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당신을 배에 태워 준 어떤 사공의 덕택으로 쿠자의 집 정원에 있는 선착장에 내리신다. 벌써 정원사가 예수를 보고 대문을 열어 드리려고 뛰어온다. 이 대문은 호수 쪽으로 나 있는 저택의 입구를 외부인들에 막는 대문인데, 크고 튼튼한 대문이지만 호수로 향한 바깥쪽으로는 대단히 높고 우거진 월계수와 회양목 울타리로 가려져 있고, 집으로 향한 안쪽으로는 갖가지 빛깔의 장미나무로 가려져 있다. 호화로운 장미나무들은 월계수와 회양목들의 청동빛 잎들을 장식하고, 잔 가지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다른 쪽으로 나가거나 초록색 울타리를 넘어가서 그 너머로 꽃핀 가지를 드리운다. 오솔길이 있는 위치 한군데에만 대문이 드러나보이고, 호수에서 오는 사람들이나 호수로 가는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게 열린다.
“이 집과 너 요안나에게 평화. 주인 마님은 어디 계시냐?”
“저기에 친구분들과 같이 계십니다. 제가 가서 부르겠습니다. 그 분들은 늦게 도착할까봐 걱정이 돼서 사흘째나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신다. 하인이 요안나를 부르려고 뛰어 간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하인이 일러드린 장소를 향하여 천천히 걸어가신다. 예수께서는 훌륭한 정원을 감상하신다. 쿠자가 아내를 위하여 만들어놓은 호화로운 장미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갖가지 빛깔과 크기와 모양의 장미꽃들이 호수의 잔잔한 이 작은 만에 벌써 때이르게 화려하게 웃고 있다. 다른 화초나무들도 있다. 그러나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장미나무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요안나가 달려온다. 그는 장미꽃이 반쯤 찬 바구니와 꽃을 자르려고 가지고 있던 가위도 내려놓지 않고 그대로 팔을 내밀면서 빨리 뛰어오고 있는데, 매우 연한 장미빛깔의 고운 모직으로 지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 우아하다. 옷주름은 은선세공(銀線細工) 장식을 한 브로우치와 핀으로 고정시켰는데 브로우치와 판에서는 연한 석류석이 반짝이고 있다. 구불구불한 검은 머리 위에는 역시 은으로 만들고 석류석이 박힌 주교관처럼 생긴 왕관형 머리장식으로 매우 올이 고운 아마포로 만든 베일을 고정시켰는데, 역시 장미빛깔인 베일이 뒤로 늘어지면서 머리장식과 같은 귀걸이를 해서 무거워진 작은 귀가 드러나 보인다. 그의 얼굴은 웃고 있고, 대단히 가는 목 아랫쪽에는 다른 값진 장신구와 만듦새가 같은 목걸이가 걸려 있다.
요안나는 꽃바구니를 예수의 발 앞에 털썩 내려놓고 예수의 옷에 입맞춤하려고 흩어진 장미꽃 가운데에 무릎을 꿇는다.
“요안나야, 네게 평화. 내가 왔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그 여자들도 왔습니다. 아이고! 이제는 주님과 그 여자들을 만나시게 한 것이 잘못한 일같이 생각됩니다. 어떻게 해서 서로 이해하시겠어요? 그 여자들은 완전히 이교도인 걸요!” 요안나는 좀 불안해 한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한 손을 요안나의 머리에 얹으신다. “염려 말아라. 우리는 아주 썩 잘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잘했다. 네 정원에 장미꽃이 만발한 것과 같이 만남도 잘 꾸며질 것이다. 장미꽃들을 주워라. 그리고 네 친구들을 만나러 가자.”
“아이고! 장미꽃은 얼마든지 있는 걸요! 저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들은 하도 … 하도 … 향락적이어서 … 그 여자들이 꽃을 사랑하기를 마치 … 모르겠습니다 ….”
“그러나 장미는 나도 좋아한다! 그 여자들과 나 사이의 합의점을 우리가 벌써 찾아냈다는 것을 알겠지? 자 가자! 이 화려한 장미꽃을 줍자 ….” 그러면서 예수께서 모범을 보이시려고 몸을 구부리신다.
