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글을 시작하면서

우선 필자에게 주어진 제목이 다소 이상하지만 요즈음 우리 교회의 어떤 공동체에 다소 문제가 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 영성신학적인 측면에서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성령의 해를 맞이하여 전국적으로 성령 세미나가 많이 열리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나 어떤 경우에는 적절한 지도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기도회나 세미나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도 중에 이상한 예감이나 환상이 보이는 경우가 있어 그런 것들을 어느 만큼 믿어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적절한 지도와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이상한 현상’이란 기도나 영성수련을 통하여 일어나는 예감이나 체험 등을 말하는데, 그런 현상들이 사적계시인지 아닌지는 엄격한 식별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주로 사적계시와 그 진실성의 여부 그리고 사목적인 대처 방안에 대하여 약술하고자 한다.

II. 계시

계시(啓示, revelatio)는 일반적으로 신비스러운 것이거나 감추어져 있는 것 또는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신비를 하느님께서 먼저 알려주시는 것을 말한다. 성서적으로 보아 신비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시간 안에 들어오셔서 당신 자신을 점차적으로 드러내셨다. 단적으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신구약성서를 통하여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신 것이다. 신학자들은 창조된 피조물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계시를 자연적 계시와 피조물의 인식 가능성을 초월하는 초자연적 계시로 구분한다. 초자연적 계시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일 때 이를 ‘공적계시’(revelatio publica)라 하며,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리스도께서 공적계시의 절정이시며 사도 요한의 죽음으로 공적계시가 끝났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확실한 가르침이다.1) 그리고 그 후에 어떤 한 사람이나 개인에게 주어지는 계시가 모두 사적계시(revelatio privata)인데,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적계시’란 교회의 일반적 선익이나 어떤 개인의 유익을 위하여 숨은 진리나 하느님께 관한 비밀이 초자연적으로 드러날 때 숨겨진 진리나 비밀을 덮고 있던 베일이 말씀이나 예언으로써 걷히게 되어 알려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천상적 모든 계시는 예언의 은사를 전제하고 예언의 해석은 영의 분별을 요구하는 것이다.

III. 사적계시

영성신학자들은 사적계시를 일반적으로 ‘절대적 계시’(absolute revelation)와 ‘조건부 계시’(conditioned revelation) 또는 ‘위협적 계시’(denunciatory revelation)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계시가 진리나 신비의 단순한 진술인지 또는 조건지어진 진술인지 또는 징벌로 위협하는 것인지에 따라 구분된다. 예를 들면 니느웨 성의 멸망에 대하여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요나 3,4) 하고 외친 예언자 요나의 예언은 위협적이거나 조건부 계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계시가 미래의 일들과 연관성이 있다면 그 예언은 시공을 초월한 추상적인 것이라도 일반적으로 예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적계시는 개인이나 특정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교회 공동체와 전체 교회를 위하여 주어질 때도 있다. 여기에 관해서는 트리엔트공의회가 의화(justificatio)에 관한 교령에서 ‘특별한 계시’(revelatio specialis)와 ‘구체적(특수) 계시’(revelatio particularis)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더라도 그 중요성이 입증된다고 하겠다.2)

1) 역사 안에서 드러난 사적계시
성서와 사적계시들은 서로 배타적일 수 없다. 계시들은 성서적 맥락 안에서 드러난 내용들을 부정적인 방법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계시의 대상과 목적 그리고 그것을 받는 사람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따라서 계시의 내용이 구체적이면 구체적인 인물들에 한해 적용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면 그 확실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1) 사도교회
이 시대의 사적계시들은 주로 사도들에게 주어졌다. 사도 베드로는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하여 위에서 내려온 많은 선물을 받아 활동하였다(사도 2,16-21 참조). 특히 백인대장 고르넬리오에게 행한 베드로의 활동은 특수 계시에 의한 것이었다(사도 10,3-8 참조).
사도 바오로도 예외는 아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만난 그는(사도 9,3-9 참조) 지속적으로 특수한 계시를 받아 전도활동을 해나갔으며(사도 16,9;`18,9;`20,23;`27,23-24 참조) 개개인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은사가 다양함을 고린토인들에게 역설하였다(1고린 12,1-6 참조).
사도 요한 역시 특수한 은사를 받아 여러 교회에 필요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다(묵시 1,4 참조).

