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원하고 있죠. 눈앞에 있는 날, 알아요. 그대 뭘 원하는지 뭘 기다리는지. 그대여 나 허락할래요. 사랑은 너무나 달콤하고, 향기로운 거란 걸 내게 가르쳐줘요.’ 갓 스무 살 여성이 남자 친구에게 첫 경험을 간청한다. 성관계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쪽은 대체로 남자지만, 여기서는 정반대다.
‘나 이제 그대 입맞춤에 여자가 돼요.’ 섹스를 해봐야 진짜 남자가 된다는 생각은 마초적 남성들의 왜곡된 성의식인데, ‘성인식’의 제작자는 이 황당한 생각의 여성판을 창조했다. 침투력 강한 대중매체가 심리적 무방비 상태의 소녀들에게 이 뮤비를 주입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남자가 해주는 섹스를 통해서 내가 여자로 태어난다는 잘못된 생각이 소녀들의 무의식을 파고들 수 있다. 본래 남성만의 왜곡된 가치관이었던 것이 소녀들에게까지 확산·전염되는 것이다.
‘항상 힘들어하는 그대 바라보는 내 마음도 아팠어요. 하지만 이젠 내게 더 기다려야 될 이유가 없어지는 날이 온 거예요.’ 과연 여자 나이 스물은 마음껏 섹스를 시작해도 되는 때를 뜻하는 걸까?
‘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와 꼭두각시 인형 안무가 결합하여 전달된다. ‘내가 성관계를 주저하는 것은, 구시대적 순결 이데올로기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순결은 억압적 도그마로 나를 인형처럼 조종하고 있는 인습일 뿐이니, 나는 성관계로 주체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당시 스무 살이 된 박지윤의 인형 안무를 통해서 강렬하게 표출된다.
이처럼 갓 스무 살 여성이 소녀가 아님을 강조하고 섹스를 주체적 선택으로 착각하며 성관계에 뛰어들 때, 누가 최대 수혜자가 될까? 마초적 남성들이다. ‘성인식’은 여성이 온몸으로 부르는 남성 욕망의 세계다.
그 굴절된 세계의 남성은 욕망을 충족시키면서도, 첫 경험을 애걸복걸하는 처녀의 요구를 들어주는 시혜자, 첫 섹스가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임을 가르쳐주는 선생이 된다. 포르노나 ‘성인식’이나 그 내재된 가치관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노래가 2000년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곡이다. 청소년기에 이런 노래로 문화적 세례를 무의식 중에 받으면, 바른 인성을 가진 인간으로 자라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인성교육! 문화를 외면하고서는 공염불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