“주님은 안 됩니다! 주님은 안 돼요! 그렇게 하는 것이 소원이시면 보십시오. … 다 됐습니다.”
두 사람은 가지각색의 장미덩굴이 얽혀서 만들어진 정자로 향해 간다. 어귀에은 세 로마 여자가 망을 보고 있다. 쁠라우띠나와 발레리아와 리디아이다. 쁠라우띠나와 리디아는 망설이면서 그들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발레리아는 밖으로 뛰어 나오며 몸을 구부리고 말한다. “제 파우스띠나를 살려 주신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당신과 당신 친구들에게 평화와 빛이 있기 바랍니다.”
친구들은 말없이 몸을 굽혀 인사한다.
쁠라우띠나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키가 크고 위엄이 있으며, 매끈하고 대단히 흰 이마 아래에는 약간 거만하고 빛나는 검은 눈이 있고, 코는 곧고 완전하며, 입은 입술이 좀 두꺼우나 잘 생겼고, 둥그스름한 턱은 앞으로 내밀었다. 이 여자는 매우 아름다운 로마의 황후의 어떤 조각을 연상시킨다. 묵직한 반지들이 매우 아름다운 그의 양손에서 반짝이고, 진짜 조각의 팔 같은 그의 팔은 손목과 팔꿈치 위에 넓은 금팔찌로 장식하고 있다. 볼그레하고 매끈하고 나무랄 데 없는 흰 팔꿈치는 주름을 잡은 짧은 소매 밖으로 나와 있다.
이와 반대로 리디아는 금발이고 더 날씬하고 더 젊다. 그의 아름다움은 쁠라우띠나의 위압하는 아름다움과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 좀 나이어린 여자의 아름다움의 모든 우아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교도적인 분야에 있으니 쁠라우띠나는 어떤 황후의 상 같다고 말할 수 있겠고, 리디아는 다이아나 여신이나 사랑스럽고 정숙한 물의 요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이사리아에서 보았을 때와 같이 절망 상태에 있지 않은 발레리아는 살은 쪘지만 아직 대단히 젊은 몸매에, 자기 아이를 젖먹여 키우고 그 아이가 젖을 먹은 덕택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어머니의 조용한 눈을 가지고 있는 젊은 어머니의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다. 볼그레한 살갗에 머리는 밤색이며, 조용하지만 매우 다정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이들은 쁠라우띠나보다 신분이 낮은 부인들이며 그들의 시선으로도 그를 여왕처럼 존경한다는 느낌이 든다.
“부인들은 꽃에 전념하고 계시군요. 계속하십시오, 계속하세요. 부인들이 꽃이라는 조물주의 이 찬란한 작품을 따서 그 너무도 짧은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하여 그 값진 잔에 로마 여인들의 능란한 솜씨로 배치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 분홍빛이나 노란빛 꽃잎을 이제 겨우 벌리려고 하는 저 장미꽃 봉오리를 우리가 감탄하며 바라보니, 그 봉오리가 죽는 것을 보고 어떻게 아까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 히브리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정말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꽃이 피는 이 피조물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죽는 것을 보면 우리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초목은 우리보다 더 영리합니다. 사람들이 자르는 줄기의 어떤 상처에서도 새싹이 나와 새로 장미꽃이 피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신은 이 교훈을 받아들여, 우리가 꽃에 대해서 가지는 좀 관능적인 사랑을 더 고상한 생각에 대한 권유로 만들어야 합니다.”
“선생님, 어떤 생각 말입니까?” 하고 주의깊게 들으며 히브리 선생의 고상한 생각에 마음이 끌린 쁠라우띠나가 묻는다.