(2) 초대교회
이 시대의 특징적인 문헌은 「디다케」(Didache)와 「헤르마스의 목자」(Pastor Hermsae)이다. 「디다케」는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으로서 100년경 시리아지방 어느 시골 교회의 그리스도인이 편집한 교회 규범서이다. 그 책에는 공동체 안에서 예언자들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라는 가르침이 있으나 예언자를 식별하는 기준이 나와있다. “영으로 말한다고 해서 다 예언자가 아니고 오직 주님의 생활태도를 지녀야만 예언자입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모든 예언자가 만일 가르치는 것들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3)
「헤르마스의 목자」에 있는 묵시록 형태의 다양한 계시들은 주로 관습들을 고치고 회개하도록 촉구한다.
그러나 157년 몬타니즘(Montanism)이 일어나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켰다. 이 파의 창시자 몬타누스(Montanus)는 요한복음 14장에 약속된 위로자이신 성령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면서 자신이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이 마지막 예언자이며 곧 종말이 다가온다고 설파하여 사람들을 위협하였고 지나친 엄격주의를 주장하여 재혼 금지와 엄격한 금식과 순교의 정신으로 세상에서 도피할 것을 가르쳐 큰 물의를 일으켰다. 유명한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가 이 파에 가담하여 본교회를 비판한 것은 그 당시 큰 사건이었다.
초대교회의 유명한 사목자와 학자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순교자로 258년에 생을 마감한 성 치프리아노 주교도 특수한 계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목적 기초를 사적계시에 따라 확정지었으며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4)
성 아우구스티노 역시 특수 계시에 따라 인생관을 완전히 전환시킨 인물이다. 그가 고백록에서 말한 ‘집어 읽어라.’(tolle et lege)5)라는 문구를 단순히 문학적인 표현으로 볼 것이 아니라 특수 계시로 본다면 그것은 그의 생애를 완전히 뒤바뀌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꿈까지도 하느님의 자비로운 섭리가 인간을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하였으며6) 성녀 페르페투아(Perpetua)의 환시들과7) 성 치프리아노의 사적계시들을 중시하였다.8) 그러나 특수 계시의 진실 여부에 대해서는 식별을 강조하였다.9)

(3) 중세기
이 시대에는 성령의 왕국이나 영원한 복음이 온 인류에 미친다고 주장한 피오레의 요아킴 아바스(Abbas Joachim de Fiore)가 주창한 묵시록의 운동이 일어나 교회 안에 물의를 일으켰으나 그 당시 위대한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은 주지 못했다. 그의 사상은 삼위일체와 역사관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삼위일체성을 진실하고 고유하나 집단적이고 유사적(unitas vera et propria, sed collectiva et similitudinaria)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삼위가 아니라 삼신(三神, tritheistic)으로 판명되어 1215년 제4차 라테라노공의회에서 단죄를 받았다. 그의 역사관도 이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간단히 소개하면 이러하다. 교부시대는 두려움과 노예적 순종의 시대이자 결혼한 사람들과 노인들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서 신앙과 자녀다운 순종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성자의 시대로 넘어왔고 이어서 사랑과 자유의 시대이자 수도자들과 어린이들의 시대인 성령의 시대로 넘어왔다. 두 번째 시대의 볼 수 있는 교회는 세 번째 시대의 영적인 교회로 흡수될 것이다. 성직자들과 교계제도는 영적인 서열 안에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활동생활은 관상생활에 흡수되어야 한다. 유다인들은 회개할 것이고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도 회개할 것이다. 전쟁은 끝나고 보편적인 사랑이 통치하게 되며 진복팔단의 신학이 세상 종말까지 지속될 것인데, 그것은 묵시록의 영원한 복음(묵시 14,6)이 될 것이다.
같은 시대에 아욱스부르그의 다윗(David de Augsburg) 수사도 이상한 주장을 하였으나 크게 물의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가 신학대전에서 예언의 문제를 다루어 바로잡아 놓았다.10)
이 시대에 특징적인 사항은 거룩한 여성들이 사적계시를 통하여 덕행에 뛰어났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힐데가르드(Hildegarde de Bingen), 제르트루다(Gertrude d’Helfta), 안젤라(Angela de Foligno), 가타리나(Catharina de Sienna), 가타리나(Catharina de Genes,, 막달레나(Magdalena de Pazzi) 등이 있다. 성녀 비르지타(Brigitta de Suede)에게 내린 특수 계시들은 그 시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대의 위대한 학자이자 파리대학교 총장이었던 제르송(Jean Gerson)은 영의 식별에 관한 책인 De probatione spirituum을 저술하여 사적계시에 관해 지혜롭게 대처하게 하였다.

