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엠마뉴엘 수녀가 쓴 ‘Medjugorje in the 90’s (90년대의
메주고리에)’ 라는 책에 실린 글로서, 한 프랑스인 사제가 파리에 위치한 자신의 교구내에
살고 있는 한 남자에 관해 엠마뉴엘 수녀에게 직접 들려준 실화이다:
바오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그는 사실, 성 야고보
성당의 현관에 대해 고마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그곳을 구걸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오로의 곁에는 항상 술 한 병이 함께 놓여 있었음을
솔직히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앓고 있던 많은 병들 중에서도 특히 간경화는 그의 또다른 충직한(?) 동료이기도 했는데,
그의 혈색이 이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이웃 주민들은 그가 조만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사실상 그에게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 교구에 사는 한 마음씨 좋은 N이라는 부인이 그와 다정한 대화를 처음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 부인은 이 남자가 겪는 처절한 고독을 알게 되면서 매우 마음이 아팠다.
부인은 다음과 같은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바오로는 아침이면 성당 현관의 자리를 잠시 떠나,
성당-가능한한 비어 있을 때-안으로 들어가서는, 맨 앞줄 좌석에 앉아 감실을 향해 있곤 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안하면서 그곳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이 그에게 물었다: "바오로, 당신이 여러 차례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곳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거지요? 당신은 묵주도 안가지고 있고, 기도서도
없잖아요. 게다가 이따금씩 졸기까지 하던데… 거기서 뭘 하는 거죠? 기도드리는 건가요?"
바오로가 대답했다.
"제가 어떻게 기도를 바칠 수 있겠습니까요? 전 어릴 적 주일학교 다닐 때 배운 기도문도 한마디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전부 잊어버렸어요. 제가 성당에서 무얼 하느냐고요? 그냥 단순한
거예요. 예수님께서 작은 상자 안에서 홀로 계실 감실 앞으로 가서 그분께 그저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예수님, 접니다. 바오롭니다. 주님을 뵈려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주님 곁에 있음을 아시게 해드리려고 잠시 그곳에 앉아있는 겁니다.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드디어 예상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바오로가 성당 현관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것이다. 어디가 아픈 걸까? 혹시 죽은 것은 아닐까? 걱정 끝에 부인은
사정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결국, 그가 한 병원에 입원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인은 바오로를 찾아갔다.
그러나, 가엾은 바오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바오로의 몸은
호스로 뒤덮여있었고, 안색은 잿빛으로 창백해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병의 예후도 낙관적이지 못했다.
다음날, 부인은 나쁜 소식을 듣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바오로는 침대에 꼿꼿이 앉아, 말끔하게 면도도 한 채, 생기에 찬 얼굴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끊임없이 기쁜 표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부인은 눈을 비볐다. 하지만 확실히 그였다!
"바오로,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당신은 부활했습니다. 더 이상 예전의 당신 모습이 아니예요.
도대체 어떻게 된거죠?"
"글쎄, 모든 일이 오늘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들어와서 침대발치에 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잘 생긴 사람이었어요. 정말 잘생겼었어요. 그런데 글쎄… 당신은 아마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그 사람이 저를 보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야, 나다. 예수다! 너를 만나려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