“이런 생각입니다. 어떤 초목이 뿌리가 흙에서 영양분을 얻는 한 죽지 않고, 줄기가 죽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 것과 같이 인류도 어떤 사람의 세상 생명이 끊어질 때 죽지 않고 끊임없이 새 꽃들을 발전시킵니다. 우리로 하여금 조물주를 찬미하게 할 수 있는 한층 더 고상한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꽃은 죽으면 슬프게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데, 사람은 마지막 잠이 들어도 죽지 않고, 그에게 있는 가장 훌륭한 것으로 그를 만들어내신 조물주에게서 영원한 생명과 온갖 찬란함을 받아서 더 빛나는 생명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발레리아, 당신의 어린 딸이 죽었더라도 당신은 어린 딸의 애무를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에는 당신과 헤어지기는 했지만 당신의 사랑을 잊지 않는 딸의 입맞춤이 항상 왔을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는 것이 얼마나 기분좋은 일인지 알겠지요. 그런데 어린 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덮개가 있는 저 요람 안에 있습니다. 제가 사는 목적이 남편과 딸에 대한 사랑이었기 때문에 전에도 딸을 떠난 일이 도무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딸이 죽는 것을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지금은 한 순간도 딸을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화려한 덮개가 덮여 있는 나무로 만든 일종의 작은 요람이 놓여 있는 걸상 쪽으로 가신다. 예수께서 덮개를 젖히시고 자고 있는 아기를 들여다보시니 아기는 더 차가운 공기로 인하여 잠을 깬다. 그의 작은 눈이 놀라서 떠지고 입이 천사의 미소 같은 미소로 벌어지는데, 지금까지는 꼭 쥐고 있던 귀여운 손이 펴지면서 예수의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잡으려고 하고, 참새같은 조잘거림이 그의 생각에 어떤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표해 준다. 마침내 으레하는 말 보편적인 말인 “엄마!” 소리를 외친다.
“안으시오, 안아.” 하고 예수께서는 발레리아가 요람에 몸을 구부릴 수 있도록 비키시며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얘가 선생님을 귀찮게 할 텐데요! … 노예를 불러서 정원으로 데려 가라고 하겠습니다.”
“나를 귀찮게 한다구요? 아! 아닙니다! 어린이들이 나를 귀찮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내 친구들인 걸요.”
“선생님은 자녀나 조카들을 두셨습니까?” 하고 쁠라우띠나가 예수께서 어떤 미소를 지어서 어린 아이를 웃게 하려고 하시는지를 지켜보다가 묻는다.
“나는 자녀도 없고 조카도 없습니다. 그러나 꽃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어린이들을 사랑합니다. 어린이들은 순결하고 악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부인, 차라리 아기를 내게 주시오. 나는 어린 천사를 안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그러면서 아기를 안고 앉으시니, 아기는 예수를 빤히 들여다보고 수염을 흐트러뜨린다. 그러다가 겉옷의 술장식과 옷의 끈을 가지고 노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거기다 대고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길게 늘어놓는다.
쁠라우띠나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고, 또 우리와 자주 만나면서도 나빠지지 않는 착하고 영리한 우리 친구가 선생님께 말씀드렸지만, 우리들은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에 따라서 판단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로마 사람은 지어낸 이야기는 믿지 않으니까요. … 왜 웃으십니까?”
“나중에 말하겠습니다. 계속하십시오.”
“로마 사람은 지어낸 이야기를 믿지 않고, 단죄하거나 찬양하기 전에 지식과 양심으로 판단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백성은 선생님을 똑같이 찬양도 하고 중상도 합니다. 선생님의 행동을 보면 선생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고, 많은 히브리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선생님을 살인범보다 좀 덜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은 철학자의 말들과 같이 엄숙하고 현명합니다. 로마는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매우 사랑합니다. 그런데 … 내가 말해야 할 것은 지금의 철학자들은 우리를 만족시킬 만한 학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의 생활 방식이 그들의 가르침과 맞아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들의 가르침과 맞아들어가는 생활 방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이교도이기 때문이지요?”
“아닙니다. 무신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라니요? 그들의 신을 가지고 있는데요.”
“부인, 그들이 이제는 그 신들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옛날 철학자들,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당신에게 상기시키겠습니다. 그들도 역시 이교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고상한 생활들을 했는지 보십시오! 사람은 오류로 흘러가기 쉬우니까 오류에 섞인 생활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중대한 수수께끼에 부닥뜨렸을 때, 정직이냐 부정직이냐, 덕행이냐 악습이냐, 용맹이냐 비겁이냐 하는 딜레마에 부닥뜨렸을 때, 그들이 악쪽으로 가면 그로 인해 조국과 시민들에게 해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들은 거인다운 그들의 의지로 못된 폴립*의 촉수(觸手)를 그들에게 멀리 물리쳐버리고, 자유롭고 거룩하게 되어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선을 원할 줄 알았습니다. 이 선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선생님은 하느님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나는 참 하느님의 아들로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하느님으로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선생님을 보면, 하느님은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생님이시겠군요.”