(4) 오직 성서만으로
마틴 루터는 ‘오직 성서만으로’(Sola Scriptura) 라는 주장을 하여 성서가 기록된 이후의 모든 사적계시를 근본적으로 부인하였다.
지금 우리는 성서를 가지고 있다. 사도들이 기록한 외에 우리에게 계시할 다른 것은 전혀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새로운 계시가 필요없는 것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을 알려주실 분은 오직 성령이시다.11)

(5) 십자가의 성 요한
성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통하여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으므로 더 이상 하느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단호한 주장을 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당신 아드님, 즉 둘이 아닌 오직 하나인 당신 말씀을 주심으로써 일체를 우리에게 한꺼번에 그리고 단 한번에 오직 이 말씀으로 말씀하셨으니 다시 더 말할 것을 지니지 않으신 까닭이다. 12)
더구나 그는 색다른 계시들을 좋아하거나 찾는 것을 비판하였으며 초자연적인 것을 원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13)

(6) 예수의 성녀 데레사
가르멜회 수도자로서 십자가의 성 요한과 비슷한 삶을 산 성녀는 그와는 다른 의견이었다. 성녀는 특수 계시를 체험하였으며 그 체험들은 신비신학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14) 성녀는 자신의 걸작인 「영혼의 성」(Castel Interior)에서 체험을 바탕으로 기도의 단계를 아홉으로 제시하였다. 염경기도에서 단순함의 기도까지는 수덕적 단계의 기도이며 주부적 관상에서 변형일치의 기도까지는 신비적 단계의 기도로서 각 단계마다 다른 체험을 하게 되었음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15)

(7) 근대 이후의 성모 마리아 발현들
이 시대에는 위대한 선견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놀라운 발현을 체험하여 사적계시를 통한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였다. 예수 성심 신심을 전파한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uerite-Marie Alacoque)는 1673-1675년경 여러 차례 불타는 예수님의 심장을 보았으며 인류를 사랑하시는 그분 사랑의 비밀과 사람들이 냉담하고 범죄하여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전하였다. 그리고 19-20세기에는 특별히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오는 계시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1830년 가타리나 라부레(Catharina Laboure?, 1846년 라 살레트(La Salette)의 어린 목동들, 1858년 루르드의 베르나데타 수비루(Bernadette Soubiroux), 1917년 파티마의 루치아에게 내린 사적계시들과 1932년 보랭(Beauraing)과 1933년 바뉘(Banneux) 사건 등이다.

