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부터 사랑과 책임 연구소 ‘이광호(베네딕토)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이광호 소장은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다양한 미디어에서 나오는 정보를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검토할 수 있는 능력)에 기초해서 생명, 책임, 인격, 절제, 정결, 혼인, 가정, 성교육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연재는 다양한 매체에서 쏟아내는 성(性)과 생명 문제를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하며 가톨릭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분별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 피임약 광고는 누구를 노릴까?“남자 친구가 생긴 이후 연애를 하면서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귄 후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부터는 성관계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실랑이를 했습니다. 1년 넘게 이어진 이러한 신경전에 저는 서서히 그러나 완전히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이건 연애가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치러야 하는 공격과 방어의 전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집에서 우연히 TV에서 흘러나오는 피임약 광고를 보았습니다. 그 광고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멘트는 제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습니다.”

“스무 살의 사랑은 걱정이 너무 많다. 첫 데이트, 첫 키스, 그리고…. ○○○. 이제 사랑의 걱정이 줄어든다. 에스트로겐을 1/3 줄인 내 몸에 부드러운 나의 첫번째 피임약. ○○○∼.”

“○○○보다 내 몸에 순하고 부드러운 건? 솜사탕? ○○○VS 솜사탕, 카푸치노? ○○○ VS 카푸치노, 첫키스 ○○○ VS 첫키스 그래도 내겐 ○○○뿐이야. 피임약을 처음 시작하는 나에겐 부드러운 ○○○.”

“스무살, 사랑에 빠지다. 짜릿하고 부드럽게. 그녀는 안다. 내 몸에 부드러운 피임약, ○○○. 에스트로겐을 1/3 줄인 내 몸에 부드러운 나의 첫번째 피임약. ○○○”

▶ 공중파 TV는 물론 영화관 등 모든 미디어에 살포된 피임약 광고다. 이 광고는 ‘스무 살’을 무척 강조한다. 스무 살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10대 청소년들이다. 이 피임약 광고는 전형적인 청소년 타깃 광고이며, ‘연애하면 성관계는 당연히 해야 한다’를 전제로 깔고 있다.

제약회사는 왜 이런 광고 마케팅을 하는 것일까? 제약회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이 더 이른 나이에 더 많은 파트너와 더 자주 성관계를 하면, 제약회사는 좋을까 나쁠까? 당연히 좋다. 청소년들이 성관계를 더 일찍 더 많이 더 많은 파트너와 할수록 피임약을 판매할 수 있는 시장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약회사와 콘돔회사로 대표되는 피임산업은 청소년을 성관계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광고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부도덕한 행위이지만, 우리나라에는 피임산업의 영업 활동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키워주는 식별력 교육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광고 전략이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먹혀 들어가고 있다.

“그 광고는 마치 제 마음을 꿰뚫어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연이어 나오는 장면은 핑크빛 옷을 입은 젊은 남녀의 연애 모습인데, 그 화면을 보니 나도 남자친구와 저렇게 낭만적이고 행복한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광고에 몰입되어 갔고, 주변에 가족들이 다 앉아 있었기 때문에 무관심한 척하면서 눈은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제 귀는 온 힘을 다해 광고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지만, ‘호르몬을 1/3로 줄인 내 몸에 맞는 첫 피임약’이라는 소리는 제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습니다.”

▶ 전문가가 조준 사격하는데 이 광고문구가 귀에 안 들어와 박힐 여성은 없다. 광고가 속삭이는 대로 피임약을 먹고 성관계를 하면, 정말로 이 광고가 보여 주는 대로 낭만과 행복으로 가득찬 삶을 살 수 있을까? 광고 속 이미지와 현실은 극명하게 다르다.

피임약은 하루에 한 알씩 정해져 있는 시간에 휴대폰 알람을 맞춰놓고 먹어야만 피임 효과가 99% 나타난다고 제약회사가 주장하는 약이다. 매일 꼬박꼬박 제 시간에 약을 챙겨먹기가 쉬울까? 불가능하다. 보약도 그런 정성으로 먹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99%의 피임 효과는 거짓 환상일 뿐이다. 또한 여성의 몸이 입력을 주는 대로 출력을 내는 기계 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실험실 조건에서 측정한 99% 피임 효과는 사실상 의미 없는 숫자다.

호르몬 제제(製劑)인 피임약은 여성의 호르몬 체계를 심각하게 교란시킨다. 피임약 복용 여성은 불안, 초조, 우울, 짜증, 근심, 걱정, 강박을 동시에 체험하며, 상당히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살아가게 된다. 당연히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내면서 남친과 싸우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또한 피임약을 복용하더라도 ‘임신일까? 아닐까?’의 고민은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에 그 다음 생리를 할 때까지 여성은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장기 복용을 하는 경우에는 20대 젊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피부 노화가 일찍 진행돼 잔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탄력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임약을 먹으면서 남친과 행복한 연애를 이어가는 여성은 없다. 이것이 명백한 사실인데도 피임산업은 행복 자체의 삶을 사는, 피부도 아주 고운 여성의 이미지만을 보여 준다. 거대 기업이 침투력 강한 매스미디어를 악용해 이 실체 없는 허상을 사실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의 이런 현상을 ‘시뮬라크르(simulacre, 원본이 없는 복제물로서의 가짜 이미지)’라고 했다. 가짜인데 진짜처럼 생생한 이미지로 제시되기 때문에 식별력을 갖추지 못한 젊은이들은 이 속임수에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이 약을 먹으면 내 몸에도 좋고, 남친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아서 좋고, 저 광고가 보여 주는 모습처럼 낭만적인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 이 여학생이 실제로 약을 먹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시뮬라시옹(simulation, 실제 현실이 거짓을 따라가는 현상)’이다. 태초에 시각적 환상으로 여자를 속여서 선악과를 먹였던 그 뱀이 이 시대에는 광고라는 환상으로 여자를 속여서 피임약을 먹이는 것이다. 악의 본질은 사람을 속여서 죽음으로 끌고 가는 것인데, 피임산업이 광고를 통해 확산·심화시키는 피임 마인드(콘돔, 피임약으로 임신을 막을 수 있으니 성관계를 자유롭게 해라)가 수많은 젊은이들을 속여서 화려하게 포장된 죽음의 길에 그들을 도열시키는 것이다.

피임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기 때문에 피임 마인드에서 나오는 성행동은 거의 낙태로 이어져 인간 생명을 죽이게 된다. 그럼에도 피임산업은 이 진실은 감추고 피임이 정도(正道)인 것처럼 세상을 속인다. 왜 그럴까?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는, 처음부터 살인자, 거짓의 아비’(요한 8,44 참조)라는 악의 속성이 피임산업에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피임이라는 ‘책임을 피하는 기술’을 이렇게 화려하게 포장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피임약은 ‘스무 살 사랑의 걱정’을 해소해 주는 것이 아니라, 헤어나기 어려운 극도의 고통으로 청춘들을 끌어당길 뿐이다. 완벽한 피임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낙태권이 아니라, 남성에게 태아와 엄마의 생명을 책임지게 하는 미혼부 책임법이다.

이광호(베네딕토) 소장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국어문법학자의 삶을 살다가 낙태를 경험한 여대생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목격하고 성교육 연구를 시작했다. 현재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과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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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평화 신문 특별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