“하느님은 선생보다 훨씬 더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천주성이라는 숭고한 개념을 지혜라는 것에 한정시켜 깎아내리지 마십시오.”
“지혜도 신입니다. 우리는 미네르바를 가지고 있어요. 지식의 여신이지요.”
“당신들은 또 쾌락의 여신 비너스도 가지고 있지요. 당신들은 어떤 신이, 즉 완전을 지향하는 인간보다도 높은 어떤 존재가 사람들에게 있는 추한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까? 한 영원한 존재가 제한된 시간밖에 누리지 못하는 자의 보잘 것 없고 비속하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쾌락을 영원히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그의 생활의 목적으로 삼는다고? 당신들이 올림푸스라고 부르는 것, 인간의 가장 나쁜 경향들이 술렁이는 그 곳이 얼마나 불결한 하늘인지를 생각하지 못하십니까? 당신들의 하늘을 보면 무엇이 보입니까? 음란, 범죄, 증오, 전쟁, 도둑질, 푸짐한 식사, 계략, 복수 따위입니다. 당신들 신들의 축제를 지내려고 하면 무엇을 하십니까? 진탕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입니다. 신들에게 무슨 예배를 드립니까? 베스타 여신에게 바쳐신 여자들의 진짜 순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들의 대사제들은 어떤 신의 법전에 의거해서 판결을 합니까? 당신들의 점쟁이들은 새들이 날아가는 것과 천둥의 요란한 소리에서 어떤 말을 읽을 수 있습니까? 또 제물로 바쳐진 짐승들의 피흐르는 내장이 당신들의 장점(腸占)쟁이들에게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습니까? 부인은 ‘로마는 지어낸 이야기는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다면 당신들이 저희들끼리 서로 미워하는 수없이 많은 신을 가지고 있고, 또 그들의 복수를 믿으면서, 어째서 로마는 보잘 것 없는 열 두 사람이 돼지와 양과 황소에게 밭들을 한 바퀴 돌게 한 다음 그것들을 제물로 바쳐서 케레스(Ceres, 로마인들의 농사 여신)를 호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그 분은 영원하시고, 오직 한 분이시고 신령하십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하느님이시라면서 육체를 가지고 계신데요.”
“신들의 고향에는 그 신들 중 아무에게도 바쳐지지 않은 제단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는 그것을 미지의 신에게 바쳤습니다. 그것은 현자들, 즉 진짜 철학자들이 오류의 가리개에 둘러싸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인 영원한 어린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낸 저 이야기들 외에 무엇인가 있다는 직감을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현자들이 – 이 허위의 연출 이외에 무엇인가 있다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었고, 이 세상에 있는 좋은 것이 모두 거기에서 오는 참으로 숭고하고 신성한 어떤 것이 있다는 직감을 가졌던 사람들 말입니다. – 그가 참 하느님이라는 느낌이 드는 미지의 신에게 제단을 하나 세우기를 원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신이 아닌 것을 신이라고 부르고, 실제로는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느님을 알고 공경하려면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아십시오. 하느님은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당신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내신 분이십니다. 돌이 변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지어낸 이야기가 당신들을 믿게 하고 만족시킬 수 있습니까? 사실은 돌보다 더 단단하고 더 나쁜 사람들도 있고, 사람보다 더 유익한 돌들도 있습니다. 발레리아, 당신의 어린 딸을 들여다보면서 ‘요 볼그레한 살, 거미줄보다도 더 가는 요 머리카락들, 요 맑은 눈동자가 돌에서 왔다.’고 말하거나 또는 ‘나는 모든 것이 암늑대나 암말 같아서 짐승처럼 교미를 해서 짐승처럼 아이를 낳고 짐승처럼 기른다. 그래서 이 딸을 내 동물적인 본능으로 낳은 아이여서 나와 같은 짐승이고, 내일 이 애가 죽고 나도 죽으면 우리는 역한 냄새를 풍기며 분해되어 다시는 영영 서로 보지 못하게 될 두 시체가 되겠구나.’ 하고 말하지 않고, ‘이 애는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만들어내신 하느님의 살아 있는 뜻이며, 하느님에게서 죽지 않는 제 2의 생명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참 하느님을 믿으면 내 어린 파우스띠나를 다시 또 영원히 가지게 될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 더 기분좋지 않습니까? 이 두 가지 설명 중에서 어머니로서의 당신의 마음은 어느 것을 원하겠는지 말하시오.”
