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도자가 늦잠을 자다가 새벽 기도를 하는 둥 마는 둥, 만사에 영민하지 못해서 제반 규칙을 잘 지키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임종을 맞게 됐는데, 수도원장이 다른 수도자들에게 훈계를 줄 겸, 그에게 물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는 수도 생활을 제대로 못 했네.”
  “그렇습니다.”
  “새벽 기도에도 자주 빠졌고 식사 시간을 어기기도 했지.”
  “옳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오늘 임종을 맞게 됐지.”
  “예.”
  “그런데도 이렇게 태평한가? 자네는 우리 주님의 최후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
  “두렵지 않습니다.”
  “어째서?”
  “제가 게으르고 어리석어서 많은 규칙을 어긴 것은 사실입니다만, 한가지만큼은 철저히 지켰거든요.”
  “그게 뭔가?”
  “저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했습니다. 혹시 저도 모르게 누구를 심판했더라도 그것을 알게 되면 곧장 용서를 빌었지요. 제가 한평생 남을 심판하지 않았으니 주님께서도 약속하신 대로 저를 심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울 게 없지요.”

  이 ‘게으르고 어리석은’ 수도자는 가장 힘든 수행을 한 것이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고 식사 시간을 지키는 것 따위는, 남을 심판하지 않는 것에 견줄 때,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눈앞에 있는 것을 판단 없이 바라보기란, 완전한 자유에 도달한 자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일분 앞의 과거와 일분 뒤의 미래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과거를 돌아보되 거기에 갇히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되 거기에 묶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순간’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오늘’을 살아간다.