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미 여러번 말했듯이, 세상의 평화는 위험한 상태에 처해있다. 다시, 서로 형제가 되어라. 더 기도하고 단식하여라. 구원을 위해서 말이다.” (1983년 9월. VB 1, 15)

“기도하고, 단식하여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행하시도록 해드려라.”

“너희가 정말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단순하고 겸손한 삶을 살고, 많이 기도하며, 문제 안에 빠져들지 말아라. 하느님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맡겨 드려라.” (message also in M 30).

“평화는 너희의 기도에 달린 것이다.”

“흔히, 큰 목소리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을 멀리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겐 하느님을 위한 자리가 없다. 큰 목소리로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반드시 마음 안의 평화로부터 나오는 것이라야 한다.
사람들이 감정에만 향한다면, 기쁨이나 노래도 모임의 진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T. 블라시치, 1984년 5월 24일; VB 133).

“내가 기도하라, 기도하라라고 말할 때, 양적인 증가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를 하느님께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끊임없는 갈망으로 이르게 하는 것이다.” (T. 블라시치, VB 1, 39).

“가장 중요한 것은 믿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께로 자기 자신을 여는 것이다. 기도하고 단식하여라.”  (T. 블라시치, 1984년 6월 1일, VB 1, 41).

토미슬라브 블라시치 신부님의 두가지 질문에 대한 성모님의 응답: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새 쇄신운동을 정화시키려고 오십니까?’
“정확하게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지치지도 않으시고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까? 그분의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께는 하느님께 대한, 그리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크나큰 열망이 있으셨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복음과의 만남이다.”

‘동양의 명상(묵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 초월명상):
“사람이 만든 것을 말하는데 왜 ‘명상(묵상)’이라고 하느냐? 참된 명상은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너희가 기쁨과 내적 평화를 발견할 때, 너희는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한 분이신 중개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계심을 알아야 한다.” (VB 1, 45).

“너희의 하루하루는 너희가 기도하느냐, 기도하지 않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VB 1 51).

토미슬라브 블라시치 신부님의 요청에 따른 선견자들의 질문에 대한 응답: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믿음 안에서 강해지고, 너희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믿음을 보호하여라.”
‘발현에 대하여 조언을 해주십시오’
“성교회가 너희에게 말하는 대로 하여라.”
‘사제들에게 표징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들이 복음서를 받아들이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T. 블라시치, 1984년 6월 20일. VB 1, 51).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 말은 충분하지 못하다. 마음 깊이 가라.” (VB 1, 52).

지난 가을에 (1983년) 성모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사람들이, 그리고 가정에서, 아침과 저녁에 최소한 30분 기도한다면 나는 행복할 것 같다.”
이 말씀에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고 블라시치 신부님이 기록하였다.

그러나 1984년 올 봄에는 성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본당과 모든 교구에서 너희가 하루에 네 시간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가 일만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일만으로는 살 수 없고, 기도로써 사는 것이다.”
나는 이 말씀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렇게 하라고 하면 사람들이 도망갈 것입니다’. 이에 성모님이 대답하셨다:
“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냐. 그것은 하루의 6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T. 블라시치, 1984년 7월 31일. VB 1, 55).

“너희는, 전쟁에 대해, 악에 대해, 징벌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라. 죄악에 대해 생각하면, 너희는 악과 만나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너희의 역할은 하느님의 평화를 받아들이고, 삶으로 드러내며, 세상에 퍼뜨리는 것이다.” (VB 1, 61).

옐레나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에 대해 생각함에 있어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전쟁과 악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태도는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구원에 대한 희망이다.” (ibid).
“너희의 책임은 하느님의 평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살며, 그것을 퍼뜨리는 것이다. 말로써가 아니라 너희의 삶을 통해서 말이다.” (1984년 8월 2일과 같은 대화. T. 블라시치. VB 1, 63)

옐레나에게:
“미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오직 구원의 희망 뿐이다. 전쟁과 악과 징벌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이는 잘 살아가지 못한다.”
“너희가 악과 징벌, 전쟁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것들을 만나게 될 길을 걷는 것이다. 너희의 책무는 하느님의 평화를 받아들이는 것과 삶으로 드러내고 퍼뜨리는 것이다.” (T. 블라시치. 1984년 8월 12일 VB 1, 81)

“너희가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쁨의 날이 나에게는 슬픔의 날이 될 것이다.” (S. 바베리치. 1985년 12월 8일. VB 1,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