“주님, 물론 첫 번째 것은 원치 않습니다! 파우스띠나가 영원히 분해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알았더라면, 이 애가 죽어갈 적에 제 고통이 덜 심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을 테니까요. ‘나는 진주를 하나 잃었다. 그러나 그 진주는 아직 그대로 있어서 내가 다시 찾아내게 될 것이다.’ 하고요.”
“제대로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들에게로 올 때에 당신들의 친구는 꽃에 대한 당신들의 정열에 놀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내 마음에 거슬리지 않을까 염려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나도 꽃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이해를 잘할 것이다.’ 하고 말해서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나는 발레리아가 딸을 사랑하도록 이끈 것과 같이 당신들이 꽃을 사랑하게 이끌어가고 싶습니다. 발레리아는 그의 딸이 엄마인 자기가 낳아준 육체 안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작은 조각인 영혼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딸을 더 정성들여 보살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작은 부분은 죽지 않고, 엄마가 참 하느님을 믿으면 하늘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찬란한 장미꽃을 보십시오. 황제의 옷을 꾸미는 주홍빛 옷감도 그 꽃잎보다는 덜 찬란합니다. 그 꽃잎은 빛깔로 눈의 기쁨만이 될 뿐 아니라, 그 섬세함으로 촉각의 기쁨도 되고, 그 향기로 후각의 기쁨도 됩니다. 그 이 장미꽃, 저 장미꽃, 또 저 장미꽃을 보십시오. 첫째 것은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와 같고 둘째 것은 지금 막 내린 눈과 같고, 셋째 것은 연한 금빛깔이며, 마지막 것은 내 무릎 위에서 방글방글 웃고 있는 아기의 이 부드러운 얼굴과 같습니다. 또 있습니다. 첫째 것은 굵은 줄기 위에 꼿꼿하게 서 있고, 마치 피를 뿌린 듯이 적갈색 잎에 가시가 거의 없고, 둘째 것은 줄기에 광택이 없고 창백한 잎들과 가시가 몇 개 있고, 셋째 것은 초록빛 초와 같이 작은 반짝거리는 잎이 달리고 골풀과 같이 휘기 쉬우며, 마지막은 어떻게나 가시가 많은지 그 볼그레한 꽃부리를 만지려는 시도를 일체 막는 것 같습니다. 그 꽃은 끝이 아주 가는 줄과 같습니다. 자 이제는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이 모든 것을 누가, 어떻게, 언제 만들었습니까? 시간이 있기 전의 밤에 이 장소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형체없이 움직이는 원소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 분, 하느님께서 ‘이루어져라’ 하고 말씀하시니, 원소들이 서로 갈라져서 같은 족속(族屬)끼리 모였습니다. 두 번째 ‘이루어져라’ 하는 말이 울려퍼지자 원소들이 서로 안팎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땅 가운데 물이 있게 된 것이지요. 어떤 원소는 위 아래로 나뉘었습니다. 공기와 빛이 조직된 유성 위에 있게 된 것입니다. 또 한 번 ‘이루어져라’ 하는 말이 울려퍼지자, 이번에는 초목이 생기고, 다음에는 별들이 생기고, 다음에는 짐승들이, 또 그 다음에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찬란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즐거워하라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꽃과 천체들을 주셨고, 또 마지막 선물로 생식을 하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죽는 것을 생식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죽음 후에도 살아남는 것을 생식하는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이 장미꽃들은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의 무한한 능력은 무한히 많은 아름다움에서 나타납니다.
