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어제 저녁에 예수께서 불러 주신 것과 내가 보고 예수님이 말씀을 하시지 않아도 이해한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내가 부수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회식자들의 회화 중에서 내가 알아들은 회화, 즉 특히 예수를 상대로 하던 회화는 그때의 사건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로마인들과 율법에 대한 그들의 반대, 그리고 새로운 학파의 스승으로서와 예수의 사명 따위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친절한 외양 밑에는 예수를 당황하게 하려고 내놓은 교활하고 걸려들기 쉬운 질문들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께서 어떤 지적에도 몇 마디 안 되는 말로 올바르고 결정적인 대답을 하셨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어떤 학파나 독특한 당파의 새로운 선생이 되셨느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그저 이렇게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학파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거룩한 율법으로 그분을 따르고 하느님께 대해 마음을 써서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러시면서 요한을 사랑을 가지고 보셨고, 요한을 통하여 곧은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을 보셨다) 율법이 주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서 반포하신 날 그랬던 것과 같이 그 본질이 완전히 새로워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빛으로 도로 데려옵니다.”
  팔레스티나의 최고 지배가 되었던 카이사르의 남용을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는 다른 질문에 대하여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카이사르가 지금과 같이 된 것은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일을 기억하십시오. 이사야는 하느님의 영감으로 앗수르를 하느님의 분노의 ‘몽둥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하느님을 너무 멀리 떠나고 옷과 정신을 위장하는 하느님의 백성을 벌하는 회초리라고? 그리고 벌하기 위하여 그를 쓰신 다음, 그가 교만하고 사납게 되어 그의 직무를 남용하겠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를 부수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준 두 가지 대답이었다.        
  그런 다음 오늘 저녁 내 예수님은 미소 지으시면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다니엘처럼 불러야 할 것이다. 너는 갈망하는 사람이고, 네가 하느님을 몹시 갈망하기 때문에 내게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그래서 내 천사를 시켜서 다니엘에게 한 말을 계속 네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이해하려고 마음을 쓰고 하느님 앞에서 몹시 슬퍼하는 데 마음을 쓴 첫날부터 네 기도는 들어졌고, 네 기도 때문에 내가 왔으니 두려워 말아라’ 하고 그러나 여기서는 천사가 말하지 않고, 나 예수가 말한다.        

  마리아야, 어떤 사람이 ‘이해하려고 마음을 쓰면’ 나는 언제든지 온다. 나는 무정하고 준엄한 하느님이 아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비이고, 내게로 향하는 사람에게 생각보다도 더 빨리 간다.
  죄에 깊숙히 빠져 있던 불쌍한 막달라 마리아를 위해서도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 하느님의 빛과 자기의 암흑의 처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의 안에 생겼다는 것을 내가 느끼자마자 내 정신으로 빨리 갔다. 마리아를 위하여 나는 빛이 되었다.
  그날 나는 많은 사람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마리아 한 사람을 위해서 말했다. 나는 그를 예속시키고 있던 육체에 대해 반항한 영혼의 정열에 자극되어서 가까이 왔던 마리아만을 보고 있었다. 비탄에 잠긴 가엾은 얼굴로,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던 기쁨의 거짓 외양 속에 그의 커다란 내적 고민을 감추고 있던 억지 웃음을 띠면서 오는 마리아만을 보고 있었다. 비유의 길잃은 양보다도 한층 더 가시덤불에 둘러싸여 있던 마리아, 밑바닥의 물을 가져오는 더 깊은 파도 모양으로 표면에 떠오른 그의 생활에 대한 혐오에 빠져 허덕이던 마리아만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모욕하지 않고, 도망하거나 자신을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거나 또는 오도록 강요하지 않기 위해 잘 알려진 죄녀인 그에게 적합한 주제는 다루지 않았다. 나는 마리아를 조용히 놓아두었다. 나는 내 말과 내 눈길이 그의 안으로 내려가 발효해서 일시적이었던 그 충동이 성녀로서의 그의 영광스러운 장래가 되게 했다. 나는 내 가장 기분 좋은 비유 중의 하나로 말했다. 바로 마리아를 위해 퍼져 나가는 빛과 친절의 계시이었다. 그리고 내 말이 바리사이파 사람의 교만으로 죽을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영광으로 발효할 수가 없던 교만한 부잣집에 그날 저녁 발을 들여놓으면서, 나는 마리아가 죄를 지었던 방에서, 그의 눈물의 빛으로 그의 장래가 결정되었던 방에서 그렇게도 많이 운 다음 그리로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란으로 타는 듯한 남자들은 마리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들의 육체를 떨었고, 그들의 생각에 의심이 스며드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깨끗한’ 두 사람, 즉 요한과 나를 빼놓고는 모두 마리아를 원했다. 그들은 모두 마리아가 진짜 마귀가 들려서 예기치 않은 일을 하게 되는 있을 법한 변덕의 충동을 받아서 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탄은 이미 졌었다. 그래서 마리아가 그들 쪽으로 몸을 돌리지 않는 것을 보고 샘을 내면서 나 때문에 온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이 다만 살과 피로 된 사람이기만 할 때에는 가장 깨끗한 것까지도 항상 더럽힌다. 깨끗한 사람들만이 올바르게 본다. 그들 안에는 생각을 흐리게 하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야,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에 겁을 집어먹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이해하시는데, 하늘에 가는 데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은 천국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의 몫인 영광을 털끝만큼도 더해주지 못한다. 이것을 항상 기억하여라. 가엾은 막달라의 마리아는 그가 착한 행동을 할 때에도 항상 잘못된 판단을 받았다. 그가 나쁜 행동을 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방탕아들에게 주는 음란의 몫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임의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잘못된 판단을 받았고, 베다니아의 그의 집에서 비난을 받고 몹시 나무람을 당했다.
  그러나 훌륭한 말을 한 요한은 이 마지막 비판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준다. ‘유다는… 그가 도둑이었기 때문에’ 라고.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바리사이파 사람과 그의 친구들은 그들이 음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라고 자 알겠느냐? 관능성에 대한 탐욕과 돈에 대한 탐욕은 착한 행동을 비난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착한 사람들은 비판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들은 이해한다.
  그러나 되풀이해 말하지만, 세상의 비판은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심판이다.        