IV. 사적계시의 식별 기준

사적계시는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통교(通交, communicatio)라 할 수 있다. 계시가 사실이라면 하느님의 현존이 확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계시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전에 그것의 확실성을 식별하는 원칙과 규범이 있어야 한다. 대개는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식별 능력이 있는 영성 지도신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식별 기준은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과 그 대상 그리고 그것의 결과이다. 여기서는 식별 기준에 관하여 본질적인 것만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기준은 교리(敎理, doctrina)에 맞는지 식별해야 한다. 계시의 내용이 교회의 통상적인 가르침과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은 어떤 것이나 교리에 위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준은 진실성이다. 계시의 내용이 진실한지 그리고 윤리적으로 올바른지 식별해야 한다. 허무 맹랑한 교설을 퍼뜨리거나 비윤리적인 가르침이나 생활을 설파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자격을 알아보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격이란 그 사람의 심리적인 상태와 병리학적인 경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과대망상증이 있는지 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비정상적인 데가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네 번째는 사적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삶이 건전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서는 삶의 진실성과 성실성을 우선적으로 조사해야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 진실을 과장하는 습관이 있는지를 특별히 조사해야 한다. 평소에 어떤 초자연적인 것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해서 말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도 의심스럽게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사람의 심리적이며 육체적인 상태도 엄밀한 조사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극기를 한 후에 받은 계시는 일단 의심해야 하며, 병고나 우울증 또는 심한 피로 중에 받은 계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상태에서 받은 것이라면 계시 자체를 조사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세 가지 중요한 덕행의 여부를 살펴야 한다. 세 가지 덕행이란 진실한 겸손, 순종, 고통과 반대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를 말한다. 이 덕행들은 그 자체로 사적계시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마지막 기준은 열매이다.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너희는 그 행위를 보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마태 7,15-20)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참된 기준이 된다. 이는 사적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결과를 말하는 것인데, 그들의 삶에서 영적인 기쁨, 평화, 사랑, 성덕의 열매가 드러난다면 대개는 하느님에게서 온 것으로 판단된다.16)
영성신학자들은 이상의 식별 기준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첨부하기도 한다. ①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가르침에 어긋나거나 신학 학파 간에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계시는 대단히 의심스러운 것으로 다뤄진다. ② 만일 계시 중 일부가 오류일 경우 전체를 배척해서는 안된다. ③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해서 그 계시가 반드시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원인이나 그것을 받은 사람의 탁월한 자연적 지식의 결과나 예지에서 오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④ 하느님에게서 오는 계시는 간결 명료하고 정확하기 때문에 길게 늘어놓거나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일단 배척해야 한다.17)

V. 사적계시의 효과

이상의 식별 기준에 따라 사적계시로 인정될 경우 그 효과는 대단히 크다. 우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적계시를 인정하게 하고 하느님과 성인들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게 할 뿐 아니라 신앙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며 교회의 영성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된다. 종교적 존재인 인간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데 어떤 것이 확실한 사적계시로 판명될 경우 교회의 영성생활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대표적인 예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를 통해 전파된 예수 성심 신심과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의 발현으로 확인된 성모신심이다.