내 설명은 당신들의 믿음의 반항적인 청동에 부딪혀서 방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첫 번 만난 것 치고는 우리가 벌써 좀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의 영혼이 내가 말한 것을 연구하기 바랍니다. 질문하실 것이 있습니까? 질문하세요. 내가 여기 온 것은 당신들을 계발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식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은 의심을 밝혀줄 마음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대로 무식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아버지들 중에서 가장 능란한 아버지인 것처럼 첫 걸음을 떼어놓는 어린 아이를 부축하시면서 정자에서 나오신다. 어린 아이는 햇빛에 너울거리는 분수 쪽으로 가려고 한다.
부인들은 자기들끼리 말을 하려고 그대로 앉아 있다. 요안나는 두 소원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정자 어귀에 남아 있다 ….
마침내 리디아가 결심을 하고 예수께로 가는데, 리디아 다음에는 다른 여자들도 결심한다. 예수께서는 꼬마가 분수가 일으키는 태양의 스펙트럼을 붙잡으려고 하는데 빛밖에 잡지 못하게 되니까 자꾸자꾸 반복하면서 볼그레한 입술로 병아리처럼 빽빽거리기 때문에 웃고 계시다.
“선생님 … 저는 선생님이 왜 우리 선생들이 무신론자들이기 때문에 좋은 생활 방도를 가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올림푸스의 신들을 믿습니다. 그러나 믿기는 믿습니다 ….”
“그 사람들은 믿음의 외면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내가 말한 그 미지의 신을 믿는 진짜 현자들과 같이 그들의 영혼을 만족시키는 하느님을, 비록 그 이름은 모르고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으면서도 정말로 믿은 동안은, 그리고 훨씬 더 놓은 존재, 즉 이교(異敎)가 그들에게 주었던 인간성이 가득한, 인간성이라도 저속한 인간성이 가득한 하찮은 신들보다는 훨씬 더 높은 그 존재에게로 그들의 생각을 돌린 동안은 필연적으로 하느님을 좀 반영했습니다. 영혼은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고, 말을 되받아 보내는 메아리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선생님?”
“하느님입니다.”
“그것은 중대한 말입니다!”
“이것은 중대한 진리입니다.”
불멸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끌린 발레리아는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제 어린 딸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 곳에 마치 지성소처럼 입맞춤하고, 또 그것이 하느님의 일부분이니까 경배하겠습니다.”
“영혼! 영혼은 마치 당신의 어린 딸 파우스띠나가 붙잡으려고 하지만 형체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붙잡을 수가 없는 저 빛과 같습니다. 그러나 있기는 합니다. 나도 당신도 당신의 친구들도 그것을 봅니다. 영혼은 또 사람을 짐승과 구별하게 하는 모든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어린 딸이 그의 첫 생각을 당신에게 말할 때 그 지능이 그의 영혼입니다. 딸이 당신을 본능으로 사랑하지 않고 이성으로 사랑하면 그 사랑을 그의 영혼이라고 생각하시오. 그 딸이 당신 곁에서 클 때에 육체적으로만 아름답게 자라지 않고 덕행으로도 아름답게 자라면, 그 아름다움이 그의 영혼이라고 생각하시오. 그리고 영혼을 경배하지 말고 영혼을 만들어내신 하느님을, 착한 영혼은 어느 것이나 당신의 옥좌를 만들고자 하시는 하느님을 경배하시오.”
“그러나 그 형체가 없고 숭고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 안에 있습니까? 뇌 안에 있습니까?”
“영혼은 인간을 이루는 전체에 있습니다. 당신들을 포함하기도 하고 당신들 안에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영혼이 당신들을 떠나면 당신들은 시체가 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거슬러 지은 죄로 인해서 영혼이 죽으면 당신들은 지옥으로 가서 하느님과 영원히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가 ‘불멸의 존재’라고 말한 철학자가 비록 이교도이기는 하지만 옳은 말을 했다고 인정하시는군요?” 하고 쁠라우띠나가 묻는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이 신앙 교리라고 말하겠습니다. 영혼의 불멸성, 즉 사람의 높은 부분의 불멸성은 믿음의 가장 확실하고 가장 위로가 되는 신비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우리의 기원과 우리의 목적, 우리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고 우리에게서 일체의 이별의 쓰라림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쁠라우띠는 곰곰히 생각한다. 예수께서 그를 살펴보시며 말씀을 안하신다. 마침내 그 여자는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선생님은 영혼을 가지고 계십니까?”