  그리고 내일 가르칠 것을 네게 준비시키겠다. 다니엘서 12장에서 빛나는 내천사가 한 말을 표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평화가 너와 함께 있으니, 용맹하게 되고 굳세게 되어라.’ 그리고 너는 항상 ‘주님, 당신이 내게 새로운 힘을 주셨으니 말씀하십시오’ 하고 대답할 줄을 알아라.        

  그런 다음에 예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내 가르침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보면, 너는 ‘알 수 있는 것’ 전부라고 생각하는 선생을 몹시 좋아하는 부지런한 초등학생같이 생각한다. 한편 너 스스로 어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어떤 의견들을 말할 때에는(천상을 보는 동산에 말이다) 너는 꼭 아버지가 귀여운 손을 붙잡고 아이가 더 영리해지기 위해 보았으면 하고 아버지가 바라는 것 앞으로 데리고 가는 착한 어린이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동시에 간섭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아이에게 무슨 새로운 것을 발견해서 아이가 생각이라는 면으로 스스로 커 간다고 느끼는 기쁨을 주기 위해서이다.
  네가 이렇게 하기 위하여는 항상 인간적인 걱정에서 자유롭게 벗어나야 한다. 점점 더 자유롭게 되도록. 너는 관조의 오솔길로 마음놓고 전진하기 위하여 점점 더 자신을 가져야 하고, 점점 더 안심하고, 네 손을 붙잡고 가는 나를 점점 더 신뢰해야 한다. 아버지는 그런 눈치는 보이지 않지만, 그에게 생각나게 하는 여러 가지 수단을 써서 아이에게 보이고 싶은 이러저러한 것을 아이가 보게 되도록 하고야 만다. 오! 나는 내 어린 것들에게 대해서 아버지들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이고, 선생들 중에서 가장 참을성 있는 선생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온순하고 주의깊은 어린 것의 손을 잡을 수가 있게 되면 나는 행복하다. 선생이고 아버지인 것이 행복하단 말이다. 내 피조물인 인간들이 신뢰를 가지고 그들의 손을 내 손에 쥐어 주면서 내 인도를 받고 내 가르침을 받으며 ‘아버지를 무엇보다도, 그리고 내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해요!’ 하고 말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이와 같이 남김없이 완전히 ‘내 것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계시와 관조의 보물 창고를 열어주고 또 나를 남김없이 준다.
  마리아야, 그렇기 때문에 잠을 깨서 하느님을 희미하게나마 보도록 이끌어질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내 천주성을 여러 가지 표시로 알게 하라고 내가 너희를 뽑은 만큼 네가 보는 것을 아주 세심하게 그대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라. 하찮은 것이라도 가치가 있는 것이고, 또 그것은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것을 적당히 넘어가면 안 된다. 그것은 불성실하고 이기주의적인 일일 것이다. 너는 모든 사람이 그리로 올 수 있도록 물이 쏟아져 들어가는 하느님의 물받이 못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받아쓰기로 말하면 네가 더할 수 없이 충실하게 되었다. 관조에 있어서도 네가 매우 주의깊게 관찰한다. 그러나 급히 쓰려고 서두르는 까닭에, 그리고 네 개인적인 건강상태와 네가 처해 있는 환경 때문에 세밀한 것을 빠뜨리는 일이 있다. 그런 일은 피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여백에 써넣어라, 그러나 쓰기는 다 써야 한다. 이것은 비난이 아니라, 네 선생의 친절한 조언이다.
  며칠 전에 너는 이런 말을 내게 했다. ‘사람들이 제 중개로 주님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제 모든 피로와 제 온 생활을 정당화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것으로 저는 보상을 넉넉히 받는 것이 됩니다. 비록 주님 숨어 있는 작은 오랑캐꽃의 중개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 한 사람만 친다 해도 주님의 숨은 오랑캐꽃은 행복할 것입니다’ 하고. 네가 주의를 더 기울이고 더 정확하면 할수록 내게로 오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아질 것이고, 현재의 네 지복과 장래의 영원한 네 지복이 더 클 것이다.
  잘 있어라. 네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