VI. 시적계시의 수용과 문제점

사도 바오로는 예외적인 선물들을 언급하면서도 그 선물들이 모두 공동이익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배려하였다(1고린 12,7-11.28-30; 로마 12,6-8; 에페 4,11-13 참조). 그 선물들 중에는 예언과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1고린 12,10; 로마 12,6; 에페 4,11-13 참조)이 있다. 그 선물들을 받은 이들은 계시받은 설교가들이었는데 그들은 교회 안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은 듯하다. 사도시대가 끝난 후 그런 예언자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상당한 주의를 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8)
2세기경 성령의 인도와 엄격주의를 강조한 몬타니스타(Montanista) 파가 일어나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여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이 파는 약 300여 년 동안 지속되다가 사라지고 본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밖에도 사적계시를 지나치게 주장하여 교회의 지탄을 받은 16-17세기 스페인의 알룸브라도스(Alumbrados)와 18세기 바바리아의 조명자들(Illuminatores)들이 있다. 그들은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이 밖에도 여러 곳에서 사적계시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종교적 존재인 인간은 초월적인 것을 지향하는데, 사회가 혼란스럽고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심할 때 예언이나 신비 등에 기울어지는 경향이 많다. 비단 교회 안에서 문제시되는 사적계시뿐 아니라 점, 굿, 철학관 등이 성행하는 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하나의 원칙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제시한 식별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본다. 영성신학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태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하느님께서 신비스러운 분이시므로 그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신비스럽게 드러난다. 신비적인 현상은 세상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신비를 신비로 볼 수 있는 영안(靈眼)이며 어떤 현상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악마에게서 오는 것인지 식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식별도 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하거나 노이로제 현상만으로 돌리는 것은 신비 현상을 이해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언급에서 라칭거 추기경은 현대의 이성주의와 실증주의에 얼룩진 문화는 불완전하여 신비를 신비로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19) 두 번째는 분명한 식별도 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현상을 무조건 하느님이나 성인들 또는 천사에게서 온 것이라고 믿고 수용하는 태도이다. 이는 위험하다. 다소 열심하다는 신자들은 성령기도나 성모신심 등으로 나아가기 쉬운데 여러 곳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상한 현상들을 충분히 식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 식별방법은 위에서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문제는 거짓 겸손, 경솔, 속임수, 헌금 강요 등으로 사람들을 끄는 데 있다.
사적계시에 관한 하나의 예로서 벨기에의 바뉘(Banneux) 성모님의 발현이 15년이 지난 뒤에야 공인을 받은 것은 좋은 본보기라고 하겠다. 또한 교회 안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들과 기도 모임 등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하며 분별력이 뛰어난 사람들과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검증을 받아야 하며 공인될 때까지 인내로이 기다려야 한다. 세계적으로 성모님께서 여러 곳에서 발현하신다는 보고가 있어도 교회는 인내를 다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무조건 그런 것들을 좋아하거나 그런 것에 끌려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해서, 신앙생활은 언제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가장 큰 성사이며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다른 신심을 키워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이상한 현상이나 비정상적인 것을 교회의 전통적인 신심보다 우선적인 것으로 여기고 선호하는 것은 일종의 유혹이므로 이런 것들을 지양해 나가는 것이 정상적이다.

VII. 맺는 말

사적계시를 간단하게 다루면서 그 문제점을 조금 언급하였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필요한 가르침은 모두 성경과 성전(Traditio)에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비록 사적계시가 교회의 영성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교회 쇄신에 이바지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그런 것들을 좋아하거나 분명히 식별하지도 않고 접근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기도모임 등에서 들려오는 예언이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충동이나 예감을 그대로 믿고 행하거나 남을 설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므로 분별력이 뛰어난 영성 지도자의 판단과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지도에 따라야 한다. 더구나 교회의 권위가 명백하고도 유권적인 판단을 내렸는데도 계속해서 이상한 현상에 접근하는 태도는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며 영성생활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영성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상적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일선 사목자들은 이상한 현상에 집착하거나 사로잡혀 있는 신자들을 설득하여 올바른 신심으로 돌아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1) 「교회헌장」 25항 참조.
2) Dictionnaire de Spiritualite? Tom.XIII, re쳖e쳊ations prive첿s, 482면 참조.
3) 「디다케」, 정양모 옮김, 분도출판사, 1993,11,7-12.
4) Dictionnaire de Spiritualite? Tom.XIII, re쳖e쳊ations prive첿s, 482면.
5) 「고백록」 8,12.
6) 서간집 59,`PL 33, 700.
7) 강론집 280,1,`PL 38,1281.
8) 강론집 309,2,`PL 38,1411.
9) Dictionnaire de Spiritualite? Tom.XIII, re쳖e쳊ations prive첿s, 484면.
10) 「신학대전」, II-II, 171-178면.
11) Dictionnaire de Spiritualite? Tom.XIII, re쳖e쳊ations prive첿s, 484면.
12) 「가르멜의 산길」 2권, 22,3.
13) 같은 책 2권, 27,6.
14) 「완덕의 길」 25장 참조.
15) 전달수, 「신비 체험과 현상」, 가톨릭출판사, 1997, 27-36면.
16) Dictionnaire de Spiritualite? Tom.XIII, re쳖e쳊ations prive첿s, 486-487면.
17) 전달수, 같은 책, 52면.
18) 「디다케」 15,11; 「헤르마스의 목자」 11,7.
19) 라칭거, 「그래도 로마는 중요하다」, 정종휴 옮김, 바오로딸, 1994, 124면 참조.

– “사목” 1998년 4월, 231호
– 전달수 신부님 / 안동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