예수께서는 “물론 가지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신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하느님이십니까, 아니십니까?”
“나는 하느님입니다. 내가 이미 말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인성을 취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은 이 희생으로만 당신들의 이성을 초월하는 어려움들을 내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오류를 타파한 다음 생각을 해방함으로써 영혼도 노예상태에서 해방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혼의 노예상태를 지금 당장은 설명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지혜를 한 육체 안에 가두었고, 거룩함을 한 육체 안에 가두었습니다. 지혜를 나는 땅에 씨를 뿌리듯이,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보내듯이 널리 퍼뜨립니다. 거룩함은 은총의 때에 마치 사람이 깨뜨린 항아리에서 흘러내리듯이 세상에 흘러내려 사람들을 거룩하게 할 것입니다. 그 때에는 미지의 신이신 하느님이 알려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미 알려지셨고, 선생님의 능력과 지혜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거나 거짓말쟁이입니다.”
“나는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벽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오에는 내게 대한 지식이 가득 찰 것입니다.”
“선생님의 정오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승리입니까? 내가 그것을 보게 될까요?”
“사실 그것은 승리일 것이고, 부인은 그것을 볼 것입니다. 그것은 부인이 마시는 것에 대해 싫증이 나 있고, 모르는 것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인의 영혼은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진리를 갈망합니다.”
“나는 진리입니다.”
“그러면 갈망하는 내게 선생님을 주십시오.”
“부인 내 식탁에 오기만 하면 됩니다. 내 말은 생명의 빵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의 신들을 버리면 그 신들은 뭐라고 말할까요? 우리에게 원수를 갚지 않을까요?” 하고 리디아가 겁이 나서 말한다.
“부인, 당신은 아침의 안개를 본 일이 없습니까? 풀밭들이 수증기에 가려서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해가 뜨면 안개가 증발합니다. 그래서 풀밭들은 더 아름답게 빛납니다. 당신들의 신들은 이런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생각같은 안개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하느님을 모르면서도 믿을 필요는 느낍니다. 믿음은 사람의 영속적이고 필요한 상태이니까요. 그래서 사람의 생각은 저 올림푸스를, 즉 진짜 허망한 웃음거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들의 신들은 해, 즉 참 하느님이 나타나시면 당신들의 마음에서 사라질 것이고 당신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것입니다. 당신들의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선생님의 말씀을 또 들어야 하겠습니다. … 많이 … 우리는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가 새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쾌감을 일으킵니까?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까?”
쁠라우띠나는 자신있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나는 지금 알지만 카이사르는 알지 못하는 이 별 것도 아닌 것이 내 이름보다도 더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러면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나는 내 평화를 두고 갑니다.”
“아니 뭐라고요? 주님, 더 계시지 않으십니까?”
“더 있지 못한다. 나는 할 일이 많다 ….”
“아이고! 저는 주님께 제 걱정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로마 여자들의 인사를 받으신 다음 길을 떠나셨던 예수께서 몸을 돌리시며 말씀하신다. “배에까지 오너라. 네 걱정을 거기서 말해라.”
요안나는 가서 말한다. “남편이 저를 얼마 동안 예루살렘에 보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속이 상합니다. 남편이 그렇게 하는 것은 제가 이제는 건강해졌으니까 제가 더 이상 귀양살이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
“너도 허망한 망상들을 만들어 가지는구나!” 예수께서는 벌써 한 발을 배 안에 들여놓으셨다. “만일 그렇게 되면 네가 나를 환대할 수 있고 나를 더 쉽게 따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는 기뻐서 ‘인자하신 분이 이것을 생각하셨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오! … 주님, 그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그 생각은 못했었습니다.”
“그럼 알겠지. 착한 아내로 순종하여라. 네가 순종하면 그 다음 과월절에 나를 만나는 상급과 네 친구들에게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을 네가 돕는다는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평화가 항상 너와 함께 있기를!”
배가 기슭을 떠나고 모든 것이 끝난다.
* 역주: Polyp. 히드라 –hydra- 충류의 한 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