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셋째 주) 대림 제4주일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루가 1, 39-45)
우리는 성모송을 바칠 때 엘리사벳이 성모님의 방문을 받고 외쳤던 찬사를 그대로 성모님께 기도 드린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구세주를 잉태하신 성모님은 지극한 찬미를 받으실만 하다.
성모님처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천주교 신앙을 찾은 이들을 가끔 본다. 악마의 간교한 유혹과 무시무시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투쟁하여 세례성사를 받고 지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우들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우리 성당의 한 자매는 무당의 딸이다. 어느날 갑자기 그 자매에게 신내림의 기운이 있자 본인도 놀랐지만 무당인 어머니가 더 놀랐다고 한다. 그 어머니는 자신이 무당인 것을 늘 한스럽고 고통스러워했다.
악신의 위협에 짓눌려 어쩔 수 없이 무당이 된 어머니는 자식마저 무당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죽기를 각오하고 막았다. 그래서 딸에게 천주교 신앙만이 악신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무당이 천주교 신앙을 전파했다니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머니는 마귀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면 어설프게 거부해서는 소용이 없고 죽음까지 불사하는 굳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딸에게 간곡히 말했다.
그날부터 자매는 자발적으로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당에 나가려 하면 전날부터 난데없이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성당이 그리 멀지 않은 데도 다리에 힘이 빠져서 평상시보다 걷기가 수 십 배 힘이 들었다. 또한 성당 입구에 들어서려 하면 마치 발이 갯벌에 빠진 것처럼 땅에 들러붙어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었다. 또 성당에 나가려고 마음먹거나 기도하려고 하면 이유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매는 쏟아지는 눈물과 온갖 고통을 견디어 내며 한 번도 빠짐 없이 성당에 나와 교리를 받았고 온갖 유혹을 끝까지 참아내며 세례성사를 받았다. 마귀들의 괴롭힘은 세례성사를 받은 후에도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듬해에 주교님께 견진성사를 받고 나서야 자매는 마귀들의 괴롭힘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제 우리는 며칠만 있으면 주님의 성탄을 맞는다. 사탄의 권세를 무찌르고 세상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우리 곁으로 오시는 것이다.
이 기쁜 소식을 들은 우리는 기뻐 날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은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구세주로 오시는 강생의 신비를 외면하고 오히려 사탄의 세계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메리 크리스마스’란 사탄이 군림하는 세상을 내던지고 즐겁게 그리스도의 미사에 참여하자는 권고의 인사말이다.
이 고마운 인사말을 함께 나누며 이번 성탄절은 좀 더 거룩하게 지냈으면 한다. 아기 예수님께 우리의 죄를 끊어버리고 마귀의 간교한 유혹과 허례허식을 끊어버리겠다는 굳은 결심을 자신에게선물하도록 하자.
– 김봉기 (안성공도성당 주임신부)
– 가톨릭다이제스트 2003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