는 뜻으로 네게 해석해 주지 않겠다. 복음서의 이 대목 앞에 일어난 일을 명백히 밝혀 주겠다.
내가 왜 자고 있었느냐? 돌풍이 오리라는 것을 혹시 내가 알지 못했었느냐? 아니다, 알고 있었다. 아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러면 내가 왜 자고 있었느냐?
마리아야, 사도들은 사람들이었다. 착한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직은 ‘사람들’일 뿐이었다. 사람은 항상 무엇이든지 다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실제로 할 수 있게 되면 더 없이 자만해지고 자기의 ‘솜씨’에 대해서 더 없이 애착을 느끼게 된다.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야고보와 요한은 훌륭한 어부들이었고, 이런 이유로 배를 다루는 데 그들을 당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훌륭한 ‘선생님’이었지만, 뱃사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내가 그들을 도와줄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갈릴래아 바다를 건너려고 그들이 배를 탈 때에 나는 다른 일은 할 수 없으니까 그저 앉아 있으라고 청했던 것이다. 그들의 애정도 여기에 조금 작용했다. 그래서 내게 육체적인 피로를 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솜씨’에 대한 애착이 애정보다는 더 우세했다.
마리아야, 나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내 의사를 강요하지 않는다. 보통은 너희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고 기다린다. 그날 나는 피곤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더러 쉬라고, 즉 대단히 능력이 많은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라고 부탁했었다. 그래서 나는 자기 시작했다. 내 잠에는 사람은 역시 ‘사람’이라는 것과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를 도와주시기만을 바라신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 힘으로 하기를 원한다는 이 확인이 섞여 들었다. 그 ‘영적인 귀머거리들’, 그 ‘영적인 소경들’에게서 나는 ‘그들 자신의 힘으로 행동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수백 수천 년 동안 파멸로 가게 될 모든 영적인 귀머거리와 소경들을 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도와달라고 호소하기를 기다리면서 그들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베드로가 ‘살려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을 때 내 고민은 그냥 내버려두는 조약돌 모양으로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그냥 ‘사람’이 아니고 하느님인 사람이다. 나는 너희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 너희 충고나 도움을 물리쳤는데 그 사람이 곤경에 빠진 것을 보게 되면, 너희가 그것을 좋아할 정도로 인정머리 없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어지간히 냉혹하기는 해서 그가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것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무시한 채 무관심하게 바라다보고 있다. 너희들의 태도로 ‘내가 당신을 도와주려고 했을 때 당신은 마다했지요? 이젠 당신이 요령껏 처리해보시오.’ 하는 것을 그에게 깨닫게 한다. 그러나 나는 예수다, 나는 구세주다. 그래서 나는 구해준다. 마리아야, 누가 나를 부르기만 하면 나는 언제든지 구해준다.
불쌍한 사람들이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따로 떨어지거나 한 덩어리가 된 폭풍이 형성되는 것을 왜 허락하십니까?’ 하고. 만일 어떤 재난을 막론하고 내 능력으로 없애버리면, 너희는 그것이 사실은 내 선물인데도 그 이익을 너희가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고, 이제 다시는 결코 나를 기억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결코 다시는. 가엾은 아들들아 너희가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면 너희에게는 고통이 필요하다. 배가 고팠을 때에야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기억한 탕자와 같이 말이다.
불행은 너희들에게 너희가 무가치하다는 것을 믿게 하는 데 소용되고, 수많은 오류의 원인인 너희들의 부조리, 수많은 슬픔과 고통의 원인인 너희들의 악의, 스스로 벌어들인 벌의 원인인 너희들의 잘못, 그리고 내 현존, 내 능력, 내 착함을 믿게 하는 데 소용된다. 오늘의 복음서가 뜻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가엾은 아들들아, 현시대의 ‘너희’ 복음서 말이다.
나를 불러라. 예수가 자고 있는 것은 다만 너희가 그에 대해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는 것이 괴롭기 때문이다. 나를 불러라, 그러면 오마.”

신부님이 오늘 오시지 않은 것이 애석합니다. 오셨더라면 지극히 행복한 얼굴을 보셨을 것이고 저는 또 제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니까요. 제가 일을 계속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빨리 일을 해도 빠올라는 제가 변하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말하지만 그 이상 설명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 적어도 제가 자제할 줄은 알았을 것이고, 필요한 경우에는 모세가 한 것과 같이 얼굴에 베일을 쓸 수도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